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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후 / 치유로서의 그림

윤진섭



치유로서의 그림 

윤 진 섭 (미술평론가)



Ⅰ.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이 있다. 뭔가에 미치지(狂) 않으면, 미치지(及) 못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인간 정신의 지고한 상태를 가리킨다. 무슨 일에 빠져 몰입된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상황이다. 예컨대 바둑에 미쳤거나 어떤 기예에 빠졌을 때 우리는 이 말을 쓴다. 그러나 좀 더 이 글의 논지에 가까운 예를 들면, 그림에 비유할 수 있다. 이 경우, 어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미친 듯이 빠져들지 않으면 경지에 오르지 못함을 뜻한다. 

 내가 보기에 김길후가 딱 그런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그림에 미친 사람이다. 약간 과장하면,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온통 그림 생각에 젖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다작(多作)의 작가라고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50호 정도 크기의 작품을 단 10분만에 그릴 정도다. 아주 빠르면 5분, 늦어봐야 30분이다. 그러니 그의 작업실은 넘쳐나는 그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화면이 온통 시커먼 검정색 일색(一色)으로. 1) 

 미국의 서부영화를 보면 권총을 빼는 주인공의 솜씨가 놀랍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여러 명의 적을 쓰러트린다. 일본의 한 사무라이 영화에는 주인공인 맹인 검객이 휘두르는 칼에 적병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장면이 나온다. 어디 그뿐인가. 1950년대 자유당 시절 명동거리를 누빈 협객 히라소니(본명 이성순)의 싸움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치는 장면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맞아서 쓰러진 깡패들이 거리에 즐비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세상에 떠돈다. 

 작가의 작품을 논하는 글에 웬 싸움 이야기? 김길후에게 있어서 일획(一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길후는 오랜 기간 검정색과 흰색이 대비되는 단색조의 그림을 그려왔는데, 인물화가 주종을 이룬다. 그것도 거의 전부가 자화상이다. 김길후는 거울도 보지 않고 내면의 이미지를 이끌어낸다. 머리를 박박 깍은 모습이 누가 봐도 영락없는 김길후 자신이다. 

 일획에 검정과 흰색이 자아내는 콘트라스트가 강한 화면 효과는 김길후 그림의 특징이다. 얼핏 보면 비숫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서로 다른 미묘한 차이가 있다. 김길후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 차이를 변별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때 그때 작용하는 미묘한 마음의 변화에서 온다. 그럴 때, 그 서로 다른 마음을 포착해서 표현하는 구상력이 얼마나 특출한가 하는 것이 탁월한 예술가와 그렇지 못한 예술가를 구분하는 시금석이 된다. 그것은 오로지 작품으로만 판명되는데, 김길후의 경우는 물론 전자에 속한다. 
 

Ⅱ. 
 김길후는 허공에 긴 칼을 휘두르는 검객일 수도 있고, 흐드러지게 한 판의 춤을 추는 춤꾼일 수도 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흔적이 있느냐, 없느냐’일 뿐이다. 검객이나 춤꾼은 행위를 드러내지만 흔적은 남지 않는다. 그러나 김길후는 화가이기 때문에 붓을 들어 행위를 하고 흔적을 남긴다. 그런 의미에서 김길후는 붓을 들고 흐드러지게 진한 춤을 추는 무당(shaman)이다. 신명에 빠져 붓춤을 추면서 잃어버린 먼 태곳적의 ‘영기(靈氣)’를 불러내고자 한다. 예술이 지닌 치유의 기능을 초혼(招魂)을 통해 오늘 이 자리에 임재하게 하는 샤먼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앞에서 잠시 살펴본 것처럼 숱한 덧칠로 이루어지는 서양의 그림과는 달리 김길후의 그림은 일획으로 이루어진다. 머리 속에 떠오른 영감과 이미지를 순식간에 화면에 옮긴다. 그것은 찰라에 이루어진다. 머뭇머뭇하다가는 이미지가 사라지기 때문에 순식간에 포착하여 일획으로 단번에 그려내야 한다.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지는 그 동작은 서부영화에 나오는 총잡이의 속사(速射)를 닮았다.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한국의 사극에 등장하는 검객의 칼솜씨에 더욱 가깝다. 그것이 곧 일획이다. 한 번의 결정적인 내리그음이 곧 일획인 것이다. 그것은 고도의 신체적, 정신적 수련에서 나온다. 

