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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 개인전: 정화, 마음 담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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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담은 마음, 기원하는 자아


           글 | 박하은, 독립기획자


 인간의 삶에 있어 불가결한 자원인 물, 그 중에서도 맑고 깨끗한 물은 한국을 포함한 다양한 문명의 고대 신화에서 종종 신성한 의미와 결부되어 신앙의 매개체로 간주되어 왔다. 청명한 물이 오염된 것을 정화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깃든 ‘정화수(井華水)’는 다른 말로 ‘정안수’라고도 불리는데, 우물 안의 물이라는 뜻으로 이른 새벽 가장 처음 새로 뜬 정결한 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보름달 아래 가정의 평화를 빌던 여성들의 신성한 매개체였던 정화수라는 오래된 민속 문화는 본 전시 《정화, 마음 담은 물》에서 한 사람이자 예술가, 그리고 엄마로서의 자아가 기원하는 마음을 담는 그릇의 형태로 드러난다.  


 《정화, 마음 담은 물》은 도예가 김남희(b.1988)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이다. 동명의 책 제목 “자아 - 예술가 -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작업들은 도예를 기반으로 부조와 회화적 기법을 병용하여 현대 사회에서 낯선 전통이 되어 버린 정화수를 통해 자신이 걸어온 삶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은유한다.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연작 <기원>(2023)은 보름달 아래 정화수를 떠놓고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상징적 모티브로 삼아 사발에 담긴 정화수를 빚은 형태를 보여준다.



 그릇 모양으로 빚어내지만 평면 부조에 가까운 김남희의 작품은 ‘회화는 벽에 걸고, 도자기는 올려두고 담아둔다’는 재료와 매체에 고정된 관념을 전복시키고자 한다. ‘태토(胎土)’로 빚은 그릇 형상의 표면에 희고 검은 ‘화장토(化粧土)’를 바르고 평면 작업에 부조를 하듯, 연필로 데생을 하듯 시간을 들여 조각칼을 이용해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문양을 새긴다. 그 후 가마에서 초벌을 견디고 나온 도자 위에 유약을 바른 뒤, 푸른 색감의 깨어진 유리 조각을 얹어서 가마에 재차 굽는다. 이때 뜨겁게 달궈진 가마 안에서 분리되어 있던 유리 조각들이 녹으면서 물처럼 하나로 융합했다가, 가마 밖으로 꺼내어 한 김 식히는 과정에서 새로운 무늬로 터지고 깨지며 완성되는 과정을 거친다. 실용적인 기능 대신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담고자 했던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탄생에 수반되는 이러한 절차를 ‘아기 상태’의 재료들이 새로운 자아로 성장하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작업의 주 재료인 흙, 유리, 돌은 겉보기에 거칠어보여도 불과 만나 구워지기 전은 여린 상태를 보존하고 있는 갓 태어난 아기 단계로 섬세하게 다루어야 하며, 불이라는 우연하고 변칙적인 요소를 만나 스스로를 강화하며 내면의 잠재력을 폭발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깨어지고, 녹았다가, 다시 굳으며 새롭게 깨어지는 그릇 속의 유리는 기존의 형태가 불과 만나며 색과 결, 광과 형태 모두 예상을 벗어난 모습으로 거듭나는 도자예술의 우연적 속성을 드러낸다. 의도대로 통제할 수 없어 마뜩찮은 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작품을 빚고 구워내는 과정을 작품 스스로가 인간의 한계를 능가하는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수용한다. 


 도예가 김남희에게 흙을 빚는 행위는 한때 개인이자 예술가인 ‘나’라는 그릇을 어디에 둘 것인지 자아의 배치를 탐색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작품 속 그릇의 경계 밖으로 넘실거리는 푸른 색감은 여전히 뜨거움과 차가움을 오가며 때로 넘치기도 쏟아지기도 하는 작가 자신의 마음의 상태로 해석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 ‘그릇이 큰 사람’이라는 숙어와 같이 ‘내가 빚는 그릇처럼 나도 커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서른 즈음에, 김남희는 음식이 아닌 이야기를 담는 작품으로서 도자를 대하는 작가적 태도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어머니가 되는(motherhood)’ 경험 이후에 자신을 넘어 타인을 품어낼 수 있는 그릇이자 모두의 평안을 위해 빚는 마음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김남희의 마음의 풍경이 곧 작업 세계의 변화로 이어진 것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세우고 아이들을 기르며, 작가는 작품의창작과도 같은 새로운 생명의 터전을 줄곧 가꿔왔다. 예술대학을 졸업한 후 세월이 흐른 지금 첫 개인전을 여는 김남희 작가의 시간을 ‘경력의 단절’이라 함부로 표현할 수 없는 이유다. 여리고 약한 영혼이 단단하게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마치 도예가가 흙을 빚어내는 마음과 닮아 있다. 자아, 예술가, 엄마로서의 김남희가 기원하는 마음의 물을 함께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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