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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 1/ 현대적 의미의 공공미술, ‘공공장소의 미술’로 시작하다

심현섭

공공미술 1/ 현대적 의미의 공공미술, ‘공공장소의 미술’로 시작하다

미술은 처음부터 공공미술이었다. 동굴 속 그림은 동시대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사냥이 주 대상으로 주술적 목적을 가진 삶의 예술이었다. 그 지지체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었다. 여기에는 참여와 제작의 주도권, 향유주체의 평등성, 공공의 관심과 이로 인한 사회정치적 쟁점과 같은 오늘날 공공미술의 문제들이 그대로 담겨있다. 이런 면에서 인류의 미술은 처음부터 ‘공공’의 미술이었다.  

그러나 사회계급이 형성되면서 미술은 삶과 대중을 벗어나 일정한 권력의 편에 서기 시작했다. 미술은 권력자의 장식구, 거대한 무덤 속, 화려한 성전의 벽, 캔버스 등 한정된 공간에 들어가 결국 자본시장의 거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회귀본능이나 권력에 대한 거부본능은 원시사회의 미술, 즉 ‘공공’의 미술을 망각하지 않았다. 화이트 큐브(white cube)에서 은은한 조명 아래 아우라를 풍기며 대중의 경외를 기다리던 미술은 20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다시 삶의 터전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오늘날 해프닝, 퍼포먼스, 공동체 미술 등 다양한 형태로 공공장소에서 펼쳐지는 미술은 원시의 그것처럼 관람의 권리를 분배하고, 인간의 삶에 밀착하여 삶의 문제를 쟁점화하려는 시도로서 미술의 공공성이 다시 돌아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술은 미학적인 것을 보존하려는 사적 감성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있다. 미술은 다시 한 번 거리로 내려와 공공 영역에서 자신의 자리를 일구고 있다.'(Hilde Hein, 1996)

현대적 의미의 공공미술은 시각 환경의 개선으로 도시의 이익을 지원하고 미술가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하고 국가와 공중 사이의 사회적 갈등을 봉합 혹은 포장하는 등의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목적을 가지고 시작하였다. 그 출발점은 1934년 미국 정부가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실시한‘미술을 위한 퍼센트법(Percent for Art)’과 ‘연방미술지원프로젝트(Federal Art Project)’라 할 수 있다. 이 제도는 경제대공황 시기 예술가의 생계를 지원하기 위한 연방정부의 구호조치였다. 지원범위는 광범위하여 벽화, 회화, 조각, 포스터, 사진 등 예술 전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의 혜택을 받았다. 이 제도는 1963년 미국 연방조달청(General Services Administration, GSA)의 ‘건축 속 미술 프로그램’으로 발전하는데, 이는 정부 건물의 미적 가치를 미술가의 기술과 노동을 활용하여 제고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제도의 목적이 그러하듯 당시의 공공미술은 건축물의 외관을 보완하고 도시의 경관을 아름답게 하는데 기여하는 부차적인 기능에 머문 건축 속 미술로서 ‘공공장소의 미술’이라 할 수 있다. ‘공공장소의 미술’은 작가들이 이미 존재하거나 계획한 장소에 본인의 작품 스타일을 대표하는 작업을 미적인 오브제로 설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흐름은 197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는데, 대체로  헨리 무어(Henry Moore, 1898~1986),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1898-1976)와 같이 국제적인 위상을 가진 잘 알려진 조각가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Alexander Calder, <La Grande Vitesse>, 1969, Grand Rapids, Michigan.

이러한 공공장소 속 미술은 GSA의 ‘건축 속 미술 프로그램’과 미국 국립예술기금의 ‘공공장소의 미술프로그램(Art-in-Public-place-Program)’ 그리고 지역, 도시, 국가 차원의 ‘미술을 위한 퍼센트법’ 등의 지원 속에 이루어졌다. 불특정 다수의 공중이 접근하는 도시의 광장, 야외 등의 장소에 놓인 ‘공공장소의 미술’이었지만 장소의 개방성과 공공의 자금이 투입되었다는 것 외에 장소나 작품 선정 과정에서 작가와 제도, 공동체 사이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등, 사람들의 삶과는 유리됨으로써 공공미술로서 별다른 특성을 드러내지 못했다. 
‘공공장소의 미술’은 도시환경의 미화를 목적으로 한 건축물들 사이에서 적절하게 배치되는 정도의 역할에 그쳤다. 이들 작품들은 공공미술로서 공중, 즉 향유자의 이익을 위한다는 기본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동시대 이슈, 관람자의 참여와 작품 향유권과 같은 작가와 작품 외에 다른 모든 요소들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 이로써 ‘공공장소의 미술’은 모더니즘 미술의 ‘자율성’과 ‘작가의 주관성’을 강하게 드러냈고, 이는 현대적 의미의 공공미술이 풀어야할 과제가 되었다. 

(다음: 공공미술 2/ 모더니즘: 미술의 자율성과 작가의 주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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