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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유희: 콘택트/ 사진 퍼포먼스, 지역주민의 동질성과 연대 의식을 일깨우는

고충환



강북구 공공미술_수용유희: 콘택트/
사진 퍼포먼스, 지역주민의 동질성과 연대 의식을 일깨우는 




먼저 이번 사업이 추진된 배경과 과정을 보면, 사업의 성격과 의의 그리고 사업이 지향하는 목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무방비 상태로 맞닥트린 코로나19는 모든 면에서 삶의 행태며 환경을 바꿔놨고, 그렇게 변화된 환경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을 어려움에 빠지게 했다. 예술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기서 예술가의 매개자로서의 역할에 주목했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구상하고 진행된 사업인 만큼 일시적인 어려움에 처한 예술가를 지원하는 한편, 예술가의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연결고리 삼아 침체된 지역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취지와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서울 공공미술_100개의 아이디어>가 제안되었고, 그중 선정된 일부가 <서울, 25부작>이라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실현될 수 있었다. 그렇게 서울의 각 구 별로 작가 팀이 선정돼 저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빛을 볼 수 있었고, 그 와중에 본 사업이 강북구를 대상지로 진행되었다. 

기본적으로는 강북구민을 대상으로 일일이 인물 초상 사진을 찍고,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모자이크 형식으로 재구성해 하나의 전체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사진찍기는 온 오프라인을 통해 동시 진행되었는데, 온라인의 경우 신청을 받아 참여자가 직접 사진을 올리는 방식으로, 그리고 오프라인의 경우에는 대상지며 대상자를 직접 찾아가는 사진관의 형식을 취했다. 그렇게 수유시장과 강북구립도서관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찾아 발품을 팔았고, 주민들과의 맨투맨 식 접촉과 설득 과정을 통해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그렇게 온 오프라인을 합쳐 근 400여 명에 이르는 주민들의 동의와 참여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 규모는 결코 적은 숫자라고 할 수는 없는데, 각양각색의 삶의 행태를 보여주고 있는 강북주민들의 생활사를 채집하고 재구성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꿈같은 일이지만, 본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차제에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생활사박물관이나 지역 커뮤니티 홀의 건립으로까지 이어져도 좋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당연히 처음부터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상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주민들이란 원래 저마다 개별적인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고, 그런 만큼 공적 장에 자기를 노출 시키는 기회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 심정적인 경우는 차치하고라도 그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절차들, 이를테면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동의서와 초상권 사용 동의서와 같은 행정적인 번거로움을 감수할 사람은 많지 않다. 

결국 설득과 타협으로 예상되는 난관을 타개해 성사시키는 것이 결정적인데,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예술이다. 개별주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심정적인 문제, 공무상으로 맞닥트릴 행정적인 문제, 개별주체의 삶 속으로 뛰어드는 문제, 개별주체를 공론의 장으로 불러내는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가 개인의 작업이 아니라 공공미술인 만큼 참여 주체 간 형식상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문제가 모두 협의가 없으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예술은 소통의 기술이라는, 정의가 요청된다. 예술에 대한 정의가 분분하지만, 이 경우에 꼭 맞는 예술의 정의다. 개인의 작업이나 작품의 경우라고 해도 소통은 꼭 필요한 일이고 과정이다. 그러므로 공공미술은 어쩌면 이런 작은 소통의 계기들이 모여 큰 소통을 이루는 형식실험의 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찾아가는 사진관(그 자체 본 프로젝트의 또 다른 주제어로 봐도 좋을)을 통해 지역주민들을 사진 촬영도 했고 인터뷰도 했다. 사진 작품 전시와는 별개의 영상자료로 만들어 함께 전시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런 인물 초상과 함께 북서울 꿈의 숲 같은, 강북구 삼양동, 송중동, 그리고 수유동 같은 주요 지역 풍경들도 사진으로 담았다. 아마도 지역주민들의 배경 곧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며 삶의 터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모인 인물 초상 사진과 지역 풍경 사진들을 한자리에 모아 편집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으로 최종 작품(총 3 작품)을 만들었다. 편집을 보면, 인물 초상 사진 사이사이에 거리 풍경 사진을 배치해 지역의 주연(주인)에 해당할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삶의 배경이 하나로 어우러지게 했다. 그리고 사진과 사진 사이에는 일일이 특수 아크릴판을 세워 전체적으로 격자구조를 이루게 했고 입체작품을 이루게 했다. 때로 아크릴판에 따로 풍경 이미지를 프린트해 격자 속 인물 초상 사진과 상호 교감하는 효과를 연출했다. 여기에 외부 환경을 반영하는 아크릴판 자체의 성질도 그렇지만, 일부 거울을 도입해 작품 속 사람들과 작품 밖에 있는 관객이 상호 교감하는 효과를 연출했다. 

