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전시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전시상세정보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웰컴 홈 향연

  • 상세정보
  • 전시평론
  • 평점·리뷰
  • 관련행사
  • 전시뷰어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웰컴 홈 향연




전시개요

ㅇ 전 시 명 :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웰컴홈 향연

ㅇ 전시기간 : 2021. 6. 29 ~ 8. 29(2개월)

ㅇ 전시장소 : 대구미술관 전시실 4, 5

ㅇ 전시규모 : 이건희 컬렉션 기증작품 21점외 대구미술관 소장품 20여 점 총 40여 점






대구미술관‘이건희 컬렉션’6월 29일(화) 전격 공개 


▸ 기증작 21점 포함 40점 및 아카이브 영상 통해 고인의 참뜻 전해

▸ 이인성, 이쾌대, 변종하, 서동진, 서진달 등 대구근대미술작가 연구  

▸ 김종영, 유영국, 문학진 작품으로 풍부한 한국미술연구자료 획득   



대구미술관(관장 최은주)은 ‘이건희 컬렉션’ 21점을 소개하는 특별전 ‘웰컴 홈: 향연饗宴’을 6월 29일(화)부터 8월 29일(일)까지 전격 공개한다.(무료, 사전예약) 


국내 문화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이건희 컬렉션은 이 회장의 철학이 녹아있는 예술품 수집의 결정체다. 글로벌 기업 삼성을 이끈 故 이건희 회장(1942-2020)은 기업 경영뿐만 아니라 사회와 미래세대에 끼칠 영향까지 내다보는 안목으로 문화재와 예술품을 수집했다. 수 만점에 이르는 ‘이건희 컬렉션’은 민족문화 선양과 인류애 추구, 사회 공동체와 이익을 나누는 그의 정신이 녹아있다. 


나눔 정신을 실천하고자 한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지난 4월 ‘이건희 컬렉션’은 거대한 예술의 향연으로 국민에게 돌아왔다. 대구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은 김종영(1점), 문학진(2점), 변종하(2점), 서동진(1점), 서진달(2점), 유영국(5점), 이인성(7점), 이쾌대(1점) 작품 총 21점이다. ‘웰컴 홈: 향연’은 기증 작가 8명을 심도 있게 조명하기 위해 이건희 컬렉션 21점과 대여작품 및 소장작품을 추가하여 총 40점을 전시한다.


한국 근대미술의 별과 같은 작가 이인성, 이쾌대를 비롯해, 대구의 초기 서양 화단을 형성했던 서동진, 서진달의 수작을 만날 수 있으며, 추상 조각의 거장 김종영, 한국적 추상화의 유영국, 1세대 추상 작가 문학진, 신형상주의의 변종하의 작품 등을 통해 한국미술 전반을 두루 섭렵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이번 전시에서는 2편의 아카이브 영상도 만나볼 수 있다. 성장 발판이었던 ‘대구’에서 ‘세계’로 뻗어나간 삼성의 성장 과정과 삼성이 기여한 여러 문화예술 지원과 사회공헌을 타임라인으로 그려본 영상 ‘삼성과 삼성의 사회공헌’, 이건희 회장이 지닌 문화에 대한 철학과 인류에 대한 사랑을 그의 행적과 어록을 통해 추적해 보는 ‘이건희 컬렉션의 탄생’을 상영해 문화보국정신과 숭고한 나눔정신을 시민들과 함께 기린다. 


