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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도(古都)에서의 윤동구의 작업

이영철

한 여름의 전쟁

- 천년 고도(古都)에서의 윤동구의 작업



유목민 전사들의 임시 본영(本營)
온 세상을 불이라도 질러 버릴 듯 뜨거웠던 지난 8월,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에 있는 미술관에서 알 수 없는 이상한 전쟁이 치러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과 어떻게 연관된 전쟁인지 알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분명히 어떤 전쟁이었다. 예술은 각자의 삶과 마찬가지로 원인을 모르면서 전쟁을 치르는 경우가 있다. 전선이 없는 전쟁, 충돌도 후방도 없으며, 심지어 극단적인 경우 전투 마저 없는 전쟁이다. 예술가들은 크든 작든 하나의 모임, 즉 전사들의 무리다. 이들은 언제든 모든 것을 위반할 수 있도록 운명지워진 사람들이다. 순수한 외부를 공간 내의 하나의 영토로 만드는 것, 이 영토를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인접한 제2의 영토를 건설하는 것, 상대를 탈영토화하기 위해 상대의 영토를 내파시키는 것. 그리하여 윤동구는 목적지도 출발점도 도착점도 없이 자신의 무의식과 ‘산 노동’에 속한 마법적 유대와 더불어 미술관에 얽힌 결합 관계들을 풀고, 내부성의 형식을 깨고, 척도에 대해 격정을, 공적인 것에는 어떤 비밀을, 체계에는 기계를 대립시킨다. 그로 인해 미술관의 내부와 외부는 알 수 없는 어떤 혼란, 어떤 활력에 휩싸였고, 국면은 수차례 전환되었다. 전시가 열리자, 그 장소는 격렬했던 전쟁이 끝낸 후 평온을 되찾았고, 아주 다른 외관으로 태어났다. 일견, 일상품이건 건물이건 섬이건 무엇이든 싸버리는 크리스토의 작업을 머릿 속에 떠올 수 있겠지만, 사물을 불투명한 천으로 포장하여 의미와 기능을 없애버리는 융통성 없는 개념적인 작업과는 다르다. 윤동구는 딱딱하고 근엄하고 영구적인 위치를 고집하는 전형적인 현대식 미술관을, 빛을 간접 투과시키며, 표면이 부드럽고, 표정이 풍부한, 일시적인 텐트 건물로 바꾸었다. 그것은 상상컨데, 초원에 세워진 몽고 유목민 전사들의 임시 본영(本營)의 모습이다. 막사의 꼭대기에는 승전을 자축하듯 높은 깃대에 붉은 깃발이 나부낀다. 출입구 옆에는 표면이 부드럽고 뻥과자 처럼 부풀려진 형태의, 보테로의 두점의 입상 조각들이 보초를 서듯, 방문객을 환영하듯, 건물에 몸을 붙힌 채 서 있다. 미술관 전면은 부드러운 천(피막)으로 싸여졌다. 카오스 환경에 대응한 거리의 표시이면서 안과 밖을 구분하는 인체의 살갗 처럼 느껴진다. 원래 먼 과거에서 기원하는 유목적 집의 형태는 환경에 대응하는 경계면의 일시적 설정이다. 윤동구의 작품에서 그것은 새로운 프레임으로 끼워 맞춤, 벽면, 창면, 지면, 경사면 등의 모든 면들의 엮음, 많은 커팅 에지들과 대위항들로 구성되었다. 건물의 전면은 4가지 색면(적, 백, 녹, 흑)으로 나뉘어져 있다. 커브형 외벽은 바람결에 따라 우아한 주름을 형성하는 매끄러운 흰 천으로 덮혀 있다. 반면에 출입구 주변은 이중막으로 된 핏빛 색면으로 되어 마치 여성의 생리혈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내부로의 빛 차단을 위해 2층의 긴 베란다를 막은 검은 스크린 사이로 반짝이는 빛들이 새어 나온다. 따라서 건물은 여성적인 리듬을 만들어내면서 대지에 옆으로 누워있는 하나의 몸체 같아 보인다. 윤동구는 두껍고 규칙적이고 홈 패인 공간의 중후함(미술관)을 매우 가볍고 부드럽고 매끈한 공간으로 대체해 버린 것이다. 미술관 앞뜰의 흩어져 있는 추상 조각들은 일종의 사건의 목격자들이다. 그들은 미술관이 납포라도 된 듯 놀라는 모습에다 포장을 대기하는 물건들 같다. 그렇다면 현대 미술관 내부의 소장품들은 이 느닷없는 싸움에 저항 한번 못해보고 단번에 사로잡힌 포로들인가? 그 옆에서 유목민 작가 백남준의 말이 TV 모니터들을 잔뜩 등에 이고 서 있다.


