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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공간(空間)과 공감(共感)을 탐구하는 선(線), 차명희 | 이유선

현대미술포럼




공간(空間)과 공감(共感)을 탐구하는 선(線), 차명희



차명희(1947∼)는 1970년대 중반 서울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였다. 졸업 직후 결혼과 함께 한동안 붓을 내려놓았다가 1984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4회의 개인전과 120여 차례의 단체전에 참여하는 등 잠시도 쉼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동양화의 전통적인 재료가 지닌 한계로부터 벗어나 문인화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며 자신만의 양식을 개척해오고 있는 그는 신작에 대한 구상과 새로운 재료의 탐색에 있어서도 젊은 작가 못지않은 열정을 드러내는, 여전한 현역작가다. 40여년에 가까운 긴 시간동안 흑백 주조의 추상화면과 단순화된 선·면의 조화를 통해 독자적인 화풍을 일구어온 차명희의 그림은 자연스럽게 무한한 시(時)·공(空)을 펼쳐내며 관람자로 하여금 풍성한 감정과 공감의 정서를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공간(空間)
그가 학업을 익히며 화업의 뿌리를 단단히 다져갔던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중반은 동양화단에 있어서 ‘과연 우리의 전통이란 무엇인가'라는 실존적 질문과 함께 현대화에 대한 열망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특히 동양화단에서는 현대적 동양화를 표상하는 요소로 추상이 부각되었다. 송수남은 「동양화에 있어서 추상성 문제」 라는 글에서 “동양인의 사실이 바로 추상적인 것이 되고 또한 추상 그대로 사실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구의 경우와 같이 엄격한 좌표에 의한 대극으로서 사실과 추상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추상 속에 사실이, 사실 속에 추상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동양화의 전통에서 ‘사실’을 서양미술과 같이 있는 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수용하는 이의 관념과 의지를 포용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문인화론에 의거해 “사실(寫實)”보다 “사의(寫意)”를 강조함과 일견 상통하는 바, 비록 서양의 개념인 ‘추상'과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동양화단에서 추상적 경향이 많은 화가들에게 공감을 얻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은 졸업 후 비구상부문 국전에 출품하면서 일찌감치 추상의 길에 접어든 차명희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는 1971년부터 《한국화회》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한국화의 실험적인 모색에 관심을 나타냈다. 전통적인 동양화가 지니는 정신성의 발현과 자연을 관조하는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한편으로 개성적인 표현의 자유를 획득하려던 의지는 이른바 한국의 모더니즘을 전개시켜 왔던 작가들의 한 흐름이었다.

본격적으로 붓을 들었던 1980년대 중반 이후 차명희의 그림들은 대부분 공간에 대한 기억과 상념들에서 출발하였다. <기억(Memory)>(1990)이라는 제목의 연작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가 오랫동안 천착하고 있는 공간 혹은 기억이라는 주제와 선·면의 탐구, 비구상의 조형성은 이 시기 새로운 형상성을 모색했던 모더니즘 경향의 흐름과 일견 상통하는 것이다. 1980년대라는 정치적인 혼돈과 변화를 촉구하는 폭발적인 에너지의 중심에서 사회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미술 역시 다양한 실험적 경향들과 현실수용의 목소리가 등장하고 있었음에도 당대의 주류 미술계는 사회적 책임에서 한발 물러선 것처럼 보였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당대 동양화단의 중요한 화두였던 전통성에 대한 희구는 외형적인 요소들보다 정신적인 근원과 철학적 배경에 천착하게 했다. 그 결과 작품의 내면으로의 침잠(沈潛)은 필연적인 수순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성 작가들의 작업은 더욱 모더니즘의 전형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으며 작품에 대한 해석 역시 서정적 주제와 개인적인 감각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되었다. 당대의 화가였던 이철량의 회고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손 윗세대가 주도했던 수묵화운동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신성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당시의 현대성의 표출이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실험적인 모색들이 나름의 문화와 사고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조류였음에도 불구하고 차명희를 비롯하여 동일선상에서 함께 고민하고 표출해온 여성 작가들의 작업은 상대적으로 서정적인 심상 뒤에 안주하고 있다는 선입견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차명희가 오래 천착해온 섬세한 선의 운용과 심리적 공간의 표현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단지 예술의 순수성만을 탐닉한 한국적 모더니즘의 전형이라거나 여성작가 특유의 서정성을 지닌 작업으로만 언급되는 것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 그것은 오랜 동양화의 전통 속에서 강조되어왔던 재료의 물성을 거부하는 한편 산수와 화조, 인물 등 소재적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의 전략이었다. 또한 추상화된 화면 속 공간은 단순히 개인의 심리를 반영하거나 점, 선, 면 같은 기본 조형요소를 탐색하기 위한 배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정서와 미감을 반영하며 공감의 내러티브를 유도하기 위한 장場이었다. 작품 속에 담긴 추상의 공간이 연상시키는 관조의 풍경들은 심안(心眼)을 통해 그 너머 초월의 세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읽힌다. 또한 거대한 생명의 질서를 상징하는 숲과 유연한 변화를 의미하는 물의 이미지로 연결되는 화면은 자체로 우주의 기를 연상시킨다. 정적인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그 공간은 전통 동양화에서 오랫동안 표현하고자 노력해왔던 정신적인 공간의 현대적 번안인 셈이다. 

