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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이태현, 우주와 천변만화의 상징으로서 괘(卦)의 변형

윤진섭

이태현, SPACE 2023130² IV, 2023, 130.3×130.3cm, Oil on Canvas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을 다룬 전시가 미국의 구겐하임미술관을 거쳐 현재 L.A에 소재한 해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이 공동으로 기획한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이 미국을 순회하면서 구겐하임 측이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70s》라는 영어명을 내걸었는데, 이 전시는 제목이 암시하듯 1960-70년대에 이 땅에서 전개된 전위미술을 다루고 있다.  

전시는 1967년 12월 11일부터 16일까지 국립중앙공보관에서 열린 《청년작가연립전》부터 시작한다. ‘무’, ‘신전’, ‘오리진’ 등 홍익대학을 졸업한 청년작가들이 주축이 돼 ‘탈평면’을 주장하며 오브제와 설치 위주의 작품을 선보였다.
‘무’동인의 멤버인 이태현은 이 전시에 <명(命) 1>(1967)을 출품하였다. 방독면과 군사용 배낭을 위아래로 연결한 이 오브제 작품은 군부통치하에 있던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암시한다. 이태현은 이 작품 외에도 붉은색 바탕의 판자 위에 검정색 고무장갑들을 질서정연하게 부착한 작품을 출품했는데, 이는 산업사회의 초기에 해당하는 당시의 경제적 상황을 드러내면서 팝적 징후를 보여주었다.  
 
인사동에 위치한 통인화랑에서 《이태현-生滅點華 생멸점화》전(4.3-4.24)을 둘러봤다. 이번 전시는 70년대에서 90년대, 그리고 작년에 제작한 <공간(Space)> 연작들로 이루어졌다. 자연과 우주의 운행 원리를 밝힌 중국의 고전 주역(周易)의 근본을 이루는 8괘(卦)를 변형시킨 무수한 기하학적 형태의 조합이 작품을 구성하는 기본 원리이다. 그렇다면 70년대 당시 이태현은 과연 어떤 연유로 이처럼 질서정연한 모듈의 구조를 지닌 평면적인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일까? 그는 당시 ‘회화는 평면이다.’는 명제를 생각했다고 말한다. 화단내적으로는 196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기하학적 추상화의 바람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청년작가연립전》에 출품한 <명(命) 1> 이후, 입체와 설치로 갈 것인가 아니면 평면으로 전환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 빠져있다가 어느날 주역을 접하면서 평면을 택했다고 하는 진술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때 ‘회화는 평면이다.’라는 사유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닐까?

어느덧 60여 년에 이르는 이태현의 회화적 족적을 되돌아볼 때, 평면으로서의 회화는 곧 모더니즘의 ‘이태현’식 실천에 다름아니다. 그의 그림을 그저 유행에 편승한 기하학적 추상의 한 예로 치부하기에는 1970년 작인 <공간 70-1>(캔버스에 유채, 130.5×129.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후 현재에 이르는 작업의 궤적이 너무 의미심장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태현은 그사이에 여러 차례에 걸쳐 화풍의 변화를 시도하였다. 검은색을 기조로 평면 위에 펼쳐진 그 변화들은 예컨대 가로나 세로로 마치 화면을 예리한 면도칼로 오린 듯 검정과 흰색의 대비가 선명한 패턴의 반복을 보이는 화면을 비롯하여 매우 다양하다. 

1970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태현이 자기 작품에 일관되게 붙이고 있는 <공간(Space)>이란 명제는 예컨대 박서보의 <묘법>을 비롯하여 하종현의 <접합>, 서승원의 <동시성>, 이승조의 <핵> 등 한국 모더니즘 회화의 한 줄기를 이루는 작명의 관습에 닿아있다. 이태현의 공간은 우주의 삼라만상을 하나의 화면에 기호화시키는 작업의 요체이다. 양효(-)와 음표(--)의 결합이 4괘와 8괘를 낳고 그것이 다시 64괘로 변화해 가듯이, 모듈화된 이태현의 화면에서 효와 괘의 변형은 서로 다른 의미의 세계를 열어놓았다. 이번 전시는 그 과정으로서의 한 양상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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