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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생태예술과 여성성_제22회 한국화여성작가회

고충환



생태, 생태예술과 여성성_제22회 한국화여성작가회


이념에서 몸으로 그리고 다시 생태로  

국내적으로 1980년대는 소위 제도권 미술과 비제도권 미술이 이념대립으로 첨예했던, 이념의 시대다. 각 단색화와 민중미술이 대립한 것인데, 세부적인 차이를 도외시한다면, 단색화는 일본의 모노하(물파)와 서구의 모더니즘 패러다임 그리고 미니멀리즘과 그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민중미술은 이후 각 형상미술, 정치미술, 참여미술로 자기 변신을 꾀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1990년대는 몸의 시대로 알려져 있다. 이념과 관념, 이성과 정신이 지배하던 시대가 가고, 몸의 시대, 감각의 시대, 감성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20세기 초 프로이트가 예고했던 억압된 것들의 뒤늦은 귀환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억압된 것들의 귀환이 가능해진 것은 1980년대 중반 서구로부터 국내에 유입된 후기모더니즘 담론에 힘입은 바 크다. 덩달아 키치와 대중문화 이론, 페미니즘과 성정체성 이론, 오리엔탈리즘과 신제국주의 이론, 이미지의 정치학, 퀴어와 캠프, 생태와 몸 담론, 그리고 유목주의와 같은 타자들의 담론이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담론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고 해야 할까. 

혹자는 담론 이후를 말하기도 하지만(테리 이글턴의 이론 이후), 그마저도(담론 이후를 말하는 방식) 담론의 형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보면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해체와 차용, 탈장르와 탈형식 그리고 탈경계와 같은 탈의 논리, 익명적인 예술작품과 저자의 죽음 논의(타자들의 다중적인 목소리를 포함하고 있어서 저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하이퍼텍스트와 하이퍼링크(임의적으로 시작되고 개연성 없이 끝나는, 그리고 그렇게 마구 연결되고 확장되는)와 같은 미시서사들이 부수된다. 가히 인식론의 지형도를 바꿔 놓고 있다고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세기가 바뀌는 2000년대 이후 시대적 화두는 단연 에코 그러므로 생태다. 세계적으로 화석연료 사용이 증가한 것에 따른 환경오염과 지구생태계 위협이 그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사실상 이를 계기로 삶의 질 전반을 문제시하게 된 것이다. 그 한가운데에 생태가 있다. 생태는 크게 환경과 생태로 나뉜다. 환경은 인간을 중심으로 본, 인간의 관점에서 본 생태(지구생태계 혹은 환경생태계 그리고 나아가 미술 생태계와 같은 하위 카테고리로서의 생태개념)를 말하며, 생태는 인간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포함하는, 자연의 관점에서 본 생태(생명 사상으로 본 상위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생태개념)를 의미하는 것이 다르다. 생태가 환경을 포함하는 상대적으로 더 큰 개념 혹은 카테고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에코 페미니즘, 생태 여성주의 

그 한 갈래가 여성주의와 만나고, 에코 페미니즘 곧 생태 여성주의와 만난다. 여기에 전제가 있다. 여성주의는 동시에 남성주의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여성주의 자체가 타자론의 한 갈래로 파생된 것이고, 제도와 개별주체와의 관계를 따져 묻는 것인 만큼 그 문제의식이나 이해관계가 남성주의의 그것과도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주의가 단순히 여성과 남성과의 편 가르기를 의미하지 않은 이상, 그 자체 남성주의를 포함하면서 대변한다고 보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페미니즘은 크게 본질주의 페미니즘과 다원주의 페미니즘 그리고 에코 페미니즘으로 구분된다. 본질주의는 제도가 여성(그리고 여성성)과 동일시하는 상징체계, 이를테면 이성보다는 감성, 정신 대신 몸, 문명과 비교되는 자연, 달과 물에 반영된 생명을 주관하는 자, 모계 중심 공동체와 땅 신(지모)을 인정한다. 그 상징체계를 여성의 성적 정체성을 반영하는 본질로 보고, 그 본질을 강조하고 극대화하는 것으로 차별화와 변별성을 꾀하는 것이다. 

그 본질이 대개는 자연으로부터 온 것이란 점에서 자연주의 페미니즘이라고도 한다. 대개는 자연(그리고 자연성)을 모티브로 한 경우가 많지만, 때로 자연을 통한 정화의식(애나 맨디에타)과 함께, 그 급진적인 형태가 여성 성기의 도상학(조지아 오키페, 주디 시카고, 니키드 생팔, 트레이시 에민)으로 나타나고, 에브젝트와 에브젝션 아트(담론으로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루이스 이리가레이의 여성적 글쓰기, 창작으로는 키키 스미스)로 나타난다. 저급한 비물질 예술 혹은 신체 분비물 예술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의 성좌에 몸의 논리(아니면 생리?)를 대질시키는 것이다. 외형적으로 제도가 자기에게 부여한 본질을 인정하면서(인정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이를 통해 제도에 저항하는 한편 제도의 전복을 꾀한다는 점에서 질 들뢰즈의 oo 되기, 척하기 철학과도 통한다. 

