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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 대지를 향해 열린 창

윤진섭



대지를 향해 열린 창
                       
                                        
윤 진 섭(미술평론가)
                                 
 태초에 행위가 있었다. 언어가 탄생하기 이전이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행위는 과연 무엇일까? 김근태는 그것을 찾고자 한다. 흙을 통해서이다. 흙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의 열망은 도자기의 원료가 되는 석분(石粉)을 바인더에 개서 캔버스에 붓는, 어찌 보면 가장 원초적이며 설명이 필요치 않은 행위를 통해 구현된다. 여기서 설명이 필요치 않은 이유는 원초적 행위란 언어 이전, 즉 언어를 초월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서두에 “태초에 행위가 있었다”고 한 이유이다. 

 석분을 묽게 반죽해서 캔버스에 붓고 이리저리 캔버스를 기울여 가며 흘리는 가운데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가는 김근태의 작업은 따라서 작가의 의지는 작용하되, 사물이 스스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는 다시 말해서 ‘사물이 스스로 말하도록 하라’는 작가의 의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물이 스스로 말하도록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이름인가? 그것은 작가라고 하는 인식 주체의 포기가 아닌가? 아니,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작가의 의식마저도 놓으려고 하는 가장 소극적 형태의 ‘적극적’ 언명이 아닌가? 

 이 역설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른바 마음속에서 이는 정념의 분출을 억제하고, 사물 스스로 빛을 발하도록 하는 관대함이 아닌가? 김근태의 작업에서 ‘물성(物性)’이 중요한 이유이다. 물성이란 사물이 본래 지닌 성질을 이름이니, 전통적인 회화에서는 그 존재가 폄하(貶下)됐던 것이다. 서양 회화의 긴 역사를 통해 볼 때, 이 물성의 표현은 명암법에 의존하여 명맥을 유지해 왔으나, 19세기 초반 카메라의 발명을 계기로 위기를 겪는다. 

 플라톤에 의하면 그림자의 그림자에 해당하는 회화는 대상을 재현함으로써, 없지만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허상에 불과하다. 그것은 원상(原象)인 이데아로부터 3단계나 떨어져 있어 그만큼 진리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보았다. 가령, 요하네스 페르미어(Johannes Vermeer)의 <우유를 따르는 하녀>(캔버스에 유채/c.1660)에 보이는, 하녀가 입은 거친 옷의 질감 묘사는 재현적 기법에 의한 물성의 표현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환영에 불과하다. 그림 속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그렇기 때문에 거짓을 유포하는 시인과 화가들은 공화국에서 추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주의풍의 회화에서 위계는 관찰자가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에 따라 이루어진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수직적 위계가 형성된다. 회화에서 공간 원근법은 가까운 곳은 크고 뚜렷하게, 먼 곳은 작고 흐릿하게 표현하도록 정한 ‘시각적 합리화’의 장치이다. 반면에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보이는 주대종소법은 신분에 따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구분하고 이를 크기에 따라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즉, 신분이 높은 왕족이나 귀족은 크게 그리고 신분이 낮은 평민이나 노예들은 작게 표현했다.  

 그러나 같은 눈높이에서 대상을 바라보면 수평적 관계가 형성되면서 어떠한 위계도 성립되지 않는다. 인간적 관계도 평등의 관점에서 파악하면 같은 크기로 표현된다. 마치 민주주의 정치제도에서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유권자가 고르게 한 표를 행사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김근태는 이러한 평등의 관점을 중시한다. 사물과 사태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수평적 시선이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수십 년에 이르는 오랜 시간 동안 간화선(看話禪)에 심취, 수행한 그의 이력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질문 : 모든 것을 수평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답변 : 저와 에디터님을 예로 들어보죠. 사실 우리 사이에는 시간의 간극이 매우 큽니다. 하지만 그 간극을 일일이 세어보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그냥 다 걷어버리면 어떨까요? 저도 언제든 당신이 될 수 있고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게 아니겠어요? 역지사지(易地思之)와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에디터님께 함부로 할 수 없게 되는 거죠. 이런 생각을 모두에게 적용하는 것이 수평적 바라보기의 첫걸음입니다. 이를 발전시키면, 이미지를 포착해 그리는 화가로서 저는 ‘본다’는 행위와 그 의미 역시 수평적으로 찾아보고자 했어요.”
NOBLESS, 2021년 1,2월호 인터뷰 기사 중에서