대구미술관은 이건희 컬렉션 기증을 계기로 대구 및 한국 근현대미술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자 한다. 대구미술관 최은주 관장은 “기증자의 큰 뜻이 빛을 발하고, 시민들에게도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깊이 있는 연구와 한국미술의 위상 정립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 확산 방지와 안전을 위해 개막식은 생략하며 전시 관람은 무료로 사전 예약 후 가능하다.(인터파크, 전화예약(053 803 7900))




기증 주요작품 소개




서동진, <자화상>, 1924, 종이에 혼합재료, 33×24㎝, 대구미술관 소장, 이건희 컬렉션


서동진은 근대기 대구 서양화단을 주도한 중요한 인물이며, 1927년 인쇄·출판 및 미술연구·교육을 위해 대구미술사(大邱美術社)를 설립하였다. 그는 서양화 단체 향토회(1930-1935)를 이끌고, 이인성을 교육, 후원하는 등 지역미술계 리더로 역할하였다. 이 작품은 1924년 휘문고보를 졸업한 후의 젊고 패기 있는 모습의 자화상이다. 휘문고보에서 고희동으로부터 받았을 미술교육의 영향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초기 작품이다.




서진달, <나부입상>, 1934, 캔버스에 유채, 90.2×70.3㎝, 대구미술관 소장, 이건희 컬렉션


서진달은 조선미술전람회에 다수의 인물화를 출품·입상하였고, 누드화 역시 많이 그렸지만 남아있는 작품이 드물다. 유학 후 돌아와서는 계성학교에 재직하면서 한국화단을 대표하는 작가 여럿을 길렀다. 이 작품은 그가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미술학교에 재학하기 직전에 작업한 것으로 보인다. 정면의 여인을 균형있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인체 표현력, 탄탄하게 구축한 자신감 있는 필체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이인성, <노란 옷을 입은 여인>, 1934, 종이에 수채, 75×60cm, 대구미술관 소장, 이건희 컬렉션


이인성의 1930년대 중반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가을 어느 날>(1934), <경주의 산곡에서> (1935)로 각광받던 시기이다. 비슷한 시기의 이 작품은 당시 일본 유학중 미술 제자로 만난, 패션을 공부하던 아내 김옥순(1916-1942)을 그렸다. 노란 옷을 입은 세련된 신여성이 대각선의 구도로 배치되어 있고, 유화처럼 덧칠한 수채화 기법으로 주조색인 노랑과 이와 대비되는 초록과 빨강을 적절히 배치한 뛰어난 색채감각을 보여주는 한국 근대미술 대표작이다.   




이쾌대, <항구>, 1960, 캔버스에 유채, 33.5×44.5cm, 대구미술관 소장, 이건희 컬렉션


이쾌대는 월북 전에는 한국적 화법과 전통 소재를 구사하거나 인체의 표현에 원숙한 화법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는 민족적 정체성을 밝히는 데 많은 관심을 두었고, 1940년대 말에는 <군상>시리즈 등 역작을 제작하였다. 월북 후 그의 활동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3·1운동 등 역사적 주제와 소박한 일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알려진다. 이 작품은 그의 북한에서 활동을 알려주는 반가운 작품이며, 여전히 원숙한 그의 기량이 잘 나타난다.  




변종하, <오리가 있는 풍경>, 1976, 천 위에 유채, 85.7×85.7㎝, 대구미술관 소장, 이건희 컬렉션


변종하의 작품은 형식적으로는 신형상주의를 지향하면서도 풍자와 비판, 서정적이면서도 은유적인 이야기가 있는 독창적인 회화를 보여준다. 1970년대에는 부조와 같은 밑작업과 두터운 마티에르 기법을 썼고, 자연의 요소와 설화, 전통 민화 등에서 따온 모티브를 작품에 자주 그렸다. 이 작품은 입체적으로 구성된 판에 오리와 자연의 형상을 극도로 단순화하여 시적으로 표현하였다. 구조화된 형태와 이미지는 일체화되어 보인다.  




김종영, <작품 67-4>, 1967, 대리석, 42×26×19㎝, 대구미술관 소장, 이건희 컬렉션


김종영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접목하여 주체적인 한국 현대조각을 이룬 조각계의 거장이다. 그는 자연 생태와 가까운 재료와 한국의 풍토와 기질이 나타난 순수조형 의지를 ‘불각(不刻)의 미’라는 철학으로 추구한 조각가이다. 이 작품은 유기적이고 기하학적인 조각을 추구한 시기에 제작되었다. 이 시기에는 서예의 조형성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거나 자연의 본래 형태를 드러내는 순수 추상작업이 이루어졌다.   




