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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프린트: 뉴 콤비네이션 / 예술과 복제

이선영

예술과 복제

  

이선영(미술평론가)


  

[제 3의 프린트: 뉴 콤비네이션] 전에서 ‘제3’이라는 개념은 특정 숫자가 아니라 대안적 상징성을 가진다. 기획자 이승아는 ‘또 다른 새로운 방식(The Third Print)’를 제시하면서, 이 전시를 통해 ‘판화 영역 고유의 찍어내는 개념’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한다. 거의 컬러 사진 수준의 복사기가 보편화 된 상황에서 판화의 정체성이 모호해진 것은 사실이다. 판화는 유일성을 담보한다고 믿어지는 회화에 비해 시장에서의 인기도 높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진정한 예술은 모두가 달려드는 중심이 아니라, 주변으로부터 새로운 가치를 일궈오곤 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판화를 염두에는 두었지만, 판화의 정체성 확인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판화와 다른 매체와의 결합과 열린 실험이자 확장이 특징이다. 한편 3은 정반합(正反合) 중의 마지막 단계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콤비네이션’이라는 또 다른 키워드는 종합이 아닌 조합을 말한다. 조합은 보다 열려 있는 개념으로, 이미 변증법적 사유를 적용하기에는 사회가 너무 복잡해졌다. 


국내외 작가 26인의 작품들은 그것이 ‘판화’인가라고 묻게 될 만큼 다양하다. 매체로의 환원이 아니라고 해서 무의미와 가까워질 정도의 확장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판화라는 최초의 복제 매체에 내재한 복제를 주목한다. 오늘날 복제는 기계를 매개로 하여 더 강하게 사회와 예술을 규정짓고 있다. 현대인을 둘러싼 수많은 인터페이스는 복제와 속도를 통해 환경을 구축해왔으며, 그 과정은 끝모를 결과를 향해 계속 진행 중이다. 발터 벤야민이 [기계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말했듯이, 기계복제로 인하여 ‘예술 전체의 성격이 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근본적 물음이 필요하며, 아직도 그에 대한 대답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때의 질문은 유효하다. 그 선구적인 저서는 좌우익 파시즘이 그늘을 드리우던 시대에 저술되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거시 정치경제학이 아니라, 문화의 형태로 실행되는 보다 부드럽고 미시적인 지배의 시대다. 당시 벤야민은 미술과 경쟁 관계 였던 사진을 염두에 두고 기계복제를 말했지만, 사진의 확장인 영화를 비롯한 이후의 모든 미디어에 적용되는 선구적 해석이기도 했다. 


인쇄술이 없었던 시절부터 판화는 이미 복제 매체였지만, 복제가 있기에 원본도 의미가 있는 대량생산/소비의 사회에서 또 다른 의미를 부여받는다. 원본과 복제가 이항 대립이 아니라, 서로의 전제조건이 되는 탈중심적 사유에서 복제는 미술사를 넘어서 문화사적으로 의미를 가진다. 원본의 중심성을 거부하는 시뮬라크르라는 존재 양태가 예술에 던지는 도전은 무엇인가. 들뢰즈와 가타리는 [차이와 반복]에서 시뮬라크르 미학의 선구적 예로 팝아트를 든 적이 있다. 이 전시의 작품들이 그러한 미학적 스타일과 사유에 근접하는 것도 흥미롭다. ‘차이의 분화소로서의 반복’이라는 현대 철학적 사유는 그자체가 계열적인 특성을 가지는 판화 매체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어가 된다. 참여작가들의 작품은 판화라는 복제 매체의 실험을 통해 소비문화와 예술, 코드와 실재, 최종적으로는 기계 복제시대가 조성한 새로운 단계의 문질 문명 및 문화 생태계가 인간의 위상에 어떠한 변화를 야기했는지에 대해 두루 발언한다.

  


전시작품의 경향

 

1. 복제와 매체; 그리기와 조각하기의 변화



1. 오미아


근대적 인쇄술이 본격화되기 이전에 판화는 유력한 복제 매체였다. 오미아는 일본의 전통 판화인 우끼요에에 쓰인 수성 목판화 과정을 활용한다. 에도시대에 이 목판화는 서민의 풍속을 기록했지만, 현대의 작가에 의해 추상적 원근법이 적용된 친환경적인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2. 강중섭


판화는 불가피하게 화면의 평면성을 강조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미지의 자율성을 가능하게 한 근대적 요소다. 강릉의 방언을 힙합 식의 리듬에 실어 디자인된 강중섭의 글자들 또한 평면적이다. 작가는 이러한 평면을 입체화하여 그자체의 실체감을 부여했다. 


