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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숙 / 타자의 현존을 일깨우는 소리

이선영

타자의 현존을 일깨우는 소리  

이선영(미술평론가)  

1946년 3월 태생으로, 1975년에 도미하여 뉴욕에서 조각과 미술사 등을 전공하고 1997년 뉴욕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20년 넘게 싱가포르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를 무대로 작품을 발표해온 노선숙은 전형적인 디아스포라 작가다. 그동안의 작품들은 자신이 새로이 던져진 상황과의 상호 관련 속에서 생성된 것이며, 이러한 불안정한 조건이 유목의 시대에 소통의 전제 조건이 되고 있다. 현대 자체가 과도기이고 현대미술은 정주하지 않는 법이라 실제로 이동하든 안 하든 유목적 특성을 가지기 마련이지만, 노선숙에게 떠돎으로 축약될 수 있는 현대적 상황은 단지 외적 조건이 아니라 내재적으로 작동한다. 세상의 여러 민족의 말을 떠올리는 혀들, 뿌리 의식과 승화를 떠올리는 나무, 정처 없이 흐르는 강물같이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에는 유목의 이미지가 선명하다. 많은 작품에서 보이는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은 영구적이지 않은 재료를 활용하여 표현되며, 이러한 과정적 특성을 부연이라도 하듯, 대부분의 작품에 퍼포먼스가 동반된다. 


I in the Wilderness , Date: 1997
Medium: installation made of fabric, wire mesh, spotlights, handmadeclay pottery, milk
Size:  layers of cloth variousdimensions, hung from studio space 8’H x 11’L x 9’W
Exhibition: Parsons

Let the Rivers Clap Their Hands, Date: 2009
Medium: Installation made of wood, handmade ceramics, fishing line, sand
Size: Variable to fit an area of 30 meters by 20 meters
Exhibition: “Let the Rivers Clap Their Hands” solo show at SculptureSquare, Singapore in 2009; “A Fresh Start,” Andrewshire Gallery, Singapore 2009


작품의 기저에 흐르는 불확실성과 무상함은 그 스스로 정의하듯, ‘중간에 선 자(In-Betweener)’로서의 위치가 낳은 정동(情動)이다. 작가에게 ‘정신 내부의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하는 신과의 관계 또한 가세한다. 가장 보편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종교는 노선숙의 작품을 관통하는 보이지 않는 실이다. 그러나 그때도 작가는 전승된 종교적 도상에 손쉽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어원에 존재하는 연결하는 역할에 집중한다. 단선적인 연결이 아니라 복합적인 연결망이다. 작품 속 혀는 신의 말씀이나 타자의 목소리를 연상케 한다. 스스로가 정주하지 않은 타자로 발언하며 또한 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작가의 흥미로운 이력 중 하나는 간호사라는 경력이다. 세포나 신경 같은 해부학적 이미지, 그리고 의료기기를 떠올리는 투명 튜브나 붕대가 연상시키는 것은 종교와 더불어 치유라는 주제와 연결된다. 노선숙에게는 자연, 과학, 종교 등 그 어느 경력 또는 경험도 버려지지 않고 종합된다. 

미술을 늦게 시작한 편이지만, 강도를 잃지 않은 채 지속해오고 있는 작가에게 예술은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의 흐름을 올곳이 담아 내는 깔대기 같은 것이다. 작가는 단지 그 매개가 되어 흐름을 통과시키고 작품을 통해 세상에 흩뿌린다. 오래, 그리고 많이 유랑할수록, 즉 방황할수록 할 말은 많아지며 깊어진다. 예술은 그 다양한 여정 속에서 만났던 것을 담는 넉넉한 그릇이 된다. [I In the Wilderness](1997)는 들판 한가운데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같은 실존적 조건이 드러나 있으면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마태복음)를 연상시킨다, 종교가 어느 시대에는 핍박을 받기도 했듯이, 예술 또한 순조롭게 세상에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 주제에 관련된 가장 큰 프로젝트는 미국 프라스미 교회 로비에 설치된 작품 [하나님의 은혜1, 2](2015)이다. 그것은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 방문한 미국 남성 성가대 합창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성령의 감동과 역사하심으로 찬양하고 있음’을 느끼고 작업했다. 