문학진, <달, 여인, 의자>, 1988, 캔버스에 유채. 130.3×130.3㎝, 대구미술관 소장, 이건희 컬렉션


문학진은 1950년대부터 아카데믹한 구상 중심의 국전의 성향과 다른 추상 형식을 도입한 1세대 작가이다. 작가는 입체파적인 구성을 시도하며, 소녀 등 인물과 정물 등 다양한 소재가 공존하면서도 몽환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이 특징적이다. 이 작품은 희미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실루엣의 정물과 여인이 보인다. 드리워진 어둠과 달빛으로 적막하고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추상적인 표현과 신비한 서사가 함께 하는 작품이다.



유영국, <작품>, 1974, 캔버스에 유채. 133×133㎝, 대구미술관 소장, 이건희 컬렉션


유영국은 자연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한국적 추상화의 일가를 이루었다. 그는 1970년대에 자연, 특히 산의 형상을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는데, 이때에는 점점 유연한 선이 나타나는 추상으로 ‘산’시리즈의 작품들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작품은 붉은 색조를 위주로 자연의 형태를 기하학 형태로 단순화 시켰다. 어두운 청색과 보랏빛의 하늘 아래 다양한 명도와 채도, 날카로운 선과 부드러운 선이 어우러진 산을 표현하였다.




작가 소개


이인성(李仁星, 1912-1950, 대구)

이인성은 ‘혜성의 등장’, ‘천재 화가’라고 불릴 만큼 당시 대구화단에서 이목을 끈 화가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미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으며, 《조선미술전람회》(이하 선전)에서의 수상을 통해 그 예술적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인성은 기법의 세련화와 더불어 소재, 색채, 분위기 등의 조선 향토색을 표현하고자 했다. 다소 거칠고 대담한 묘사와 단순한 듯한 색채의 자유로운 조화는 이국적인 감성을 느끼게 한다. 일본에서 신감각을 수용하면서 당시 조선 화단에서 유행했던 향토색과 민족미술 논쟁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여겨지는데 유학 후반기부터 수채화와 유화를 함께 사용하면서 선전 출품 작품에서 점차 향토색이 강조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인상주의와 고흐, 고갱, 세잔 등의 후기 인상주의 양식을 한국적인 정서와 색채, 소재로 토착화시키려 한 관념적이고 주관적인 작가의 예술적 태도였다. 



서동진(徐東辰, 1900~1970, 대구)

서동진은 당대 미술운동의 결정체인 ‘향토회(鄕土會)’를 이끌며 수채화의 독특한 화풍으로 대구화단의 개성을 수립, 대구 초기 서양 화단을 주도하였다. 또한 그는 1927년에 인쇄 및 미술 교육기관인 대구미술사(大邱美術社)를 설립, 경영하면서, 이인성, 김용조를 교육, 후원하는 등 한국미술사의 주요 작가의 탄생에 기여하였다.

 

서동진은 많은 자화상을 남기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박명조, 조카의 초상 등 친분이 있는 이들의 인물화도 많이 그렸다. 또한 시가지 중심의 골목 풍경이나 신식 건물이 즐비하고 변해가는 도시의 거리를 수채화의 감각적인 색채와 시원스러운 필치로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한복차림의 근로자들이 말에 먹이를 주면서 휴식하는 모습이나 마을 어귀의 다리 아래 개천에서 두 여인이 빨래하는 모습, 기차역 내부의 풍경, 신식 건물이 들어선 도시의 한구석을 표현하는 등의 소재 선택과 그것의 해석방법으로 물감 쓰는 기법이 어우러져 있다.  



서진달(徐進達, 1908~1947, 대구)

서진달은 주옥같은 유화 특히 누드화를 많이 그린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을 일으킨 인물 중 한 명인 서병규의 손자로 태어난 그는 1940년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2년남짓 대구 계성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근무하였다. 그의 가르침에 영향 받은 제자로 김우조와 백태호, 변종하, 김창락, 추연근 등이 있다. 


