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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강석호, 대상과 나, 응시와 그리기

김인선

미술사 개론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작가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기원전의 이미지들을 포함하여 서술되어 온 회화는 그간 그 기능과 개념을 달리하면서 지금까지 건재하고 있는 강력한 장르임을 부인할 수 없다. 21세기에 이른 지금의 미술은 다각적, 다원적이며 다매체적 방법론이 넘쳐난다. 동시대성(Contemporary)을 획득하고 새로움의 선두에 위치하기 위한 작가들의 치열한 연구가 여느 시대 못지않게 진행되고 있는 요즘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조각을 전공한 후 독일에서 회화 전공을 하고 꾸준히 캔버스를 다루고 있는 강석호 작가의 회화라는 전통 장르의 범주 안에서 동시대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연구는 흥미롭다.



‘뒷모습’전 전시 전경(2006, 금호미술관)


강석호 작가는 ‘무엇을 보는가’라는 질문에 관한 오랜 연구를 해 온 작가이다. 강석호 작가는 2006년도에 선보인 금호미술관에서의 전시를 통하여 40여 점의 ‘초록색 체크무늬의 재킷을 입은 이의 뒷짐을 지고 있는 뒷모습’을 반복적으로 그린 캔버스들을 설치하였다. 강석호 작가가 제시한 이 반복의 방법론은 각 캔버스의 표면이 가지고 있는 ‘정보’와 ‘이미지’라는 두 분야의 간극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텍스트화하여 설명한다면 그 문장은 모두 같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시 공간을 채우고 있는 각각의 캔버스는 모두 다르다. 자기 복제를 거듭하면서도 이 그림들은 색의 발림, 물감의 양, 색채의 톤, 재킷의 구김의 모양새, 손가락의 각도나 묘사의 정도 등 미묘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대상의 객관화된 정보가 캔버스에서 미세한 차이들을 드러냄으로써 회화로서의 그리는 행위가 가지고 있는 거대한 잠재력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누군가가 직접 본 것을 함께 공감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같은 것을 보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잘 묘사된 그림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쉽게 얻을 수 있는데 이는 작가가 극사실적 묘사에 다다랐을 때 관객이 자신과 작가가 정확히 똑같은 것을 보고 있다는 동질감에 안도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강석호의 작업은 그려진 대상의 질감이나 부피감 등이 꽤 사실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화면에 그려진 것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화면을 좀 더 관찰해 본다면 그의 캔버스 표면에 그 어느 곳에도 이 대상을 묘사한 흔적이 없다. 붓을 두드리고 색을 문지르며 뭉갠 흔적만을 찾을 수 있으며 이 물감은 캔버스 표면에 흡수된 듯 마치 천에 염색한 것처럼 얇게 펴 발라져 있어서 붓의 자국은 보이지만 물감 자체가 주는 물질감을 보여주는 마티에르는 없다. 수없이 두드려서 펴 바른 물감이 모여서 구축된 이미지는 실제 정교한 묘사를 한 사실적으로 재현된 회화 못지않은 현실감을 드러낸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회화 작업을 시작하면서 강석호 작가는 인터넷 이미지 속에서 찾아낸 익명의 인물을 확대하여 해당 인물의 신체 일부분을 캔버스로 옮겨 그려왔다. 이러한 소재는 스크린을 통하여 추출되어 일종의 정보로서 받아들여졌다. 이는 다시 작가의 눈과 손을 통하여 옮겨지는 과정에서 새로운 이미지로 구축되었다. 선택한 이미지로부터 추출된 아주 작은 사진을 거대한 캔버스로 옮기는 과정에서 작가의 기억과 상상력이 동원된다. 그리고 대상 재현성의 의미는 점차 사라지고 캔버스 표면에는 대상의 주관적인 정보가 더해져 재구 축된 그림이 드러난다.



‘the other’전(2017, 페리지갤러리)


2017년도 페리지갤러리에서의 개인전 ‘the other’에서 강석호 작가는 응시하는 시선을 반복적으로 그린 거대한 캔버스들을 전시하였다. 관객이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캔버스의 눈은 일제히 관객을 향해있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작품과 관객 사이의 긴장감을 경험한다. 동시에 관객을 응시의 대상으로 전환되었음을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관객은 그려진 이미지와 같은 시선과 태도를 취하며 상호 주체이자 동시에 타자이기도 한, 작품과 관객간 동등한 위치를 점유하게 된다. 이처럼 강석호 작가에게 그림은궁극적으로 자신과 그림이 마주한 채 서로가 대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묻고 이에 화답하는 과정일 것이다.



강석호



김인선 / 스페이스윌링앤딜링 대표
artwilling@gmail.com


- 강석호(1971-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아카데미 마이스터슐러 학위, 쿤스트아카데미 브리프 학위 취득. 석남미술상(2004) 수상. Gabielle Heidtmann gallery(2003), 갤러리현대(2005), 인사미술공간(2005), 금호미술관(2006), 스페이스윌링앤딜링(2012, 2019), 미메시스뮤지엄(2015), 페리지갤러리(2017) 등에서 개인전 외 단체전 다수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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