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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온빛사진상 수상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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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온빛사진상 수상자전 
2021. 2. 20 _ 3. 14


최우수온빛상 김용철 <CALL ME> 
온빛상 박형기 <조금은 다른 일상>, 최형락 <백지白紙> 
온빛신진사진가상 김일목 <나를 품은 살갗>



#1 김용철 <Call me>  


전 시 소 개 

“36년 동안 사진을 찍었고, 3년 6개월 차 대리기사다.”로 시작되는 사진가 김용철의 포트폴리오 <CALL ME>. 온빛이 2020년 최우수수상작으로, 노상에서 ‘콜’을 기다리는 대리운전기사들의 애환을 담은 이 사진 시리즈를 호명했다.

2011년 재정된 이래 멈춤 없이 그 행보를 이어 온 <온빛상>.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후보작들의 발표와 심사 등의 행사에 어려움이 따랐지만 온라인 형식으로 무리 없이 치른 2020 온빛상은, 지난해보다도 더 숫자가 늘어난 총 42명의 사진가들이 응모함으로써 우리나라 다큐멘터리사진계의 가장 큰 행사로서의 위상을 재확인했다. 최우수온빛상 외에도 온빛상에 박형기 <조금은 다른 일상>, 최형락 <백지 白紙>가 선정되었고, 젊은 사진가를 양성하기 위해 올해부터 신설된 온빛신진사진가상은 김일목 <나를 품은 살갗>이 선정되었다. 
 
<CALL ME>는 오래 사진을 생업으로 해오다 지금은 대리기사로 일하는 작가가 역시 생계를 위해 부업으로 대리기사를 선택한 사람들의 노동 현장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사진이다. “현역시절엔 각자의 영역에서 주축이었거나 나름 화려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밤이슬을 맞으며 ‘콜’을 찾아 뛰어다닌다. 그나마 이런 일이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말한다.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콜’이 있을만한 노상에서 ‘콜’이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린다.” 작업노트에 쓰인 마음 안팎의 풍경들이 사진에 그대로 담겨 있다.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대리기사들의 모습은 타자이면서 동료이자 곧 작가 자신이 투영된 모습이기도 하다. 또 그 사진을 바라보는 누구도 그 장면과 정서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없는 지점을 사진은 포착하고 있다. 과장 없이 진솔한 앵글이 더 큰 공감을 불러, 많은 심사자들이 수평적으로 참여하는 온빛의 심사에서 일치된 표를 얻을 수 있었다. 

박형기 <조금은 다른 일상>은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대변화 속에서 전과 다르게, 그러나 여전히 앞을 향해 나아가는 현대사회의 일상을 절제된 조형미로 담아냈다는 평을 받았다. 또 다른 수상작인 최형락 <백지(白紙)>는 한지를 만드는 장인들의 모습을 통해 세월 속에 스러져가는 전통에 대한 안타까움을 기록으로 상쇄했을 뿐만 아니라, 장인들의 끈기와 열정 못지않은 작가의 작업 계획과 일지가 다큐멘터리사진 작업의 한 모범으로서 깊은 인상을 주었다.

완성된 작업에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 완성을 위해 나아가는 신예 사진가를 응원키 위해 새로 재정된 온빛신진사진가상의 김일목 <나를 품은 살갗>은 제주 4.3사건의 피해자인 연로한 아버지의 일상을 담담히 기록한 사진 시리즈이다. 피해자인 아버지를 객관적으로 기록함과 동시에 이미 사라져버린 지난 역사를 비주얼 스토리로 시각화했다는 좋은 평을 받았다.

2020 온빛사진상 발표와 수상은 지난 11월 28일에 이루어졌고, 2021년 1월 12일부터 서울 갤러리 류가헌을 시작으로 2월 20일부터 3월 14일까지 대구 Artspace LUMOS, 3월 16일부터 28일까지 광주 혜윰 갤러리에서 순회 전시가 이어진다. 