역사와 기억
(1)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 뒤돌아 보게 되면, 빛 바랜 사진을 보듯 검붉은 천에 투과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신체의 내부, 뇌(정신/기억) 속으로 들어온 것인가? 먼 과거나 미래의 다른 시간대로 여행해온 것인가? 내부는 온갖 기계적 소음들(machinic noise)로 가득차 있다. 느리고 무거운 소리는 바닥으로 깔리고 가늘고 잰 소리는 허공으로 흩어진다. 소음 속에서 그린 색의 투명하고 거대한 직사각형 박스가 앞을 가로막는다. 그것의 내부는 박쥐 처럼 어둠 속에 거꾸로 매달린 정미소의 판넬이 있고 온갖 육중한 기계들이 뒤얽혀서 전후, 상하로 왕복 운동을 계속 한다. 모든 감각적 이미지들이 종교적 기원을 갖는 한, 그것들은 허구와 같다. 반면에 이미지들이 순전히 미적인 가치만을 띠게 될 때 그것들은 기묘하게 감각적 초월성을 갖게 되며, 이 경우에 초월성은 종교들의 초감각적 초월성과 암암리에 대립 관계에 놓이게 된다. 윤동구의 작업에서는 재료 안에서 감각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재료가 감각으로 이행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에게는 감각은 이러한 이행 바깥에 따로 존재하는 법이 없으며 기술적 구성이 미적 구성 속에 최대한 녹아 들어서 전체가 두께를 갖는다. 그가 미세 감각들의 표면을 좋아하면서 특이성과 사건의 평면을 만들어내는 작가라는 점에는 어떤 수사학이 필요없다. 회화 작업에서도 그는 ‘엮어내기’를 통해 구성의 두께를 하나의 개념으로 변화시켰다. 이런 과정들이 보다 큰 창조의 개방성으로 발전해 가면서 경주라고 하는 장소의 특이성(그에게는 ‘풍토성’이란 말이 더 근접한 용어 같다)과 결합했고, 여의도 IMA 전시에서는 그것은 재료-->감각들-->집-->대지-->초월성(장엄 미사)로 이행하는 ‘전체’를 만들어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시골 마을에서 찾아낸 폐공장의 정미소 구조물과 기계 부품들을 뜯어내 앗상블라주들의 거대한 집을 만들어냈다. 식별불가능한 감각들의 거대한 집 안에서 관객은 이 기계들이 정미소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보다는 자신의 감각과 무의식이 열리는 현상에 일차적으로 흥미를 느끼게 마련이다. 정미소 기계들의 새로운 조합은 그 행위 자체로 볼 때,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코드화’ 작업에 관한 것이지만, 감각들의 블록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일부를 제 것으로 영토화하고 점유해 들어가는 강렬한 전쟁이다. 그것은 보이는 세계에 속한 구획된 영토들, 경계들을 끊임없이 위반하고 단숨에 넘어서는 점에서 탈영토화만 존재한다. 대지의 아들 답게 그에게 장소는 규정된 지점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장소를 지속적으로 다수화하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장소는 비물질적인 것, 덧없는 어떤 것이다. 빛, 소리, 운동이라는 요소로서 관찰자의 위치 변경, 채택된 시점의 변화에 따라 분절되는 사건 풍경들, 이중으로 겹쳐진 표면들이나 포개진 평면들, 운동의 신속함과 전망의 지속적인 이동에 의해 스스로를 말소시켜가는 덧없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2) 불순물이 없는 희고 깨끗한 생명 입자를 만드는 이 성스러운 공간은 농업 협동 조합의 대량 처리 시스템으로 대체되면서 근대 문화의 낡은 유물이 되었고, 대규모 관광 단지로 변모해버린 고대 유적의 도시 경주 처럼, 이제 과거의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간다. 정미소와 경주는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사라진 고향, 과거의 희미한 먼 기억일 뿐이다. 코드화는 개인의 잠재적 기억에 내재한 무의식 작용을 선별하고 억압하려 든다. 