MyTongue Will Speak (Tongue Islands), Date:2011
Medium:Installation made of wood, sheet metal, cash resin, plastic, LED lights
Size:three islands of variable sizes
Exhibition:“Eye Pumping: Re-examination of Perspectives,“ Goodman Arts Centre, Singapore

MyTongue Will Speak (Speaking Wall), Date:2010
Medium:sculpture made of clay, wood, cement
Exhibition:“Now & Next / Asia Contemporary Art,” group show at the Guangju NationalMuseum, South Korea 2010; “In Transition,” Ion Gallery, Singapore 2010


교회의 예루살렘 성전 출입문 오른쪽 벽에 설치된 작품들은 소리를 시각화한 공(共)감각적인 작품으로, 작가는 이에 대해 ‘내 인생을 진두지휘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걸 암시하기’ 위해 작업했다고 말한다. 거대한 나무부터 뇌세포에 이르는 생명의 그물망은 점토, 플라스터, 실리콘 고무, 수지 등을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었고 뒤에 LED로 조명했다, 소리에 대한 감수성은 절대적 타자인 신을 비롯한 타자에 대한 현존을 일깨운다. 성스러운 것은 ‘완전 타자(wholly other)’(루돌프 오토)라고 규정된다. 그것은 낯설면서 신비롭다. J.G 아라푸라는 [불안과 평정으로서의 종교]에서 ‘완전 타자’나 ‘성스러운’ 것은 ‘힘’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작가에게도 이러한 힘은 타자 또는 어떤 다른 자기 초월 상태를 설명해 줄 것이다. 니니안 스마트는 [비교 종교학]에서 정신의 진정한 평화는 인간이 저 너머에 있는 것과 관련을 맺을 때만 가능하다고 본다. 세속적 세계관은 이와 같은 절대타자의 감정, 신현의 감정, 보이지 않는 힘의 인지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속세의 문화와 예술에도 유사한 현상이 있다. 니니안 스마트는 예술이 종종 인류를 둘러싸고 있는 이상한 힘들에 대한 반응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노선숙에게 궁극적 실재에 대한 직관은 웅장한 소리로 느껴지는 어떤 힘이었다. 종교적 체험에 대한 책을 쓴 윌리엄 제임스는 ‘이 힘이 우리와 다른 존재이면서 우리 자신보다 큰 존재여야 한다’고 말한다. 종교적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이 힘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것을 보편적으로 소통시키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요구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예술은 종교가 불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종교는 예술을 필요로 한다. 종교라는 뿌리를 가지고 있는 노선숙의 작품은 예술로 꽃피우거나 열매를 맺는다. 나무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자크 브로스는 [나무의 신화]에서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개념의 총체를 단일한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 시키는데 있어서 나무만큼 훌륭한 상징은 없다고 말한다. 



Treeof Life I , Date: 1996
Medium: installation made of latex, cotton, stocking, glue, hair, wire,pigment
Size: varying thicknesses and lengths stretched over a studio spaceroughly 8’H x 11’L x 9’W
Exhibition: Parsons

Tree of Life III , Date: 2000 & 2005
Medium: installation made of pipe cleaners, medical paraphernalia,beads, Bible text
Size: 6’H x 6’L x 2’W
Exhibition: Bard Curatorial Center 2001; “The Journey,” solo show at OnoGallery, Tokyo, Japan 2005

Tree of Life VI, Date: 2015
Medium: installation made of wood, fiberglass, resin, steel fittings,gauze
Size:  dimensions variable, butapproximately
Exhibition:“Originally and Truthfully,” solo show VADA Project, Shophouse 5, Singapore 2015


그것은 노선숙의 작품에서 나무가 단지 재료나 소재 이상의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의 주요 작품 목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생명의 나무] 시리즈에서 나무는 생명의 원류와 변모, 재생과 부활, 시간과 기억과 관련이 있다. 로베르 뒤마는 [나무의 철학]에서 나무는 그 존재를 둘러싼 물질적 조건까지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기억과 관련짓는다. 지상의 어떤 존재보다도 오래 사는 나무, 특히 ‘고초를 겪은 해묵은 나무의 형상을 통해 인간은 시간의 시험 앞에 승리자’(로베르 뒤마)를 본다. 나무의 여러 상징 중에서 노선숙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생명의 나무’다. 로베르 뒤마는 태초의 동산 가운데 심어진 생명의 나무를 설명하면서, 생명의 나무에 종말론적 의미를 부여했던 것은 성서였다고 지적한다. 어떤 신화보다도 잘 알려진 그 이야기에 의하면, 선악의 인식을 일깨운 나무의 과실을 맛보았던 사건이 있었고, 아담과 이브는 낙원에서 추방되어 생명의 나무에 접근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만다. 이후 복락원을 위한 인간의 끊임없는 시도와 모험이 이루어져 왔다. 

