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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탈근대 변화의 흐름을 읽고 촛불 집회를 세계적 촛불 축제로 승화시키자

정중헌

2008년 5월 대한민국 서울에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해가 지면 군중들이 도심 광장에 모여 촛불을 켜 들고 집회를 여는 것이다.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이 국민 자존심을 건드린 데다 먹거리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증폭된 것이 촛불의 도화선이 되었다. TV는 국민감정에 불을 붙였고, 일부 신문은 괴담의 배후설을 제기했다. 하지만 촛불 집회에 모이는 대중들은 이 같은 매스미디어에 경도되지 않았다. 이들의 연결고리는‘다음’사이트의 아고라와 인터넷 입소문이었다. 누구에게 조종 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제 발로 참가한 것이다. 교복 입은 여중고생들, 유모차를 몰고 온 주부들이 모이고 연예인 일부가 동참하면서 집회는 촛불잔치로 변해갔다. 이들은 A4 용지 크기에 자신의 구호를 써 들고 친구끼리 연인끼리 가족끼리 데이트하듯 소풍가듯 광장으로 집결해 촛불을 켰다.

물론 반미 구호를 외치고 반정부 시위를 선동하는 무리도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이 점을 우려하며 대응하려 했다. 그러나 대통령 사과와 잇단 후속 조치에도 불구하고 집회 인파는 갈수록 늘면서 100일도 안된 대통령과 정권의 퇴진까지 요구했다. 시위대가 청와대로 향하자 경찰이 콘테이너로 벽을 쌓고 물대포를 쏘아대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집회와 시위에 비장감이 없었다. 공권력을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경찰이 시위의 불법성을 알리면 “노래 해! 노래 해!”를 외치고, 전경 진압이 거세지면 “비폭력 비폭력”을 외치는 기이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분명 과거 시위와 양상이 다르다. 그렇다면 이번 촛불 집회의 현상을 제대로 분석해야 대책이 나올 수 있다. 한데 정부도, 국회도, 공권력도 이번 촛불 집회의 성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다중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방송뉴스와 보도기획은 노골적으로 국민감정을 부추기고, 보수신문들도 배후설에 무게를 두다가 사태가 심각해지자 뒤늦게 태도를 바꿨다. 몇몇 교수와 예술인들이 이번 촛불 집회의 성격과 진정성을 읽고 분석을 시도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기성세대 역시 촛불 집회에 학생들이 몰리자 애들이 뭘 안다고 나대냐며 나무랬다. 학생들을 단속하지 않는 교사들을 탓하기도 했다. 필자는 처음부터 이번 사태를 억압된 교육구조와 청소년 문화 부재가 빚어낸 문화 현상으로 읽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보았다. 중장년들은 88서울올림픽에서 한국인의 자긍심과 스포츠 축제의 흥분을 경험했다. 2002년 전국을 뒤흔든 월드컵 4강 신화는 붉은 악마들이 전 국민을 열광시킨 최고의 드라마였다. 그러나 인터넷과 더불어 자란 요즘의 청소년들은 일상의 탈출이나 자신들만의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고, 학교조차 이들에게는 지옥이었다. 이런 세대들에게 우리정부의 미국산쇠고기협상은 굴욕이었고, 광우병은 불안을 넘어 공포였다. 왜 자기들이 먹을 쇠고기를 정부가 간섭하느냐고 말하고 싶어 촛불을 켰고, 세상에 나와 함께 어울리니 가슴이 트였고 재미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젊은이와 사는 게 고단한 서민들도 촛불 대열에 합류했다. 경제를 살리고 국민을 편안하게 해줄거라 믿은 이명박 정권에게 실망하고 있는데 쇠고기협상에서 국민자존심을 구겨 놓자 뛰쳐나온 것이다. 인사가 만사라면서 고소영 강부자 측근으로 울타리를 치고, 정치력마저 발휘 못하니 퇴진 요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촛불 축제로 승화
결국 이번 사태는 소통의 문제다. 인터넷의 발달과 웹 2.0 환경에서 모든 정보를 개방, 공유하고 네티즌이 참여하는 수용자위주의 사회로 개편되는 추세다. 근대에서 탈근대로 넘어 오면서 수직적이던 소통이 수평 구도로 바뀐 것은 혁명적이라 할 만하다. 탈근대의 특징인 경계 허물기, 차이에 대한 인정, 개관적이기 보다 주관적•우발적 성향도 이번 촛불 집회에 드러난 특징이다. 그런데 선진 한국을 외친 이 정부나 정당, 국회와 언론이 이런 현상을 읽지 못해서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촛불이 갈수록 거세 진 것이다. 문화는 공약(空約)이었을 뿐 거대한 정부 조직과 정당들이 문화의 큰 흐름과 뉴미디어 환경의 급변을 내다보지 못했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이제 문화는 장식품이 아니다. 미래를 이끌 동력이고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활력소다. 일본은 지역마다 마쯔리라는 축제가 있어 시민들이 일탈을 경험하고 정서적 일체감을 갖는다. 우리도 지자체가 시행된 후 전국에 수천 개의 축제가
넘쳐난다. 그런데 인구 1천만의 도시 서울이나 그 보다 많은 인구를 가진 수도권에 시민이 함께 즐길 만한 축제가 없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원금이나 나눠주고, 서울시의 하이 서울 축제는 시민들에게 별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실정이니 학교 문화, 청소년 문화는 싹이 틀 여지가 없다.

이제는 공부 잘하고 돈 많이 버는 것만이 행복의 척도가 아니다. 문화적으로 윤택하고 자신이 연출하는 삶을 젊은이들은 원한다. 이번 촛불은 어른들의 독선과 틀에 박힌 교육에 짓눌린 청소년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임을 간과해서 안 된다. 지금의 촛불 문화제에서 정치색과 인기 영합, 상업주의를 빼고 청소년과 젊은 세대가 기획하는 촛불 축제로 승화시키면 남녀노소가 한데 어울리는 흥겨운 놀이판이 되지 않을까. 지금 중고생, 주부, 서민들은 마음껏 참여하고 흥겹게 열정을 발산하는 페스티벌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하이서울축제 예산이면 촛불행렬을 세계적 축제로 발전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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