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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 임동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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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개요

전시명 : 제5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전: 임동식
기 간 : 서울 2021. 08. 09. ~ 09. 05. (*설치·철수 기간 포함)
          양구 2021. 05. 06. ~ 09. 26.
장 소 : 박수근미술관내 현대미술관, 박수근 파빌리온, 동대문디자인프라자(DDP) ‘갤러리문’

주 관 : 박수근미술상 운영위원회
주 최 : 양구군, 박수근미술관, 동아일보, 동대문미래재단, 강원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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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미술상은
박수근선생의 예술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면서 현재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를 지원하고자 제정되었다.



제1회 수상작가 황재형(서양화가, 1952년생)을 필두로 제2회 김진열(서양화가, 1952년생), 제3회 이재삼(서양화가, 1960년생), 제4회 박미화(도예가, 1957년생)작가가 선정되었고, 제5회 수상작가로 임동식(서양화가, 1945년생)이 선정되었다. 이로써 마침내 박수근미술상은 작가미술상의 정체성과 비젼이 확고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박수근미술상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오랜 시간 묵묵히! 뿌리 깊게! 한 세계를 파고드는 작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상으로서 견고하고 깊이 있게 자리매김해 나아가고자 한다.

제5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를 선정하기 위해
박수근미술상 운영위원회(운영위원장 조은정)는 박수근미술상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작금에 한국미술의 현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추천위원 5명(김종길_경기도미술관 선임 학예연구관, 나희영_서울문화재단 교육팀장, 이지호_전남도립미술관장, 최태만_국민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김진엽_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을 위촉하였다.
추천위원은 박수근미술상 성격에 맞는 작가의 선정 기준에 대하여 심층 토론을 진행하였고, 총 17명의 작가를 추천하였다. 별도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수상 후보 17명의 작가와 작품세계를 심사한 결과 최종 임동식 작가가 선정하였다.





임동식과 그의 작품에 대한 가치
(김종길 미술평론가)


미의 최소화 _ 미술하기의 삶을 자기 수양의 덕목으로 삼았던 동아시아의 전통은 서구미학과 그 태도가 달랐다. 형식과 내용 어디에서도 근접성을 찾기 어렵다. 근대 이후, 서구미술이 새로운 미학적 형식으로 자리를 잡자 수양의 가치는 자본 가치로 돌변했고, 미술가는 미술 내부의 혁명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모더니즘이라는 서구적 이성주의와 합리주의의 미학적 세계가 자기 부정이라는 정반합을 통해 그로테스크한 전진을 지속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동아시아의 사유 질서를 완전히 재편해 버렸다. 1980년 금강에서의 <금강현대미술제>는 그런 서구 모더니즘의 형식주의에 동아시아의 사유체계를 투영시킨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전시였다.1) 참여 작가들 모두가 ‘앞으로’가 아닌 ‘뒤 또는 옆으로’의 사유를 보여주었기 때문인데, 강박적인 모더니즘의 진보 의식과 작위적이고 인위적인 것의 최대치보다는 자연에 덧대는 방식으로 미의 인위성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이 전시를 주도했던 임동식의 미술세계는 미의 최소화를 위한 자기 수행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듬해 그는 그의 동료 및 후배들과 함께 <야투野投> 창립전을 기획하였다. 이 전시는 ‘야외현장미술연구회창립전’이기도 했고 또한 본격적인 자연미술 운동의 출발이었다.2)

지고선의 자기현시 _ 야투野投는 ‘들에서 던진다’이고 이는 ‘자연에서 표현한다’는 뜻이다. 자연미술은 대지미술과 달리 어떠한 형식으로든 ‘작품’이라는 결과물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교감’을 우선하고 그 교감에서 발현된 미적 표현을 중시한다. 자연으로 들어 간 미술가들은 자연과 조응해 순수한 상태의 짓거리를 행할 뿐 과장하지 않으며 요구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그곳에서 생각하는 자연이 된다. 그 자연의 자연성을 생각으로 다시 회복하는 것이 자연미술의 개념이다. 문명인 인간에서 자연인 인간을 회복하는 것. 자연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의 이유에 의하여 꽃을 피운다. 이 꽃은 자연적으로 무위의 길에 의해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지고선의 자기현시이다.3) 자연미술가들도 그와 다르지 않다. 맹자는 “인간은 떠돌아다니는 생각하는 자연”이라고 보았는데, “귀와 눈이라는 기관은 생각하지 않고 밖의 사물에 의하여 가려진다. 밖의 사물과 감각기관이 서로 끌어당길 뿐이다. 마음이란 기관은 생각한다. 생각하면 자연성의 이치를 터득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이치를 터득하지 못한다. 이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부여한 것”4)이라 역설한 바 있다. 임동식이 30여년 가까이 수행한 자연미술도 마음이 사유하고 몸이 그 사유의 이치를 미적 행위로 표현하고 나아갔으니 지고선의 자기현시가 아니고 무엇일까!

