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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수/ 기술적 예술에 의한 자연의 재구성

이선영

기술적 예술에 의한 자연의 재구성

 

이선영(미술평론가)


 홍현수의 작품이 설치되는 장소는 여러 공공건물로 둘러쳐진 작은 중정 같은 공간이다. 넓지 않은 공간에 이미 다른 조형물들이 있는 ‘예술 공원’이다 보니, 규모보다는 강도가 더 효과적이다. 선택지가 많지 않은데, 작가는 잘려나간 나무 자리를 택했다. 나무가 있던 자리 둘레에 벤치가 있는데, 그 부재와 박탈감을 인공 생명으로 대신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그가 예술 같은 작품보다는 자연 같은 작품을 지향함을 알려준다. 자연을 외적으로 모사하는 것을 넘어서, 구조적으로 모사하는데 있어 기술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홍현수의 미디어 아트는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이 이미 개시된 시점에서, 예술작품 또한 인공생명체라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공공영역에 설치되는 작품 [민들레(Dandelion)]는 미국에서 유학하던 십 수 년 전 부터 해오던 ‘Artificial Life’ 시리즈의 한 작업으로, ‘전자 공학에서 사용되는 부품들의 역할과 구성을 자연계에서 이루어지는 생명활동과 비교하는 작품’이다. 


그의 미디어 조명 설치 작업은 유선 또는 무선 인터넷을 비롯한 여러 구성요소가 퍼즐이나 레고블럭 처럼 딱 맞아 떨어져야 작동하는 구성적 작품이다. 1920년대 유럽 여기저기에서 꽃을 피운 구성주의 미학/방법론이 키네틱 아트 정도에 머물렀다면, 인터넷을 바탕으로 한 구성 요소의 선택과 조합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다. 기술은 보다 자연스러워질 수 있는 것이다. 구성은 객관 세계의 반영도 주관 세계의 표현도 아닌, 이러한 이원 대립 항 자체를 지양하는 방법론과 미학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은유로서의 건축; 언어, 수, 화폐]에서 ‘사이버네틱스는 모든 것을 차이/정보로 재구성함으로서 물질/생명, 동물/인간과 같은 전통적인 이분법을 무화시킨다’고 말한 바 있다. 홍현수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생명과 기계를 비교하며 근본적으로 자연을 탐구하는 순수과학을 통해 발전된 모든 기술은 자연을 닮아가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21세기의 (공공)예술에서 자연과 인공에 대한 경계 또한 해체, 또는 재구축되어야 할 범주가 된다. 


과학과 기술은 자연을 이미 많이 파괴했지만, 자연은 이제 내부적으로 탐색된다. 예술가 또한 과학자들처럼 자연의 언어를 분석하여 자연에 상응하는 무엇을 만들고자 한다. 빈 나무 자리에 위치한 또 다른 인공생명은 햇빛 대신에 전기를, 물이나 양분 대신에 정보를 투입함으로서 활성화 된다. 그의 작품은 관객이 QR 코드를 찍어서 참여하는 작품이라 업로드에 따라 다양한 빛/색으로 변모한다.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서는 관객 참여를 유도함으로서 일당백(一當百)의 역할을 한다. 작품 [민들레]는 통로 역할에 머무는 작은 공원이 어둠 속에 잠길 무렵 독보적 존재감을 발휘한다. 원래 밤에는 잘 안 보이는 꽃 색을 빛으로 변환하여 공원 전체를 밝히게 된다. 한 공간에 하나의 형태로 고정된 전통적 작품과 달리, 시간이라는 변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 인공 생명/작품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이테가 커지듯이 빅 데이터로 쌓인다. 관객의 관심과 참여에 의해 시시각각 모양새를 달리하는 과정중의 작품이기에, 그 누구도 이 작품의 전모를 봤다고 말할 수 없다. 


에너지와 물질이 결집하여 생산된, 자연과는 또 다른 구조적 과정이 태양이 진 후에도 이어진다. 백화만발(百花滿發)에 대한 동서고금의 상상력이 있었지만, 홍현수는 민들레에서 발견되는 완벽한 기하학을 원형으로 하는 구조로 다른 꽃들도 피워낸다. 루돌프 아른하임은 [시각적 사고]에서 ‘단순성을 추구하는 형태 탐구정신 때문에 자연관을 지배한 기하도형은 태양계나 원자 모형같은 패턴들에 적용되었다’고 말한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명체의 특징인 대칭적 형태를 색이 변주되는 인터페이스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의 모형이지만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그의 작품은 색색의 과일 사탕을 하나씩 꺼내먹으며 그때 마다 오렌지와 포도, 딸기를 상상할 수 있는 것과 같다. 24시간 불 밝히는 사회는 누군가에게는 유토피아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디스토피아로 다가 올 것이다. 홍현수는 기술의 보다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작업을 해왔지만, 작품 [민들레]는 그러한 판단 또한 관객에게 맡겨둔다. 

 

출전; 코로나19 서울 공공미술 100개의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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