그 과정을 우리는 역사라 부른다. 그러므로 역사는 모두에게 속하지만 동시에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는다. 작가에게 역사를 덧씌우는 일은 온당치 못하다. 기억과 역사. 이 둘은 결코 동의어가 아니다. 이들은 어떤 점에서도 대립어이다. 기억은 현재 활성화되고 있는 현상이며, 기억은 회상을 성스럽게 하지만 역사는 그것을 추방한다. 말하자면 역사는 탈마법화다. 그것은 억압하는 자들의 연속성으로 짜여진 강박의 궤적일 뿐이다. 피지배 계급의 고통으로 점철되어온 역사에 종지부를 찍어버리는 ‘진정한 비상사태’를 가져오는 능동적인 행위. 파국으로 점철된 진보에 불과한 연사의 연속성을 과감히 폭파시키는 돌연한 역사의 정지상태, 그것을 일찍이 발터 벤야민은 자신이 소장했던 폴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1920)의 두상을 ‘메두사의 머리’로 상징화했다. 세속적 차원에서 신화화를 거부하며 계속해서 역사의 연속성에 역사가 굴복해 들어간다는 점에서 역사는 “잔해 위에 또 잔해”라는 이미지를 반복한다. 앵포르멜에서 모노크롬에 이르는 한국 현대 미술의 역사화 과정은 억압하는 자들의 연속성을 보여주며 90년대 후반에 와서야 비로서 그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는 허구의 프로그램으로 드러났다. 역사와 달리 기억은 과거에 속하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잠재적인 것이 지금 활성화되는(actualize) 특이한 점들의 ‘보이지 않는’ 느슨한 혹은 빠른 운동이다. 그것은 정확성-부정확성의 이분법이 아니라 비(比)정확성으로 존재한다. 들뢰즈의 시간관에 따르면, 보이는 감각-운동 이미지와 보이지 않는 시간 이미지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고 한다. 우리는 의레 시간을 운동의 결합으로 생각해 왔다. 시간은 지각된 선으로의 나의 걸음이나 동작이 매 단계를 연결시켜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윤동구의 작업에서는 그와 다른 관점을 찾아낼 수 있다. 즉 시간은 모서리를 따라 돋아난 풀들의 선이 아니라 폭발력이다. 폭발력(시간)이 운동을 만드는 것이지, 운동이 폭발력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움직이고 생성하는 삶의 힘이다. 윤동구의 미술은 삶의 역능을 시험하는 힘의 미술인 것이다. 작가는 작업 과정 속에서, 그리고 관객은 그 결과물 안으로 걸어들어감으로써 스스로 ‘비인칭화’ 되는 감응(affect)을 체험함으로써 시간의 파열적 힘들을 복원해 낸다. 이로써 미술은 자기-변형의 핵심부에 위치할 수 있는 것이며, 우리가 시간과 맺는 관계는 윤리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것이 된다. 우리가 자주 망각하거나 혼동하는 것이지만, 미술에 있어 정치적 문제들은 주제와 행동으로 사고하기 이전에 시간 자체를 살아가는 우리의 방식 안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3) 종종 과거는 귀중한 물건들이 간직된 다락방 처럼, 먼지가 쌓여도 어딘가에 조용히 머물러 있다. 특히 고향을 멀리 떠나온 자의 내면 속에서, 고향이 사라진 오늘의 삶 속에서 기억의 운동들은 산발적이고 기력이 약하고 수면 밑에 있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전승되어온 전통과 다른 것이다. 기억은 역사와 함부로 혼동되지 않아야 한다! 상흔의 현장들은 어딘가에 남아 있을 물리적인 장소나 사라진 향수어린 고향이 아니라 도처에 퍼져있는 미래-현재-과거의 시간이 혼재한 무의식 지대이다. 그것들은 잠재적인 기억의 상태로만 존재한다. 잠재적 기억은 세대를 거쳐 현존과 부재 사이의 오지(奧地)에서 살아간다. 마르셀 프르스트는 “우리가 스스로 기억한 특성들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각인된 것이 들어있는 책이 우리의 유일한 책이다.”라고 말한다. 