자크 브로스는 교회가 승리를 거둔 이후에 사람들에게 숭배 받는 나무는 그리스도가 죽음을 당한 십자가 오직 하나만 존재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작가는 나무에 관한 보다 풍부한 상징까지 소급하면서 원초적 낙원과의 이별을 치유하고자 한다. 신화학자 진 쿠퍼는 [그림으로 보는 세계 문화 상징 사전]에서, 낙원에서 자란 두 종류의 나무, 즉 생명의 나무와 지식의 나무를 비교한다. 그에 의하면 생명의 나무는 낙원의 중심에 있으며 원초의 완전성으로의 회귀를 나타낸다. 생명의 나무는 우주 축이며 선악을 초월한 일원적인 존재이다. 여기에 대응하는 지식의 나무는 선악의 인식에 관계되는 것으로, 본질적으로 이원적인 존재이다. 진 쿠퍼에 의하면 많은 전통문화에서 지식의 나무는 최초의 인간 및 낙원 상실과 관계된다. 노선숙의 [생명의 나무]는 ‘인간의 타락과 죽음의 계기가 되는 지식의 나무’(진 쿠퍼)를 넘어서 최초의 하나로 거슬러 올라가고자 한다. 그 과정은 녹록치 않아서, 작품 속 나무들은 신열을 앓거나 용트림을 한다. 



Leukemia, Date:1999
Medium:sculpture made of sponge, cotton, pigment, glue
Size:1’6”L x 1’W x 3”H
Exhibition: “Art Scene of Ginza,” Gallery 2chome, Tokyo, Japan 2005

Of Synapses & Memories (2013)

Symbiosis/ Mutualization, Date:2013
Medium:Installation made of clay, plaster casts, rubber molds, resin, pigment, prints;cases made of plastic or wood, LED lights
Sizes: Smallboxes: 20cm H x 20cm W x 7cm D | Largeboxes: 35.5cm H x 35.5cm W x 7cm D
DigitalPrints on Plexiglass: 11” W x 17” L
Exhibition:“Mutual/ization,” Pera Art Gallery, Istanbul, Turkey 2013

Tongue Island (Eye Pumping) (2011)


[생명의 나무 1작](1996) 시리즈에서의 형태의 중심을 이루는 나무는 식물 특유의 수동성을 지운다. 나무는 마치 동물같이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식물이지만 동물성을 포함한다. 그렇지만 나무 특유의 연결의 상징은 가지고 있다. 인류의 상상계에서 나무 자체는 지하와 지상, 그리고 천상을 연결하는 상징적 우주를 이루어 왔는데, 그것은 노선숙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치 열매처럼 줄줄이 연결된 것은 비닐 팩들이다. 투명한 재료는 다채로운 색의 액체를 보여준다. 환자에게 생명력을 공급하는 이 현대적 의료 기구는 오래된 상징과 연결된다. 작품 [Pulse  / Art in a Senseless World](2008)에서는 복잡하게 내려오는 투명 수액 선이 관객의 발치에 배치된 식물들에게 공급되고 있다. 도시에서 각종 공해에 시달리며 인간에게 신선한 산소를 제공해주는 나무들은 치유와 보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물론 어떤 인간들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수액까지 착취하기도 한다. 

