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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오 / 소리 내는 존재

이선영

소리 내는 존재


이선영(미술평론가)

 


조각가 류지오가 금속을 용접하여 만든 곤충들은 매우 정교하다. 자연과 마주칠 때마다 깨닫게 되는 놀라움은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세상이 인간이 만든 것들로 점차 가득 찰수록 어떻게 만들어진지 알 수 없는 자연은 더욱 경이롭게 다가온다. 자연과 예술은 다양성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예술은 자연을 모방해왔지만, 류지오의 경우에는 그 중에서 자연의 정교한 형태에 방점이 찍혀있다. 금속으로 생명체를 모방할 때는 유기질과 무기질 사이의 간극이 크기 마련이다. 조각을 기준으로해서, 가장 흔한 청동 인체 상을 떠올려 보라. 우리는 예술적 관례에 의해 그 푸르딩딩한 색을 피부색으로 간주하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류지오가 최근 작품에서 주로 선택하는 소재인 곤충들은 딱딱한 외피를 가지는 것들이라 거의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외형은 근사하다. 금속과 어울리는 외골격이 아니라 말랑말랑한 모습의 애벌레가 예외적인 경우인데, 작가는 이 작품을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로 만들어서 주변을 반사하게 하여 다른 작품/벌레들 보다 투명 감을 부여한다. 


그것은 곤충의 의태적 속성과 관련된다. 곤충은 의태를 통해 자신을 감추어 조류 등 포식자로부터 보호받고, 그 스스로가 성공적인 포식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의태는 곤충이 본 주변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류지오가 만든 사마귀 형태의 작품은 식물의 잎들을 떠올린다. 그가 작가노트에서 언급하면서 때로 작품으로 만들기도 하는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메뚜기, 귀뚜라미 등은 그 형태가 절묘하다. 하지만 작가는 아름답고 신기한 자연의 모습에 감탄하고 이를 그대로 모사하는 것을 넘어서, 나팔관 모양의 스피커를 만들어 붙여서 자연물 이상의 서사를 만들어낸다. 그가 모사한 나팔관 형태의 스피커는 축음기가 발명되어 상품화된 초창기 모델로, 강아지가 소리가 나오는 구멍(나팔관)을 신기한 듯 갸우뚱 하게 보는 모습이 담긴 레코드사 상표로 유명하다. RCA의 LP 레코드 라벨에 그려진 개 니퍼의 이야기는 지금 들어도 흥미롭다. 음악을 즐기는 이들에게 가장 친숙한 이 상표의 기원은 19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84년 영국의 한 도시 거리를 떠돌다가 화가 마크 바로가 거둔 개 니퍼는 주인이 3년 만에 죽자 동생 프란시스 바로가 인계 받는다. 형과 마찬가지로 화가였던 프란시스 바로는 당시 신상이었던 미국의 에디슨 벨 회사의 축음기를 틀어놓고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개가 나팔관 앞에 앉아 음악을 듣는 것 같은 모습을 보고, 죽은 형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작가적 상상력이 발동되어 1899년 그림으로 그렸다. 산업 자본주의를 최초로 정착시킨 나라답게 이 그림은 ‘그의 주인의 목소리(His master's voice)]’ 라는 낭만적 제목으로 바뀌어져 처음 그렸던 축음기와는 다른 축음기 회사에 팔렸다. 등록된 상표권은 이 가난한 화가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 주었다. 세상을 하직한 주인의 목소리를 기다린다는 드라마틱한 서사는 경쟁 축음기 회사를 제치고 선전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그 개는 비석도 남아있는 가장 유명한 동물이 되었다. 이미 19세기 말부터 치열했던 선전술은 상품이든 작품이든 기술 이외에 서사가 필요함을 알려준다.  


