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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천봉산에서 울리는 ‘옴 마니 반메훔’ 대원사 티벳박물관 현장스님

윤태석

대원사 수미광명탑과 티벳박물관 전경



티베트 포탈라궁 앞, 1987


티벳박물관 1층 달라이 라마 상에서 향을 사르는 현장스님, 2003



불교에서 인연을 말할 때 등장하는 것이 겁(劫)이다. 범어로는 칼파(Kalpa)로 음역되는 겁은 찰나와는 반대되는 단위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느끼는 보통의 시간과는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우주가 시작되어 파괴되기까지의 시간이 1겁으로, 길이가 40리(16km)에 달하는 돌산을 백 년마다 한 번씩 천으로 슬쩍 닦아, 그 돌산이 모두 닳아 없어지기까지의 시간, 혹은 사방 10리 되는 바위에 천 년에 한 번씩 내려온 천사가 그의 옷자락으로 바위를 달아서 모두 없어지기까지의 시간이다. 산술적으로는 432만 년의 1,000배에 달하는 가히 가늠할 수조차 없는 비현실적인 시간이다. 불교에서 옷깃 한번 스치는 것도 5백 겁의 인연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범인도 아닌 달라이 라마와의 조우는 어느 정도의 겁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티베트불교와 티베트를 테마로 한 박물관 건립의 단초는 이러한 수천 겁의 인연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현 달라이 라마 14세(Dalai Lama Tenzin Gyatso, 1935- )는 지금은 중국 청해성에 소속된 티베트의 아무드 지방 타크쉘 마을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환생자 수색대(還生者 搜索隊)에게 발견되어 선대 달라이 라마가 아니라면 도저히 답할 수 없는 질문에 답함으로써 그의 환생으로 인정받아 4살의 나이에 티베트 국왕에 즉위했고 노벨평화상 (1989), 루스벨트 자유상(1994), 세계안보평화상(1994)를 수상했다.

1987년 인도를 여행할 때였다. 현장 김재우와 달라이 라마 14세의 첫 인연은 인도 북동부 잠무카슈미르주에 있으며 ‘작은 티베트’로 불리는 가장 척박한 땅 라다크(Ladakh)에서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이곳은 지리적 폐쇄성으로 오랫동안 문명의 손길을 타지 않으며 티베트 방언을 쓰는 ‘라다키’들의 삶 속에 티베트의 문화와 종교 풍속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곳이다. 그때 달라이 라마는 라다크의 초크람사에서 한 달 동안의 묵언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기도가 끝나는 날 현장은 억겁을 거슬러 처음으로 달라이 라마와 조우할 수 있었다. 한 시간이 넘게 시간을 내어준 달라이 라마는 세계인의 추앙을 받는 분이시면서도 108번을 돌고 나면 열반하게 된다는 가장 신령한 신들의 산 카일라스(Mount Kailash)에서 볼법한 이름 없는 순례자만큼이나 꾸밈없고 소탈한 모습이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현장은 티베트불교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2001년 7월 21일 티벳박물관을 건립하기에 이른다. 현장은 지금까지도 티베트불교문화는 인류가 이룩한 가장 영적인 문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러한 정신문화와 예술세계를 소개하고 한국 불교와 영적 교류를 활발히 하기 위해 박물관을 건립한 것이다. 티베트와 몽골은 중국이나 인도 못지않게 우리나라와 문화교류가 활발했던 때가 있었다. 이 두 나라의 종교와 문화를 연구하면 우리의 말과 풍속, 예술을 깊이 있게 알 수 있음은 물론이고, 티베트불교의 좋은 점을 배우고 받아들여 우리나라 불교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힘들고 지친다고 해서 누구나 신들과의 교감을 위해 티베트 자치구의 수도 라싸(拉薩, Lhasa)에 위치한 불교 사원인 조캉사원(大昭寺, Jokhang)의 돌바닥에 전신을 내던지는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차라리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전남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천봉산 대원사에 티벳박물관이 있다. 물질 만능주의에 젖어들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현상에서 벗어나 정신문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티베트의 지혜를 전하는 공간이다. 티벳박물관이 있게한 달라이 라마에 대한 현장스님의 생각은 각별하다. 따라서 티베트문화유산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생각은 현장에게는 매우 중요해 보인다. 박물관 개관 시 달라이 라마가 보내온 축사가 현장과 티벳박물관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이유이다.


탕카, 티벳박물관 소장


“그동안 많은 티베트문화유산이 티베트 땅에서 파괴되었습니다. 이때, 대한민국의 대원사에 티베트를 테마로 한 박물관이 세워진 것을 알게 되어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박물관 소장품인 티베트미술품들은 분명 중요합니다. 또한, 이 미술품들을 일반 사람들이 가까이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티베트미술품들을 통해 방문객들이 고대문명의 한 표현인 티베트문화의 풍요로움과 우아함을 더 깊이 감상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우리 티베트인들은 깨달음을 상징하는 탕카(Thangka)를 대단히 신성한 것으로 여깁니다. 탕카는 영감의 원천으로 불교 수행자들에게 큰 믿음을 주어 화면에 표현된 영상들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북돋기 때문입니다. 티베트문명은 인류의 여러 문화유산 중에서 가장 뚜렷한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원사 티벳박물관이 이러한 가치를 잃게 된다면 인류의 공공적 자산 역시 빈약해질 것입니다. 망명생활을 하는 우리 티베트인이 티베트문화를 보존하고 장려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만으로는 미약합니다. 대원사에서 하는 것 같은 도움과 뒷받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티벳박물관의 소장품을 깊이 이해한다면 티베트를 와보지 않았더라도 티베트인들과 전통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티베트문화가 사라져가지 않도록 도와주어서 불교도든 아니든 모든 한국 분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축사에 언급되는 탕카는 티베트 불교회화인 축(軸)형태의 탱화로 사원을 장엄하고 절박하고 간절한 염원들을 신들에게 청하기 위해 제작·봉헌되는 유물이다. 티베트문화유산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소신과 박물관에 대한 글로벌 마인드를 알 수 있게 한다. 신들과 교감하는 반신반인의 땅 티베트는 자본주의의 잣대로 보자면 매우 가난하다. 돈도 없지만, 보통의 나라에는 있는 세 가지도 없다. 첫째, 정신병과 우울증 환자가 없고 둘째, 노인성 치매 환자가 없으며 셋째, 집안 문제나 사회범죄가 거의 없다. 그 까닭은 이러한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스승에게 알리고 가르침을 받아 실천하기 때문이다.
현장은 티벳박물관에서 맑고 깊은 티베트의 정신문화와 지혜가 전파되기를 오체투지의 심정으로 바라고 있다.

- 현장 김재우(玄藏 金在祐, 1956- ) 전남 목포 출생. 구산선사를 은사로 송광사 입산출가(1975). 해인사 승가대 졸업 및 『월간 해인』 창간(1983), 서울 법련사 『불일회보』 및 불일출판사 주간 역임(1984). 인도 및 티베트 순례(1987), 청화선사(淸華禪師)와 함께 태안사 선원에서 2년간 정진(1988), 미국 카멜(Carmel) 삼보사 금강선원과 일본 임제종 국제선원에서 정진(1990). 보성 대원사 주지 취임(1991), 대원사 티벳박물관 설립 현재 관장(2001), 아시아문화교류재단 설립 및 현재 이사장(2006- ), 생명나눔실천본부 광주전남 본부장 역임, 자비신행회 설립 및 초대 이사장 역임. 박물관 유공자 국무총리 표창 수상(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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