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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아침이슬 50년》개막식,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객원연구원

김민기, 아침이슬 50년
2021.6.10-6.23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실 입구 


전시 초입, 김민기 일대기

6월 10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김민기, 아침이슬 50년》의 전시 개막식이 진행되었다. 이번 전시는 1971년 6월 30일 발매된 '아침이슬' 의 50돌을 기념하는 전시로 김민기헌정사업추진위원회의 주관하고 경기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전시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민기의 예술적 발자취를 알 수 있는 아카이브와 함께 김민기의 예술과 정신에 영향을 받은 22인의 예술가들의 오마주 작품 (40여 점)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에는 김보중, 김수남, 김창남, 레오다브, 박경훈, 박영균, 박재동, 서원미, 양동규, 이강화, 이상엽, 이원석, 이종구, 이중재, 이태호, 이하, 임옥상, 임채욱, 정태춘, 최호철, 홍성담, 홍순관 작가가 참여했다.


김보중, <냉정과 열정>, 2021, 97x130cm

김민기는 격동적인 한국 현대사의 저항 문화를 대표하는 예술가이다. 김민기는 이번 전시의 출발이 된 아침이슬의 작곡가일 뿐 아니라 동일방직의 노조 문제를 다룬 노래 굿 '공장의 불빛'과 20세기 말 한국사회의 모습을 풍자와 해학을 담은 '지하철 1호선'을 기획한 예술 감독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다양한 장르 속에서 예술가 김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무엇보다도 '한국 현대사 면면에 서린 저항정신'일 것이다.

전시 개막식은 전시를 주최한 경기문화재단의 조병택 지역문화실장이 진행하였으며 경기문화재단 강헌 대표와 예술의전당 유인택 사장의 축사, 토크 콘서트가 순으로 진행되었다.


축사를 하는 경기문화재단 강헌 대표


축사를 하는 예술의전당 유인택 사장 

먼저 경기문화재단 강헌 대표는 “‘김민기’에 대한 가치는 한 예술가에서만 그치지 않고 우리 모두가 민주주의를 꿈꿀 수 있게 했기 때문에 모든 예술가의 가치일 것이고 더 나아가 시민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며 그의 작품과 정신을 기리는 행사를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전시 개최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또한 가을에는 김민기의 또 다른 분야에 대한 역작인 어린아이를 위한 대안적 동요 작업을 기리는 작업을 경기문화재단에서 진행하게 되었다고 밝히며 김민기의 예술세계를 다시보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겠다고 언급하였다. 한편 예술의전당 유인택 사장은 “1977년경 감옥을 갔다 온 후 제적되어 집에 있을 때 <공장의 불꽃>이라는 노래극을 복제하는 작업을 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며 젊은 날의 스승인 김민기의 전시에 축사 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며 전시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을 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준기 학예실장, 강헌 대표, 김창남 교수, 조병택 실장

토크 콘서트는 조병택 실장의 진행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장이자 성공회대의 김창남 교수, 경기문화재단 강헌 대표, 김민기헌정사업추진위원이자 국립현대미술관 김준기 학예실장과의 대담이 진행되었다.

Q. 김민기 음악을 처음 접한 시기


(좌) 김창남,<낮은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2021,35x81cm (우)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2021, 35x78cm 

A. (김창남 교수) 당시 춘천에는 FM라디오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김민기를 비롯한 당시 청년 문화를 접할 기회는 없었다. 제가 김민기라는 이름이 각인 된 것은 중학교에서 어떤 악보를 보면서 였다. 사실 그때는 김민기라는 사람을 몰랐고 악보를 보면서 일반적인 곡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후 1978년 대학에 들어와서 김민기의 노래를 들었고 그 해 말 <공장의 불빛> 녹음에 참여하게 되었다. 선배와 동기와 식사 약속이 있어 신촌에 나갔는데 예나 지금이나 히주구리한 표정으로 김민기가 앉아 계셨고 그분과 밥먹고 술한잔 하는 경험이 너무 생경했다. 겨울 내내 <공장의 불빛>을 복사하는 작업 자체도 큰 충격이었다. 짤막하지만 서정적인 노래가 엮어지면서 강력한 서사를 제시한다는 것이 큰 충격이고 전달 수단도 카세트 테이프라는 점이 새로웠다. 카세트 테이프는 가장 민주적인 매체인데 누구나 테이프를 녹음하고 편집할 수 있다. <공장의 불빛>이 카세트로 확산되는 작업이 당시 노동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 이라고 생각한다.

