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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오원영, 미미크리 플레이

홍지석

오원영의 작업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오원영의 작업을 생각하면 우선 천진난만한 아이들(아기들)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4등신의 체형에 작은 손, 작은 발, 그리고 귀엽기 그지없는 얼굴을 가진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는 모습 말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오원영의 작품들에서 귀여운 아이들의 이미지는 늘 사나운 맹수들의 이미지와 겹쳐 있다. 아이들은 호랑이, 흑곰, 백곰, 늑대 같은 맹수들의 탈을 쓰고 맹수의 옷을 입고 있다. 심지어 <The first travel>(2010) 같은 작품에서 아이들은 표범이 모는 썰매를 타고 있다. 게다가 이 맹수들은 어떤 경우에도 <뽀롱뽀롱 뽀로로>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처럼 귀여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매우 차갑고 냉담해 보인다. “무섭다”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상이한 것들을 결합한 오원영의 작업은 매우 기이한 분위기를 창출한다. 오원영의 작품 앞에서 나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있는 아기’나 켄타우로스 같은 반인반수의 괴물이 등장하는 신화, 또는 맹수와 아이들이 함께 등장하는 잔혹 동화를 읽을 때처럼 묘한 서늘함을 느낀다. 그 서늘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오원영의 작업 앞에서 나는 ‘그로테스크’라는 용어를 생각해냈다. 주지하다시피 그로테스크는 이질적인 것의 혼합을 통해 형성된다. 그로테스크는 한자리에 결합된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를 밀고 당기는 내전에 빠져있는 상태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렇게 ‘그로테스크’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으니 이제 나는 그로테스크를 언급한 여러 예술가와 비평가들이 이미 닦아놓은 길을 따라 정주행할 수 있다. 그들은 그로테스크, 곧 상반된 것들의 혼성이 위계를 뒤흔드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로테스크는 이항대립을 뒤흔들고 파괴하는 이른바 ‘추의 전략’을 대표하는 용어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원영의 작업은 동물/인간, 자연/문명 따위의 위계화된 이분법적 질서를 문제 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오원영, Stellar Bear, 2019, inflatable fabric, 120×150×300cm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원영의 작품들은 매우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점이다. 그것은 관객의 시선을 잡아당긴다. 특히 아이들이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것이 그로테스크를 표방한 여느 작품들과 다른 느낌을 자아내기때문일 것이다. 앞서 나는 ‘기이한 분위기’,‘묘한 서늘함’을 운운했지만 이런 그로테스크의 효과들은 오원영 작품 특유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훼손하는 식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오원영이 원한 것은 그로테스크 자체, 이분법적 질서의 해체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이 작가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로테스크를 소비,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제 다시 그 아이들을 바라보면 이 아이들은 모두 똑같이 생겼다. 그것은 백화점 아동 코너나 캐릭터 상점의 인형들처럼 상투적인 이미지다. 맹수들의 이미지 역시 매한가지다. 그것들은 모두 한결같이 생겼으며 아이들의 이미지처럼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상투적인 이미지들이다. 오원영은 이 모든 것들을 결합해 제법 눈길을 끄는 광경을 연출한다. 그것은 고객의 시선을 끌기 위해 그로테스크를 끌어들여 기이하게 연출한 백화점 시즌 디스플레이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오원영은 몇몇 전시들에서 백화점식 디스플레이를 노골적으로 가져다 썼다. 오원영은 자신의 작업을 ‘미미크리(Mimicry)’로 부르는데 그 미미크리(모방)는 시장이 이미지를 사용, 생산하는 방식을 예술을 통해 되풀이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일 것이다. 최근 이 작가는 공기주입식(Inflatable) 설치를 자신의 작업에 끌어들였는데 이는 쾌활함, 일시성, 기동성을 추구하는 근래 시장의 상품 연출을 꼭 닮은 ‘미미크리 플레이’가 아닌가!


홍지석 / 미술평론가
kunst75@naver.com


- 오원영(1971- ) 홍익대 조소과 및 동 대학원 석사, 박사 졸업. 김세중미술관 등 다수 개인전.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등 다수의 조각 프로젝트 참여, 서울시립대 겸임교수, 서울교대, 성신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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