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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김인순 다시 읽기: 교차된 관점에서 | 이연재

현대미술포럼






김인순 다시 읽기: 교차된 관점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부당한 경험들에 대해 발언하고, 연대의 표시로써 서로를 지지하는 여성들의 움직임이 시대의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 미술 작품은 관람자가 속한 패러다임 안에서 다의적으로 읽힐 수 있다. ‘민중’미술 운동과 토대를 공유한 ‘여성’미술이었던 김인순(1941∼)의 작품은 그 동안 정치적이고 젠더적인 이중의 틀에 갇혀 후속 연구가 미진하였다. 30년이 지난 김인순 작품을 다시 읽는 과정에서 우리는 교차하는 페미니즘의 시선들을 목도한다.   

김인순은 1984년 마흔 넷의 나이에 미술가로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이화여자대학교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하고 곧장 결혼하여 가정주부로서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창작자의 꿈을 접을 수 없었던 그는 중년의 나이에 전업 작가로 데뷔를 한 것이다. 공동화실을 쓰며 알게 된 동년배 작가 김인순, 윤석남, 김진숙은 여성으로서 살아오며 억눌려왔던 감정과 ‘여류화가’라며 여성미술가의 작업을 평가절하하는 미술계에 대한 거부반응을 공유하면서, 이듬해 10월에 전시를 같이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월모임>을 결성했다. 

1985년에 열렸던 시월모임 첫 전시에 김인순은 얼굴 생김새가 특정되지 않은 상태로 신음하는, 고단한 군중의 형상을 드로잉 한 작품들을 전시했다. 이는 『실천문학』을 읽고 역사, 민족 인식에 영향을 받은 것과 더불어 작가의 첫 개인전 출품작들과 연속된 내러티브 속에서 짜인 것이었다. 1) 삶으로부터 소외된 민중들을 미술작업 속으로 불러와 삶과 유리되지 않는, 자기기만적이지 않은 예술을 하고자 했던 당시의 민중미술계열 작가들에게는 김인순의 리얼리즘적인 작품들이 그들의 예술적 이상과 공통분모가 있어 보이기에 충분했다. 시월모임 첫 전시회가 끝나고 김인순은 그 해 12월에 발족한 민족미술협회의에 발기멤버로 참여했는데, 그는 후에 ‘민족미술이 뭔지도 모르고 들어갔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김인순으로서는 ‘현실을 변혁하려는 미술 운동’ 이라는 민중미술의 방향성에 매료되었을 터다. 

이후 김인순은 윤석남, 김진숙과 함께 본격적으로 불평등을 겪는 여성의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그 고민의 결과물들이 시월모임의 두 번째 전시 《반에서 하나로》(1986) 에 전시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여성 문제를 주제로 한 첫 전시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들은 똑같은 대학교육을 받고서도 남성을 수발하고 그가 쳐놓은 울타리 내에서 자위하며 살아가는, 작가 자신과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를 자조적으로 그린 것이었다. 여성문제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며 가부장제 아래 억압받는 여성의 모습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김인순은 전시를 보러 왔던 한 여성학 교수로부터 이 그림들은 여성의 현실이 아닌 중년 부인들의 넋두리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후 진보적 여성단체의 주선으로 《반에서 하나로》 전의 작품들이 여성대회가 열리는 공간 내·외부에 전시되었는데, 여성대회의 광경을 본 작가는 자신의 그림과 “현실이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2)