윤동구는 초기 작품에서 지금까지 줄기차게 ‘문화적 기억의 위기’를 향하여 혼자서 배를 저어 왔고 그가 지나간 자리는 이제 영토가 되고 있다. 그는 과거의 잠재된 기억들, 심리적 상흔, 그리고 언표할 수 없는 어떤 예감을 담아낼 거대한 임시적인 컨테이너를 만들고 있다. 그것은 기록물 보관의 다큐멘타리 작업에 대한 관심이나 과거를 회상하는 나이브한 형상화 작업과는 관련이 없다. 다큐멘타리는 이미지를 빈곤하게 만든다. 재-현될 실재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바로 그 가정이 이미지들을 수확 체감의 논리에 종속시켜 버리고, 그래서 관습적 지혜에 대항하는 최선의 시도가 새로운 무리의 상투성으로 퇴화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에 비해 윤동구의 거대한 현장 설치 작업들은 시간의 거울 이미지를 떠올린다. 비연대기적 시간, 지각과 기억 사이의 유동적인 경계, 현재-과거-미래의 동시성. 문화적 기억과 망각의 역동성이 장소성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동시에 시간 이미지를 새로운 형식으로 담아내는 거대한 신체적 노동이 전개되는 것이다. 흔히 시간 이미지는 현재(현실적인 것)와 과거(잠재적인것) 사이의 구별을 식별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그것은 연대기적 시간을 유예시키고 그것에 구멍을 내는 일이다. 그로 인해 그의 작품은 비(non)현실 혹은 초(sur)현실의 느낌을 유발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건너지른다’는 의미에서의 trans-reality에 보다 가깝다. 먼 과거와 현재, 실크 로드 선상의 지점들을 주파하는 보이지 않는 시간들의 교차 속에서 윤동구는 경주에 왔고 그는 문화적 기억들을 불러내는 무당 처럼, 혹은 유목민 전사처럼 우리 앞에 섰다. 그는 1996년 경엔가 실크 로드를 다녀온 후 자신의 글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시공의 흔적들이 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뜨거운 사막의 바람 처럼 불어대고, 그것들이 내 머리 속에서 매미의 울음 소리 처럼 공명되어 나간다.”






프레임과 영토
(1) 근래 작업에서 윤동구는 순간적으로 발생하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사건 한복판에 관객들을 초대하여 그 한복판에 던져 버린다. 날아다니는 빛의 입자들, 무수한 구멍들, 소리들의 난무, 가벼운 공간으로 인해 우리는 기계적인 앗상블라주(machinic assemblage) 안에서 바로크적 운동감을 경험하게 된다. 미술에서의 운동감이란 감각의 탄력성을 말한다. 바로크적 공간 안에서는 물리적으로 동일하게 머무는 어떤 위치도 실제로 안정적인 것이 아니다. 장소에 대해 정해진 어떤 부분, 어떤 공간의 형태에 조응하여 이상적인 구도(plan)를 설정하는 일은 비록 현장 작업이라 하더라도 기본에서는 낡은 게슈탈트적 지각 방식(중심-주변, 전경-배경, 이미지-맥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윤동구는 시청각을 자극하는 정도가 아니라 예측불허의 국면 안에서 정신으로 촉지할 수 있는 힘들을 끌어 모으고, 분산시키는 방법을 현장에서 알아내서 그것이 야기하는 시간-이미지의 거대한 구축을 시도한다. 백년전에 세잔이 대자연 속에서 시간-이미지들의 지속을 색상(해상도)를 떨어뜨리지 않은 채 캔버스에 최대한 눌러 담으려 했고, 수도승 처럼 벌인 사투 속에서 그는 시간-이미지들을 고정시키는 프레임을 알아냈다. 감각들의 스크린으로 짜여진 입체적 프레임. 이점에서 이미지는 재현, 모방, 추상, 구상이라는 낡아 빠진 관점에서 사고할 필요 없이, 프레임과 영토의 문제틀로서 재사고될 필요가 있다. 이미지들은 정적인 지형학이라기 보다는 동적인 것에 속한다.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허약성의 힘들로 견실한 그릇(vessel)을 만들기 위해 이미지의 ‘프레임’은 필수적이다. 그것은 물리적 크기의 문제와 상관없으며 오히려 두께의 문제인 것이다.