  

온빛 다큐멘터리 

‘온빛다큐멘터리'는 2011년 사진가들이 함께 한국다큐멘터리 사진의 활성화를 위해 뜻을 모아 사진의 본질인 기록성을 다시 돌아보면서 사진을 통해 이 시대를 보다 깊이 있게 해석하기 위해 모인 사진가 단체이다. '온빛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대중과 올바른 소통을 이루어 사진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함과 동시에 한국다큐멘터리사진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시대의 진정한 기록이자 미래에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사료가 되며, 지금 이 순간에도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인류의 기쁨과 고통, 그리고 인간의 존귀함을 열정적 의지로 담아내고 있다. 

우리들은 대중적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의미 있는 스토리를 발굴, 사진으로 기록하여 사회적 소통과 공감을 이루고자 한다. 동시대인들의 삶에 대한 정보 공유, 인간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에서 비롯하여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변화에 '온빛다큐멘터리'가 소중한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온빛사진상>은 다큐멘터리사진 작업을 하고 있는 누구나 응모할 수 있으며, 사회적인 다큐멘터리사진 뿐 아니라 순수 다큐멘터리, 생태-자연 다큐멘터리, 포토저널리즘 등 사실적인 기록 사진에 기반한 작가의 세계관을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이면 자유롭게 응모할 수 있는 상으로 온빛 다큐멘터리 회원 사진가들이 선정하는 사진상이다. 



2020 온빛사진상 수상자


작 업 노 트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이성호

몇해전 지인의 소개로 대구 남산동 ‘성모당’을 알게되어 여러차례 갔는데도 성모당 안쪽에 성직자묘지가 있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입구에는 붉은 벽돌로 된 기둥에 ‘Hodie Mihi’ 그리고 ‘Cris Tibi’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슨 의미인가 궁금하여 알아보니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라는 것을 알았다. 한국 가톨릭의 숱한 순교자들이 죽음의 순서를 기다리는 형형한 눈빛들이 떠오르면서 저물어가는 저녁 빛을 받은 무덤 비석이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이후 근대 가톨릭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되었다. 현재의 한국 가톨릭이 숱한 순교자들의 피에 의해서 세워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았다. 1791년 신해박해를 시작으로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 등 숱한 순교자들이 치명(致命)당하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박해역사가 밑거름이 되어 현재 한국 천주교가 성장하게 되었다. 

지난 4년간 홀로 진행하여온 팔공산 한티성지, 서울 절두산, 청양 다락골줄무덤, 전주 치명자산, 추자도 눈물의 십자가 등 성지순례에 이어 전국 각지의 공소들을 순례하고 있다. 공소는 신부님이 상주하지 않는 작은 성당을 말하는데, 천주교 신앙의 뿌리이면서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곳으로 알고 있다. 특히 공소는 박해의 고난의 시절 때 모두 험지인 산으로 들어가 일구어낸 천주교 신앙의 증거라 생각되어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 공소들은 하나둘씩 폐쇄되면서 잊혀져가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사라져가는 공소들을 초기 신앙인들을 생각하며 객관적인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고 있다.

이러한 나의 ‘오늘의 내가 내일은 네가’ 작업은 우리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작업으로 생각하며 앞으로도 Catholic 성지를 계속 기록해 나갈 생각이다. 

상기 작업이 보는 이들에게 종교적인 靈感으로 다가오고 우리의 한국근현대사의 어두웠던 역사들을 한번 쯤 생각하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작 업 노 트 


김용철 _ CALL ME

(오랜 시간 ‘콜’이 안 뜨거나, 험지에 갔을 때 “콜 좀 줘라”, “아무거나 좀 줘라” 라고 기사들은 말한다) 

올 가을 나는 3년 6개월 차 대리기사가 된다. 사진이 본업이지만 갈수록 일이 줄어 대리운전으로 부족한 수입을 메꾼다. 비슷한 고민을 하다 대리기사가 된 친구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 성격 탓에 처음엔 많이 힘들었다. 밤낮이 바뀌는 생활 속에 처음 만난 사람과의 동행은 어색했고, 어둡고 낯선 지역에서 방향감각은 마비되었다. 많이 걷다보니 체력 부담도 컸다. 무엇보다 누군가 나를 알아볼까 싶어 몸을 사렸던 기억이 선명하다.