서진달의 작품에 대한 열정은 ‘천재화가 서진달씨의 최후기(最後記)’를 통해서 엿볼 수 있다. 그는 작품의 주제만 대담하게 강조한 독자적인 누드 작품들을 확립했다. 과감하게 여백으로 처리한 부분과 섬세하고 율동적인 여체의 선 표현, 화면 전면에 부각한 구성부터 다소 거칠지만 힘찬 터치와 색의 강렬한 대비, 빛과 그림자를 선명한 색채로 마치 거친 면으로 큼직하게 조각하듯 묘사한 명암, 유화의 무게감으로 누른 묵직한 톤의 표현, 중후한 입체감 등이 느껴지는 전체적으로 세부의 간소함으로 생략하였다. 이는 세잔을 중심으로 한 인상파적인 요소를 감지케 하며, 실제로 서진달은 ‘대(大) 세잔 선생’이라고 존경의 뜻을 표현했다. 


이쾌대(李快大, 1913-1965, 칠곡/대구)

이쾌대는 수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데이코쿠(帝國)미술학교에 입학하여 ‘하라바츠’, ‘녹포사’ 공모전 등에 입상하였다. 귀국 후 1941년 《조선신미술가협회》를 조직하여 다양한 사조를 받아들이고, 광복 후 1950년 초까지 성북회화연구소를 열어 후학을 가르쳤다. 이쾌대는 6.25전쟁 중 거제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고, 이때 이주영에게 미술해부학의 기초를 가르치기 위해 만든 책을 만들기도 했다. 


월북 후 1954년부터 전후 건설성 미술제작소의 미술가, 조선미술가동맹 평양시, 자강도 현역 미술가로 선출되고, 1957년 조선미술가동맹 유화분과 임원에 선임되었다.


이쾌대는 한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시대인 일제강점기와 6·25전쟁기에 활동하면서 당시 시대적 주제와 정서를 담아낸 예술가이다. 이쾌대는 전통적인 회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향토적인 주제 혹은 민족의 기상을 형상화한 서사적 회화를 추구했다. 한국의 전통 복식을 소재로 하거나 동양화의 채색과 선묘의 특징을 살린 묘사법을 구사하는 등 화법의 독자적인 해석과 향토색을 통한 민족의 정체성을 밝히는 데 많은 관심을 둔 화가였다. 여기에는 1920년대 대구에서 서양화가로 활동하고, 1930년대에는 수묵 및 역사화에도 일가를 이룬 형 이여성의 영향이 크다. 


변종하(卞鐘夏, 1926-2000, 대구)

변종하는 구상적 내용의 신형상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서정적이면서도 이야기가 있는 회화를 보여준 독창적인 화가이다. 1926년 계성중학교에서 서진달을 만나 서양화의 기초를 배웠고, 1943년 만주 신경시립미술원(新京市立美術院)에 편입하였고, 파리에서 유학하였다. 그의 작품은 1965년을 전후로 크게 변화된다. 


변종하는 이전의 표현주의적인 경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제와 기법을 펼쳐 보인다. 소재와 기법을 연구하여 요철(凹凸)의 화면 구성과 거기에 스며드는 채색법을 추구해 독특한 조형 어법을 시도하는 방법으로, 회화의 재료와 기법을 확장하고자 했다. 특히 1970년대에는 두터운 마티에르와 자연과 전통에서 따온 모티브를 작품에 자주 드러냈으며, 극도로 단순화한 형상으로 시적인 표현을 보여준, 현실 비판적인 우화를 그렸다. 그러다 1980년대에는 ‘서정적 풍경’이라는 주제로 꽃, 새, 나무, 달, 잠자리 등 우리에게 친근한 풍경을 간결하고 소박하게 묘사하여 주목을 받았다. 문학성 짙은 시(詩)로서의 이미지가 강하게 부각한 당시 작품들은 자연스러운 표정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김종영(金鍾瑛, 1915-1982, 창원)

김종영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접목하여 주체적인 한국 현대조각을 이룬 조각계의 거장이다. 그는 어린 시절 한학을 가까이한 집안의 영향으로 서예를 능숙하게 다루었고, 회화에도 재능을 보였다. 1936년 도쿄미술대학교 조각과에 입학하여 전후 일본 현대조각에서 중요한 인물들과 교류하였다. 이 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역임하며, 많은 후학을 키웠다. 