선(線)
차명희의 작업 중심에는 그가 능숙히 다루는 ‘선’이 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선은 일체의 의식에서 초월한 듯 가볍고 자유로우며 무기교의 필획들은 작품을 편안하게 관조할 수 있는 여백을 제공한다. 사군자 중 하나인 난(蘭)이 지니는 유려함과 같이, 여리지만 강한 힘을 가진 선은 그의 작품에 있어서 대표적인 조형요소다. 서양화의 재료를 주로 사용했음에도 동양의 미감을 물씬 드러내는 것 역시 이러한 선의 존재감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문인화의 전통이 강하게 내려오는 서울대학교에서 수학하며 많은 예술적 영향을 받았다고 술회한다. 화업을 이루는 자세나 수묵을 중심으로 한 운필(運筆)의 중요성을 유산으로 수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본질과 정신성을 잃지 않으려는 주제의식 역시 작업의 근간에 자리하고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은 동양화의 발전에 있어 특히 중요한 변화가 감지되었던 시기로서 정치, 사회사적인 격변의 흐름 속에서 동양화단 역시 새로운 정신성에 대한 열망이 강조되었다. 무엇보다 기존의 화선지와 먹으로 대표되던 재료들에 다양한 변화가 수용되었는데, 화선지에 비해 흡습력이 약하고 질긴 한지가 널리 사용되면서 보다 강렬한 먹색의 표현이 가능해졌다. 또한 수용성인 아크릴 물감이 한국화에서도 큰 거부감 없이 수용되면서 종이의 물성과 운필에 의한 선묘가 가장 중시되던 동양화의 외연이 더욱 확장되었다. 말하자면 1980년대는 한지의 사용과 아크릴 등을 통해 재료의 다양한 실험 모색이 가능하던 시기였고 치열한 실험과 표현의 자유추구가 현대 한국화의 다면화를 이끌어온 것이다. 차명희의 작품에서 독특한 특징으로 언급되는 재료의 사용은 이와 같은 시대적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모색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는 동양화가임에도 종이와 먹 대신 캔버스와 아크릴, 목탄과 같은 현대적인 재료를 사용한다. 이 때문에 그의 작업을 마주한 사람들은 한국적인 정서를 체감하면서도 서양화의 특성을 동시에 느낀다. 그 역시 처음부터 이런 재료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재학시절에는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먹과 담채를 이용해 화선지에 구상회화를 그리기도 했으나 모필毛筆과 종이의 물성이 강조되는 전통적인 동양화의 특성이 그에게는 갑갑함을 느끼게 하는 연유가 되었다.

