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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라 / 전방위적 작품을 추동하는 다면적 정체성

이선영

전방위적 작품을 추동하는 다면적 정체성

 

이선영(미술평론가)

 


김기라의 작품은 전방위적이다. 그것은 그의 대표 작품 목록에 미술보다 더 종합적인 예술인 연극과 영상 등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과 영국에서 회화와 조각을 전공했지만 문화연구 또한 그의 전공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자전적 이력으로 본다면, 정치적으로 경직됐던 80년대를 지나 90년대 ‘문화의 시대’를 청년기에 보낸 흔적이기도 할 것이다. 2009년 국제 갤러리에서의 개인전 [Super Mega Factory]는 말 그대로 온갖 것들이 한데 모여 있는 스펙터클의 현장이기도 했다. 그의 작업실이 딱 그 모양새이다. 그는 오직 자신만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을 난장의 현장 한 가운데서 작업한다. 예술이 전방위적인 것은 좋지만, 자본이나 기술이 몰리는 대중문화와 비교해서 개인 작가가 그렇게 하기는 늘 상 힘에 부치는 일이다. 하지만 전문화되기 위해 총체적 삶으로부터 분리되었던 근대 미술의 역사는 그에게 극복과제로 다가왔다. 이러한 분리는 합리화를 목적으로 하지만 결국은 도구화로 귀결되곤 한다.




김기라,Super heroes_Wood_2008~09

 


예술의 존재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의 도구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인간을 단편으로 도구화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는 억압적 관례다. 그런데 예술마저도 그러한 파편성에 함몰되기 쉽다는 것, 그리고 작가로서 자신의 전체를 회복하는 것이 치유를 넘어 투쟁이 되어야 할 정도라는 점이다. 예술은 파편화의 질곡을 벗어나려는 이상적 운동, 가령 정치와 함께 할 수 있다. 물론 김기라가 무슨 정치 집단의 일원인 적은 없다. 그런 경향 또한 인간을 도구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화단의 일각에서 벌어지듯이, 실제의 정치조직 흉내를 내면서 배후에서 정치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작품으로만 정치를 한다. 김기라는 여순 사건처럼 근대 시기에 벌어진 국가 폭력 사태부터 통일문제 등 우리사회가 몸살을 앓는 모순과 갈등을 다루어왔다. 그의 작업은 많은 자료를 조사하는 것과 더불어 시작된다. 자신이 다루는 주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내곤 한다. 


그런데 작가란 무엇인가 완전히 알아야만 표현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 보수적 사고야 말로 긴급한 행동에 자물쇠를 거는 방해물이다. 실전보다는 하염없는 준비만을 강요하는 한국사회는 젊은이들의 열정을 그런 식으로 사장시키곤 한다. 통달해야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을 해야 어떤 사안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가능해 진다. 김기라는 사랑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사랑에 대한 전시를 한다. 2019년 보안여관에서 김형규와 함께 전시한 ‘X 사랑’ 전이 그것이다. 작가가 무엇인가를 아는 과정은 작업이 쌓여가면서이다. 작업하면서 사고하는, 그래서 그것이 결국 행동이 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외적인 사건 뿐 아니라 작가 자신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자신조차도 미지의 존재다. 기원의 신화가 말하는 확실한 출발점은 없다. 작가는 다른 이들보다 개성적이어서가 아니라, 계속 작업하기에 다른 이들보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더 깊은 부류라고 할 수 있다. 


김기라의 작품은 전방위적이고 그를 추동하는 정체성 또한 다면적이지만, 삶이든 예술이든 수박 겉핧기 식으로 다룰 수 없기에, 그 자신이 전문가여야 하고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을 설득하고 대화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회화든 조각이든 영상이든 설치든 김기라가 아마추어 식으로 대략 때운 적은 없다. 메시지를 좀 더 실감 있게 전하기 위해 무대로 변신한 전시장, 또는 영화같은 영상작품에 전문 배우들이 출연했을 때 좀 과하지 않나하는 생각조차도 들 정도였다. 하지만 2015년에 있었던 [올해의 작가상](국립현대미술관) 전에 출연했던 이들이 최근 작품에도 함께 하는 것을 볼 때, 협업자 간의 유대는 꽤 깊다고 보여 진다. 작년에 보안여관에서의 전시는 협업자의 이름을 나란히 건 2인 전 형식의 개인전이기도 했다. 김기라는 회화과를 나왔지만, 그림도 자기보다 잘 그린다고 믿어지는 이가 있다면 맡길 것이다. 물론 그것은 개념적 작품에 한한다. 잘 만들어진 작품은 그에게 매우 중요하다. 


서투름과 유치함을 코드로 삼아 밀고 나갔던 문화적 흐름이 있지만, 김기라는 90년대의 대세 였던 키치문화에서 일부만 선택했다. 대표적인 것이 화면 가득히 맥도날드 햄버거가 바로크 시대의 정물화처럼 고풍스럽게 그려진 작품들이다. 여기에서 작가는 패스트푸드 제국이 만들어 놓은 죽음의 기호들을 본다. 그는 2007년 창동 스튜디오에서 ‘브랜드로서의 맥도날드 현상’에 대해 사회적 탐구를 진행했고, 2015년에는 21세기의 한국 사회의 떠도는 삶을 표현했다. 그는 원시성부터 현대성까지, 그리고 거시 역사에 가려진 미시역사, 즉 일상의 문제를 두루 다루어왔다. 모더니즘에 의해 미술이 해야 할 부분이 매우 협소해진 상황에서 대부분 미술의 영역을 넘어서는 주제들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 앞서 말했듯이 적절한 협업자들을 필요로 한다. 그의 작품에는 래퍼부터 연극배우들까지 다양한 부류들이 등장하곤 한다. 작년 전시에서는 사랑에 대한 철학을 줄줄이 읊어대는 깜찍한 아이까지 등장시켜 관객을 놀라게 했다.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협업은 끝없는 대화의 결과여야 하고 설득력도 있어야 한다. 


예술의 장점이지만 독이기도 한 독백이 자리 잡을 틈이 없다. 그는 일종의 연출자 내지는 감독같은 역할을 맡는데, 실제로 그는 전시를 그렇게 진행하는 것은 물론, 역사적 이슈를 다루는 비엔날레 급 전시의 예술 감독을 맡기도 했다. 2018년 제8회 여수 국제아트 페스티벌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문화 권력으로 보일 수 있는 ‘예술 감독’이라는 위치를 끝내 감추고, 전시 참여 작가의 일원으로 태극기 부대를 떠올리는 신랄한 작품을 선보인 점은 ‘정치성’이 어느 국면에서 발휘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2000년대 초반부터 그의 작품들을 봐왔지만 김기라가 어떤 작가인가를 묻는다면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몇몇 인상을 적어보자면, 주변의 도움도 있어왔지만 자체 동력이 강한 작가라는 것, 이제는 힘들어도 예술을 포기할 수 없을 만큼 반환점 없는 길을 가고 있는 작가라는 점이다. 작품이 젊어서 젊은 작가들과 자주 함께 하는 한 전시에서 본 괴물 목각상처럼, 여러 정체성이 한데 뭉쳐져 언제 어느 국면이 활성화될지 알 수 없는 작가라는 점도 분명하다. 


출전; 쿨투라cultura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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