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서문│영원한 것은 없다전 / 영원한 것을 위하여

김성호

영원한 것을 위하여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브이센터 더 라이브 뮤지엄’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Forever is now over)’라는 제명의 기획전이 열린다. 이 전시는 김근중, 김길후, 오정현, 김진우, 김호성, 성태진, 이이남 등 예술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7팀의 중진, 중견들의 회화, 사진,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꾸려진다. 이번 기획전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I. 영원한 것, 임시적인 것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하는 우리에게 익숙한 아포리즘(aphorism)은 인생이 ‘임시성(éphémère)’일 뿐이지만, 예술은 ‘영원성(éternité)’의 존재라는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족하다. 유한한 인생을 대리 만족하는 존재로서의 예술은 분명코 필요하지 않겠는가? 죽고 말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이 삶을 지속하는 이유는 개인마다 다르지만, 적어도 예술이 이러한 임시적인 인간의 삶을 보충하고 대리 만족하게 만드는 ‘임시적이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는 존재’임은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술이란 창작자의 입장과 감상자의 입장에서 영원성을 갈망하고 기대하는 ‘무엇’이다. 그것이 실제로는 영원하지 않은 것일지라도 말이다. 즉 예술 창작 행위라는 임시성에 영원성의 차원을 가져오는 것과 임시성의 예술 창작물로부터 영원성의 차원이 발현되길 기대하는 내용으로 우리의 갈망은 늘 변주된다. 즉 예술가는 창작 행위 안에 ‘영원성에서 임시성으로(de l'éternité à l'éphémère)’의 변화를 담고자 노력하고, 감상자는 예술가의 작품 안에 ‘임시성에서 영원성으로(de l'éphémère à l'éternité)’의 변화적 가치가 발현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가히 두 개념 모두 ‘임시적인 인간’이 ‘영원한(할) 예술 가치’를 염원하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는 안다. 실상 형이상학에서 ‘영원성’은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무한성(infinité)”의 개념과 상통한다는 것을 말이다. “영원이란 전후가 없는 지금이라는 절대적 현재”라고 강조했던 헤겔(G. W. F. Hegel)의 언명은 이러한 ‘영원성을 초(超)시간적인 무한성’으로 설명하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혹자에 따라 이견이 있으나, 대개 영원성은 시간과 맞물린 철학의 담론에서, 무한성은 시공간과 맞물린 과학의 담론에서 무성하게 논의를 전개해 왔다. 형이상학에서, 영원성이란 임시성에 대립하는 ‘초시간적인 실재이자 무(無)시간적인 초월성’으로 간주된다. 그것은 마치 ‘초시간적 불변성(immuabilité intemporelle)’을 품은 신(神)과 같은 존재이다. 이 존재는 무한성의 존재이기도 하다. 무한성이란 ‘수, 양뿐 아니라 시공간의 유한성에 대립하는 무제한성’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영원성, 무한성의 존재를 신이 아닌 현실에서 찾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이번 기획전은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기대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기획자가 작명한 ‘영원한 것은 없다(Forever is now over)’라는 제명은 의미심장하다. 전시명을 자세히 살펴보자. 여기서, ‘이제(now)’와 ‘끝이 난(over)’이라는 부사를 영문으로 사용함으로써 ‘사라졌다(has disappeared)’라는 단언적인 의미의 표현을 강조하는 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누구나 현실계에서 기대하는 영원한 것이 존재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우정이, 사랑이, 그리고 예술이 말이다. 많은 사람은 적어도 그러한 것들이 자신이 현실에 있는 동안 남아 있기를 바란다. 기획자의 노트를 보자: “우리의 인생에서 영원할 것 같던 것들이 하나둘 우리의 곁을 떠날 때 오히려 그 존재감을 절감하게 된다. 행복했든지 고통스러웠든지 우리 곁의 가족, 친구들과의 지나간 시간이 더욱 그리워지는 이유이다. 현재 우리는 또 다른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지구 생태적 위기와 예상하지 못했던 바이러스의 출현은 이전의 가치관과 지향하던 목표를 무색하게 한다.”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코로나 팬데믹(pandemic)의 시대는 우리에게 영원한 것에 대한 기대조차 되돌리게 만든다. 이 시대는 영원한 것에 대한 기대는 고사하고 임시적인 것들의 소멸을 날마다 지켜보게 만든다. 모든 것이 무너져 가는 이 시대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만든다. 인류가 이러한 난국을 헤쳐 나갈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인가? 

