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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진/ 삶, 그러므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배

고충환

박국진/ 삶, 그러므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배 


항해. 작가 박국진이 근작 그러므로 이번 전시에 붙인 주제다. 여기서 항해는 삶의 메타포다. 삶에 대한 비유가 여럿 있지만, 그 중 결정적인 경우로 치자면, 삶은 흔히 망망대해를 떠도는 일엽편주에 비유된다. 삶은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저 홀로 바다에 던져진 배다. 칠흑 같은 밤에 미미한 불빛조차 없는 미증유의 바다를 항해하는 배다. 이 비유에서처럼 삶은 고독하고 막막하다. 어쩌면 작업이 꼭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삶에 대한 비유이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 작업에 대한 비유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는 생태에 관심이 많다. 그런 만큼 전시공간을 작은 생태계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바닷속 환경을 연출했다. 어둑한 전시공간에 들어서면 크고 작은 덩어리들이 매달려 있는데, 배 밑창이다. 물 위에 떠 가는 배 밑창을 물속에서 올려다보게 한 것이다. 여기서 배는 이중적인데, 매달린 형태 그대로 평평한 바닥에 뒤집어놓으면 산업 폐기물이 된다. 배 밑창이려니 한 것이 알고 보니 산업 폐기물이었다. 그렇게 다시, 전시공간에 들어서면 물 위에 떠가는 배 밑창이 보이고, 부유하는 산업 폐기물이 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산업 폐기물로 범벅이 된 배가 항해하는 모습을 본다. 삶이라는 배가 알고 보니 산업 폐기물로 오염됐다는 사실의 뒤늦은 인식에서 작가의 문명 비판적인 시각을 읽을 수가 있다. 배 밑창에는 전선 다발이 얽혀있는데, 아마도 문명사회의 얽히고설킨 관계, 수신과 발신 장치며 소통과 불통 문제를 주제화한 것일 터이다. 그중에는 물에 빠진 닻과 함께 각종 생활 쓰레기로 가득한 그물에 걸려 아마도 더 이상 항해가 불가능하지 싶은 배도 있다. 전시장 바닥에는 등이 하나 켜져 있는데, 생명을 상징한다고 했다. 문명비판과 함께, 파괴된 생태계에 대한 경고등으로 봐도 되겠다. 이런 경고의 메시지는 전시장 한쪽에 설치된 환풍기에서 재차 반복된다. 환풍기는 알다시피 답답한 공기를 순환시켜주는 장치다. 여기서 작가는 문명사회 그러므로 현실을 숨 막히는 사회로 진단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물속에서는 숨을 쉴 수가 없고, 지금 우리는 물속에 있다. 