작품 [Originally and Truthfully, Tree of Life VI · VADA Project](2015년)는 전시장 천정부터 내려오는 거대한 뿌리가 하얀 천으로 칭칭 동여매져 있다. 정신으로 치자면 무의식의 영역인 뿌리는 원류에 대한 이미지이다. 그것은 보호되어야 한다. 나무에 필수적인 물은 강물 이미지를 끌어들인다. 프랙털 이론이 예시하듯이, 끝없이 갈라지는 나뭇가지와 지류는 동형적이다. 신경세포의 다발을 닮은 작품군도 같은 유형이다. 소우주로부터 대우주에 이르는 다차원적인 망을 통해 존재들은 수없이 만나고 수없이 헤어진다. 흐르는 강물의 철썩거리는 소리가 들릴듯한 작품 [Let the Rivers Clap Their Hands](2009)은 소용돌이치는 물살 모양의 서로 다른 높이의 탁자들을 끊어질 듯 이어지게 배치하고, 그 위에 진흙, 모래, 나무 등을 재료로 하는 불규칙한 형태들의 오브제들을 올려놓았다. 심해의 원류로부터 시작된 생명의 흐름이 어디론가 나아가는 듯한 장기적 역사성이 느껴진다. 

SynapticTales, Date:2013
Medium:Installation made of clay, plaster casts, rubber molds, resin, pigment, prints;cases made of plastic or wood, LED lights
Sizes: Smallboxes: 20cm H x 20cm W x 7cm D | Largeboxes: 35.5cm H x 35.5cm W x 7cm D
DigitalPrints on Plexiglass: 11” W x 17” L
Exhibition:“Artprize,” International juried show, Grand Rapids, Michigan, USA 2013; “OfSynapses and Memories,” Gainey Gallery, Van Singel Fine Arts Center, GrandRapids, Michigan, USA 2013; “Synaptic Tales,” SPACEWOMb Gallery, New York, NewYork 2013; SELECT Art Fair, Miami, Florida,2014; Art Hamptons, Bridgehampton, New York, 2015; “Crossing Boundaries II,Parallel Lines,” Gallery Lee Seoul, 2016, Seoul, Korea

Grace II, Date:2015
Medium:Installation made of Cast Resin, LED embedded in Acrylic Casing
Size:14.5“ H x 28” W x 3.9” D
Exhibition:“Originally and Truthfully,” solo show VADA Project, Shophouse 5, Singapore 2015


지금 여기의 삶이 힘겨울수록 그때 저기의 삶에 대한 희망의 비중은 커지며, 인생 자체가 그러한 여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국을 떠난 지 어언 37년, 간간이 국내에서도 전시를 열긴 했지만 삶은 터전은 여전히 타지에 있다. 국외자의 위치는 자유로움과 위태로움의 공존에 체념하게 했다. 자유와 위험은 서로의 조건이자, 예술의 조건이자 삶의 조건이기도 하다. 어떤 작가에게 삶과 예술은 더욱 밀접하다. 미술 이전에 간호학을 전공한 이력 때문인지 작품 안에는 생명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현대미술의 어법으로 재탄생한 생명은 재현이 아니라 생성과 소멸의 과정으로 나타난다. 구멍들이 난 면이 유기적으로 겹쳐져 있는 형태를 보여주는 설치작품 [Untitled: Art in Nature](2016)는 생물형태적 구조(Biomorphic Structures)로, 유동성과 견고함을 동시에 가진다. 정사각형 틀 안에 세포질 같은 형태가 하나씩 자리 잡은 듯한 작품 [Synaptic Tales](2013)는 라이트 박스 안에 있어서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본 듯한 형태들이다. 

동시에 그것은 망원경으로 본 대우주의 이미지이기도 할 것이다. 생명의 나무 시리즈에 속한 [Tree of Life III: The Journey](2005)가 예시하듯이, 복잡하게 얽힌 그물망은 신경망이나 혈관계같은 미시우주부터 도시까지, 그리고 전능한 존재에 의해 창조된 우주까지, 심신이 머물렀던 곳, 기억하는 곳, 통과했던 곳들이 한데 얽혀 있는 여정이다. 노선숙의 우주는 상보(相補)적이다. 작품 [Symbosis: Mutual/ization](2013)은 높은 좌대 위에 올라있는 두 개의 정사각형 안은 둥근 원이 청(음)과 홍(양)으로 맞대고 공존한다. 정사각형 틀 안에 둥근 형태가 있는 작품 [Of Synapses and Memories](2013)는 회오리치듯 움직이는 내부의 점과 선이 세포질 같은 모습으로 보이며, 추상적인 배경 속에서 앞으로 나오는 듯한 동감이 느껴진다. 작품 [Tongue Islands: Eye Pumping: Re-examination of Perspectives](2011)에서는 어두운 기저 면에서 튕겨 나오는 색 선들이 특징이다. 