3. 손정선


한센인 정착 마을에서의 공공미술에 참여하기도 한 작가 손정선의 [공작도시]에서 지시대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문자의 속성은 더 복잡한 사회적 메시지로 얽히는 전제조건이다. 그의 작품에서 문자들은 소비자-시민-관객에게 눈길을 끌기 위해 격렬하게 경합한다. 



4. 도디 타바


파키스탄 작가 도디 타바(Dodi Tabbaa)의 작품에서 글자와 이미지가 인쇄된 종이로 접은 배는 다시 평면 이미지로 만들어진다. 원색적 배경 또한 디지털 스캔을 포함한 여러 단계의 복제를 거쳐 추상화된다. 복제의 연쇄는 실재를 더욱 모호하게 한다.     



5. 권오상


조각을 전공한 권오상이 현대의 유력한 매체인 사진을 다루는 방식은 사진을 조각화 하는 것이다. 그는 360도로 찍은 수백 장의 사진들을 입체적으로 구성한다. 이를 통해 조각의 물질성은 비워지고 2차원적 사진은 3차원에서 기념비적인 위상을 획득한다. 



6. 임선희


펑키 스타일의 머리를 한 인형인 [Daegari]는 ‘화가’인 임선희의 야성적인 붓질을 3차원상에 정교하게 복제한 3D Print 작품이다. 그것은 화가의 현존을 증거 하는 일회적인 붓질 또한 복제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7. 김나훔


나무 액자에 담은 풍경화처럼 보이는 김나훔의 작품은 컴퓨터로 그린 그림이다. 최초의 출발은 사진이며, 아이패드에서 회화적 효과를 가미한다. 사진과 컴퓨터라는 매체는 그림에 관심이 있었지만, 미술을 전공을 하지 못했던 이에게 접근성있는 대안적 매체가 된다.  


8. 허정원


무엇인가 폭발한 이미지(유화)와 그 잔해들(오려낸 아크릴판)을 바닥에 설치한 허정원의 작품은 명확한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어떤 대상이 생성하거나 소멸하는 과정을 구체화한다. 대상의 윤곽은 해체되었지만, 잔여물은 다시 윤곽을 부여받는다. 과정은 실재화 된다.


9. 권오신


권오신의 작품 [MEMORY MACHINE no.7]에서 석판화로 표현한 어릴 적 추억은 렌티큘러로 재가공된다. 한때 분명 했을 지각은 기억에 의해 붕 떠있는 듯한 환영으로 변화한다. 작품 속 장난감은 기계 또한 오래된 기억의 텍스트를 함께 짜고 짜여지는 요소로 자리한다.

 


2. 소비사회의 물신 구조


10. 김기라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소비는 대량으로 찍어내는 생산을 바탕으로 한다. 김기라의 실크스크린 작품 [현대풍경 이야기_현대정물화]는 가성비로 상징되는 경제성과 극도의 경쟁 상황에 요구되는 유혹이 맞물려진다. 경제중심주의와 유혹의 순환고리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선명하다.   



11. 김지민


김지민의 초기작업은 상표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상표는 상품의 실제 사용가치와는 거리가 있는 물신주의에 의해 추동된다. 레진으로 제작된 조각상은 특정 상품에 홀려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스펙터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끝없는 욕망이다. 



12. 저스틴 리


싱가포르의 작가 저스틴 리(Justin Lee)가 아크릴판을 레이저로 잘라 만든 황금 메달은 승자독식의 자본주의 사회를 풍자한다. 공평한 게임이라기 보다는 그들만의 리그를 통과한 것은 지배적 가치가 되어 모두의 기준으로 강제 된다.  



13,문형민


문형민의 [Unknown Story]는 예술 이외의 모두 몰아내고 순수를 쟁취한 모더니즘을 풍자한다. 멀리서 보면 순수한 평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현대사회를 반영하는 신문 기사들이 담겨있다. 미술사적으로 모더니즘과 대중문화는 같은 뿌리에서 발생한 쌍둥이 분체로 평가된다.