이번 전시공간(탈영역우정국)은 원래 우체국이었다. 전시장 구석에는 우체국 시절부터 있었던 금고실이 지금도 그대로 있다. 한 평이 채 될까 싶은 작은 방 입구에는 철창을 쳐 마치 감옥 같다. 철창 사이로 어둑한 방안을 들여다보면 바닥에 행성이 하나 놓여있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행성이다. 철창에는 단단하게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것이, 왜 갇혔는지 알 수 없는 행성이다. 그 무명의 행성이 어둠 속에서 저 홀로 불을 밝히고 있는데, 꿈을 꾸는 것도 같고 사그라드는 꿈을 보는 것도 같다. 이 행성은 도대체 뭔가. 알레고리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이중성과 양면성에 대한 알레고리다. 지구를 떠나 다른 별에 가고 싶다는 욕망의 알레고리고, 더 이상 꿈꿀 수 없는 병든 지구에 대한 애도의 알레고리다. 그 욕망, 그 애도와 상관없이 지구는 계속 꿈을 꿀 것이고, 마침내 꿈꾸기를 멈출 것이다. 그리고 덩달아 희미한 불빛도 꺼질 것이다. 유토피아는 원래 없는 장소, 부재 하는 장소,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의미한다. 그처럼,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칠흑 같은 어둠(어쩌면 무, 그리고 어쩌면 적멸)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전시장 1층 공간을 배들이 항해하는 바닷속 정경으로 연출했다. 그리고 계단을 통해 선승하면 2층에서 배 안을 둘러볼 수 있다. 1층이 하나의 통 구조를 하고 있다면, 2층은 데크를 끼고 있는 작은 방들을 아우르고 있어서 선실과 조타실 그리고 엔진실과 같은 배 안의 정경을 연출하기에 용이한 부분이 있고, 아마도 작가 역시 그 부분에 주목했을 것이다. 
그렇게 배의 갑판에 해당하는 데크를 지나면 작은 방들이 나오는데, 방안에는 크고 작은 관이며 녹슨 파이프 구조물들이 설비된 것이 어지럽다. 아마도 배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엔진실이나 기계실일 것이다. 방안에 가만히 서 있으면 뭔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도 같은 분명치 않은 소리가 들리는데, 파이프 안에서 나는 소리다. 작가가 일상에서 채집한 소리를 입힌 것이다. 일상음으로 기계음을 대신한 것인데, 존케이지의 일상음을 연상시키고, 질 들뢰즈의 생활기계를 떠올리게 된다. 일상은 기계처럼 제도화돼 있다. 그러므로 어쩌면 기계와 같은 소리를 낸다. 
그리고 아마도 선실 아니면 식당이지 싶은 방안에는 자욱한 먼지와 함께 무슨 부장품이나 유물을 떠올리게 하는 식탁(죽은 사람들의 식사? 지구 마지막 날의 만찬?)과 함께 지구본이 장식처럼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생긴 꼴이 좀 이상하다. 사각형 지구본이다. 보통 지구본 하면 둥근데, 둥근 지구를 반영해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네모반듯한 지구를 반영해 만든 것인가. 실제로도 고대 그리스 시대에 살던 어떤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고, 그 평면 끝에 다다르면 낭떠러지가 나오는데, 지옥의 입구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화처럼 들리는데, 옛날에 과학은 어느 정도 우화이기도 했다. 작가의 경우에 사각형 지구본은 멈춰 선 지구,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지구, 비정상 지구를 풍자하고 경고한 것이다. 그렇게 작동을 멈춘 지구가 아래층 금고에 갇힌, 꿈을 꾸는지 사그라지고 있는 꿈을 보는지 모를 행성과 비교되면서 묘한 울림과 파장을 자아낸다. 
그리고 후미진 구석 방 안에는 어둠 속에 격자 구조의 철제 맨홀이 바닥에 누워있다. 이따금씩 느리게 흐르는 빛의 기미가 느껴지는데, 맨홀 안쪽에 장착한 비디오 영상에서 새 나오는 빛이다. 마치 선 채로 맨홀 속을 들여다보듯 영상물을 내려다보게 했는데, 작가의 작업실 정경을 부감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찍은 영상이다. 그 영상 그러므로 작업실에서 작가는 뭔가를 하는 것도 같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도 같다. 계속 움직이고 있음에도, 끝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건 뭔가. 도대체 뭘 보여주고 싶은 건가. 혹 지루한 반복이 주젠가. 짐짓 진지하게 말하자면 고뇌하는 작가의 초상, 번민하는 작가의 현실을 증언하는 것인가. 아니면 무의미한 작업의 실제를 고백하는 것인가. 앞서 작가가 이번 전시에 붙인 주제가 항해라고 했다. 그리고 항해는 마치 망망대해를 저 홀로 떠가는 배처럼 고독하고 막막한 삶을 비유할 수 있고, 어쩌면 작업이 꼭 그럴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작업실에 틀어박힌 작가는 어쩌면 이런 삶의 비유며 작업의 실제를 객관화시켜 보고 싶었는지도(그리고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전작을 두서없이 스케치해보면, 작가는 철사 뭉치로 새 둥지를 만들었다. 실제로도 자연 서식지를 잃은 새들이 도시로 이주해오면서 공사장에서 물어온 못이며 나무 부스러기로 집을 짓는다는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여기에 생활 쓰레기 화석과 함께 불에 그을린 표지판이 문명의 비인간화를 경고하고, 폭탄 인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을 경고한다. 기계와 동물, 사람과 동물이 결합 된 기계 생명체 혹은 기형 인간도 있는데, 박쥐 인간이 그렇고, 달팽이 인간이 그렇고, 닭 인간이 그렇다. 유전자 변형과 같은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이 만들어낸 괴물들이다(욕망의 외화? 욕망의 형상화?). 여기에 해녀들은 소라며 고동 대신 생활 쓰레기를 채취하고, 젖소의 가슴에는 수도꼭지가 달렸다. 그렇게 작가는 장애와 비장애, 정상과 비정상 문제가 객관적 사실이기보다는 관념과 관습 그러므로 어쩌면 지식의 문제라는 미셸 푸코의 입장에도 동의한다. 다시, 그렇게 디스토피아는 인간의 욕망 속에 있었고, 인간의 관념 그러므로 가치관 속에 있었다. 작가는 그 욕망, 그 관념이 만들어낸 기형과 이형들을 때로 진지하게 그리고 더러는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 
그리고 근작에서 어쩌면 우리 자신의 모습일 수 있는 이 기형과 이형들을 실어 나르는, 삶이라는 이름의 배를 건조했다. 그렇게 선장인 작가가 이 배를 유토피아로 인도하는지 아니면 디스토피아로 항해할지에 대한 판단이 저마다의 몫으로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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