화농畵農, 성찰적 자기 수양 _ 2000년 이후 그는 그 자신을 자연에 완전히 동화시켜 거의 야생인으로 돌아갔던 삶을 뒤로한 채 ‘화가’로서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 그의 회화 작품들은 흥미롭게도 그가 20여년 동안 자연이라는 들에서 펼쳤던 온갖 행위의 재현이었다. 회화로서의 재현은 그의 삶을 회억回憶하는 기억의 재현이면서 동시에 성찰적 자기 수양으로 읽힌다. 그는 단지 기록사진을 회화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두고 보면서 그가 자연과 교감했던 순간들을 떠 올리고, 자연미술의 미학을 탐색하고 그 정신의 현현을 재사유하기 때문이다. 그의 자연미술 기록화는 그래서 대지의 뭍 생명과 사람이라는 낱 생명이 교감하는 순간의 세계를 우주적 차원으로 해석하는 놀라운 회화적 경지를 제시한다. 한 폭의 회화는 하나의 장면이고 그 장면은 자연과 인간이 상호교접 교호하는 순간이다. 이것과 저것을 구분할 수 없는 일여一如의 세계! 그는 자연과 인간이 합일된 여여如如의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수년 동안 화농畵農을 일궈왔다. 그것은 그가 공주 근방의 작은 마을 원골에서 ‘예즉농藝卽農 농즉예農卽藝’의 미학을 선언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기도 했다. 그 미학적 해석에 대해 나는 이렇게 얘기한 바 있다. “가장 숭고한 일획은 그 자리에 죽어 흙이 되고 자양이 되어 새 싹으로 부활하는 것일 테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의 완전한 흩어짐. 임동식의 자연미술은 석도의 일획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일획은 숭고하며 근원을 향해 있고 완전한 흩어짐을 예고하기 때문이다.”5)