 그래서 김근태가 고안해 낸 것이 이른바 ‘수평적 그리기’이다. 그것은 캔버스를 눕혀서 그리는 방식이다. 그는 이 기법을 2000년 성곡미술관 주최의 [올해의 작가전]에 초대를 받았을 때 처음 시도했다. 묽게 갠 석분 반죽을 옆으로 눕힌 캔버스에 쏟아부은 뒤 이리 저리 캔버스를 기울이며 반죽을 흘리는 특유의 기법이었다. 그것은 물감을 작가의 의식으로부터 해방시킴과 동시에 물감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일종의 의식(儀式)과도 같은 동작이다. 김근태의 이러한 방법론은 작가가 수행하는 예술적 행위의 최소화임과 동시에 거꾸로 사물이 행하는 능동태임에 분명하다. 세계미술사에 캔버스를 눕힌 상태에서 그린 최초의 선례로는 이른바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에서 ‘흘리기(Dripping)’ 기법을 들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좇아 폴록은 넓게 펼친 캔버스 천 위를 누비며 물감을 흘렸다. “나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라는 폴록의 유명한 발언은 무의식 상태에서 그림을 그렸음을 암시한다. 이른바 이젤 페인팅의 종언이다. 

 김근태 역시 캔버스를 눕힌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지만, 무의식 상태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명료한 의식으로 그린다. 그는 죽처럼 묽은 석분을 캔버스에 가득 붓고 단 한 번에 작업을 마친다. 서예의 ‘일획론(一劃論)’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마치 물줄기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제 자리를 찾아가듯, 자연의 이법에 재료를 맡기는 것이다. 이른바 ‘물성’의 드러남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김근태가 하는 일이 있는데, 석분 반죽이 흐르다 뭔가에 걸려 나아가지 않을 때 붓으로 길을 터주는 것이다. 이 최소한의 개입이야말로 그의 작품을 가리켜 ‘그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요인인 것이다. 만일 이 최소한의 행위조차 없다면 김근태의 작업은 다른 명칭을 고안해야 할 만큼 회화의 개념에서 벗어난 상태에 머물게 될 것이다.  

 
Ⅲ.
 도예는 흙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가장 원초적인 예술장르이다. 도예가는 물레 앞에 앉아 그릇의 모양을 만들며 시종일관 흙을 만진다. 이때 가장 강조되는 것이 이른바 ‘촉각성’이다. 

김근태는 도자기 재료인 석분을 다룬다. 그의 작업실 바닥은 흘러서 굳은 석분 죽의 흔적들로 인해 온통 어지럽다. 단 한 번의 들어부음으로 이루어지는 김근태의 석분 죽 작업은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고행에 가까운 캔버스 밑바탕 조성작업이 필수이다. 그것은 40여 년에 달하는 그의 화업(畫業)이 이루어 낸 개가이다. 그 작업을 둘러싼 미묘한 노하우는 오직 그 만이 안다. 색과 질감, 석분 반죽의 알맞은 상태(점도), 날씨, 습도 등등 자연에 기반을 둔 최상의 작업을 위한 제조건을 둘러싼 노하우의 비밀은 선수행(禪修行)을 연상시키는 긴 고행과 수련에서 온 것이다. 그의 작업을 ‘단색화(Dansaekhwa)’란 언어적 울타리 안에 가두기에는 주저되는 지점이 바로 이 부근이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김근태의 작업은 과연 어디를 지향하는 것일까? 달항아리로 대변되는 조선백자의 색과 피부의 질감을 지향한다는, 단색화에 흔히 덧씌워지는 일반적 수사(修辭)는 말 그대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수식어들은 단색화를 민족주의의 프레임에 가둘 위험이 있다. 김근태의 작업에서 보듯이 단색화는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미적 보편성을 위해 더 치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Ⅳ.
 이른바 기하학주의와 표현주의를 넘어서는 것. 서구미술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른바 후기 인상주의의 폴 세잔(Paul Cezanne)과 폴 고갱(Paul Gauguin)에서 분파된 기하학적 추상과 추상표현주의의 맥락(Alfred H. Jr. Barr)에서 벗어난 ‘제3의 길’을 조심스럽게 타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관건은 시각으로부터 벗어나 ‘촉각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렇다. 시각은 곧 포획이다. 르네상스 이후 ‘서구의 근대성(modernity)’이 취한 전략이다. 르네상스 시기 원근법의 발명 이후, 서구는 계몽주의의 급물살을 타고 세계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서구 제국주의는 원근법의 시각적 포획의 원대한 계획(project)에 따라 타자를 정복했다. 그것은 세계에 대한 강자적 의지의 적극적 표명이자 행동이었다.