그렇게 사람들과 사람들이 교감하고, 사람들과 풍경이 교감하고, 나아가 사람들과 관객들이 교감하는, 그리고 그렇게 상호 교감(그러므로 어쩌면 감동)이 퍼져나가면서 확대 재생산되는 시각적, 심리적, 공감적 효과를 연출했다. 그렇게 작품은 저마다 격자 속에 갇힌 개별주체들이지만, 특수 아크릴판을 통해, 그리고 거울 이미지를 통해 서로 반영하고 반영되면서 하나의 커뮤니티로 연계되는 연대 의식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불교에는 업의 거울인 인드라망이 있다. 서로 밑도 끝도 없이 반영하고 반영되는 유리구슬로 만들어진 우주적 망이다.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반영되는 만큼 서로 본(그러므로 거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표면적인 의미고,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나는 곧 너로 귀결되는 이타심과 이타적인 삶이 또 다른 메시지다. 작가의 작업은 이 작품을 대하는 지역주민들에게 그리고 일반 관객들에게 저마다 내면에 잠재된 이런 연대 의식을 그리고 이타심을 그러므로 어쩌면 서로를 향한 위로를 일깨우는 기회며 계기가 될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작가 박민아에게 이 작업이 처음은 아니었다. 전작이 있었다. 벨기에(2017)에서, 그리고 이보다도 먼저 미국(2013)에서. 이번 프로젝트와 똑같지는 않겠지만, 자발적인 참여자를 모집한 연후에 같은 식의 모자이크 편집한 사진 작업을 보여준다. 사진 속에서 사람들은 굳은 표정을 그리고 때로 웃는 표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서로의 연대 의식과 동질성을 확인하고 회복하는 주술적 계기가 느껴진다는 점에서 단순한 사진을 넘어 사진 퍼포먼스로 규정하고 싶다. 피사체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사진에 해당한다면, 사진 퍼포먼스에서는 퍼포먼스 곧 일련의 행위나 과정을 통해 피사체에게 일어난 일, 이를테면 심경변화와 같은 심리적인 사건에 방점이 찍힌다는 점이 다르다. 

덧붙이자면 사람들은 머리에 모형 가발을 쓰고 있는데, 아마도 동질성(예컨대 성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과 같은)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 아니면 소품으로 등장한 것일 터이다. 굳이 가발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각별한 소품들을 초상 사진 작업의 한 부분으로 끌어들인다면 개별적인 그리고 공동체적인 정체성을 대리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끝으로 <수용유희>라는 주제에 주목하고 싶다. 작가가 제안한 기준에 따라 참여자가 사진 촬영을 수용해 주면, 그것(사진 찍는 행위)을 다시 작품으로 만들고 함께 즐기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지금은 꼭 그렇지도 않지만, 옛날부터 함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진을 매개로 함께 즐긴다는 유희적인 측면이 있었다. 평소 뻣뻣한 사람에게 웃음을 유도하면,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애써 웃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사진은 어쩌면 처음부터 하나의 사건이고 퍼포먼스였다. 심리적 떨림과 함께 서로에게 마음이 열리는. 

여기에 수용미학이 있다. 예술가에게 초점을 맞춘 생산자 중심의 미학과는 비교되는, 예술작품을 대하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향수자, 그러므로 수용자 중심의 미학이다. 보들레르는 진정한 예술가는 창작 주체 자신보다는 오히려 딜레탕트 곧 예술애호가라고 했다. 예술을 보고, 즐기고, 향유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가 하면 마르크스는 모든 사람이 잠재적인 예술가라고 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욕망을 내재하고 있는데, 그 욕망을 잠재적인 예술가 기질로 본 것이다. 

그렇게 <수용유희>는 사진 퍼포먼스를 매개로 지역주민들의 동질성과 연대 의식을 회복시켜준다는 점에서, 그러므로 사람들 저마다 잠재된 예술가 기질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수용자 미학에 초점이 맞춰진 공공미술의 좋은 선례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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