여기에 다원주의는 더 급진적이다. 남성 주체의 그것과는 구별되는 여성 고유의 성적 정체성이 있다는 발상 자체가 제도의 기획 그러므로 관습의 소산이라고 본다(린다 노클린). 그러므로 성적 정체성에 관한 한 결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른바 성적 비결정론을 주장한다(리사 티크너). 그리고 괴물과 사이보그 그리고 로봇과 같은 성 정체성 논의로부터 자유로운 제3의 성이 그 대안으로서 제시된다. 그 급진적인 형태가 여장남자를 연기하는 모리무라 야스마사,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허무는 매튜 바니의 <크리매스터> 시리즈와 <구속의 드로잉>에서 예시된다. 

그리고 생태 여성주의가 있다. 환경 문제, 생명 사상, 그리고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주장하는 한편, 성적 정체성과 관련해 상대적으로 유연한 입장을 취한다. 그러면서도 많은 부분에서 다원주의의 급진적인 경우보다는 본질주의를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세계의 원형으로서의 아니마(여성성)를 아니무스(남성성)적인 문명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제시한 칼 구스타프 융과, 감성적인 세계의 회복(그리고 어쩌면 치유)을 위해 아니마가 내재하고 있는 문학적이고 시적인(그러므로 예술적인) 가능성에 주목한 가스통 바슐라르에 반영된 입장이다. 참고로 아니마는 여성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원형적인 숨(그러므로 호흡)을 의미하기도 하며, 그 의미가 생태 여성주의가 추구하는 생명 사상과도 통한다. 


한국화여성작가회, 여성성과 생태 

과거에 작가 중심의 각종 그룹전이 미술계를 견인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룹전이 담론 생산의 전초 기지로서의 역할을 도맡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시절이 변해 일정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그룹전을 찾아보기도 어렵고, 그나마 남아있는 그룹전도 명분 없이 명목만 유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협회전도 그렇지만 그룹전 자체가 상당 기간 지속하기 어렵고, 무엇보다도 존재 이유에 대한 분명한 인식 없이 버티기가 어렵다. 기회 있을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협회전이든 그룹전이든 매번 기획전이나 주제전으로 가는 것이 당위성과 함께 지속력을 견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자의식을 한국화여성작가회는 처음(1999년 창립)부터 공유하고 실천해왔던 것 같다. 전시를 열기 전에 별도의 사전 학술 세미나를 통해 주제 의식을 심화하고 학습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아마도 여타의 협회전이나 그룹전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일 것이다. 저마다 작업 성향이 다양한 탓에 주제 그대로의 맞춤 그림이며 전시를 기대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스스로 작업을 되돌아보는 계기는 될 것이기에. 

그동안 세미나 주제를 보면 한국화의 장르적 특수성, 한국화의 본질(선과 붓질), 한국화의 미래(디지털시대의 한국화), 한국화의 전통(고려 불화와 산수화 그리고 사군자의 현대적 변용), 한국화의 정신(와유와 장자의 꿈), 한국적 미의식의 원형(한국인의 색채 의식), 한국현대미술의 단면(미니멀리즘과 단색화), 비교미술사(한국과 일본미술), 그리고 여성주의(한국적 페미니즘, 여성성, 여성성과 자연, 두 겹의 그림자 노동)를 망라한 것이었다. 대략 각 한국화와 여성성으로 나타난 주제 의식이 한국화여성작가회의 정체성에도 부합한다는 생각이고, 이번 주제에 해당하는 생태와 여성성 역시 그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여성주의(그리고 여성성)는 타자론의 한 갈래로 파생된 것이고, 그 언저리에 몸 담론, 생태 담론, 그리고 생명 사상이 있다. 외관상 담론들은 제각각이지만, 그 이면에서 서로 통한다고 봐야 한다. 말하자면 여성성, 몸, 생태, 그리고 생명은 서로 유기적인, 서로 내포하는, 상호 연동되는 관계 속에 있다고 봐야 한다. 보기에 따라서 그것들은 어쩌면 숨처럼 인간의 보편적인 기질이며 본성에 속한 요소이며, 마치 원형질 같은 성분일 수 있다. 자기를 표현하는, 자기를 사는 와중에 이미 발현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 기질이, 그 본성이, 그 성분이 한국화의 장르적 특수성을 만나 어떻게 표현되고 발현되는지, 나아가 어떻게 그림을 변화시키고 개인의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작동하는지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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