여성억압의 교차적 관계
이 때부터 작가는 스스로 ‘유한계급’이라고 부르는 중산층 여성의 삶뿐 아니라, 생존권을 걸고 투쟁하는 기층 여성들의 이중으로 억압된 현실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김인순의 페미니즘 인식은 여성 종속의 뿌리에 여러 기원들이 교차되어 있다고 보는 ‘교차성 이론(intersectionality)’에 부합한다. 부르주아 엘리트 여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문제를 가부장적 문화 아래서 발생한, 억압자 남성과 피억압자 여성 사이의 양립구도를 통해 그려냈던 작가는 다른 경제적 계층에 속한 여성들의 현실에 주목하면서 여성 억압의 원인에 대해 다각적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민미협 여성분과장을 맡은 김인순은 여성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렸는데, 이를 통해 여성 억압의 원인이 가부장제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체계(자본주의)와 섹스-젠더 체계(가부장제도)가 동시에 작용하여 발생하는 문제라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적 실천 의식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즉, 가부장제와 자본의 노동 착취로부터 여성이 해방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를테면 <평등을 향하여>(1987)는 여성분과(이후 ‘여성미술연구회’로 개칭) 내 소모임으로 결성된 그림패 둥지가 여성민우회 창립대회용으로 제작한 그림인데, 여성분과장이던 김인순은 둥지에서 여성대회와 노동투쟁의 현장에서 사용될 걸개그림 제작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 걸개그림 곳곳에는 여성의 모습이 악덕기업주로부터 착취되는 여성노동자, 남편에게 매맞는 아내, 매춘관광에서 성을 파는 상품 등으로 구현되었다. 화면 중앙의 여성과 남성들은 성차별, 계급차별을 타파하고 평등을 쟁취하기 위해 전진한다. 

김인순의 작업 및 둥지의 공동창작물은 남성작가들이 주축이 되어 전개된 민중미술의 경향과 다른 지점을 갖는다. 민미협을 위시한 민중미술은 독점 자본주의와 독재 정치집단을 무너뜨려야 할 세력으로 간주하고, 소외된 삶을 사는 민중을 위한 미술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그 동안 학계에서 지적되어 온 것처럼 민중미술은 전 지구적 금융자본주의에 희생되는 민중을 자극적인 여성의 이미지로써 상징화 하거나, 계급투쟁의 측면에서는 여성성이 거세된 혼성의 장으로서 구축되었다. “계급은 젠더 의식이 없는(gender-blind) 범주이기 때문에, 여성들의 구체적인 억압 상황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다.” 3) 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논지는 민미협 소속 여성작가 김인순의 작업과 민중미술이 갈라지는 지점을 명확하게 만든다. 《여성과 현실》전에 민미협 남성작가들이 한 명도 오지 않았었다는 김인순의 증언에서 알 수 있듯 민중미술 남성 작가들에게 ‘여성의 문제’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연대하는 여성들
둥지의 다른 작품 <맥스테크 민주노조>(1988)는 노동투쟁의 역사 속에서 충분히 평가 받지 못하고 지워질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그 의미를 그린 작품이다. 스피박이 지적하였듯 우리는 여성과 관련된 일에 대해 ‘공적 기록이 말하기를 거절하고’, 제국주의 남성의 시각으로 직조된 역사를 경험해왔다. 가부장적 문화 이데올로기는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을 젠더화하여 부차적인 것으로 평가절하 해왔으며, 일터는 남성노동자들만의 배타적인 공간으로 자리잡았다.4)  이런 사회문화 속에서 기업은 남성의 노동에 비해 더 낮은 임금비용으로 여성노동력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기생할 수 있었고, ‘여공’ 이라 불린 여성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사회적으로 묵인되었다. 당대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맥스테크 민주노조>는 자신의 기본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농성을 벌인 250여명의 여성노동자들을 헤게모니적 역사 서술의 영역에서 투쟁의 주체자로서 재현했다.   

이렇듯 김인순의 작품과 그가 참여한 공동 제작 작품에는 연대하는 여성,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여성이 제시되어 있다. 그 여성들은 오랜 침묵을 깨고, 체화된 이데올로기적 복종을 거부하며, 억누름에 주저앉지 않는 면모를 보여준다. <엄마노동자> 연작에는 ‘단결해서 투쟁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깃발을 높이 들고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여성들이 나타나 있다. 또한 기업주로 보이는 인물과 몸싸움을 벌이는 여성노동자들의 모습도 있다. 도전적이고 굳센 여성상은 김인순의 다른 작품에도 나타난다. <일어서는 삶>(1993), <어부의 아내>(1993)에서 볼 수 있듯 그가 그린 개별적인 여성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일구어 나가는 진취적인 인간이다. 김인순 작품 속 인물들은 여성으로서 겪는 불평등과 억압의 경험을 공유하고, 내면화 된 가부장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현 시대 여성들의 연대를 상기시킨다. 
 
