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현법인화문제 3/쟁점: 공공성과 재정자립
국현 법인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김연재는 국립미술관을 ‘국가가 소유하고 관리하며 통제하는 미술기관’의 의미로 규정하려는 정부의 국가주의적 입장과 예술 영역의 특수한 가치를 내세워 대응하고자 하는 미술계와 국현의 자유주의 입장의 대립에 주목한다. 그에 의하면 국현의 개관(1969년)부터 과천관 설립(1986년)까지 국현의 공공성은 국가주의적 공공성 또는 수직적 공공성을 함의한다(김연재, 2019). 그러면서 김연재는 법인화 논의의 핵심을 미술정책과 공공성의 상관관계에 대한 정부와 미술계의 입장차, 즉 공공성에 대한 입장차로 보면서도 그 속에는 법인화의 핵심적인 과제인 수익성 창출과 재정자립도 향상의 문제가 존재하고 있음을 밝힌다. 조선령은 최병식과 유진상의 법인화에 대한 글을 인용하는데 이 글을 보면 조선령이 정리한 대로 법인화의 관건이 조직운영과 재원확보의 문제임을 쉽게 알 수 있다(조선령, 2010) 조직운영의 문제는 대부분 재원을 조달하는 주체의 간섭에서 발생하므로(적어도 국현 법인화에서는) 결국 법인화의 관건은 재원확보의 문제로 귀결한다. 결론적으로 그는 “법인화를 하건 어떤 것을 하건 문화예술 관련 기관이 창의적이고 자율적으로 운영되며 넉넉한 재원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기관으로 도약할 수 있다면 그런 미래를 위해 노력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법인화가 재정과 관련되어 있음을 밝힌다. 또한 조선령은 다른 글에서 법인화 논의의 쟁점으로 ‘공공성’을 제시하면서 국가나 정부가 미술관을 지원해야 하는 근거를 마련하면 법인화 문제는 자연스레 해소된다고 본다(조선령, 2007). 위와 같은 김연재와 조선령의 연구는 국현의 법인화 논의의 쟁점이 ‘공공성’이라는 전면과 ‘자본’이라는 이면으로 이루어져있음을 말해준다.
국현을 법인화할 때 기대효과는 전문적이고 자율적인 운영의 보장, 경영 효율성, 수요자 기대에 맞는 문화서비스 제공 등이다. 이러한 기대는 법인화 찬성의 이유이기도 하다. 즉 효율적 경영으로 재정자립도와 전문성을 강화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현의 법인화로 경영 효율성을 강조하다보면 취약계층 문화 공유, 자국의 작가 육성 등 국현이 추구해야 할 공공성 기능이 약화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는 적어도 미술계에서 이해하는 공공성이 문화향유의 평등성(특히 취약 계층을 향한), 자국의 작가 육성과 같은 전문적 영역의 고수를 함의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경영 효율성은 ‘재원 확보’의 문제와 다름없다. 이는 2018년 문화관광체육부가 국현의 법인화 추진을 중단하면서 밝힌, “세계적인 미술관과 겨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출 때까지 국가차원의 안정적인 지원 및 견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밝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배관표, 2019). 미술계가 법인을 반대하면서 내세운 이유 또한 공공성의 훼손과 함께 재정의 불안정성이다. 따라서 여러 정치적 입장과 같은 주관적 요소를 제외하고 남은 법인화 논쟁의 쟁점은 재정과 공공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법인화 반대론자들은 국현의 법인화가 정부의 직접적 재정지원을 줄이고 지원금도 투자금의 형태로 투입하며, 자체 수익사업이나 기부금으로 예산을 충당하게 하는 것을 강요한다고 여긴다. 이들은 국현이 과연 이와 같은 재정적 압박을 견딜 수 있을지를 우려한다. 한국의 열악한 기부문화, 세계적 명화의 부재 등의 환경이 수입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책임운영기관이나 법인화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반대의 명분으로 다음과 같이 ‘공공성’을 내세운다.
첫째, 문화단체들은 그들의 가치가 공공재일 때 시장 이데올로기의 자율성에 자신을 노출해서는 안 된다. 수익성과 경영 효율성에 중점을 둔 책임운영기관의 시행은 불가하다. 둘째, 국현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하면 정부 지원이 삭감될 수 있다. 셋째, 국현은 소외계층과 지역사회의 문화적 즐거움과 공익적 접근도에 대한 향상과 부양정책 유지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넷째, 국현은 성과위주의 정책을 유도한다는 명목으로 문화적 가치의 정도를 정량화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국현, 2008).
이런 입장은 기본적으로 재정자립과 공공성을 이분화하고 대립 구도로 파악하면서 동시 실현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즉 국현이 사업 이익이나 경영 효율성을 강조하고 실천하면 공공성을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재정자립과 공공성 확보는 이처럼 이분법적으로 차단된 독립적 사안인가? 이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과연 법인화는 국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하는 제도로서만 기능할까?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최병식과 유진상의 절충안은 법인화를 하더라도 정부의 예산지원은 유지 혹은 증대하여 국현이 지향하는 공공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조선령, 2010). 그러나 이러한 안은 창의적, 자율적인 경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민간주도 운영을 바라면서도 해결책은 국가가 주도하는 재정지원에 의지하는 모순을 보이면서 국현의 법인화를 형식화하는 것으로 실제적으로는 법인화 반대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법인화의 핵심 목표인 경영의 효율성을 통한 예산 절감 즉 재정자립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현 법인화에 객관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법인화 논의의 쟁점인 재정자립과 공공성이 이분화한 개별적 개념이 아닌 하나의 틀 안에서 상호 연동하는, 즉 공공성의 조절을 통해 재정자립을 도모할 수 있는, 역으로 재정을 조절하여 공공성을 재구성할 수 있는 병립 가능한 개념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물론 여기에서 재정자립은 완전한 재정자립의 요구라기보다는 재정자립도의 향상을 의미한다.
국현이 2012년 외주로 실시한 조직 및 인력 운영 방안에 대한 보고서에 의하면 국공립미술관의 재정자립도는 5%수준으로 현실적으로 재정자립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2021년 국현 예산계획에 의하면 세입은 2,369,000,000원, 세출은 64,077,000,000원으로 이 수치를 기준으로 단순 계산한 재정자립도는 약 3.7% 정도며 2023년에는 세입 2,022,000,000원. 세출 75,400,000,000원으로 약 2.7%다. 용역업체인 (주)프라임전략연구원의 보고서는 이와 같은 수치가 재정자립도를 향상하기 위한 국현의 자구책을 요구한다면서 효과적인 재정 수입 확대 및 합리적인 재정지출 축소를 통해 가능한 한 운영효율을 높이는 것이 적절하다고 제안한다. 이런 맥락아래 국현이 제시하고 있는 공공성 항목을 재정자립이라는 조건으로 조율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조율은 공공성을 분할하는 것으로 국현의 탈-중심화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