김종영의 조각은 인물과 식물, 산에서 조각의 모티브를 찾아 자연현상에서 구조의 원리와 공간의 미를 경험하고 조형의 기술적 방법을 탐구하고자 했다. 1960년대 초 형태의 단순화가 현격해져 자연 대상으로부터 유추된 유기적 추상과 순수조형의 기하학적 추상을 표현하였다. 나무, 잎사귀와 같은 식물, 사람의 얼굴과 인체 등 자연에 실재하는 대상의 형태를 모티브로 하여 유려한 곡선과 기하학적 직선이 만들어냄으로써 엄격한 형태의 구조 원리와 공간을 구축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 ‘불각(不刻)’의 개념, 즉 ‘깎지 않는다는 것’은 공간의 여백을 허용하는 것으로, 서예의 여백과도 상통한다. 


문학진(文學晉, 1924-2019, 서울)

문학진은 1950년대부터 아카데믹한 구상 중심의 국전에 추상 형식을 도입한 1세대 작가이다. 그의 화풍은 학창 시절 심취했던 입체파 화가 조르주 브라크의 영향을 받았다. 1954년부터 1971년까지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문교부장관상 등 7차례 특선을 수상하였다. 1960년부터 83년까지 모교인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예술원 회원을 역임했다. 


문학진의 예술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서정적이고 사실적인 묘사에서 벗어나 인물이나 정물 등 구체적인 대상을 분석해 주관적으로 해체, 변형하고 다시 조합하는 방식의 입체파 구성과 기법을 잘 드러냈다. 1950년대에서 70년대에까지는 소녀를 모델로 한 인물화와 화병, 과일, 꽃다발 등의 소재를 중심으로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평온한 감정을 표현했다. 이후 1980년대로 넘어가면서 어두운 시대 상황을 반영한 듯 검은색이 작품을 지배한다. 그는 정물이나 기물이 놓인 식탁 등 실내 풍경을 위주로 차분한 색채감과 대상에 대한 간결한 재해석, 그리고 안정감 있는 구도를 특징으로 하는 반추상 형식의 작품 경향을 지속하였다. 


유영국(劉永國, 1916-2002, 울진)

유영국은 자연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한국적 추상화의 일가를 이루었다. 분카(文化)학원 재학시절 추상화를 채택한 무라이 마사나리(村井正誠, 1905~1999)와 예술을 통한 유토피아적 삶을 실천하고자 한 하세가와 사부로(長谷川三郞, 1906~1957)의 영향을 받았다. 1947년 그는 한국에 돌아와 ‘신사실파’, 《모던아트협회》, 《현대작가초대전》, ‘신상회(新象會)’ 등 당대 한국의 가장 전위적인 미술 그룹들을 이끌었다. 


유영국은 경주 사진을 통해 공간을 압축적으로 클로즈업하여 화강암의 거친 선각과 기하학적 구조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에게 사진은 점차 자연주의적 추상화로 진행하는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그는 사람과 도시, 노을, 계곡, 언덕, 바다 등의 순수한 조형 요소들로 축약되는 과정을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1950년대 무렵 그는 초기의 절대 추상에서 벗어나 자유스러운 형태의 본질을 연구했다. 1960년대부터 70년대 전반까지 점, 선, 면, 형, 색 등의 조형 요소들을 통해 실험적 예술 과정을 보여주었다. 특히 <산> 연작들은 산이라는 자연을 화면의 구조 속에 기하학적 대각선 구조로 거듭하여 환원시키고자 했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