14. 정명국


모든 것이 코드화를 향해 가속도를 내는 정보화 사회에서 정명국은 물질의 표면에 집중한다. 대중의 일원으로 작가도 욕망하는 자동차는 일찍이 자동화된 생산의 첨병에 있었지만 그 역시도 육신처럼 시간을 각인한다. 그는 시간이 각인된 사물의 피부를 연필로 프로타주 한다.  


15. 이주은


이주은의 [정물원] 시리즈는 동물원, 식물원에 비해 일상에 더 편재하는 정물의 세계들을 새롭게 맥락화 한다. 상품을 포함한 사물들은 주시할만한 무엇으로 배치되고 사진으로 찍혀 레진을 부어 또 다른 사물로 재탄생한다.


16. 마리사 토레스


스페인 작가 마리사 토레스(Marisa Torres)의 [Waste] 시리즈는 기하학적 무늬를 바탕으로 쓰레기 봉지를 표현한다. 아름다운 무늬에 비해 이물감 있는 쓰레기는 생산과 소비의 순환 또한 자연의 내재율과 그 내재율을 표현하는 예술과 어울리기를 바란다. 


17. 안세은


안세은은 폐기물의 이질성에 주목한다. 모든 대량복제품이 특정 생산 라인에서 출고되고 난 후 각자의 소비 또는 생산의 사이클에 진입한다. 작가는 일회용품 뿐 아니라 판화를 제작할 때 찍고 남아있는 판을 작가의 의도가 아닌 우연성이 남아있는 독특한 것으로 간주한다.

  


3. 인간과 그 이후



18. 박상현


박상현은 옷가지들에 둘러싸인 아이와 여러 물건들에 둘러싸인 아이 이미지를 통해 부모의 완전한 보호에 인해 순수와 욕망을 동시에 보장받았던 이상적 시공간을 표현한다. 이후에 욕망은 개인과 사회의 대립관계 속에서 떠돌기 때문이다. 


19. 배철


누군가의 죽음을 추모하는 세팅은 모든 사회적 의례가 그렇듯이 죽은자 보다는 산자를 위한 것이다. 배철은 누군가의 죽음, 즉 재난이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편재하는 위험임을 말한다. 모든 것이 코드화로 조밀하게 연결된 사회는 위험사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 박치호


인간의 육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 심장을 씨앗과 나란히 놓은 박치호는 청사진(Blue print)이라는 인화 방식을 통해 건강에의 희망을 표현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쉼 없이 뛰는 심장이나 접힘과 펼침을 통해 부활하는 씨앗은 생명과 예술의 지속을 상징한다.



21. 김영훈


김영훈은 눈을 감고 명상하는 포즈를 메조틴트로 표현한다. 복제 매체를 통해 찍어낸 같은 모습의 분신들은 주체의 해체를 말한다. [모든 것은 사라지거나 없어지거나 혹은 잊혀진다]는 제목은 다소간 우울하지만, 망아의 경지란 이상적인 초월의 상태이기도 하다.  



22. 노진아


노진아는 관객의 움직임에 눈알을 굴려 반응하는 자신의 분신을 제시한다. 본인을 3D 스캔하여 3D 프린터로 복제한 유사 로봇은 마지막 도전영역으로 남아있는 육체의 재현 기술의 도정에 놓여 있다. 기계-예술은 인간의 직관과 더욱 가까운 인터페이스를 향해 진보한다. 



23. 쉥겐 림


쉥겐 림(Shengen Lim)은 [Self-Portrait 1.0]에서 작가가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볼 수 있는 작가의 3D 초상 사진이 등장한다. 그의 작품은 미디어 기기가 일종의 전자거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마주한 거울이 자아를 무한 반사하듯이 미디어 거울 또한 그렇게 한다. 


24. 이동욱


소인국의 사람같은 형태들로 현대의 실존적 상황을 표현해온 이동욱은 수석이나 분재같은 자연의 축소모델과 작은 인간들을 조합한다. 음식물처럼 모아 놓은 인체상들을 보면 상품의 세계가 아닌 유사 자연이라는 연극적 세트 또한 인간을 그다지 자유롭게 하지 않는다. 



