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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의 화가다,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전

고충환



나는 대한민국의 화가다,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전 



주로 70, 80년대로 기억되지만, 한때 작가들이 그리고 각종 그룹전이 미술계를 견인하던 시절이 있었다. 덩달아 작가 중심의 미술운동이 담론생산의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그룹전과 더불어 미술운동과 더불어 활동하던 작가들이 이제 중견이 되고 중진이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세상이 바뀌어 그룹전도 미술운동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고, 덩달아 함께 활동했던 작가들도 소외되었다. 여기에 각종 지원정책에서도 소외되었다. 그동안 시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작가 개인의 일이라고도 하겠지만, 종 다양성이나 건강한 미술 생태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나는 대한민국의 화가다_한국현대미술의 흐름전>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좀 거창하긴 하지만, 한때 한국현대미술의 주역이었던 작가들이 서로 격려하고 다독이면서 미술 생태계에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자리에 모였다. 그동안의 간략한 경과를 보면, 지난 1년간 인터넷 미술 방송 아트원 TV를 통해 인터뷰를 진행한 작가들과 여기에 미술평론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추천한 작가 중 엄선하였다. 아트페어 위주의 미술계에 대한 인식도 한몫을 했다. 작업은 좋은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작업에 열심인데도 불구하고 유독 아트페어에서 소외되고 있는 작가들이다. 면면을 보면 전시에서 빠진 작가들도 없지 않은데, 아마도 다음번 전시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세부를 보면, 지난 2020년 12월부터 올해 2021년 5월에 이르기까지 매달 1회씩 총 6차에 걸쳐 전시가 진행되었고, 매회 참여작가 15명씩 6회에 걸쳐 총 90명의 작가가 전시에 참여했다. 비록 전시 타이틀에는 화가로 명시돼 있지만, 실제 전시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대개 동서양화를 포함한 평면작가들이 많지만, 조각과 영상설치작업 위주의 작가들도 다수 포함하고 있는 것이 사실상 모든 장르를 아우른다. 장르 간 형식 간 경계를 넘나드는 탈장르와 탈형식 현상에도 부합하는 면이 있고, 아마도 이 추세는 앞으로도 더 진작되리라고 예상해봐도 좋을 것이다. 


다른 회차와 마찬가지로 총 15명의 작가가 참여한 6회 전시의 면면을 보면, 크게 인간과 자연 그리고 현실주의 미술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먼저 인간을 소재나 주제로 한 작가로는 김영원, 최인호, 신철, 그리고 노광의 경우가 주목된다. 김영원의 조각은 크게 <중력과 무중력> 시리즈 그리고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로 대표된다. <중력과 무중력> 시리즈는 무중력으로 자연의 섭리인 중력을 거스르는 시대에 대한 비판적 알레고리로 읽히고,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는 내가 혹 그림자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는 존재론적 사유의 결과로 보인다. 동시에 작가는 드로잉선이라고 이름 붙인 퍼포먼스를 통해 이런 존재론적 사유를 확장 심화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가 여럿 있지만, 그중 결정적인 경우가 연민이라고 생각한다. 최인호의 그림이 이런 존재론적 연민으로 물씬하고 뭉클하다. 덜 그린 듯 어눌한 듯 보는 이의 심금을 파고드는 그림이 유격(작게 흔들리다가 점차 크게 흔들어놓는, 감정적 유격?)으로 인해 오히려 완전하다. 그리고 신철은 현대인의 초상을 보여준다. 우리 중 누구일 수도 있는 동시대 보통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파스텔톤의 색감으로 따스하게 감싼다. 그리고 노광이 그린 여체 누드화가 고전적이고 아카데믹한 그림의 전형을 예시해준다. 