(2) 소리에도 프레임이 있다. 그것은 단순한 효과음이 아니라 자율적인 기능을 갖는 소리의 단면들, 형식들을 지닌다. 소리는 세가지 형식(곡조, 모티브, 테마)를 갖고 있다. 성적인 유인으로서의 곤충 울음, 도로변의 차소리, 마지막으로 이 전시의 테마적 요소를 구성하고 있는 정미소 기계들의 소리이다. 곤충 소리는 그 자체로서 선율적 곡조를 포함하고, 온갖 소음들을 발생시키는 차소리는 이미 복합음의 상태이고, 반복적인 기계 소리들은 다양한 소음들 속에서도 자기 중심의 테마를 끌어 간다. 진동, 어우러짐과 뒤섞임, 느슨해짐, 트임, 다시 솟아 오름 등을 반복함에 따라 청각적 이미지들은 생물체의 동작을 담고 있다. 소리가 먼저인지 동작이 먼저인지 식별할 수 없는 상태에서, 소리와 한데 어우러져서 기계들은 각기 다른 방향, 다른 속도, 다른 리듬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그의 전시는 스펙터클하다. 하지만 그 작동 방식은 상투형에 빠진 연극적 공간(아니면 적어도 그 공간의 고전적 자동 기계들)을 파괴하고 분열시키는 방식으로 힘차게 움직인다. 브레히트와 아르토는 인위적이고 외면적인 모방의 스펙터클을 공격한 반면에 힘들로 작용하는 스펙터클에 대해서는 환호했다. 그들은 오히려 관객을 스펙터클(다양한 힘들의 집합체)을 갖추고 있는 중심에 위치시켰다. 정신 속에서 본 전망의 팽창이 갖는 거대함은 정해진 장소의 축소, 확장을 넘어 대지를 향해 브라운 운동을 계속 한다. 보이지 않는 카오스 세계에서 행위자가 허공에 원을 그리며 만들어내는 감각의 문턱까지가 모조리 그의 영토이다. 그러므로 장소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규정된 지점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좌표계의 한 점일 뿐이며, 표현적 질에 의해 수없이 분절되고, 사건화되고, 복수화된다. 따라서 전체라는 것은 미리 주어진 것이 아니라, 변주들에 항상 열려져 있다.


성(性) 기계
2층은 공간이 3등분 되어 있다. 빛으로 된 직사각형의 방, 긴 통로, 오브제들이 있는 방. 통로의 양 끝에 속이 들여다 보이는 대나무로 만든 두개의 원추형이 놓여있다. 끝이 송곳 처럼 세워진 대나무로 된 두개의 삼각 원추. 그 속에는 종이 박스들을 쌓아 놓은 뒤 검은 비닐로 씌우고 검은 테이프로 묶은 덩어리 물체들이 있다. 그것들은 각각 음(_ _) 과 양(___)의 막대 기호가 세워진 형태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성(性)이 다른 두개의 탑, 혹은 입 속의 혀는 모두 어둠 속에 갇혀 있다. 깊은 욕망의 살을 내장하듯한 그것은 창문이 없는 단자. 사르트르의 말처럼 타인은 어차피 벽이다. 하지만 부서지는 섬광과 기계음의 교성 때문에 둘의 관계는 무심해 보이지 않는다. 두개의 항들끼리 왕성하게 상하, 전후 왕복 운동을 하는 1층의 정미소 기계는, 2층의 각기 분리된 작은 운동체들(나선형, 원추형, 원형 등)과 장축으로 결합되어 돌아가는데, 대나무을 나선형으로 만들어서 감싼 장축은 몸체의 척추에 해당한다. 하복부(1층)의 수직 운동은 대지와 나란히 수평으로 뉘어진 척추를 통해 각기 다른 기관들에 운동 에너지를 전달함으로써 각기 다른 속도, 리듬, 동작이 나타난다. 속 안에서 작은 금속 추가 상하 운동을 반복하는 원형의 대나무 구조체는 숫컷에는 없는 기관이다. 마치 빛의 껍질들이 뒤집어 흔들리듯이 전기성 빛이 전시장 내부를 투사하며 환경 전체를 착란적 공간으로 만든다. 빠르고 강한 역동성에 의해 움직여지는 기하형들의 느리고 섬세한 몸짓들은 기계적인(박자가 아니라 리듬을 발생시키는 육체 행위로서의 기계적; mechanical이 아니라 machinic) 사랑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느껴진다. 온갖 주름들로 이뤄진 세계(Universe)-대지 안에서 검은 탑들이 벌이는 향연은 매우 육감적이지만 정신으로만 촉지되는 ‘동물성’이라 하겠다. 미술관 내부는 반복적 운동이 만들어내는 미세 지각들, 부서지는 빛의 입자와 파동, 소음들로 가득찬 분열된 몸체가 된다. 우아한 막에 둘러쳐진 미술관 전체는 피부 밑의 몸체이고 그 내부는 과열된 공장이다. 