Grace I, Date: 2015
Medium: installation madeof cast Resin, LED lighting embedded in Acrylic Casing
Size:91.5 “ H x 28” W x 3.9” D
Exhibition:“Originally and Truthfully,” solo show VADA Project, Shophouse 5, Singapore 2015

OriginIII (Multiple Curiosities), Date: 2010
Medium: sculpture boxes made of wood, plastic, plastic, resin casting,LED lights, synthetic hair
Size: 30cmx 30cm x 7.5cm
Exhibition: group show 2010 “Cabinet of Curiosities,”Artspace@Helutrans, Singapore(Charity fundraising exhibition for National Cancer Center Singapore); group show 2010 “Space& Imagination / Asia Contemporary Art,” Chonnam Provincial Okgwa Museum,South-Korea 


마치 어떤 힘에 의해 활성화된 소립자같은 모습이며, 음악적인 리듬감과 축제적 활기도 느껴진다. 연결된 튜브 안의 물의 흐름과 악기의 소리 등이 결합된 작품 [Pulse](2001, 2008)와 [Pulse Orchestra](2008)는 고동치는 맥박이나 우주의 율동을 표현한다. 고정되지 않은 과정 중의 자연은 끝없이 접혀지고 펼쳐진다. 여러 겹으로 만들어진 정사각형 박스 안에 맥동하는 둥근 빛이나 털에 감싸인 형태는 최초의 시작 같은 에너지의 밀집체다. 작품 [ Origin III (Multiple Curiosity)] (2010)은 우주와 생명에 깃들어 있는 신비를 보여준다. 가운데 뚫린 원 사이로 푸른 빛이 새어 나오는 짙푸른 상자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비밀에 싸여 있다. 상자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합체된 듯한 구조가 열리면 털이 에워싸고 있는 푸른 원이 보인다. 푸른 빛 파장이 가지는 강한 에너지는 거울의 방같은 반사에 의하 확장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원초의 신비’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작품 [Leukemia: Art Scene of Ginza](2005)은 마치 알이 모여있는 덩어리 같은 모습으로, 생명이나 보석같이 둥글고 작고 응집된 형태들이 빼곡하다. 작품 [Sunflower: Form](2001)은 마치 해바라기나 밤송이처럼 부드럽거나 단단한 섬유질에 둘러싸인 알맹이(성경말씀으로 만들어진)가 드러나 있다. 세르주 위탱이 [신비의 지식, 그노시즘]에서 소우주인 인간을 앎으로서 신을 알 수 있게 된다는 신인동형동성론의 신학을 정의하듯이, 노선숙은 작은 우주에서 큰 우주를 본다. 다른 차원의 우주들이 교류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과학철학자 미셀 세르는 [헤르메스]에서 힘의 선행성을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에너지는 지형도에 선행한다. 에너지는 지형도를 그리고 지형도에 길을 내며 지형도에 깃든다. 에너지는 약호들에 선행하며 약호화를 행한다. 자연이라 불리던 것은 에너지의 형태로 현존한다는 것이다. 예술가의 작업이 창조에 비견되어 왔던 것은 실재하는 힘을 느끼고 다루고 풀어헤치며 때로는 응집시키는 과정 때문일 것이다. 



Pulse  , Date: 2001 & 2008
Medium: installation made of plastic domes, bottles, intravenous valvesand tubing, water, lights, found metal objects, contact microphones
Size:  variable to fit room; 2001exhibition approximately 14’H x 20’L x 20’W; 2008 exhibition same L & W,but approximately 10’H
Exhibition: Bard in 2001; “Art in a Senseless World,” SMU Arts Festival,Singapore in 2008

Pulse (2008)

Pulse Orchestra , Date: 2008
Medium: performance with local artists in conjunction with Pulseinstallation made of plastic domes, bottles, intravenous valves and tubing,water, lights, found metal objects, contact microphones
Size:  10’H x 20’L x 20’W(variable)
Exhibition: “Art in a Senseless World,” SMU Arts Festival, Singapore in2008