 왜 오늘의 상황에서 일획론이 그처럼 중시돼야 하는가? 다름을 위해서이다. 2) 수많은 같음의 범람 속에서 다름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필법이 필수적이다. 1999년 김길후는 제2의 질적 도약을 위해 수많은 작품을 불태운 바 있다. 3) 그리고 거듭 태어났다. 이제까지 그려 온 방식이 아닌, 전혀 새로운 방식의 그림을 위해 그 이전에 그린 드로잉, 수채화, 유화, 파스텔화 등등, 내용상으로는 구상화를 비롯하여 추상화, 그리고 80년대 당시 한창 유행하던 민중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그림을 폐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화풍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의 말에 의하면 “간단명료한 것으로 승부를 걸자”는 취지로 검정과 흰색을 주조로 한 종이 그림에 빠져들었다. 그 기간이 한 오 년쯤 되었다. 그러다가 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주최한 [삶의 풍경]전(2002.8.19-9. 17)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이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그동안 한국 미술계가 지나치게 추상화 일변도로 전개돼 왔으며, 미디어, 영상, 개념, 설치미술 등등에 편중돼 왔다고 판단, 소외된 장르인 구상회화에 주목한 기획전이었다. 김길후 4) 는 황영자, 이흥덕, 임만혁, 공성훈, 남기호 등등 다른 구상화가들과 함께 이 전시회에 참가, 2백호에 달하는 대작 5점을 출품했다.  김길후는 이 전시회를 계기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기 시작한다. 


Ⅲ. 
 김길후에게 있어서 새로운 출발이란 과연 무엇이었던가? 일획에 의한 검정색 일변도의 화풍이었다. 2천 년 무렵부터 태동된 이 화풍은 김길후의 작업에서 이제까지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전환기적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가령, 2천년대 초반에 나타난 <검은 눈물(Black Tear)>을 보자. 이 연작은 김길후의 전체적인 검정색 그림의 태동을 의미한다. 그것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이른바 ‘금욕’의 상징으로서의 검정색은 한편으로는 그 반대급부로서 모든 것에 열려 있다. 색채학적으로 이야기하면 모든 파장의 색을 흡수하는 포용의 색인 까닭이다. 그 검정색을 어떤 연유로 자기 작업의 주조색으로 정했는지는 딱히 알 수 없으나, 다음과 같은 진술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중학교 때  ‘고전읽기’ 시간은 흥미로웠다. 그때 만난 ‘명심보감’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마음을 밝혀주는 보배로운 거울’을 자주 읽어서일까, 나는 금욕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마흔이 넘으면서 인생에는 정해진 법칙이 없다는 걸, 도덕적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혹여 그 억압이 그림으로 분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김동기(김길후), <작가노트> 중에서- 
 

 김길후가 검정색을 주조로 삼은 이유의 이면에는 이처럼 금욕주의적인 사고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것은 김길후가 그림을 일종의 수행으로 생각하는 것과 일치하는 지점이다. 김길후는 그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로지 검정과 흰색 등 무채색으로 일관해 오고 있다. 거기에 추가되는 색을 꼽는다면 노란 기미를 띤 동색(bronze)과 붉은 기미를 띤 구리색(copper), 그리고 가끔씩 첨가되는 청색 정도다. 

