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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작품과 아카이브의 경계 허물기 마르셀 뒤샹(4.2-10.3, 프랑크푸르트 MMK)

이은주

뒤샹전 MMK 전시 전경. 뒤샹의 <큰유리> 작품과 연관 아카이브로 구성.
전시는 뒤샹의 대표작 뿐 아니라 작품과 연결된 드로잉, 작업노트, 유품, 사진, 편지 등 방대한 아카이브가 함께 전시되고 있다. ZOLLAMT MMK에서는 최근 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이미래 작가의 전시도 동시에 열리고 있다. 


뒤샹 전.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있을까. 프랑크프루트 중앙역에서 카셀로 떠나기 7시간 전, 전시 포스터를 보고 든 생각이다. 카셀과 베네치아 방문차 프랑크프루트에 먼저 도착했다. 암마인 강가를 따라 줄지어 있는 슈테델미술관에서는 여성작가의 위용을 뽐내듯, 격변적 상황에도 평생 초상화로 정체성을 탐미했던 스위스계 독일작가 오틸리 로더슈타인(Ottilie ROEDERSTEIN, 1859-1937)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보존 수복 중이었던 백남준의 <프리벨 맨> 역시 커뮤니케이션미술관에 무사히 안착되어 있다. 뢰머 광장을 지나 MMK(Museums für Moderne Kunst)의 뒤샹전은 아카이브와 작품과의 끈끈한 관계를 정립하면서 미술사적으로 완벽히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 전시를 기획한 수잔느 페퍼(Susanne PFEFFER, 1948- )는 전시의 원칙에서 작품의 하위개념으로 작동했던 아카이브를 주요 작품들과 같은 관점으로 끌어올렸다. 수십, 수백 개의 낱장 드로잉, 편지, 사진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웠고 큰 설치작품과 동질적으로 감각된다. 같은 유형의 다른 자료로 새로운 국면을 맞는 작품도 눈에 띤 성과물이다. 

전시는 뒤샹의 필수적인 아이콘 ‘레디메이드’로 시작한다. 3개 층으로 이뤄진 전시공간에서 레디메이드, 큐비즘, 젠더, <체스>, <The Large Glass> 등 26개의 작품과 개념이 총 32개의 섹션으로 꾸려졌다. 10대 중반부터 20대 중반에 제작된 드로잉, 페인팅, 편지로 구성된 섹션은 레디메이드 전후의 변곡점 <Bicycle Wheel(1913), <Fountain(1917)>을 뚜렷하게 했다. 

이 전시의 특색은 2층부터 그 본색을 드러낸다. 한 작품을 중심에 두고 포스터, 리플릿, 편지, 드로잉, 사진은 한 작품의 덩어리처럼 작동한다. 작품인지 아카이브인지 경계 짓는 행위가 무의미하다. 이 전시는 철저히 그 경계를 허물었다. 최근 아카이브에 대한 해석이 확장되면서 작품과 자료의 경계가 와해되고 있다. 기존 아카이브 규정 속에 범주화되지 않는 카테고리 자체를 작업하는 작가도 늘고 있다. 뒤샹이 세상을 떠난 지 54년이 흘렀다. 미술사로 익숙한 작품을 제외하곤 작품과 아카이브의 경계가 모호하다. 남아있는 아카이브에 의존한 작품구성도 엿보인다.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작품은 그 당시 포스터, 리플릿, 드로잉, 사진이 그 사라진 작품의 흔적을 대신한다. 아카이브는 작업세계를 더 내밀하게 바라보게 한다. 아직 규정되지 않는 개념들이 정립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가치 있는 아카이브는 유명한 작품에 다양한 내러티브를 첨가하여 미술사를 풍부하게 하고 아카이브로 작품의 평가가 더 입체적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카셀과 베네치아로 떠나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큰 수확이었다. 오히려 이 전시 형식을 더 열망했다. 물리적 공간에 다시 갈 수 없으니, 기억으로 전시공간을 다시 회상한다. 새로운 섹션으로 진입하려고 시선을 돌리면 뒤샹의 작품이 먼저 보인다. 관조적 관점에서의 관람이다. 작품에 다가서는 순간 관객이 봐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벽면에 즐비하게 설치된 아카이브이다. 카메라 렌즈를 줌-아웃 하듯 점차 서랍 속에 잘 정돈되어 있는 서류들을 파헤치면서 보는 관람방식이다. 아카이브 속에 파묻혀 작품을 보니 뒤샹의 뻔한 작업들이 새롭게 감각되었다. 작품과 아카이브의 동시적 관람은 관조적, 몰입형의 상반된 감각을 같이 부여한다. 작품과 아카이브는 동시에 감각된다. 아카이브를 보다가 여러 차례 작품에 눈을 돌린다. 작품과 아카이브는 별도로 연구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하나의 아카이브를 추적하면 곧 작품과 만난다. 섹션이 거듭될수록 작품과 아카이브의 경계는 모두 허물어져 버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카이브가 전시를 리드했고, 전시 보는 한참 동안 ‘보는 것’ 보다 ‘읽는 것’에 집중했던 나를 바라본다. 내 머릿속은 온통 이런 외침이었다. “작품과 아카이브의 경계 짓기가 왜 중요한가?, 애초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꼭 한번 침착하고 신중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 이은주(1979- ) 홍익대 대학원 예술학과 졸업. 기억의방_추억의 군 사진전(2011), 한국미디어아트 프로젝트(2011-2015), 미디어극장(2011-2015), 사진의 방(2012) 등 기획. 문화체육관광부 장관표창(2010) 수상. 서울문화투데이 자문위원(2011- ), 미술과담론 편집위원(2012- ), 아트스페이스정미소 디렉터, M.A.P(미디어아트 플랫폼)예술감독, UP출판사 대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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