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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민영/ 공간여행, 이상적인 공간을 찾아서

고충환



석민영/ 공간여행, 이상적인 공간을 찾아서 


고충환 미술평론가

LAND series. 존 버거는 풍경화의 태동에 대해 독특한 해석을 제안한다. 풍경화는 원래 영주가 영지를 표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존 버거의 말 그대로를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자본과 권력의 맥락에서 풍경화를 재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도 도구적 이성의 한 갈래인 도구적 자연 이후 자연은 인간욕망의 대상이었고, 자본주의 이후 그 욕망은 공공연한 현실이었음을 생각하면, 풍경(화)에 대한 존 버거의 해석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그려놓고 있는 랜드 시리즈는 건널목과 같은, 도로 표시와 같은 제도의 기호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관리되는 풍경 그러므로 제도적 풍경에 대한 존 버거의 해석을 재확인시켜준다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작가는 공간과 땅에 대해 내 것이라는 표식을 해두고 싶다고, 그 공간과 땅은 나만의 추억과 기억을 저장하는 비밀창고와도 같은 곳일 것이라고 고백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영역이 있는데, 아마도 그런, 의식의 저장고를 의미할 것이다. 저만의 추억, 저만의 기억, 저만의 향수, 저만의 파토스, 저만의 광기로 상실의 시대를 건너가게 해주는 힘을 충전 받는 의식(아니면 무의식) 공간을 의미할 것이다. 표시 행위의 사회(학)적 의미(피에르 부르디외, 조르조 아감벤)를 존재론적인 층위에서 발견한 경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STAY series. 내가 공간에 집착하는 까닭은 불안정한 일상에서 안정감을 찾으려는 것으로, 안도하는 마음 같은 것이고, 일종의 정신수양 같은 것이라고 작가는 고백한다. 이러한 작가의 고백은 여기가 아닌 어디라도, 라고 얼버무린 보들레르의 독백과도 통한다. 우리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이상사회와 이상 공간을 꿈꾼다. 그러나 그런 사회도 그런 공간도 이 세상에는 없다. 그렇다고 꿈꾸기를 그만둘 수도 없다. 그러니 머릿속으로나마 꿈꿀 수밖에. 유토피아는 그래서 있는 것이다. 원래 혁명을 매개로 더 나은 사회의 도래를 꿈꾼 이상주의자의 비전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지금 혁명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도 사람들이 꿈을 꾸는 이상, 유토피아는 여전히 유효하다. 

작가의 그림은 유토피아(그러므로 이상 공간)로 가는 방향을 지시하고 길을 열어준다. 그 길에는 첩첩한 미로가 기다리고 있고, 만다라(우주를 도해한 지도)가 기다리고 있고, 시작도 끝도 없는 뫼비우스의 띠가 기다리고 있다. 그 위에서 우리는 길을 잃을지도 모르고, 우주를 헤맬지도 모르고, 같은 곳을 맴돌지도 모른다. 아마도 유토피아는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마다의 마음속에서 유토피아를 찾아보라는 주문일 것이다. 니체의 아폴론적 충동에서처럼 저마다 마음속에 유토피아를, 그러므로 내적 질서의 성소를, 다시 그러므로 이상 공간을 지어야 한다는 주문일 것이다. 


