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BASE 유현경 / 나는 너를 그릴 수 없다
전시명 : 나는 너를 그릴 수 없다 | I can't portray you
전시 기간 : 2025년 11월 6일 ~ 2025년 12월 31일
마주한 사람이 물었다. 추상이 무엇인지. 너와 내가 하고 있는 이것이 추상이다. 대화가 된 사람. 대화가 된다는 것은 동등하다는 것이다.
너와 내가 하고 있는 설명적인 것이 없는 이 대화가 바로 추상이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부끄러움에 말하지 못했다.
- 유현경, 작가노트 「추상에 대해서」, 2024
유현경, 〈둘〉, 2013, 캔버스에 유채, 162x259cm. Courtesy of the artist.
유현경, 〈아이돌 걸즈〉, 2017, 캔버스에 유채, 200x258cm. Courtesy of the artist.
부끄러움에 말하지 못한 것을, 유현경은 회화로써 답해낸다. 그는 한결같이 ‘말하지 못한 것’들을 그려왔을지도 모른다. 작업 초기부터 인물을 주제로 한 작업을 지속했지만, 그의 작품에서 모델의 얼굴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눈코입은 찾아보기가 어렵고, 인물은 표정 없이 뭉그러진 형상으로 나타난다. 이는 단순한 생략이 아니라, 인물이란 무엇으로 인식되는가에 대한 질문이며, 동시에 작가 자신이 타자를 어떻게 감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렇기에 유현경은 자신의 그림이 ‘인물화’로 바라보는 시선과는 거리를 둔다. 그는 오히려 “나는 너를 그릴 수 없다”라고 말한다.(1) 그의 회화는 대상보다는 그가 대상을 어떻게 감각하고 인식하는지의 과정 자체를 드러내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따라서 유현경의 작업에서 인물과 풍경의 구분은 무관하다. 인물에 대한 관심이 점차 풍경이나 장소로 확장되어 가는 것은 작가가 응시하는 대상, 관심의 확장으로 이해하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그가 언젠가 인터뷰에서 말한 것과 같이 그의 작업은 “응시하고, 대면하고, 만난다”(2)라는 과정을 담고 있다. 밑그림은 거의 없고, 즉흥성이 두드러지는 그의 회화를 작가는 대상과의 ‘호흡’이라 부른다. 거칠게 그은 획과 뭉쳐진 물감은 단순한 묘사 행위를 넘어, 작가가 대상을 대면하는 순간의 감각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다. 화면은 완결된 이미지라기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응시의 흔적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흔적들의 집합으로서, 유현경이 지난 10여 년간 축적해 온 작업을 선보인다. 그는 회화가 무엇을 대상으로 삼는지에 대한 질문을 다시 꺼내놓는다. 유현경의 작업은 ‘그릴 수 없는 것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라는 불가능한 과제 자체를 회화의 조건으로 삼고 있으며, 바로 그 지점에서 추상은 이 과제의 필연적 결과로 자리한다.
전시 전경, 박서보재단 26SQ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