II. 소멸하지 않는 꿈과 영원한 가치  
헤겔은 역사의 장에서 이러한 영원성과 같은 가치를 ‘절대정신(Absoluter Geist)’에서 찾았다. 그에 따르면, 세계의 본질은 절대정신이고, 인간의 역사는 이 절대정신이 그 본질을 점차 분명하게 드러내는 과정이다. 그는 자신의 저작 『논리학(Wissen schaft der Logik)』에서 역사의 전개 과정을 ‘유(有) - 무(無) - 생성’의 원리인 변증법으로 파악한다. 이것을 인식론 차원에서 순차적으로 언급하면, ‘직접적인 긍정으로서의 정립(定立) - 부정으로서 반정립(反定立) - 종합’의 단계와 맞물린다. 즉 ‘테제(These) - 안티테제(Antithese) - 진테제(Synthese)’의 연속 혹은 ‘정(긍정) - 반(부정) - 합(부정의 부정)’의 논리로 이어지는 ‘정반합의 변증법’인 것이다. 
‘소멸은 부재이다’를 정명제라고 한다면, ‘소멸은 부재가 아니다’라고 하는 반명제를 이끈다. 이어서 이 둘을 합치는 ‘소멸은 부재를 담은 존재이다’라고 하는 합명제를 도출한다. 우리는 안다. 정명제는 분명히 반명제에 의해서 부정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명제가 거짓이 되는 것이 아님을 말이다. 반명제는 정명제의 심층적 의미를 드러내고, 합명제는 그것을 보다 구체화한다. 세상의 진리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듯이, 정반합은 변화의 역사를 이해하는 성찰의 도구가 된다. 그렇다. ‘역사란 정반합을 통한 절대정신의 자기실현 과정’이라 할 만하다. 
우리가 유념할 것은, 헤겔이 찾았던 절대정신의 본질이 ‘자유’였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혁명 이후의 지속된 혼란 속에서 자유의 공허함을 깨닫고 절대정신을 ‘국가’에서 찾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그의 철학에서 절대정신의 근원은 ‘자유’라 할 것이다. 자유를 향한 정반합의 인간 역사, 그 속에서 임시적으로 존재할 뿐 궁극적으로 소멸하는 모든 것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인가? 옷깃이 닳아서 해진 외투, 촛농과 심지만 남기고 없어진 초,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 바닥 난 통장의 잔고, 이별한 연인, 가족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가장, 경쟁 사회에서 사라진 공의(公義) 등 소멸하는 모든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남루한 피폐와 비루한 상실 속에서 소멸하지 않는 것이 과연 있는가? 자유를 향한 열망?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기대하는 소망? 현실의 정반대에서 꾸는 장밋빛 꿈? 끝 간 데 없이 자유 여행을 떠나는 상상? 현실의 한계를 넘어 무모하게 그리는 예술 상상? 가상의 적(敵)을 상상하고 허구의 세상을 그려보는 공상? 이런 것들도 임시적이지만, 적어도 이러한 마음으로 그리는 모든 상상은 영원을 향한 자유 여행을 떠나기에 부족하지 않다. 그것이 언젠가 좌초되고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헤겔식의 절대정신의 자기실현은 언제나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니까 말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엉뚱한 상상을 천연덕스럽게 되풀이하길 즐겨했다. 남의 마음을 읽는 독심술, 자신을 스스로 감추는 투명 인간, 과거로 되돌아가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로 가서 궁금증을 해결하는 타임머신 등 어린 시절부터 우리가 그렸던 상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머리가 굳어지면서 그 상상이 허망한 것이란 것을 알게 될 때 느꼈던 허탈함은 또 어떠한가? 그렇지만 그 상상이 허망한 것이라 할지라도 상상의 순간만큼은 얼마나 자유의 시간이었던가?  
이러한 상상과 공상을 부추겼던 것은 대중문화였다. 어린이에게는 만화 영화, 청소년에게는 대중음악과 대중 영화, 성인에게는 하위문화 등이 그것이었고 대개는 그것을 실천하는 주인공이나 영화 스타 혹은 탈제도의 삶을 실천하는 기인(奇人) 같은 영웅적인 주체들이었다. 일예로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V’에서 태권 로봇과 그것을 조정하는 주인공 ‘훈’은 유아에서부터 10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난제를 해결하는 영웅적 주체였다. 적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세계의 평화를 지킨 '로보트 태권V'는 어린 시절 우리의 허망한 상상을 대리 만족시키던 상상의 산물이었다.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면서 상상이 대개 허망한 것임을 알게 되고, 청소년이 청년이 되면서 상상이란 대개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지만, 우리는 모두 그 성장의 과정에서 어떠한 상상은 현실을 바꾸거나 현실의 삶에 활력을 준다는 것을 믿고 의지한다. ‘어떠한 상상’? 그것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성취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은 어떠한 소망과 같은 것이다. 소멸하지 않는 꿈이자, 희망을 위한 꿈꾸기인 ‘어떠한 상상’은 많은 이들이 현실계에는 절대로 없다고 말하는 ‘영원성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기도 한다. 사유의 변화와 가치 소멸이 가속화되는 오늘날 시대에서 영원성의 가치에 대한 탐구, 절대정신의 자기실현, 상상과 꿈꾸기의 노력은 그래서 소중하다. 