그리고 자연을 소재 혹은 주제로 한 경우로 자연에 내재 된 생명력을 그리는 박동인, 인상파를 재해석한 김일해, 자연과 이미지 사이 그러므로 어쩌면 자연 자체와 자연에서 추상 된 이미지 사이에 주목하는 주태석, 사실과 반구상을 넘나드는 송용의 경우가 주목된다. 대개는 자연 자체보다는 이상화된 자연, 자연의 관념 그러므로 어쩌면 관념적인 자연을 그리는데, 역설적으로 자연을 상실한 시대 감정을 반영하고 있다. 좀 과장해 말하자면 현대인은 자연을 상실했다. 전원마저도 도시인의 관점이며 이해관계가 투사된 자연 그러므로 어쩌면 왜곡된 자연, 이식된 자연을 살고있는 상실의 시대에 오히려 그 반향이 크게 다가오는 소재고 그림들이다. 그리고 자연을 소재로 한 조금은 다른 경우로 심영철의 <매트릭스가든>을, 그리고 한기창의 <뢴트겐 정원>을 들 수 있다. 매끈한 표면과 표면에서 번쩍거리는 금속성의 조각과 첨단의 미디어를 접목한 현대판 정원을 예시해주고 있는 심영철은 퍼포먼스를 통해 자기표현을 확장 심화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한기창의 <뢴트겐 정원>은 엑스레이 필름을 재편집하고 재구성한 것이다. 죽음을 상징하는 엑스레이 필름으로 삶을 상징하는 정원을 재구성한다는 역설을 예시해주고 있다. 그리고 정환의 그림이 인간과 자연, 일상과 풍경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아우른다. 평면적이고 단순화된 면 구성과 특유의 질감에 주목해볼 일이다. 

그리고 현실주의 미술로 송창이, 그리고 이흥덕이 주목된다. 1980년대 제도권 미술과 비제도권 미술이 이념대립으로 첨예했던 시대 감정의 한복판에 있던 작가들이다. 그동안 민중미술, 형상미술, 정치미술, 참여미술 등 이름은 바뀌었지만, 삶의 현장에서 예술을 위한 당위성을 건져 올리는 실천 논리는 여전하고 변함이 없다. 그렇게 송창은 DMZ로 표상되는 분단 현실에 주목하고, 이흥덕은 시대와 세태 비판에 주력했다. 특히 이흥덕의 그림은 크게 <지하철> 시리즈와 <카페> 시리즈로 나뉘는데, 각 지옥철로 표상되는 시대 감정을, 그리고 암중모색과 중상모략이 도모되는 음지의 정치학(혹은 정치적 현실)을 반영한다. 그리고 이외에도 관조적인 분위기의 <내적 시선>을 주제로 한 송수련의 그림이, 평면과 입체를 아우르는 한지 콜라주 작업의 서정민의 경우가 주목된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가 열린 장소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경기도 가평군에 소재하는 허수아비마을 에코뮤지엄이다. 허수아비 작가로 알려진 작가 남궁원이 설립한 미술관으로 원래 펜션과 연수원으로 운영되던 공간을 이번 전시를 위해 그리고 이번 전시를 계기로 리모델링 하는 과정을 거쳐서 미술관을 열었다. 본격적인, 이라는 수사적 표현을 덧붙이고 싶은데 앞날을 기약하고 싶은 마음에, 앞으로 더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은 아껴두고 싶다. 

본격적인 미술관으로 성장하고 자리매김하려면 앞으로 할 일이 많다. 무엇보다도 전문적인 학예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그렇게 전시를 학예사가 전담하게 하거나 최소한 분담하는 체제로 가야 한다. 그렇게 학예 팀이 전시를, 그리고 설립자가 공간 운영을 맡는 투톱 체제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주지하다시피 미술관은 사회 환원 사업이고 복지 사업이지 수익사업이 아니다. 관 차원의, 지자체 차원의 일관되고 지속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본 미술관이 초입의 남송미술관과 함께 가평군을 대표하는, 그리고 중장기적으로는 가평군을 넘어서는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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