스토리텔링 아키텍처, Alvaro SIZA. 평소 공간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건축가의 건축에서 작업을 위한 영감을 얻는다. 건축가는 말하자면 작가의 예술을 위한 뮤즈인 셈이다. 그렇게 그동안 안도 다다오, 프랭크 게리에 이어 2019년부터는 포르투칼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건축적 공간을 연구하고 해석하고 자기화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건축계의 음유시인으로 알려진 시자는 흐르는 강물처럼 풍경의 부분이 된 건축으로 유명하다. 건축가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다, 다만 실재를 변형할 뿐이라고 시자는 말한다. 여기서 실재는 자연을 의미하고, 변형은 해석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을 해석해 건축에 적용한다고 보면 되겠다.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선 자연에 대한 앎이 전제되어야 한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 다만 곡선이 있을 뿐이라고 진즉에 훈데르트바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자연은 유기적인 곡선으로 대변되고, 상호 이질적인 부분과 부분이 무한 연장되고 확장되는 구조로 특징되고, 무엇보다도 우연하고 무분별한 생명력을 내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시자의 건축에 직선이 영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유기적인 곡선이 부분과 부분을 연장하고 확장하는 구조를 매개로 자연의 본성에 부합하는 건축을 예시해주고 있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이처럼 시자의 건축을 해석하고 그림으로 옮긴 작가는 강약 조절의 흐느적거리는 터치감에서 유래한 미완성, 서투름에서 비로소 완성을 느낀다고 했다. 서투른 미완성이라고는 했지만, 사실은 자기 외부를 향해 무한 확장되고 연장되는 시자의 그러므로 자연의 열린 형태를 의미할 것이고, 이로써 무엇보다도 자연의 본성 그러므로 우연하고 무분별한 생명력을 암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스토리텔링 아키텍처, Tadao Ando. 나는 건축이 너무 많이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침묵을 지키고 햇빛과 바람으로 가장하여 자연에 맡겨야 한다고 건축가는 말한다. 건축이 침묵해야 한다는 점에서 미니멀리즘을, 건축이 자연을 가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자연주의를 떠올리게 된다. 미니멀리즘과 자연주의의 종합이라고 해야 할까. 안도 다다오는 물의 건축가로 알려져 있고, 노출 콘크리트 건물로 유명하다. 노출 콘크리트 건물 안에 빛을 끌어들여 공간을 무한 확장하고, 물을 끌어들여 수면에 반영된 자연을 들여놓는다. 여기서 노출 콘크리트 건물은 말하자면 침묵하는 건축, 헐벗은 건축, 그러므로 어쩌면 자연으로 환원되는 건축을 지향하고, 건축 안에 들여온 빛과 물을 매개로 해서는 자연에 연장된 건축을 실현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 건축을 중심으로 보면, 빛과 물과 물에 반영된 자연은 건축에 속한다기보다는 자연에서 건너온 것들이다. 보이는 공간이 보이지 않는 공간을 암시하는 것인데, 건축을 해석한 작가의 작업이 주목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작가는 건축구조에 스며든 빛과 물, 바람과 공기, 그리고 여기에 어쩌면 사사로운 기억과 같은 비가시적인 것들이 상호작용하는 암시적인 공간을 그려놓고 있었다. 

Rever F series. 작가는 건축에서 영감을 받고, 건축가는 작가의 뮤즈다. 평소 공간에 관심이 많은 작가에게 건축의 구조가, 구조에 대한 해석이 작업을 견인하는 원동력이라고 해도 좋다. 그리고 작가는 근작에서 작업에 음악을 끌어들여 소재의 확장을 꾀한다. 향후 작가의 작업에서 영감의 원천이 건축에서 음악으로 확장 심화하는 계기로 봐도 좋을 것이다. 

사실 작업할 때 음악을 듣는 작가들은 많다. 의식하고 듣는다기보다는 듣는지도 모르고 듣는 사람들이 많다. 음악과 미술, 청각 기호와 시각 기호가 상호 호환되는 것인데,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공감각이다. 공감각은 특히 형상이 있는 미술보다는 추상미술에서 더 효과적인데, 추상화가 칸딘스키가 공감각을 처음으로 제안한 것이나, 음악을 가장 추상적인 예술로 보는 정통 미학의 입장이 그렇다. 음악은 이처럼 추상적인 예술임에도 어떤 의미 내용을, 어떤 서사를 암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죽음을 부르는 레퀴엠이나, 영웅의 일대기를 기린 교향곡, 계절을 노래한 사계나 봄의 제전 같은 경우들이 그렇다. 

