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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적 고독과 소외를 이야기하다

하계훈

실존주의적 고독과 소외를 이야기하다

하계훈(미술평론가)

월터 벤야민은 현대를 제 2의 자연이라고 불렸다. 산업사회 이전에 인류가 자연을 배경으로 생활하였던 것처럼 오늘날의 인류는 테크놀로지가 꾸며놓은 환경에서 마치 과거의 자연 속의 인간처럼 생활한다는 것이다. 자연과 테크놀로지는 서로의 대척점에 위치하여 유익과 유해, 공감과 냉담 등의 대립적인 진영으로 구분되거나, 자연에 비하여 과학기술이 의미 있고 건강한 삶의 질을 위협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이 양자간의 화합과 융합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훨씬 높은 정신적 만족감을 주고 감성을 풍부하게 해주는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강영길은 사진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실존주의적 고독과 소외를 이야기하고싶어 한다. 오늘날 사진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하이퍼미디어의 한 부분으로서의 주요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사진을 통한 다양한 담론의 제시와 스토리의 전개가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본래 사진의 기본적인 기능은 사실적 재현이었다. 초기 사진의 주요 기능 역시 사건과 상황의 생생한 기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실제와 같은 느낌을 높여주는 원근법과 자연스런 색채를 구사하던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도 사실적 재현을 위하여 사진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아도 이러한 관점은 인정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화원들이 카메라 옵스큐라와 비슷한 원리를 이용하여 초상화를 그렸을 거라는 추측도 있으며, 대표적인 실학자 다산 정약용도 자신의 저서에서 카메라 옵스큐라와 유사한 원리를 기록한 적이 있다.
나폴레옹의 시대를 살았던 프랑스 아카데미 화가 폴 들라로쉬(Paul Delaroche)는 어느날 사진의 등장 소식을 듣고 “이제 우리 화가들은 다 끝났다”고 불안한 미래를 예측하기도 했다. 사실적 재현의 기능면에서 화가들이 사진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초기의 사진은 촬영과정에서 정확성을 위하여 모델이 오랜 시간동안 부동자세를 유지해야 하였다. 그러나 점차 기술이 발달하고 촬영 후 과정에서의 편집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그 수고가 필요 없게 되었으며, 이제 더 나아가 도큐먼트의 보존으로서의 사실적 정확성을 넘어서는 예술적 표현이 사진예술의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되어가게 되었다.  
우리는 사진을 ‘찰나의 예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짧은 순간을 선택하는 사진가의 눈에는 대상에 내재된 감성 촉발의 요소가 작가의 감성과 접점을 이루는 모멘텀이 극적으로 담기게 된다. 들뢰즈가 회화를 우리의 신체를 변화시키는 감각의 예술로 정의 한 것과 유사하게 사진은 정확성과 함께 감성에 호소하는 감각론적인 예술 표현의 도구로서 충분하다는 것이 이미 입증되었다. 
강영길은 시각적 테크놀로지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사진을 이용해 인간의 감성과 사유의 기저를 탐구한다. 작가는 현대사회의 인간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면서도 역설적이게도 정신적으로는 상실감과 공허함을 느끼는 상황을 '상실의 시대'로서 불안정과 무의미의 상황으로 해석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사진 작업으로서 물속에 자신을 위치시킨 인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일상의 모습으로 옷을 입은 채 얕은 물속에 담긴 사람의 형상은 물결의 흔들림과 흩어짐에 의해 형체의 정확성을 버리고 특정할 수 없는 모습으로 마치 물속에 스스로를 녹여가는 것처럼 표현된다. 외부로부터 물속을 투과하여 인체에 다다르는 빛은 물을 통과하는 동안의 굴절에 의해 인체를 더욱 왜곡시키고 때로는 신비스런 존재의 현현을 시각적으로 암시해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촬영 후의 보정을 통해 색채의 대비가 도드라지는 작품에서는 이러한 순간이 보다 극적으로 표현된다. 
원래 물이라는 물질은 세상과 인체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고 철학적 혹은 종교적으로도 성스러움과 새로 태어나는 모멘텀에 상징적으로 사용되는 물질이기도 하다. 따라서 물속에 담겨진 인간의 모습, 그것도 셔츠에 넥타이를 맨 채로 혹은 스커트에 블라우스를 입은 상태로 제시되는 인간의 모습은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며, 그 상태에서 물속에 잠겨 있다는 것은 현실로부터의 유리된 상태에서 새로운 삶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맞는 모습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다른 관점에서는 폐호흡을 하는 인간으로서 물속에 갇혀서 호흡을 멈춰야 하는 숨막히는 상황, 즉 일상의 스트레스와 긴장을 말해주는 갑갑한 상태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작가는 이러한 일련의 작품에 프랑스의 극작가 사뮤엘 베케트의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들이 기약 없이 기다리는 고도(Godot)라는 제목을 붙임으로써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까운 해석을 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현대인들은 숨막히는 일상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원의 주체를 허무하게 기다리는 연극의 주인공들의 고도와 같은 존재, 혹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이들과 같은 실존주의적 허무의 주인공인 것이다.
강영길이 물속에 피사체를 위치시키는 작업 가운데 사람이 아닌 사물이 나타나는 작품은 물결의 흔들림에 의한 형체의 왜곡이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백색광이 여러 가지 색으로 분광되어 물결의 흔들림을 타고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서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우리는 이러한 작품에서 마치 환상적 기악곡의 울림을 듣는 것 같기도 하고 인간계를 초월한 알 수 없는 존재의 작용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것 같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적 환희는 작가의 해석에 의해 역설적이게도 고도로서 대표되는 인간의 모습을 극도로 해체하는 과정을 표현한 것으로 제시된다. 
물결의 움직임과 빛의 굴절과 분광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은 한없이 아름다우면서도 결국 시각적 현상을 넘어 인간이라는 존재의 근본을 향한 정신의 추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물과 빛에 의해 정형이 해체되는 인간은 결국 그 해체의 극단에서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으로 돌아가는 숙명적인 존재의 상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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