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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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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
2024.5.4. - 8.25.
솔올미술관 전시실 2 & 3


아름다움은 삶의 신비다.
그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
아름다움은 삶에 대한 확실한 감응이다.

– 1989년, 아그네스 마틴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은 순수 추상을 추구한 미국 작가 아그네스 마틴의 작업 세계를 조명하는 한국에서의 첫 미술관 전시이다. 아그네스 마틴은 컬럼비아대학 시절 선불교와 도교 사상을 접했고 이는 그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아방가르드한 실험미술과 단색화가 전개되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마틴의 작업을 동양 사상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한편, 그녀의 실험적이고 명상적인 작업을 동세대 아시아 작가의 작업과 나란히 두고 서로의 관계와 동조성을 고찰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전시는 1955년, 아그네스 마틴이 구상 회화를 벗어나기 시작한 시점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시기 마틴의 작업은 유기적이고 생체적인 형태를 벗어나 원형, 삼각형, 사각형과 같이 좀 더 형식적이고 기하학적인 언어와 차분한 색상으로 옮겨간다. 1950년대 후반에는 대상의 재현과 모방이 사라지고 다양한 선과 격자 형태가 나타난다. 1964년에 제작된 〈나무〉(The Tree)는 마틴의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주는 혁신적이고 미니멀한 작품이다.

1967년, 아그네스 마틴은 뉴욕에서의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여행을 떠났다. 이후 1974년부터 뉴멕시코주 시골 마을인 타오스에 은둔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200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여 년 동안 동일한 방식으로 작업을 하였다. 이 시기 마틴은 명상을 통해 얻은 ‘영감’을 회화적으로 표현하며 고유한 이미지를 찾아갔다. ‘완벽함’을 추구한 마틴은 작품의 크기, 색상, 기법 등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그 안에서 색과 선을 무한히 반복하고 변주하며 화면을 채웠다.

1977년에서 1992년 사이 제작된 회색 모노크롬 회화는 마틴의 전체 작업 중 가장 신비로우면서도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전시에서 소개되는 여덟 점의 회색 모노크롬 작품은 작가가 설정한 제한 안에서 형태, 색조, 질감의 무한한 변주를 보여주며 미학적 절정을 경험하게 한다.

끝으로 전시는 아그네스 마틴이 삶의 마지막 10년 동안 몰입했던 시리즈를 소개한다. 1993년 건강상의 이유로 양로원에서 지내던 마틴은 매일 작업실을 찾으며 붓을 놓지 않았다. 몸이 쇠약해지며 작품 크기도 줄었다. 1999년 제작된 여덟 점의 연작 ‘순수한 사랑’(Innocent Love)에 대해 마틴은 고요한 명상 속에서 떠오른 이미지를 그린 것이라고 말했다. 회색 모노크롬 작품들과 달리 반투명한 광채와 기쁨, 예찬이 담긴 ‘순수한 사랑’ 연작과 함께 마틴의 예술 여정은 끝을 맺는다.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은 감상자에게 느리게 보는 기회를 선사한다. 감상자는 침묵, 씻겨 나간 색채, 부드럽게 흐려지는 테두리, 열정적인 연필 자국 등 마틴의 세심한 작업 과정을 고요함 가운데 천천히 음미할 수 있다. 마틴은 자신의 작품은 자신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며 작품을 개인적인 경험이나 의미, 삶에 대한 통찰과 연결 짓는 것을 꺼려 했다. 작품의 가치는 감상하는 자에게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음악을 듣는 것과 유사하다고 했다. 마틴은 한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에 대해 밀려오고 빠져나가는 파도, 하늘을 가로지르며 움직이는 구름처럼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그것은 곧 반복적이고 사색적이며, 시간을 초월하고 행복을 자아내는 경험, 그리고 아그네스 마틴과 관객에게 ‘완벽의 순간들’을 선사하는 경험이다.




아그네스 마틴, 〈무제 #9〉, 1990, 캔버스에 아크릴릭, 연필, 182.6 x 182.6 cm 
© Estate of Agnes Martin _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아그네스 마틴
(Agnes Martin, 1912-2004)

아그네스 마틴은 1912년 캐나다의 서스캐처원주에서 태어났다. 1931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욕과 뉴멕시코 타오스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가르쳤다. 1950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후, 마틴은 본격적으로 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으며, 1960년대 이후 미국 미술계의 주요 인물 중 하나로 성장했다. 당시 마틴은 애드 라인하르트, 엘스워스 켈리, 바넷 뉴먼과 교류하였다. 순수 추상을 추구한 마틴의 작품은 종종 미니멀리즘의 맥락에서 논의되기도 했으나 마틴은 모더니즘 작가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뉴멕시코주에서 홀로 생활하며 자신만의 다채로운 예술언어를 발전시켰다. 또한 절제된 방식으로 아름다움과 순수의 완벽성을 추구했다. 그의 명상적이고 서정적인 작품은 시대를 초월하여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마틴은 2004년, 92세의 나이로 뉴멕시코주 타오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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