전국에 대략 20만 명의 대리기사가 있다고 한다. 한번은 운행 중에 손님이 깊은 속말을 줄줄이 꺼냈다.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했고, 꿈꾸던 레스토랑을 열었는데 2년도 안 돼 쫄딱 망했 다며, 자기도 대리를 해 볼까 하는데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단다. 자의 반 타의 반 각자의 영역에서 밀려난 이들에게 대리운전은 단비 같다. 현역시절엔 각자의 영역에서 주축이었거나 나름 화려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밤이슬을 맞으며 ‘콜’을 찾아 뛰어다닌다. 그나마 이런 일이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말한다.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오는 데로 ‘콜’이 있을만한 노상에서 ‘콜’이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린다. 

대리기사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그리 좋지 않다.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는 걸 경험으로 느낀다. 운행 중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보면 알게 된다. 가끔 황당하고 험한 꼴도 보고, 여러 기사에게 전해들은 에피소드도 많다. 맨 정신에도 이상한 사람들이 있는데 취중엔들 어떻겠는가. 1년 전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파출소에서 조서를 쓴 적도 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처음 겪는 일이다. 대리기사들은 최소 한 번씩 이런 경험을 한다.

대중의 인식이 이렇다보니 아는 사람을 손님으로 만날까 경계한다. 한 번은 운행을 마치고 다음 대기 장소로 이동하다 표정이 안 좋은 기사를 만났다. 몇 년 만에 옛 초등학교 친구를 손님으로 만났는데, ‘너 어쩌다 이렇게 됐냐?’는 말에 비애감을 느꼈다며 담배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좋은 손님도 많다. 운행 중에 내 결혼기념일을 알게 된 어느 손님은 빵집 앞에 차를 세워 달라 하더니 달려가 케이크를 사다 주는데 작은 감동이 밀려왔다. 물론 상식 이하의 기사들 얘기도 여러 손님에게 들었다. 애매한 도로에 차를 세우고 그냥 가버린 기사도 있고, 난폭한 운전으로 불안에 떨며 갔다는 손님도 많다. 비좁은 차안에서 서로간의 성격과 인성이 분위기를 좌우한다. 사소한 행동이나 말투가 충돌로 번지는 게 허다하다. 그래서 “예예” 하거나 져 주는 게 어이없지만 최선의 방법이다.

어둠이 내리면 상점에서 개성 넘치는 화려한 조명과 음악들이 사방에서 뿜어져 나온다. 자동차의 불빛과 공공시설물의 불빛이 어우러져서 눈과 귀가 어지럽다. 빠르게 회전하는 거대한 회오리 속에서 대리기사들은 그저 묵묵히 ‘콜’을 기다린다. 어디든 앉을만한 자리가 있으면 앉아 콜을 기다리는 모습에서 애잔함과 씁쓸함을 느낀다. 이를 사진으로 전달해 보고 싶었다.

누구에게는 하찮은 일이지만 누구에게는 생업이 걸린 일이다. 어려움을 알아 달라는 게 아니다. 무시하지 말고 그저 일하는 사회 구성원으로 대접받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작 업 노 트 


박형기 _ 조금은 다른 일상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는 상당히, 어쩌면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19 생활 방역 전환을 선언하며 정부의 한 관료는 이와 같은 말을 덧붙였다.