25. 심규동


심규동은 성인 남자가 다리를 제대로 뻗을 수 없는 극한의 주거 공간인 [고시텔] 연작에 풍요만큼이나 빈곤을 재생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초상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재현한다. 그의 작품 속 인간은 주변의 변변치 못한 사물과 함께 사물화되고 있다.



26. 최수앙


현대사회 속 인간의 상황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해온 최수앙은 기하적 형태를 위한 도면을 표현한다. 그것은 인간과 길항작용 하는 추상적 구조이다. 최초에 종이에 그려진 기하적 형태, 즉 추상적 모델은 천연수지 등을 입히는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 물질화된다.


도판캡션

1. 오미아, Untitled (2018), 일본수성목판화, 30 X 40 cm,  One Hole (2019)

일본수성목판화, 40 X 30 cm

Two Holes (2019), 일본수성목판화, 40 X 30 cm 

2. 강중섭, g-bonics life (2021) Spray, 110 x 100 cm

3. 손정선, 공작도시 Maneuvering city (2020), Acrylic panel cutting, 53 x 39 cm x 5EA

4.도디 타바, Paper Boats 1 (2014), Digital print on paper, set of two prints, 33 x 47 cm

5. 권오상, Reclining Figure 2 (2020), C-Print, Mixed Media, 197 x 69 x 92 (H) cm

6. 임선희, Daegari (2021), 3D Print, 60 x 30 x 25.5 cm

7. 김나훔, 나의 창문 (2021), 아이패드 드로잉, 아이폰 사진, 캔버스 출력, 160 x 120 cm

8. 허정원, 숲 forest (2020,) Oil on canvas, 아크릴판 조각 설치, 227.3 X 181.8 cm

9. 권오신, MEMORY MACHINE no.7 (2021), Lenticular, 70 x 50 cm

10.김기라, 현대 풍경 이야기_현대정물화 (2008-2021), 종이에 실크스크린, 에디션 1/10, 80 x 120 cm

11. 김지민, MYDIRASIS-the boy (2010), Resin, lens, c-print, 48 x 50 x 110 cm

MYDIRASIS-the girl (2010), Resin, lens, c-print, 48 x 50 x 110 cm 

12. 저스틴 리, World Medal Series: ONE (2021), Laser Cut-Acrylic sheet, Cotton Fabric, Medal: 32(H) x 29.5(W) cm, Fabric: 148(H) x 18(W) cm

13. 문형민, Unknown Story (2005‒2021), Wall printing, stencil, 가변 크기

15. 이주은, 정물원 (2018), Mixed media, 118 x 80 cm

14. 정명국, No5(얼굴) (2009), 종이 위에 흑연 프로타주, 244 x 197 cm

Spira (2010), 서양화, 프로타주, 종이 위에 흑연스틱, 184 x 455 cm

16. 마리사 토레스, Waste 시리즈 중에서. (2019), Digital Print and Gouache on Paper, 29 x 22 cm (#1-#4 각 작품 모두 동일)

17. 안세은, 준비된 우연 Planned Coincidence (2021), Layers of Carved Acrylic on Canvas, 20 x 20 cm (each)

18. 박상현, Guilty Pleasure (2021), Digital Print, 90 x 60 cm

19. 배철, #Selfie_Information (2021), Mixed media, 114 x 132 x 84 cm

20. 박치호, Oblivion (2020), Blue print, 60 x 42 cm

21.김영훈, 사라지거나, 없어지거나, 혹은 잊혀진다. To disappear, to vanish, or to be forgotten (2021), Mezzotint, paper, wood, 50 x 250 cm

22. 노진아, Scanned Copy (2020) , ABS 3D printing, 30 x 20 x 20 cm

23. 쉥겐 림, Self-Portrait 1.0 (2017), Digital print on vinyl with Augmented Reality Digital Image / Artist app Shennanigen (free download for iOS and Android) / 150 x 150 cm 

24. 이동욱, 완벽한 결합 Perfect combinathion (2021), 가변크기, 혼합재료

25. 심규동, Constant (2021), Digital Print on Canvas and video, 40 x 50 in, 비디오 5분 내외

26. 최수앙, Untitled (2021), Boiled linseed oil, pigments, acrylic, non-reflecting galss, solid wood, 36.5 x 56 x 8 cm


출전; 강릉문화재단(명주예술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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