그의 작업 주제인 ‘공간 속 심상’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 동양화의 특성과 정반대인 “절대 번지지 않는 선”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작가의 진술은 그간 치열했던 고민과 수없는 시행착오들을 통해 단단해졌을 그만의 세계를 짐작하게 한다. 그 결과 차명희 작가는 보다 명징한 표현을 위해서 먹이 아닌 목탄을 손에 들고, 화선지가 아닌 캔버스와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무제(Untitled)>(1998)는 미디엄을 올린 캔버스 평면 위에 수평 붓으로 흰색, 회색의 아크릴 밑바탕 칠을 한 다음, 물감이 채 마르기 전에 목탄으로 긁어서 자유로이 선을 그어나가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이는 이후 보다 본격화 되면서 그를 대표하는 표현방식 중 하나가 되었다. 먹에서 아크릴 물감으로의 전환을 통해 작가의 사념과 예리한 감각은 화면 위에서 보다 직관적으로 표현되었다. 먹은 종이에 스며들면서 그 겹의 물성이 강조되는 반면, 아크릴 물감은 그어진 흔적들이 마치 박제된 것처럼 남겨지게 된다. 그 결과 작품을 보는 이에게 순간의 감각은 보다 명징하게 전달된다. 동양화에서 강조하는 정신과 묵상의 세계로의 전진을 위해 그에게 있어서 재료의 변화는 과감하면서도 필연적인 과정이었던 것이다. 

공감(共感)
차명희는 내면의 공간을 추상으로서 표현하지만 누구보다 작품을 마주할 미지의 관객과 공감하기를 희망한다. 그가 화면 안에 담아온 감정과 정서는 끊임없이 이어온 활동의 과정에서 더욱 농축되어 밀도가 생겼다. 작가는 단지 작품을 보는데 그치지 않고 몸의 여러 감각들을 깨우는 체험을 유도한다. 이러한 점은 차명희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매우 독특하고 독창적인 특성으로서 작품 제목에서 느껴지는 공감각적인 요소들, 즉 바람의 소리, 숲의 내음, 식물의 촉감, 비 갠 뒤 공기의 냄새 등이 화면 안에서도 보일 듯이 재현되는데서 오는 것이다. 미술평론가 나카하라 유스케가 차명희의 풍경에 관해 언급한 바와 같이 그의 작품에서 자연은 단지 시각에 기대어 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청각, 촉각, 후각, 미각과 같은 오감 모두에 대응하고 있는 듯하다. 1990년대 후반 <소리(Sound)>(1999), <울림(Resonance)>(2003) 등과 같은 연작을 지속해왔던 것처럼 작가는 공간 속 감각 체험이라는 요소를 오랜 관심사로 간직하고 심화시켜 왔다. 그리고 이러한 공감각적 특성은 작품에 보다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을 형성한다. 

대상의 외형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화면 안으로 직접 들어가 내면의 정신적 세계를 체감하도록 권유하는 것은 동양의 와유사상으로부터 출발한 산수화와도 그 맥을 같이 한다. 작가가 오랫동안 진지하게 관심을 둔 자연과 사유에 대한 경험들이 작품 안에 공감각적 심상들로 재현되어 관람객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단순히 내면의 풍경을 제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유와 심리적 체험을 통해 자연에의 동화를 이루게 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게 한다. 이는 전통적 산수화와 차명희의 추상적 그림들이 접점을 이루는 지점을 설명할 뿐 아니라 1990년대 이후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동양화의 현대적 경향과 상통한다. 


이와 같이 동양화의 기본적 조형 요소인 간결한 점과 선을 통해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라는 정신적 목적성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는 차명희의 그림은 동양화의 현대화 작업을 선구적으로 수행했던 이전 세대의 고민을 체화한 것이면서도 먹과 종이 자체의 특질에 방점을 두었던 장르의 한정된 범주를 주체적으로 넓혀 나간 사례라 할 수 있다. 그가 여전히 본질을 놓지 않으면서도 전통 안에 매몰되지 않고, 과감히 변화를 모색함으로써 동양화의 현대화와 외연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작가 차명희 이름의 무게에 더욱 힘을 싣는다. 수십 년간 꾸준히 선의 움직임과 공간을 탐구해온 그만의 진지한 궤적이 앞으로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이유선(1982∼),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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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희, <기억(Memory)>, 1990, 종이에 아크릴릭, 180×236cm 




차명희, <무제(Untitled)>, 1998, 종이에 목탄과 아크릴릭, 63×95cm 




차명희, <소리(Sound)>, 1999, 종이에 아크릴릭, 63×93.5cm




차명희, <울림(Resonance)>, 2003, 종이에 목탄과 아크릴릭, 120×18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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