마지막으로 다룰 작업은 혀가 등장하는 작품들로, ‘생명의 나무’ 시리즈에 비하면 좀 더 관객을 가까이 끌어당긴다. 하지만 이 역시도 로고스(말)과의 상관관계를 통해서 형이상학적 사유로 이어진다. 입 속에 있으며 거의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혓바닥은 징그러울 수도 있는—더구나 팬데믹 시대에 달갑지 않은 감염이 떠오르는—신체기관이지만, 생생한 발색으로 빛나는 작품 속 혀들은 아름답다. 자유와 방황이라는 디아스포라에 포함된 상반된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는 노선숙의 역설적 경향은 안과 밖의 경계면에 있는 신체 기관인 혀의 양가적 의미를 탐구한다. 작품 [My Tongue Will Speak : Dis/placement;6](2010)에서 거대한 푸른 혀와 그 앞 라이트 박스 위에 얹혀진 다양한 혀들이나, 작품 [Tongue Flowers: Small Sculpture Show](2011)에서 투명한 유리병에 꽃처럼 꽂혀있는 다양한 형태의 혀들, 그리고 거대한 접시 안에 붉은 혀들이 날름거리는 작품 [Do You Hear Me?: Singapore International Art Fair](2009)는 기이한 아름다움으로 빛나면서도 유희적이다. 

하지만 [Speaking Wall: Now & Next/Asia Contemporary Art](2010)처럼 낡은 벽에서 혀들이 잔뜩 나와 있는 작품은 역사 속에서 명멸했던 목소리들과 연결되어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점토로 빚어만든 혀들은 벽에서 돌출된 상태가 제각각이다. 어떤 목소리는 크고 어떤 목소리는 묻혀 있다. 작가는 이러한 ‘목소리의 벽’에 대해 ‘인간 역사의 세월을 의식하고 만든 작품’으로, ‘역사 속에서 빚어진 무수한 사건, 상황 등을 통해 들려오는 개인의 목소리, 관중의 부르짖음, 사회와 시대가 변하면서 연속되는 대화와 언쟁의 교차, 이러한 것들이 역사 속에서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2010년 국립 광주박물관에 전시된 바 있는 작품 [Speaking Wall](2010)은 낡은 벽으로 연출된 면에 돋아난 여러 혀들이 한 목소리가 아님을 암시한다. 그것은 한 인간 인종, 한 성이 아니다. 만약 그것이 말이 아니라 소리면 반드시 사람의 범위도 벗어날 수 있다. 단지 소리만을 가진 존재는 ‘벌거벗은 생명’(조르조 아감벤)이다. 


Do You Hear Me?, Date: 2009
Medium: Sculpture made of Clay, Cement, Wood, Light
Size: 8”H x 28” diameter
Exhibition: Group show, Singapore International ArtFair / EXPO Singapore


Tongue Flowers (2011)

Sunflower (Form) (2000)

Untitled (Art In Nature) (2016)


조르조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에서 ‘언어를 가진 생명체’라는 인간에 대한 형이상학적 정의는 정치적이라고 평가한다. 이러한 정치적 사고는 인간만이 로고스(말)을 가지며, 그 밖의 존재는 포네(목소리)를 가질 뿐이라고 본다. 요컨대 누군가의 소리는 의미 및 합법성과 연관될 언어이고, 누군가의 소리는 그저 소리일 뿐이라면, 우리는 음성과 언어의 분열 속에서 ‘조에(벌거벗은 삶)과 비오스(정치적 삶)’(조르조 아감벤)을 구별할 수 있다, 노선숙의 작품 기저에 흐르는 종교적 사유와 연관시킨다면, 그것은 서구의 관념적 전통인 말중심주의(Logocentrism)에 닿아 있다. 요한복음에서 로고스(logos)는 말씀(Word)을 의미한다. 하느님과 예수의 말씀은 기독교의 근본 가치를 이루고 있다. 또한 로고스는 이성(reason)이다. 그러나 이러한 로고센트리즘은 국외자의 존재에 의해 중심을 이동한다. 노선숙의 작품에는 하나의 혀가 아닌 수 많은 혀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국외자로서의 예술가는 진정한 로고스의 의미가 수많은 타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것에 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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