말할 수 없는 서발턴 여성들
김인순은 말할 수 없는, 젠더화 된 서발턴(subaltern)들도 재현했다. 스피박이 주장한 서발턴 여성은 제국주의와 가부장적 사회구조의 틀 아래 이중 삼중으로 억압된, 주변부 가장 바깥에 위치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세력을 조직할 의식도 하지 못하고 상징자본도 없기에,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최하위 약자이다. <그린힐 화재에서 스물 두명의 딸들이 죽다>(1988)는 제품 도난을 막는다는 이유로 기업이 밖에서 문을 잠근 탓에 화재에도 탈출하지 못하고 기숙사 방에서 목숨을 잃은 여성들을 그렸다. 그들은 남성의 1/4도 안되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착취를 겪고, 퇴근 후 이동의 자유마저 박탈당한 삶을 이어가던 여성들이었다. 열악한 노동·주거환경 속에서 그들이 목소리를 낸 것은 화마에 죽어가던 순간 내지른 아우성뿐이었다. 

<내 이름은 미경이> 작품 역시 서발턴 여성의 소리 없는 절규를 대리한다. 세계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잃은 부산의 신발 제조공장들이 줄도산하고, 비용절감을 위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은 더욱 비참해진 처우를 감내해야 했다. 기업의 통제에 신체적·정신적으로 질식상태에 달했던 故권미경은 자신의 왼팔에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 라는 유서를 새기고 기업 옥상에서 투신했다. 작가는 불합리에 목소리 높여 저항하지 못하고, 이름 한 번 제대로 호명되지 못한 채 죽음으로써 삶을 포기한 서발턴 여성의 분노와 슬픔을 자신의 작품에 담은 것이다. 

김인순의 이 두 작품은 “자본과 제국의 신식민적 재배치 속에서 서발턴이 더욱 침묵하게 되는 맥락” 5) 을 잘 보여준다. 세계 시장에서 노동집약적 산업 경쟁력이 밀리자 이를 만회하기 위한 위법과 부조리가 자행되었고, 산업 구조의 최하부 계층은 침묵 속에서 자신의 버거운 삶을 감당했던 것이다. 시대 현실 속에서 이 서발턴 여성들은 부모를 봉양하고, 남자 형제의 학비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삶을 착취당하던 사람들이었다. 고등교육도 받지 못하고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울분을 삭히던 당대의 서발턴 여성은 김인순 작품 속에서 앙상한 나체의 <심청이>(1995)로 재탄생했다. 여기서 심청이는 돌봄을 위한 희생은 왜 여성에게만 강요되어온 것인지 반문하지 못하고 연꽃 위에서 눈물만 흘린다. 가족 내부의 권력 불평등과 계급 및 젠더가 교차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맞물린 영역에서 남겨진 질문들
한편, 김인순의 작품에서는 아이를 등에 엎고 일을 하며, 여성 해방을 위해 앞으로 전진하는 여성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생명을 생산하는 우리는 여자거늘>(1995) 제목에서 우리는 생명의 ‘생산’을 강조하는 김인순의 유물론적 인식을 유추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 여성문제에 대한 작가의 의식은 마르크스주의를 보완한 현대사회주의 페미니즘과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주의 페미니즘 이론에서는 진정한 여성 해방을 이루려면 성적/사회적 분업을 제거하고 성별화된 사회관계를 없애서 심리적 성차라는 것도 줄여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진정한 인간 자유 획득의 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시각을 견지하면, ‘어머니 노릇(mothering)은 여성만의 일’이라는 태도나 ‘생명 생산의 어머니’ 라는 여성상은 가부장적 마르크스 이데올로기로 회귀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김인순의 작업은 고정된 여성, 남성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성별화 된 사회적 역할관계를 재생산하며, 남성과 여성의 고정된 성역할이 무의식적으로 학습되는 데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는가.