III. 상상으로 이루어진 영원한 예술
여기 소멸하지 않는 꿈을 예술 활동을 통해서 찾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세상에 절대로 영원한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자신의 예술 속에서 그것이 있기를 기대하는 이들이다. ‘브이센터 더 라이브 뮤지엄’의 이번 기획전 ≪영원한 것은 없다≫의 출품 작가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오늘날과 같은 상실에 시대에 예술의 영원성의 가치와 의미를 탐구한다. 아울러 그 영원성의 예술 가치가 상상력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믿음을 공유한다. 특히 다수의 참여 작가는 만화, 애니메이션, 하위문화 등 대중적 코드로부터 잉태하는 ‘어처구니없는 상상력, 끝 간 데 없는 상상력, 혼성이 유발하는 상상력’ 등을 순수 예술의 영역에서 탐구한다. 
작가 김근중은 “만법이 돌아가는 곳은 하나인데 하나가 돌아갈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자신의 작업을 지속한다. 〈Natural Being〉이라는 제명의 연작을 통해서 다양한 조형 언어로 탐구하는 그의 작업의 일관된 관심은 그의 말대로 “결국은 존재에 대한 물음이요 체화이다.” 이러한 무거운 화두를 그는 모란도와 같은 민화의 전통에서 가져와 현대적으로 번안하거나, 아동과 청소년들이 탐닉하는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을 가져와 접목해서 예술적 상상력의 고상한 가치를 대중화한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쉬운 언어로 어려운 문제를 대면하는 셈이자, 존재에 관한 철학적 화두를 일상의 언어로 풀어 헤치는 것이라 하겠다. 

김근중, Natural Being(꽃세상,原本自然圖)6- 40.60x120cm. Acrylic on Canvas. 2006


작가 이이남은 미디어아트의 조형 언어를 도구로 한국의 전통적 미학을 현대화하는 작업에 매진해 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만화-병풍Ⅰ (Cartoon-folding screenⅠ)〉이라는 제명의 미디어 병풍을 선보인다. 대중에게 익숙한 동서양 고전의 이미지와 미술사 속 다양한 현대적 이미지를 혼성(complex)의 상상력으로 제시하는 그의 작업에는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재미와 해학 그리고 풍자적 비판이 맞물린다. 상상력의 근원은 늘 세상 가운데 있다는 믿음을 실천하는 그의 예술은 늘 소통이라는 화두를 중심에 두고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이남, 만화-병풍 Ⅰ (Cartoon-folding screenⅠ) 12min, 2018


작가 성태진의 작업은 애니메이션과 만화 속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를 자신과 합체시키는 풍자적 조형 언어를 통해서 이 시대의 대중문화뿐 아니라 오늘날의 복잡다기한 사회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특히 만화적 상상력에 사회 비판적 시선을 맞물리게 함으로써 오늘을 사는 동시대인의 집단 자화상을 엿보게 만든다. 선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마징가 제트와 로봇 태권브이의 모습이나, 애니메이션의 히어로 캐릭터들이 함께 자리한 광화문 수학여행을 기념하면서 단체 사진을 찍은 풍경은 한국의 1980-90년대 시대 문화적 맥락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성태진, 종묘acrylic_and_ink_on_embossedwoodpanel_120.1x200c.1m2016-2017

작가 김호성은 ‘발견된 오브제’를 조합하여 여러 형상을 만들어 내는 작업을 통해서 재료로부터 예술을 향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버려진 각종 오브제를 ‘예술적 쓸모’로 전환하는 그의 아상블라주 또는 정크 아트의 조형 언어 안에는 작가의 손을 거치기만 하면 무엇인가 뚝딱 만들어지는 ‘무한한 상상력’의 재미로 가득하다. 놀이와 표현 의지 그리고 익살과 해학이 오가는 그의 작업은 예술적 상상력으로, 써 가는 ‘예술가의 그림일기’ 혹은 ‘예술가의 상상 공작소’라고 평할 만하다. 