비단문화, 미학적 원형과 생의生意 _ 최근 5~6년 동안 그의 회화는 ‘자연예술가와 화가’를 주제로 한 것이다. 자연예술가인 일꾼과 화가인 짓거리 꾼의 삶을 과거와 현재로 병치하여 보여주거나, 일꾼과 짓거리 꾼이 함께 농사를 지으며 일꾼인 친구가 ‘권유한’ 풍경을 그리는 방식이다. 또 하나는 ‘비단장사 왕서방’ 연작이다. 가장 최근작이고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되는 작품들인데, <비단장사 왕서방-고층매장>, <비단장사 왕서방>, <비단장사 왕서방-그림과 모델>, <비단장사 왕서방-양복점>, <비단장사 왕서방-상속에 대한 숙고> 등이 그것이다. 그는 왜 비단에 주목했을까? 그가 소년기를 보냈던 공주의 유구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직조기를 들여놓고 명주와 비단을 생산했는데, 당시 전국 최고의 생산지였다. 뿐만 아니라 유구는 오랫동안 십승지로 소문났으며 그래서 비결파(정감록을 신봉하는 사람들)가 모여들었고 현재도 그 후손들이 많다. 유구와 마곡지역의 진산鎭山이랄 수 있는 무성산은 홍길동이 웅거했던 산이라 불리며, 유구에서 신풍에 이르는 큰 벌판은 가난을 잊게 했고 풍수가 좋아 길지라 불린다. 인근의 마곡사는 김구 선생이 인천감옥을 탈옥해 숨어있던 곳이기도 하다. 누에에서 명주실을 뽑아 비단을 만들었던 옛 삶의 문화와 새로운 개벽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러나 화려한 색채의 비단문화에서 어둡고 탁한 서구 양복문화로 변화한 세태는 그에게 ‘회화적 재현’에 대한 다른 목적을 갖게 하였다. 비단장사 연작은 그래서 화농畵農 작업이라기보다는 동아시아의 문화적 원형에 대한 탐색에 가깝고 그 원형이 간직해 왔던 상징체계에 근접한다. 예컨대 비단장사 연작은 그동안 자연풍경의 실재를 극사실적 태도로 묘사하고 직조했던 것과는 달리 의미의 구성요소를 구조적으로 재배치하거나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색의 채도와 명도를 의도적으로 구분한다는 것이다. 비단의 매끄러운 표면과 형형색색은 화면에서 만개한 꽃처럼 눈이 부시지만 실상 그것의 회화적 상징은 만다라(우주의 진리. 낱낱의 살[輻]이 속바퀴측[?]에 모여 둥근 수레바퀴[圓輪]를 이루듯이, 모든 법을 원만히 다 갖추어 모자람이 없다는 뜻)로 보인다. 거친 야생지를 일구듯 물감의 물성을 거침없이 드러낸 것에서 문양의 낱낱을 빛의 알갱이로 표현한 것에 이르기까지 그의 ‘비단장사’ 회화는 눈부신 자연의 빛깔을 수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세계에서 잠이 들거나 홀로 가게를 지키고 있는 이들은 이 미학적 세계의 주인들처럼 읽힌다. 두 번째는 소실점이다. 마치 관람객의 시선을 이끌 듯 소실점은 화면의 중앙을 배회하며 어떤 통로가 되고 있다. 나는 이 통로가 자연의 안팎을 잇는, 자연계와 인간계의 아름다운 교감이 지속되는 들숨날숨으로서의 숨통이 아닐까 한다. 그러므로 비단장사 회화는 일견 허허롭고 쇠락한 풍경처럼 보이기도 하나 상징으로서 그 실체는 비단문화의 미학적 원형에 대한 살림의 복권이란 생각이다. 그 대척점에 놓인 양복점은 ‘시멘트 아스팔트 철근 색을 닮은 검정색 류’로 어둡게 표현되어 있다.6) 물론 비단가게에 앉아 있는 인물이나 또는 왕서방과 사다리에서 비단을 내리는 점원을 어둡게 표현한 것도 있다. 이러한 표현은 비단문화의 좌절과 서구 스타일의 일상화를 이야기하려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인간이 본래적으로 무엇을 입어야 하는가에 대한 그의 생각이 담겨있는 듯하다. <비단장사 왕서방-그림과 모델>은 비단으로 가득한 만다라의 집에서 왕서방이 벗은 몸으로 피곤한 육신을 누이고, <비단장사 왕서방-양복점>은 재단사가 출구 없는 어두운 방에서 손님의 몸을 재단한다. 양복점의 다른 풍경은 손님을 완전히 옥죄며 재단하거나 검문하듯 재단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재단 당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비단 가게든 양복점이든 사람들은 그들의 집에 있으나 그와 그의 신체, 그와 그 자신, 그와 그의 생활이 서로 상반되어 나타난다.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나는 나의 신체이다’라고 했고, 동양철학자 김형효는 맹자의 ‘인仁’을 풀어 “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 세계에서는 화락한 생의生意의 분위기이며, 인륜 세계에서는 나의 신체와 나, 나와 나 자신, 나와 나의 주위와의 친밀한 공감적 만남이 아니겠는가?”7)라고 했다. 이때 ‘생의’는 만물을 낳는 이치를 뜻한다. 비단 옷이 자연으로서 생의의 이치를 가지며 몸과 자연스럽게 합일 된다면, 양복은 신체를 가두는 인위로서 안락이 아닌 불편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임동식의 ‘비단장사’ 회화는 한편으로는 생의와 공감에 관한 비단문화와 양복에 대한 화두를 재론하는 것이기도 할 터이다. 그 안에는 그가 그동안 추구해 온 본래적 미학과 그것에의 새로운 생성미학이 혼재되어 있으며, 또한 고도 문명에 대한 반어적이며 저항적인 사유가 녹아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의적 해석에 가까울 수 있는데, 양복점의 손님들이 취한 포즈는 마치 순교자의 그것처럼 보이고 가만히 앉아있는 비단가게 왕서방은 돌부처나 미륵과 겹쳐진다. 어쩌면 우리의 신체는 그 둘 사이를 배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김종길(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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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강현대미술제>는 충남 공주의 금강 백사장에서 1980년 11월 16일부터 22일까지 개최디었으며, ‘창립야외현장전’이라 명명하기도 했다. 참여작가는 고승현, 김관호, 김용익, 송일영, 유근영, 이종협, 임동식, 정광호, 정장직, 지석철, 홍명섭 등 총 28명이 참여했다.
2) 1981년 8월 14일부터 19일까지 공주의 금강 백사장에서 개최되었다. 올해로 창립 30주년이다.
3) 김형호 지음, 『물학 심학 실학』(청계, 2003), 132쪽.
4) 『孟子 告子上』, 김형호 지음, 『물학 심학 실학』(청계, 2003), 133쪽에서 재인용.
5)<자연예술가와 화가 : 임동식 개인전>리뷰, 『월간미술』, 2010년 10월호.
6) 그는 작업동기에 대한 메모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양복점에 대해 그는 “여기서 양복점은 비단문화를 이룬 지역에 비하여 대조적인 북유럽의 기후의 감을 반영하여 나타냄. 기천 년에 달한 자연적인 삶 즉 농경문화의 산물인 비단은 오늘날 퇴색되고 산업사회 이후 도시중심이 된 이 시점은 마치 청개구리가 보호색을 띄듯 시멘트 아스팔트 철근 색을 닮은 검정색 류로 사람들의 복식은 자연으로 부터 멀어졌다.”고 적고 있다.
7) 김형호 지음, 위의 책, 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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