류지오의 작품 중에는 나팔 형 스피커에 모인 개미떼들이 힘을 합쳐서 마치 턴테이블을 돌리려는 듯한 모습이 있다. 공격적으로 몸을 활짝 들어 올린 사마귀 몸에 돋아난 나팔관들은 마치 음악과 관련된 흥겨운 동작을 떠올린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애벌레는 춤추듯 굽이치는 결절마다 나팔관 스피커들이 나와 있다. 그런데 그의 작품에서 스피커가 아니라 기관 같기도 하다. 근대 산업사회가 개막되면서 더욱 보편화된 기능주의는 자연을 구조적으로 모방하는 것으로부터 왔다. 개미의 사회생활, 꿀벌의 건축 등등은 잘 알려진 예다. 류지오의 작품에서는 곤충의 더듬이, 꼬리, 집게발, 뿔 등이 나팔관으로 변해 있다. 주변을 지각하고 상호반응하기 위한 촉각기들에 많이 배치되어 있고 몸통 그 자체에서 솟아난 것들도 보인다. 증폭기 모양처럼 생긴 나팔관은 주변의 소리를 모아 상황을 파악하고, 반대로 자신의 소리를 증폭시켜 바깥으로 내보내는 통로 역할을 한다. 바깥을 수렴하고 안을 발산하는 장치는 인간, 특히 독특한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작가를 상징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것이 소리라는 점도 중요하다. 작업노트에서 류지오는 ‘애벌레와 성충이 된 녀석들이 내뿜는 소리를 표현해 보았다’고 말한다.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는 김형경의 소설 제목을 따라하자면, 매미가 매미인 이유, 찌르레기가 찌르레기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2015년에 있었던 류지오의 개인전 부제가 [태어나다]인데, 여기에도 소리가 연상된다. 인간이 태어날 때, 자신의 생존을 알리는 최초의 반응은 울음소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보기 전에 울고, 가장 인간적인 소통인 언어를 배우기 위한 선행 단계로 모태에 있을 때부터 소리를 듣는다. 작가가 곤충의 감각기관 및 몸통에 장착한 나팔관들은 소리와 생명체. 특히 동물과의 관련을 시사한다. 자크 브로스는 [나무의 신화]에서 동물과 식물을 대조한다. 자크 브로스는 동물을 ‘두 끝점이 열린 소화관’이라고 정의한다. 즉 식물은 속이 꽉 채워져 있는 반면, 동물은 원초적인 물, 즉 바닷물만을 내부에 간직한 공백상태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동물은 식물과 달리 이동의 자유를 얻고 소리도 낼 수 있게 된다. 자크 브로스에 의하면, 동물은 몸의 중심을 차지하는 빈 공간에 태생의 환경을 내재화해서 그 환경을 늘 지니고 이동하는 특별한 신체구조를 가진다. ‘두 끝점이 열린 소화관’은 울림통도 될 수 있다. 성악가들이 풍부한 성량은 대체로 풍만한 몸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류지오가 만든 곤충들 중에는 날개나 다리를 비벼대며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동물과 식물을 가르는 큰 특징인 자체 가능한 소리의 주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자크 브로스에 의하면 식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식물의 소리는 바람이 그들을 스쳐지나갈 때만 가능하다. 동물은 식물과 달리, 자기 내부에 중심에 원초적인 생명 발생 환경을 간직한다. 즉 바닷물처럼 짠 림프액과 혈액이 그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람까지도 자기 안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바람 소리를 집중적으로 관장하는 통로를 따라 몸 밖으로 내보낸다는 가설이다. 


류지오의 작품에서 정교하게 모사된 동물에 추가된 나팔관은 소리를 내는 동물이 가지는 특성을 강조한 것이다. 동물에게 소리는 생존이나 번식과 관련되지만, 자연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율성을 쟁취한 인간에게는 표현적 기능을 가진다. 루소는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에서 말과 글을 비교하면서 인간은 말할 때 감정을 표현하고 글을 쓸 때는 생각을 전달한다고 요약한다. 글은 말에 비해 표현보다는 정확성을 더 중시한다. 루소는 사람들이 분절과 목소리를 통해서 뿐 아니라, 음과 리듬을 통해서 말을 했다고 한다. 언어는 생각을 표현하지만, 감정과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리듬과 음이, 다시 말해서 선율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소는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언어는 더 정확해지면서 정념적인 면은 줄어들게 된다고 본다. 그리하여 언어는 더 정밀하고 명확해지지만 더 밋밋하고 더 희미하고 더 차가워진다고 지적한다. 류지오의 작품에 내재한 소리에 대한 시각적 상상력은 예술로 대변되는 인간의 표현 언어가 더 원초적이며 동시에 풍부한 단계로 변화하기를 바란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0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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