죽을 때까지 돌아가는 욕망의 기계, 생산의 생산만을 아는 기계들의 부단한 집합체이다. 절단과 연속의 교체에 관한 한, 우리가 아는 바는 그것이 인식의 차원을 넘어 운동한다는 사실 뿐이다. 운동은 간격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 건물의 외벽, 내벽을 막으로 싸더라도 그것은 단순히 표면을 덮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은 비어있는 공간, 모든 의미들이 희박화되는 평면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전시에는 특이한 공간이 하나 있다. 2층의 넓은 장소를 해석하면서 생겨난 비워진 방은 조명을 사용하지 않아 어둑하며, 아무 것도 없이 텅빈 막구조의 공간이다. 대위법적 구성을 좋아하는 윤동구는 모든 것들의 어긋남 속에서 전체적인 규형, 혹은 다시 그 전체와의 어긋남을 직관적으로 고려하게 됨으로써 모든 물리적 요소들이 존재하지 않는 빈방을 만들었다. 무언가를 계속 채우려는 우리의 욕망과 기대를 공동화(空洞化)시켜 버리는 영점 지대이다. 그것은 금지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산의 생산, 기계들의 반복적인 연접에 의해 도달하게 되는 영점 지대. 모든 물리적 요소들은 이 영점을 기준으로 해서 각기 다른 차원을 획득하게 되므로 영점은 거세도 아니고 결핍을 표현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 위에서 진동하고 정점이나 외적인 목적을 향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전개하는 그런 작품은 그 자체로 충만한 몸체의 긍정성을 나타낸다.


앞으로 던짐(pro-jection)
그가 기계들을 사용하는 방식은 투사(앞으로-던짐; pro-jection)이다. 농기구는 수확을 위한 도구이자 앞을 향해 던져지는, 혹은 찌르는 무기이기도 했다. 정미소는 농기구의 변용된 시스템으로 유목민 보다는 정주민들, 혹은 그들 공동체의 수장들과 관계가 있지만, 윤동구는 그 기계들을 변용하여 농기구 처럼 사용한다. 그의 정미소 기계들은 앞을 향해 던져진다. 그것들은 우리를 향해 달려든다. 빛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먼저 달려온다. 소리 조차 둔중함과 미세함이 결속된 기계음으로 우리의 몸으로 파고든다. 무언가 던지거나 던져지는 모든 것은 무기이고, ‘문제(problemata)’라는 개념도 그 점에서 무기이다. 현장에서 조합되는 그의 도구들은 세상을 향해 문제(무기)를 던지는 행위로서, 그 방식은 아무리 치밀해 보이는 경우에 조차, 사전에 준비된 계획을 기계적으로 실행할 수는 없으며, 공간과 재료의 여건과 상황 마다 마찰하고 충돌하고 타협하고 조정해 가는 과정에서 찾아진다. 전형적인 현대 예술가들은 머릿 속에 미리 그린 내용을 재현하는 작가가 아니라 상황과 관계 속에서 무언가를 발생시키고 주파시킨다. 어떤 내용을 어떤 재료에 담았는가라는 재현적 사고의 틀이 아니라 재료와 힘의 관계, 변수로부터 상수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변수 자체가 연속적 변주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정규적인 과학과 무관한 것이다. 반면에 아주 먼 기원을 갖고 있는 유목적 과학, 전(前)과학 혹은 의사(peuso) 과학적 취향과 일치한다. 그런 종류의 과학들에서는 생산이 전쟁과 분리되지 않으며, 이때 전쟁은 자연 상태가 아니라 근대적 장치들을 분쇄하는 사회 상태의 한가지 양태이다. 모든 표현적 질료들은 윤동구의 작업에서 근대의 장치들을 내파시키는 무기로 변환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예술기계가 반(反)사회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무의식과 신체를 억압하거나 구속하며 욕망의 흐름을 조정해온 근대식 국가 기계, 교육 기계, 사회 기계 등에 맞서 그것들로부터 벗어나는 예술 기계. 