 김근태는 시각이 아닌 ‘촉각’에 주목한다. 물론 작품을 보는 행위는 시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그의 작업에서 보다 중요한 요소는 이른바 ‘촉각성’이다. 그의 작업에서 상호주관성과 생태적 관점이 돋보이는 이유이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김근태는 자연에 주목한다. 그가 자연에 주목하는 이유는 자연의 변하지 않는 속성에 있다. 구름, 하늘, 바위, 산, 파도 등등 자연을 이루는 요소들에 대한 꾸준한 관찰과 접근을 통해, 그 자신의 말을 빌리면 ‘자연의 진리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자연의 이법(理法)에 대한 인간의 거역으로 빚어진 최근의 코로나 사태에 비쳐 볼 때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궁극적으로 김근태의 <담론> 연작은 세계가 김근태의 신체를 빌려 행하는 인간의 오류에 대한 경고이다. 그것은 자연적 요소를 통한 의미의 환기로 다가온다. 김근태가 행하는, 흙을 비롯한 자연적 요소에 대한 환대는 그 반대급부로 자연의 황폐화 현상과 그로 인한 자연의 보복과 같은 재앙을 머금고 있다. 시인을 비롯한 예술가의 예지가 빛을 발하는 부분은 바로 이와같은 지점에서이다. 김근태의 작업은 ‘침묵의 언어’에 속한다. 도무지 말이 없다. 그렇다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침묵은 금’이라는 잠언을 상기할 때, 그의 침묵은 달변보다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특히 요즘처럼 요설과 궤변, 허사(虛辭)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는.
 

Ⅴ.
 같은 인터뷰 기사에서 김근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미지를 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중략) 우리가 정말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보고 판단하는 건 또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눈에 비치는 대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중략) 우리가 작품을 마주했을 때 보는 화면에서 직관적으로 무엇인가를 느끼겠지만, 결국 이를 보게 만드는 힘, 볼 수 있는 창구는 무엇인지 항상 고민해야 하는 겁니다.”
NOBLESS 2021년 1,2월호 인터뷰 기사 중에서

 ‘볼 수 있는 창구’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가. 우리는 김근태의 ‘신체성’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화가란 자신의 꿈과 비전을 관철하기 위해서 세계에 신체를 빌려주는 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르네상스 시기 사람들로 하여금 원근법적으로 세계를 보게 하기 위해 자신의 눈(신체)을 세계에 ‘빌려준’ 인물이다. 르네상스 이후의 회화가 ‘창(窓)에 비유된 사실을 감안하면, 이제 인류는 무엇을 통해 세계를 봐야 할 것인가? 나는 그것이 다름 아닌 ‘손’과, 바로 그 손의 감각인 ‘촉각’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촉각이 연상시키는 ‘대지’, 그 풍요로운 어머니의 땅을 돌아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그렇다면 김근태의 작업이 바로 세계의 지반이요, 모태인 흙으로부터 온 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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