작가의 작업에서 보면, 작가는 러시아의 작곡가 알렉산드르 스크리야빈의 피아노협주곡을 그림으로 옮겼다. 음악에서의 느낌을, 여운을, 인상을, 암시를, 영감을 그림으로 옮겼다. 작가는 1, 2악장에서 공감각을 바탕으로 몽환적이며 신비로운 공간으로 초대를 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3악장에서는 주제들이 극심한 대비를 이루면서 황홀경으로 치닫는 것 같은 강렬한 표현성을 얻었다.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공간으로 초대받은 느낌이 공간과 구조에 맞춰진 종전 작가의 작업과의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그 공간은 아마도 연상작용과 상상의 소산이겠으나, 어쩌면 꿈에 본 느낌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근작에서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데,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공간영역을 넘나들던 종전 작업에서의 경향성을 또 다른 형태로 변주한 경우로도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다른 작업에서 볼 수 없는 강렬한 표현성 역시 주목해볼 일이다. 몸이 부르는 대로 감각이 이끄는 대로 그린 것 같은, 작가의 내면적 파토스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것 같은, 우연하고 무분별한 생명력이 자기표현을 얻고 있는 것 같은 표현성이 강한 그림이 구조에 맞춰진 엄정한 그리기와는 또 다른 회화적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그렇게 작가에게 꿈도 음악도 그리고 여기에 공간 연구도 어쩌면 앙드레 말로의 상상의 미술관이나 보르헤스의 상상의 도서관에서처럼 다른 세계로 건너가게 해주는, 그러므로 공간 이동하게 해주는 통로와도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Foundation Works. 건축에는 기초가 있어야 한다. 기초 없이 지은 집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비단 건축에만 해당하는 경우는 아닐 것이다. 모든 일에는 기초가 있어야 하고,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 그러므로 흡사 건축에서의 기초공사를 재현해놓고 있는 것 같은 작가의 작업이 끊임없이 자기를 초기(그러므로 기초)로 되돌려놓고 있는 자기반성적인 경향성을, 자기에게 거는 주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설치작업의 형태로 나타난 작업을 보면, 동그란 형태의 테이프의 종이 속대를 구조를 위한 축 삼아 그 주변에 제스모나이트를 한 겹씩 부어 레이어를 만들어 굳힌 사각 형태의 틀을 보여준다. 제스모나이트는 콘크리트 대안으로 개발된, 건축 내외장재로 사용되는, 수성 아크릴 복합 레진 성분의 친환경 신소재라고 했다. 그 구조가 그 위로 건축을 올리기 위한, 영락없는 기단 같아서 평소 작가의 세심함 관찰력 혹은 남다른 상상력을 떠올리게 된다. 

사각의 평면으로 나타난 표면에는 이런저런 기하학적 형태의 추상적인 기호들을 그려놓고 있는데, 아마도 건축에서의 최소한의 구조 그러므로 어쩌면 건축의 원형적인 형태를 조형한 것일 터이다. 보기에 따라선 그 최소한의 형태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회화를 보는 듯도 한데, 비록 건축의 구조를 표현한 것이지만, 절대적인 형태를 지향하는, 절대적인 공간에 맞춰진, 건축을 매개로 한 작가의 작업에 대한 태도가 반영된 경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근작에서 각 안도 다다오 연구, 알바로 시자 연구, 스테이 시리즈, 랜드 시리즈, 파운데이션 워크, 그리고 여기에 최근 음악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Rever F series와 같은 주제별 작업을 내놓고 있다. 그중 건축가 연구 작업은 공간과 구조를 해석한 일련의 작업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심화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음악과의 콜라보 작업 역시 또 다른 버전으로 변주될 가능성을 점쳐 봐도 좋을 것이다. 
형식적으로 작가의 작업은 공간과 구조를 해석한 드로잉과 평면작업, 입체구조물 형식의 설치작업, 그리고 여기에 특이하게도 움직이는 구조물을 형식실험하고 있다. 건축가를 해석한, 공간과 구조를 해석한 평면작업과 입체작업을 구조물에 덧댄, 그렇게 평면과 입체와 구조가 한 몸을 이룬 구조물 작업이다. 여기에 구조물 밑에는 바퀴가 달려있어서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도 있다. 조각에서의 환조처럼 사방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가변설치로 인한 효과적인 공간 연출이 가능해 작가의 작업에 또 다른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 형태로만 예시된 종전 방식과 비교해볼 때, 건축에 대한 작가의 해석과 상상력과 비전을 더 실질적인 형태로 구현한 경우여서 향후 달라질(더 진화된?) 작가의 작업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이 일련의 작업을 통해서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 공간을 추구한다. 비록 지향하는 형태와 비전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우리 모두 저마다 이런 이상 공간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작업은 물론 작가 개인의 작업이지만, 동시에 어쩌면 우리 모두 꿈꾸는 공간을 대신 꿈꾸어주고 있다고 해도 좋다. 꿈이라고 해도 좋고, 이상 공간이라고 해도 좋고, 유토피아라고 해도 좋다. 그리고 작가는 묻는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공간은 어떤지, 공간의 안부를 물어온다. Map out your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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