2020 년 1 월, 코로나 19 가 전 세계적으로 퍼졌다. 기존의 질서는 무너지고 바이러스 보다 무서운 혼란이 찾아왔다. 여전히 우리는 출구가 어디쯤 있는지 알 수 없는 터널을 통과 중이다. 그 속에서도 일상은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며, 연인과 손을 잡고 한강 옆을 걷는다. 모두가 끝을 알 수 없는 터널 저편의 한 줄기 빛을 좇아 걸어간다. 하지만 조금은 다른 일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걷는 이의 표정을 읽지 못한 채 발걸음을 옮긴다. 모임은 금지됐고 학교는 문을 닫았다. 거리를 두고 서로를 지켜보는 눈빛은 의심으로 가득하다. 온몸을 감싸고 병마와 싸우는 이들의 모습은 이제 너무나도 친숙하다. 그렇게 하나둘씩 달라진 일상은 어느새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조금은 다른 일상>은 코로나 19 로 인해 변화한 일상의 기록이다. 박형기는 코로나 19 유행 이전의 일상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미묘한 차이를 포착한다. 사진 속 풍경은 언뜻 보면 우리가 알던 일상과 너무나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풍경이기도 하다. 그것은 곧바로 표면에 드러나는가 하면 사진 너머에 모습을 감추고 있기도 하다. 숨겨진 이면을 읽어내는 건 관찰자의 몫으로 작동한다.



작 업 노 트 


최형락 _ 백지(白紙), 종이로부터

불, 물, 흙, 나무, 햇빛… 이 원초적이고 원형적인 것들에서 종이가 만들어졌다. 물론 여기에 인간의 몸짓이 더해져야 한다. 종이에서는 자연의 원형이 보인다. 2천 년 전 처음 종이를 만들던 그 몸짓은 지금까지 변함없다. 성쇠를 거듭하며 진화해 온 문명 속에서 그 문명의 뿌리가 된 원초적인 몸짓이 고스란히 살아있다는 것은 기쁘고 경이롭다. 종이로부터 자연을 보고 싶었다. 종이로부터 인간을 보고 싶었다. 종이로부터 문명의 시작을 가늠해보고 싶었고, 종이로부터 시간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아주 오래됐을 그 몸짓들에서 불변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혼과 생을 바쳐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려는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있다. 그 힘은 고집과 집념, 자부심이 만들어내지만, 고되고 고된 생애와 숱한 희생이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한지를 만드는 일은 고된 삶을 상징했다. 이제 한지는 아슬아슬한 경계에까지 왔다. 불변과 소멸의 사이에서 이들은 어떤 생을 살아냈을까. 지금 그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선 위의 인간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전국의 한지 만드는 19곳을 다니며 한지 만드는 사람들을 만났다. 
 
한지는... 한지(韓紙)는 한국의 전통 종이다. 아흔 아홉 번의 손길로 만들어진다고 해서 백지(白紙)라고도 부른다. 그만큼 생산 과정이 복잡하고 지난하다. 작업 과정은 대략 이렇다. 겨울에 벤 1년생 닥나무를 쪄서(닥무지) 껍질을 벗기고 말린 뒤 잿물에 삶는다(증해). 이를 볕 드는 물에 며칠 담갔다가 티를 고르고 방망이로 내려쳐(고해) 짧은 섬유질로 만든다. 이후 황촉규 뿌리로 만든 닥풀과 함께 큰 물통에 넣고 섞은(해리) 뒤 대나무발로 떠서(초지) 말리고 펴면(도침) 한지가 된다. 물론 이 과정에는 매우 까다로운 원료 조건과 수많은 세부 공정, 부차적인 작업이 추가된다.  

‘비단이 오백년, 한지가 천년 간다’는 말은 한지의 뛰어난 보존성을 드러낸다. 8세기에 제작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751년)과 신라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754~755년)은 모두 1300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고스란하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이탈리아의 국립기록유산보존연구소(ICRCPAL)가 미술품 복원용지로 ‘외발뜨기’로 상징되는 한국의 전통 한지를 선택했다는 뉴스도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지 업계는 위태롭다. 사람들의 인식도 희미해져 가고 사용처도 크게 줄었다. 종이를 만드는 곳 역시 크게 줄었다. 게다가 값싼 중국산 종이가 그나마 남은 한지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 공방은 이제 스무 곳이 채 되지 않는다. 이마저도 대부분 영세하고 일부는 휴업 중이다. 작업자의 연령대가 높고 후계자를 둔 곳도 몇 곳 되지 않는다. 중국의 선지나 일본의 화지처럼 국가주도의 산업화 기회도 없었다.