A. (강헌 대표) 제가 살던 곳도 춘천과 같이 역시 문화적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곳이 아니었다. 아침이슬을 가장 처음에 들었던 기억은 보이스카우트 캠프를 갔을 때 지도 선생으로 왔던 부산대 학생에게 들었다. 당시에는 금지곡이라는 사실도 몰랐고 아무 감흥도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자주 가던 곳 테이프 가게 사장님께서 김민기의 노래와 한대수의 노래가 있던 테이프를 받았는데 그때 당시에도 금지곡인지 모르고 쉬는시간에 노래를 틀어 교무실에서 혼난 해프닝도 있다.

A. (김중기 실장) 당시 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1984년에 선배의 화실에서 김민기의 앨범을 처음 들었다. 당시 화실은 유일한 미술을 배우는 곳이었으면서 동시에 자유를 표현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개인적으로 <공장의 불빛>은 전대미문의 행동주의적인 예술극이라고 생각한다. 70-80년대에 문학에서는 김지하의 문학이 있었다면 음악에서는 김민기가 그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임채욱, <김민기 LP50>, 2021, 100x100cm

Q. 김민기의 음악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 

A. (김중기 실장) 상록수. 다양한 가수를 통해 리메이크 되고 또 재해석되는 곡으로 다양한 가수의 목소리로 부르는 상록수는 우리에게도 클래식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A.  (강헌 대표) 김민기의 노래는 하나하나가 정통적이면서 파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김민기의 노래는 무엇보다도 당시 그 세대에서 최초로 한글의 말맛을 살리는 가사였다. 또한 베토벤의 곡을 말할 때 내적 필연성이 있다고 말하는데 김민기의 노래 역시 당시 가장 젊고 신선하며 내적 필연성 있게 만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철망 앞에서>이다.

A. (김창남 교수) 금관의 예수와 기지촌. 녹음에 참여했기도 했으며 학생 때 불렀던 노래로 지금까지 부를 수 있다.

Q. 많은 대중가수 중 왜 김민기인가

A. (김창남 교수) 우리나라에는 뛰어난 뮤지션이 많이 계시지만 김민기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먼저 대중문화사에서 김민기는 굉장히 큰 역할을 해 왔다. 단 한 번도 매체를 통해서 인기 가요로 소개 한 적도 없지만 대중들에게 위로가 꾸준히 위로를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집요하고 끊임없이 예술적 실험을 지속하면서 후배들에게 끼친 영향이 크고 그로 인해서 전혀 새로운 흐름이 생겼다고 그의 업적을 기억할 수 있다. 음악이 가지고 있는 세계, 우리 말의 말맛을 살리는 능력과 당대의 사회를 예술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집요함과 새로운 해석들은 음악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특히 아침이슬을 통해서 느끼는 것이지만 노래는 가장 강력한 기억의 매체이다.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기억한다는 것, 노래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 노래가 나왔던 그 시대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와 같이 과거의 역사를 현대의 맥락으로 소환하려는 작업들을 통해서 노래와 역사를 기억하는 작업일 것이다.


정태춘, <태양은 묘지위에>, 2021, 32x100cm

A.(강헌 대표) 이번 김민기 헌정 작업에서 전시와 트리뷰트 음반을 동시에 작업한 정태춘 선생님께서 김민기를 ‘첫 번째 반항아, 첫 번째 이단아, 첫 번째 소외자’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렇게 완벽하게 요약한 시적 상상력은 처음인 것 같다. 김민기는 우리에게 대안적 상상력, 예술 시각의 분기점을 만들고 있다. 바로 우리가 김민기를 5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꾸준히 회고하는 이유이다. 청춘의 추억이고 시대의 기억이지만 한국 현대사 속에서 꾸준히 반복되는 아침이슬이 처음 거리에서 불리면서 마치 돌림노래처럼 공간을 채웠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함께 있는 김민기의 노래는 그런 의미에서 기억하는 것을 넘어서 이미 우리의 살과 피로 흐르고 있고 우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김민기가 한국 역사의 흐름 속에서 <아침이슬>을 반복적으로 불리는 것을 통해서 ‘이제 아침이슬이 더 이상 자신의 노래가 아니고 모든 시민들의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아침 이슬은 새롭게 불리면서 노래의 동시대성을 띠게 된 것 같다.


임옥상, <신문_땅굴 1-6>1978, 83.5x83.5x5cm





아카이브 전시 전경, 초등학교 습작한 그림을 볼 수 있다. 셋째 누나의 친구였던 최욱경(1940-1985)에게 그림을 배웠던 흔적을 볼 수 있다.

임선미 ysm3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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