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2020년대 박물관학을 위하여

김영호

2020년대 박물관학을 위하여  

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사가)

   박물관은 정치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정치란 ‘사회를 위한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의 정의를 통해 보았을 때 그렇다. 근대 이후 박물관의 탄생은 언제나 정치적 목적을 따르고 있었다. 세계 최초의 근대적 박물관으로서 루브르의 출범은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적 가치와 연계되어 있었으며, 영국이 자랑하는 브리티쉬 뮤지엄 역시 대영제국의 식민지배의 이념적 가치가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박물관으로 1909년 창경궁에 문을 연 제실박물관은 위기에 처한 황실의 위상을 자국의 문화유산에서 세우기 위한 근대적 각성의 결과였다. 아쉽게도 그 노력은 외세의 침탈에 의해 변질되고 말았지만 정치적 공간으로서 근대 박물관의 첫 시도가 우리 손에 의해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박물관을 정치와 연계해 이해하는 일이 왜 필요한가. 박물관의 본래적 기능이 정치의 보편적 가치와 목표에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데이비드 이스턴의 정치에 관한 정의에 박물관을 주체로 세워 본다면 흥미로운 결론에 이르게 된다. 박물관 정치란 ‘사회를 위한 가치의 권위적 배분을 문화유산을 통해 실천하는 일’이다. 
   21세기 박물관 활동은 동시대의 지식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1980년대에 등장한 뉴뮤지올로지(New Museology)는 21세기 박물관학을 위한 하나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피터 버고(Peter Bergo)에 의해 주창된 뉴뮤지올로지는 지배 이념과 지배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 박물관에 대해 비판하고, 인종·민족·다문화·타자 따위의 동시대 사회적 이슈에 능동적으로 대응한다. 또한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위한 박물관의 폐쇄성에서 벗어나 공공성과 다양성의 가치를 모색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다.    
   뉴뮤지올로지의 등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식민지배 이념의 산실인 영국을 중심으로 한 구미지역의 역사적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를 고려할 때 식민지배의 고초를 겪으며 성장한 우리나라의 문화적 가치 규정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문화적 가치는 주체의 맥락에서 벗어나 타자와 만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보편성이 주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뉴뮤지올로지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 동참하는 일은 의미가 있다. 
   2018년 1월 현재 우리나라 정부가 내놓은 박물관 수는 1,124개소에 이르고 지난 2019년 6월에는 2023년까지 186개의 박물관을 더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법제를 비롯해 조직과 제도의 현실은 아직도 녹록지 않다. 21세기 지식문화 중심의 글로벌 경쟁시대에 슬기로운 박물관 정치의 대계를 세우는 일은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라 할 수 있다. (사)한국박물관학회의 차기 회장으로서 국내외 박물관학 연구단체들이 ‘사회를 위한 가치의 권위적 배분을 문화유산을 통해 실천하는 일’에 함께해 주시기를 합장하고 바란다. 
(출처: 한라일보, 「김영호의 월요논단」, 2019.12.23.일자)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