 김길후는 이처럼 스스로 단순한 색들로 제한한 정해진 범주 안에서 붓과 물감 등등 그림도구들을 가지고 논다. 그에게 있어서 그림은 진지하고도 즐거운 놀이에 다름 아니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유년시절에 꽃밭에서 놀던 즐거운 추억을 지니고 있다. 꽃 중에서도 특히 백합꽃을 좋아했다. 그의 그림에 백합꽃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다. 아버지는 서예와 독서, 꽃 가꾸기가 취미였다. 김길후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웃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한 습관은 어느덧 환갑에 도달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외견상 그는 타인의 눈에 매우 낙천적인 사람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김길후의 성격이 그렇다고 해서 그림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그가 검정색 그림을 그린 2천 년이후 약 20년에 걸쳐 제작한 그림들에 나타난 인물상의 분위기는 물론 밝고 낙천적인 것들도 더러 있지만, 어둡고 묵시적이며, 절망에 몸부림치는 인물들이 주를 이룬다. 나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자기자신이라고 술회했다. 그러고 보니 둥근 대머리의 등장인물들 거의 대부분이 김길후를 닮았다. 그렇다면 그것들은 작가의 분신이요, 내면의 풍경이 아니겠는가. 그 풍경들은 잔혹할 정도로 고독하고 외로우며, 고통에 찬 기록들이다. 특히 <검은 눈물> 연작이 그렇다. 이 점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은 진술로 당시 내면의 풍경을 고백하고 있어 주목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림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그린 ‘검은 눈물(Black Tears)’ 연작이다. ‘Black’은 내 마음이 마치 무너져버린 폐허와도 같고, 상실감이 납덩이처럼 누르고 있을 때 탄생했다. 전시장에서 내 그림을 보고 누군가 그랬다. ”죽으려고 했는데 당신 작품을 보니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그림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 그림이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주다니.....슬픔은 더 큰 슬픔으로 치유되는가 보다. 나는 평화로운 고도문명 속에서 참담함을 느끼는 인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길후, <검은 상처가 눈물로 빛날 때/작가노트> 중에서-


 위의 진술을 참고할 때 ‘치유의 기능’으로서 김길후의 그림과 이를 매개하는 사제 혹은 샤먼으로서 작가의 역할을 상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기능과 역할의 진원지는 과연 어디인가? 나는 작품의 전편에 흐르는 강력한 정념(pathos)과 검정색에서 방출되는 묵시적 분위기, 그리고 때로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등장인물의 표정과 몸짓을 들고 싶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화면을 뒤덮고 있는 끈끈하고도 일면 섬뜩한 분위기이다. 샤머니스틱한 느낌에 가까운 그것이 아마도 필경은 치유의 원인이리라. 


Ⅳ.
 2016년도에 접어들자 김길후는 이제까지 전념해 온 회화의 영역을 벗어나 관심을 입체와 설치로까지 확장시켜 나갔다.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자투리 합판이나 각목을 이용하여 삼발이형 인물상을 만든 것이다. 지금까지 5년간 대략 1백여 개에 이르는 작품을 제작했으니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 나무를 이용한 입체, 설치작업은 김길후의 분방한 상상력이 더욱 증폭돼 나타난 경우일 것이다. 이 삼발이형 작품은 정(鼎) 자를 연상시키는 중국의 제기(祭器)에서 형태적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가깝게는 시골에서 흔히 보는 작대기로 받혀 놓은 지게의 모습, 그리고 의미론적으로는 고구려 벽화에서 보이는 삼족오(三足烏)에서 그 선례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개발한 이 형식에 기울이는 관심과 노력이다. 

 김길후는 이 일련의 삼발이형 작품을 제작하면서 형식의 전개에 집중했다. 그것은 의미론적으로는 회화와 조각의 영역을 융합하는 형식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붓과 물감통을 들고 있는 이 추상적 형태의 인물상들은 자화상이다. 어떤 것은 완전히 추상적 형태를 이루고 있으나 또 어떤 것은 위 부분에 얼굴이 그려져 있어 인물상임을 암시한다. 