작 업 노 트 


김일목 _ 나를 품은 살갗

아버지의 살갗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내 어릴 적 당신은 이미 머리 희끗한 지천명의 삶이었고 우리 현대사의 거친 국가폭력에 시달린 희생자였으나 나는 이를 알지 못했다. 한창 내 몸의 성장을 의식하지 않은 채 들과 산을 뛰어다니던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지’ 않았다. 당신은 그저 나의 아버지였고 시골 촌부였으며 아는 것이 많은 스승일 따름이었다. 때론 멀다가 가까웠으며 때론 울다가 웃기도 하는 당신과 나의 사이는 열일곱 살이 된 어느 날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늙고 처진 아버지의 살갗을 처음 느꼈던 그 날 울컥하는 가슴을 누르면서 나는 당신과 나의 관계에 대한 큰 변화를 직감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살갗은 내게 알 수 없는 동기를 부여했고 그 동기의 실체에 대한 갈증은 카메라를 듦과 동시에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했다. 겨우 그날이 되어서야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처음은 연민이었다.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일도 당신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이 어지러웠고 가슴에 돌덩이 같은 응어리가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바라보고 싶지 않았지만 내 앞의 늙고 힘이 빠진 아버지의 실존적 존재성은 이를 벗어날 수 없게 했다. 할 수 있는 일은 어릴 적 기억 속 당당했던 아버지를 오늘로 귀환시키는 일이었다. 오늘의 아버지가 아닌 과거의 아버지를 불러세워 허리와 어깨를 펴게 했고 풍성한 머리칼을 고집했으며 굵은 팔뚝을 되살리려 애를 썼다. 객관과 주관의 혼돈 속에서 나는 한 남자이자 내 아버지의 평범하고 때론 강렬했던 그런 모습을 담고 싶었다. 아니 그런 시선이고 싶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대면의 시간은 객관적인 시선이 아닌 父子의 시선에 더 가까웠고, 그것은 떨쳐 버릴 수 없는 묘한 연민의 감정, 혹은 서로를 경계하는 수컷의 동물적인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닌, ‘가족적인’ 감정을 배제한 채, 한 사람으로서, 한 남자로서 바라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어느 날 나는 보았다. 아버지의 마른 살갗에는 억압과 탄압, 그리고 시대의 아픔이 묻어있다는 것을. 고향인 제주도와 한라산을 늘 그리워하시던 당신의 눈빛 속에는 ‘4·3’의 아픈 역사가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살갗은 그런 당신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제주4·3항쟁 피해자다. 군사정권 시기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두 번에 걸쳐 고문을 받았으며 모두 합쳐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해야만 했다. 국가폭력은 아버지의 삶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그런 아버지에게 한라산은 당신 삶의 일부분이자 그리움 너머의 그리움이었다. 이후 무엇으로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되살려 낼 수 있었던 것일까.

온 세상이 아버지의 삶을 부정할 때 당신은 말과 글로 이에 맞서며 굴복하지 않으셨다. 10여 권이 넘는 시집과 수많은 저작들을 남기며 해야할 말을 멈추지 않으셨다. 스무 살이 넘어서야 나는 아버지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왜 그토록 말과 글을 멈추지 않으셨는지. 

이제 아버지의 살갗이 다시 말을 걸어온다.
버드나무 가득했던 수렁논을 톱과 쇠스랑으로 일구며 700평의 논에서 벼를 수확해 말리는 아버지, 낡아빠진 지게로 땔나무를 지어 나르는 아버지, 한겨울 장작불을 지피고 대자연의 기운에 몸과 마음으로 위안을 찾아가는 아버지.

그 살갗 속에 내가 있었다. 



#3 최형락 <백지 白紙>  


  #4 박형기 <조금은 다른 일상>  


#05 김일목 <나를 품은 살갗>


◎ Opening Times
2. 20 – 3. 14
화요일 – 일요일
10:00 – 18:00
입장료 : 무료

매주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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