성(性) 기계, 전쟁 기계를 고안해내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인디언의 포트래치(potlatch)는 부의 집중을 저지하는 메커니즘이었고’, 원시 사회에서 전사(戰士)의 운명은 그 자체로서 권력 집중을 저지하는 메커니즘이었다. 오늘날은 그 메카니즘이 좀더 가볍고 빠르고 은밀하고 내재적인 것으로 되어 간다. 그것은 구조적 중심 보다는 움직이는 연동체 같은 것이다. 윤동구는 자신의 작업이 더욱 강도 높은 내재성의 면(plane)을 획득하면서 사회적 역할을 하는 역동적인 기계가 되는 방식을 탐구하는 예술가이다. 이런 시도는 아마도 1990년대 후반 한국 미술에 있어 가장 특징적인 양상 가운데 하나라 볼 수 있으며, 이 이전의 한국 미술들이 갖지 못했던 것을 획득해 가는 새로운 차원으로의 도약이라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작품은 새로운 물질적 형태를 만들기 보다 공간점유적이고 변화의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거대한 작동시스템(operating system operator)이 되어 간다. 그 자신이 예민하고 강렬한 기계가 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존하며, 스스로 보존되는 세상에서 유일한 것
그의 작동 시스템은 일시적 과정들과 그것들의 혼요한 세계를 보이지만 개념주의에 머물지 않으며, 살(flesh; 비물질적 감각 기호들)을 갖고 있는 하나의 집으로 성립한다. 그것은 생태학적인 임시 거처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 어떤 매체의 작업이건 결국 “감각들의 집을 만들지 못하면 저 홀로 설 수가 없다”고 질 들뢰즈는 탁월하게 지적했다. 예술이라 자처하면서 한 순간도 저 홀로 서있지 못하는 많은 작품들이 있다. 예술이 기념비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기념비라 함은 과거를 함께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보존을 오로지 스스로에게만 돌리며, 현재의 감각들로 짜여진 집적물(bloc)이다. 하지만 감각들은 저 홀로 지탱할 수 없는 생성의 온도계이므로 그것을 담아낼 용기(用器)가 필요하다.그것은 단순히 뼈대의 집합이 아니라 골조물로서의 집이 되어야 한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인간이건 모든 것은 집들과 함께 시작한다. 그래서 또한 건축이 으뜸의 예술이어 왔다. 예술의 앞에, 혹은 뒤에 공통된 견해를 걸어 두는 것은 예술이 감각들의 집으로 태어남에 있어 나쁜 사고의 버릇이다. 개념에 살을 입히거나 내용을 재료에 대입한다는 생각에 여전히 젖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근대의 재현주의적 사고의 횡포이다. 대개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지각 작용들과 감정들,자신의 추억들 내지 내력들, 자신이 한 여행들과 자신이 갖고 있는 환상들, 자신의 부모들을 갖고서, 그리고 어쩌다 우연히 부딪치는 흥미로운 인물을 갖고(흥미롭지 않은 인물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에는 이 모든 것을 끼워 맞추는 자신의 견해를 갖고서,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환상, 혹은 그렇게해서 만들어 졌다고들 평을 하고 소문을 낸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은 예술을 포기할 한가지 이유가 된다. 예술은 잔혹하면서 푸념 가득한, 불평에 차 있으면서도 만족해 하는, 그러한 소아병적 발상과 잔인함이 동시에 잠식해 드는 것을 너무 방치하기 때문에 그러느니 차라리 예술을 그만 두는 것이 낫다. 배가 고파서 예술을 그만두는 경우는 의외로 적은 법이다. 애매하기 짝이 없는 체험과의 유대를 가장 많이 유지해 온 것은 어느 시대에나 문학이다. 