 평면이 됐든, 입체물이 됐든 김길후의 예리한 일필휘지가 스치고 지나가면 순식간에 기운생동에 충만한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은 거의 신비에 가깝다. 길이가 무려 15센티에 달하는 평붓에 검정색 물감을 듬뿍 묻혀 캔버스 위를 한번 휘저으면, 예리한 칼날에 뎅겅 목이 달아남과 동시에 검붉은 피가 솟구치는 것처럼 순식간에 죽음의 묵시록적인 이미지가 탄생한다. 고도로 긴장된 순간이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는 머리 속에 피가 솟구치는 전율이 온몸을 파고들면서 초긴장 상태에 도달한다. 여기서 다시 획(劃) 자가 칼 도(刀) 변임을 상기하자. 작가가 든 것은 붓이 아니라 은유로서의 칼이다. 그 칼로 단번에 내리치는(一劃)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김길후의 그림은 말하자면 죽임의 과정이자 죽음의 결과물이다. 죽음으로써 살아나는 이 역설의 미학! 그 피가름의 현장 한복판에 실행자 겸 목격자인 작가 김길후가 서 있다. 

 묘사가 잔인하다고? 그러나 여기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죽음은 곧 새로운 탄생이 아니던가. 5) 고대인들은 저녁에 해가 죽으면 아침에 새로운 해가 태어난다고 믿었다. 낙엽이 땅에 떨어지면 그 이듬해 봄에 새싹이 돋아나지 않던가. 그런 맥락에서 볼 때 김길후의 묵시록적인 분위기의 작품들은 죽음을 딛고 일어선 새로운 탄생, 즉 창조의 기쁨을 구가한다.       


Ⅴ.
 무엇에 미친다는 것은 대상과 일체가 돼 가는 과정을 이름이다. 그것은 바람, 즉 원망(願望)의 마음이 너무나도 극진하여 두 개의 원이 점차 가까워져 하나의 원으로 합체되는 ‘투 문 정션(Two Moon Junction)’에 비견된다. 따라서 화가가 그림에 미치면 그림과 일체가 되는데 그 과정에서 강렬한 정신적 에너지(氣)가 터져나와 물감과 같은 물질로 전도된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예술가의 정신은 무아(無我)의 상태에 빠지게 되며, 강렬한 엑스터시를 경험한다. 드리핑 작업 후에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이 “나는 내가 무엇을 그렸는지 모른다”고 한 발언은 바로 이 몰입의 상태를 두고 한 것은 아닌가 짐작해 본다. 

 나는 김길후 역시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가 한자리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그림을 그려나갈 때, 캔버스를 향해 휘두르는 붓이 예리한 소리를 내면서 허공을 가르는 검처럼 느껴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죽음이 곧 새로운 탄생임을 확신하면서 말이다.    
    

<미술평단 2020 겨울호>
   
  

 1) 이건 약간 과장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김길후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러나 2백호에서 3백호 정도 되는 대작은 1시간 이상 걸릴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2010년도에 제작한 작품들 중 일부는 꼼꼼하게 공들여 제작한 것들도 있어서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2) 석도(石濤)의 <고과화상화어록(苦瓜和尙畵語錄)>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다음의 것이다. “일획이란 온 무리의 밑바탕이요, 만 가지 형상의 뿌리다......일획의 법이란 자기 스스로 세워진 것이다......무릇 획이란 마음에 따르는 것이다.” 이태호, <화가는 첫 붓에 예술혼을 적신다, 석도, <고과화상화어록> 중에서. sambolove.blog.me/220410985854. 여기서 획(劃) 자가 칼 도(刀) 변임은 앞에서 언급한 검객의 비유에 비쳐볼 때 매우 중요하다. 

3) 김길후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때 약 1만 6천 점에 달하는 작품을 불태웠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전에 그린 잡다한 스타일의 그림들을 일거에 청산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4) 당시 김길후의 이름은 김동기였다. 그가 김길후라는 예명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이다. 당시 그는 중국에 체류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5)  대부분의 동서양 샤머니즘의 입무식(入巫式)에서 보이는 희생제의에서 죽음은 정화를 통한 새로운 탄생을 예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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