김인순의 후반기 작업은 ‘어머니 자연’ 이라는 전통적 수사를 적극 활용하는데, 이로써 오직 여성만이 해낼 수 있는 재생산을 강조하는 급진주의 문화이론 페미니즘과도 접점을 지니게 된다. 그는 1995년 이후 나무 ‘뿌리’를 여성의 삶으로 비유하는 작업을 했다. 땅속에 묻혀 있지만 연둣빛 신록을 피우고 나무를 받치고 있는 뿌리의 생명력을, 생명을 잉태하고 그를 길러내면서도 묵묵히 여러 사회적 역할을 해내는 여성의 모습으로 여긴 것이다. 2000년대 후반까지 계속되어 온 <태몽>연작에서는 여성의 어머니 역할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작가는 임신한 여성이 꾼다는 이 신비한 꿈의 경험을 오방색의 잉어, 새, 꽃 등 우리 문화 속에 축적되어 온 ‘민족적 정서’로써 표현해 여성의 특수성과 우월성을 나타냈다. 이는 민족의 과거, 현재, 미래가 연결되는 우주적 질서가 ‘어머니 여성’에 의해서 수호되어 왔음을 나타낸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의 모순적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민족 문화의 담지자로서의 어머니 여성은 가부장제가 내재화 한 전통적 여성상에 상응하는 위험성을 갖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인식과 민족주의 정서의 기묘한 결합은 김인순의 작품 속에서 역설적으로 ‘강력한 어머니’, ‘도덕적으로 순결한 여성’ 이미지로 나타났다. 이는 식민담론이 생산한 제3세계 여성의 보편적이고 동질적인 이미지라는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의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지점이 된다. 그런데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이 서구 페미니즘의 패권을 해체하려는 시도로서 인도의 지식인을 중심으로 전개된 이론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역으로 특유의 역사적 맥락과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낸 한국 여성의 고유 정서로서 김인순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듯 김인순 작업에는 여성에 대한 다양한 페미니즘 시선들이 충돌하는데, 이 다름의 교착은 억압 구조의 다층성과 복합성을 증거한다. 그의 작업은 젠더, 계급, 민족이라는 권력 체계와 지배 이데올로기가 저항을 받는 동시에 재생산되는 복합된 지점으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김인순의 작업을 2020년의 시각에서 다시 읽어보는 작업은 단조로운 한국 미술사 담론을 다성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여성의 차별적 지위에 관해 완전하게 설명할 수 있는 페미니즘 이론은 앞으로도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내재적으로 구조화된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 나가고, 이를 통해 여성이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이연재(1986∼),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수집연구과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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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의 첫 개인전에 전시된 드로잉들은 김인순의 가족, 그리고 그의 큰오빠가 전사했던 6·25 전쟁에 대한 것들을 그린 것이었는데, 이는 김인순의 사적인 기억과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 동시에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 내면에 공통적으로 새겨진 상처와 애틋함을 화폭에 옮긴 것이었다. 

2) 김인순, 「환상에서 현실로」, 『민족의 길 예술의 길』, 김윤수교수 정년기념기획간행위원회 엮음, 창작과 비평사, 2001, p .225.

3)  로즈마리퍼트넘 통,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김동진 옮김, 알라딘, 2019, p. 159.

4)  김영옥, 『이미지 페미니즘: 젠더정치학으로 읽는 시각예술』, 미디어 일다, 2018, pp. 256-257.

5)  가야트리 스피박,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 갈무리, 2005, p. 18.




김인순, <현모양처>, 1986, 캔버스에 아크릴릭, 91×110cm, 국립현대미술관



김인순 외 그림패 둥지, <평등을 향하여>, 1987, 천에 아크릴릭, 250×400cm



김인순 외 그림패 둥지, <맥스테크 민주노조>, 1988, 천에 아크릴릭, 125×180cm



김인순, <그린힐 화재에서 스물 두 명의 딸들이 죽다>, 1988, 천에 아크릴릭, 150×190cm, 서울시립미술관



김인순, <생명을 생산하는 우리는 여자거늘>, 1995, 천에 아크릴릭, 400×250cm, 광주시립미술관



김인순, <태몽 09-4>, 2009,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1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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