그런데 “하나의 해바라기로 되어가는 환각에 사로 잡힌 반 고흐의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 공포란 도대체 무엇인가? 창문 너머로 종일토록 내 방안을 들여다 보고 있는 해바라기가 보이지? 그 해바라기가 종일토록 내 방안을 들여다 보고 있어.” 예술은 견해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견해에 붙여진 살이 아니다. 그것은 색채들, 소리들, 빛들, 운동들로서 표현되는 감각들의 집이다. 그것만으로 예술은 스스로 보존하며 또한 보존되는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다. 그리고 예술은 체험 보다 우위의 어떤 삶을, 다시말해 감각들로 이뤄진 예술-기념비를 구축하는 지상의 ‘우주들’로 정의된다. 예술은 오로지 감각들, 다시 말해 지각들과 감응들, 풍경들과 표정들, 비전들과 생성들이다. 이런 것들을 1차적으로 중요시하는 것은 적어도 소수의 작가들이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미술을 거치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그런 길이었다. 1990년대의 경과 속에서 여전히 감각의 세련과 탈물질화만을 추구한 추상적 미술의 변종들,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탈물질화를 추구하며 개념을 사회적 몸체에 속한 일개 편견(doxa)으로 떨어뜨리는 개념미술의 변종들 사이로 그 길의 일부가 떠올랐으나 아직은 너무나 부족하게 감지된 채, 1990년대는 흘러 갔다. 윤동구의 작업은 70년대 이후 한국의 추상 미술이 걸어온 소아병과 빈혈증의 언어와, 80년대 정치적 미술이 기반한 몽타주나 콜라주 수법의 ‘간접적’ 시간 이미지(연대기적 시간을 재구성하는)사이를 가로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새로운 질문, 새로운 길을 찾아 나갔다. 그 길은 아주 멀리갈 이유 없이 근대 이후 예술가들이 숱한 노고 속에서 발견했던 길, 예컨대 터너, 모네, 세잔, 반 고호 등이 방약무도하고 어리석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던진 마지막 질문, 즉 돌아오지 않는 미답(未踏)의 길로 미술을 이끄는 ‘권리’의 문제이다. “흘러가는 세상의 한 순간이라도 우리가 그 순간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보존할 수 없다.”(폴 세잔) 이것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치지 않는 영원한 젊음에 대한 예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지고한 자유를 가져다 주는 죽음과 삶 사이에 있는 은총의 한 순간을 향유하는 길을 말한다. 작가는 이미 그 길에 있는 자가 되어야 하며, 그 길을 지속해서 만들어가는 자이다. 그때 비로소 그가 만들어내는 시각, 청각, 촉각, 그리고 운동 감각의 모든 이미지들은 무한한 무신론과 이교성을 고백하는 순간을 획득하게 된다. 그의 작업이 90년대를 다 보낸 지금에서 보다 큰 눈길을 끄는 까닭은 수면 밑에서 그런 길의 한복판을 천천히 지나오다 어느날 수면 위로 갑자기 솟아 올랐기 때문이다. 그의 여의도 IMA 전시와 이번 작업을 본 후에 떠오른 것은,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속해있을 어떤 잠재된 기억들을 가득 안고, 이 세계로 뛰어든 한명의 유목민 전사를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의 사건이지만, 어떤 외부로 나가는 문턱의 미술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신체 저 깊은 무의식 지대를 관통하면서 마치 우주로 서핑하며 탈주선을 그리는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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