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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권진규의 <붉은 가사를 걸친 자소상>

장석주

예술가들은 고요와 고독을 좋아하는 족속들이다. 관습에 길들여진 ‘개’들의 세상에서 끝끝내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늑대’로서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예술가다. 그들은 무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단독자의 삶을 꾸리고, 그런 삶의 태도를 하나의 본질로 고착시키는 재능을 보인다. 그들은 무리에서 내쳐지는 것을 감사하고 불행을 지복으로 삼는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리에 감염되지 않는 것, 오히려 단독자로서 무리를 감염시키는 바로 그 재능이다.


한때 붓을 들고 화폭에 무언가를 그려보는 취향에 스스로를 방목하기도 했지만, 내 재능의 졸렬함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 뒤론 감상자로서의 즐거움만을 만끽하기로 결심한 바 있다. 내 마음을 끄는 것들은 권진규의 <붉은 가사를 걸친 자소상>,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케테 콜비츠의 <자화상>, 조선 선비 윤두서의 <자화상> 등이다. 이것들을 마주하면 내 존재 자체가 투명해지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들 작품들은 그 소재와 규모가 수수하고 소소한데, 이것들을 이어주는 공통점은 고독이다. 몸을 받아 세상에 태어난 자들은 본질적으로 다 고독하다. 대개 사람들은 그 고독을 내면에 숨긴 채 살아간다. 그러나 이들 작품들에서 생명 개체의 내면에 응어리진 고독은 기어코 바깥으로 나와 얼굴 표정으로 응결된다. 화가들은 그 순간을 붙잡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을 했을 테다. 이때 내면의 깊은 고요 속에서 빚어지는 고독은 생명의 한 본질로 여겨진다. 나는 고요와 고독을 분별하는 일이 어렵다.



고독의 표출이 사람을 압도

권진규의 <붉은 가사를 걸친 자소상>을 처음 보았을 때 숨이 탁 막히는 듯했다. 삭발한 민머리에 붉은 가사를 걸친 채 저 먼 곳을 응시하는 주체의 고독이 장엄한 인격의 한 표출로써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까닭이다. 어깨에서 내려와 한쪽 가슴을 덮은 붉은 가사는 세속과의 견고한 단절을 암시한다. 그 단절 위에서 응결된 표정의 담담함은 삿된 욕망의 포박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은, 그리고 사사로운 삶의 고통을 넘어서서 절대의 숭고함, 혹은 달관의 평화에 가 닿은 자의 내면을 드러낸다. 아마도 그것은 일본인 아내와 타의에 의해 이혼하고, 한국 화단의 냉담과 몰이해 속에서 작업을 이어가던 권진규의 불우함을 내면화한 데서 빚어진 고독일 것이며, 삶에 대한 그윽한 통찰에서 나온 슬픈 결론일 것이다. 나는 <붉은 가사를 걸친 자소상>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그의 고독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이것은 고독의 피고(被告)를 자처한 예술가의 내면을 보여준다. 그는 꿋꿋하게 그 고독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것을 넘어가고자 한다.


서른 몇 해 전 권진규의 작품을 처음 만났는데, 지금도 여전히 나는 그의 테라코타들을 좋아한다. 드물게 그의 작품들이 전시될 때 빠지지 않고 전시장을 찾거나, 그의 화집을 즐겨 들여다보는 것은 그 작품이 마음에 일으키는 즐거운 파장 때문이다. 권진규의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아니라 저곳을 꿈꾸게 되고, 그 미적 세계가 마음에 일으킨 쇄신의 느낌으로 벅찬 환희에 빠져들곤 한다. 그것은 시적 공명(共鳴)의 체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장석주(1969- ) 중앙대 사진학과 석사. 한국사진대전 포트폴리오부문 한국사진가상(1995)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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