김호성


작가 김진우는 각종 기계적 장치를 통해서 인간, 기계, 문명, 진화적 역사 등의 주제를 탐구한다. 그의 작품에는 철로 만든 꽃이나 식물, 사람이나 로봇, 우주선 등 공상 과학적 상상력과 기계적 미학으로 가득하다. 만화영화에서 봄직한 인물상과 움직이는 기계 형상은 인간의 상상력이 현대 문명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의 미래마저 개척해 나가고 있음을 방증한다. 상상력이 예술이 된 그의 작업은 앞으로도 이러한 상상력이 자신의 작업을 이끌어 갈 원동력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김진우, 신인류의 소풍_700X120X200 cm 가변설치_스테인레스스틸, 알루미늄, 2019, 청주시립미술관


작가 김길후는 철망, 파이프, 자연목, 나무 패널, 자연목 등 쓸모없게 된 것이나 버려진 것들을 모으고 이어 붙여 새로운 형상을 만든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사람의 형상이거나 동물의 형상을 띠고 있는 구상의 것이지만, 어떻게 보면 조형적인 하모니를 이루는 추상 작업이 되기도 한다. 회화와 조각, 조각과 설치의 영역을 무한히 오가는 그의 작업은 세밀한 계획과 멀리 거리를 둔 자유로운 표현 의지에 몸을 의탁하는 상상력 가득한 창작의 결과물을 우리에게 선보인다. 거리낄 것 없이 자유로운 상상으로 만들어진 ‘상상 조각’이라고 할 만하다. 


 김길후


작가 오정현은 최근 인물 조각을 중심으로 한 ‘역설적인 상상력’을 펼쳐왔다. 그것은 때때로 익명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위장의 페르소나 혹은 타자의 얼굴을 한 인물 조각상을 통해서 현대인의 욕망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것이었다. 이번 출품작에서 그것은 ‘해골’과 같은 죽음의 도상(Icon)이 잿빛이 아닌 금빛을 품고 재생과 부활을 의미하는 식의 역설로 확장한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심장’과 같은 삶의 상징(Symbol)이 뜨거운 붉은색이 아닌 차가운 푸른색을 품음으로써, 가슴이 뛰는 육적 생명력보다 냉철한 사유와 이성을 요청한다. 인간 소통의 문제와 사회적 인간의 다양한 문제의식을 풍자적으로 접근해 온 그의 작업은 이번 출품작에서 형식적으로는 모듈의 반복적 집적을 통해서 형상을 구축하고 내용상으로는 반대편의 의미를 극대화하는 역설적 상상을 가시화한다. 


오정현, Another Iteration(heart), 스테인레스 스틸, 우레탄도장, 2017



IV. 에필로그 – 영원한 가치를 위하여 
“태양 아래 새것은 없다”는 성서의 아포리즘은 우리에게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할 새로운 미술이 없는 오늘날 현실에 유효하게 작동한다. ‘더는 새로운 예술이 없는 동시대’에는 독창성의 개념이 창의성의 개념으로 전환하여 편재한 까닭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상력이 예술의 근원적 원동력임을 신뢰한다. 
그동안 ‘비평적 역할과 희망을 가지고 장르와 국경이 없는 다원 예술을 선보여 왔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브이센터 더 라이브 뮤지엄이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오늘날 상황에서 상상력 가득한 예술의 힘으로 치유의 예술을 펼치고자 한다. 관객에게는 힐링을, 참여 작가들에게는 예술적 상상력이 지니는 힘을 다시 곱씹어보게 만든 이번 전시는 모든 것이 소멸하고 사라지고 있는 이 소멸의 시대에서 아직도 우리에게 영원한 가치는 존재하고 있음을 상기하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더불어 전시와 함께 마련된 다양한 부대 행사 및 교육 프로그램은 이러한 희망을 잃지 말자는 청유의 긍정 메시지를 함께 전한다. 피폐한 심정과 처연한 낙담 사이를 오가는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도 잃지 말 것은 이러한 긍정의 메시지임은 물론이다. 이번 기획전이 동시대의 재난 속에서도 예술의 영원한 가치와 상상력의 힘을 믿고자 하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길 기대한다. ●


출전/
김성호, 「영원한 것을 위하여」, 『영원한 것은 없다』, 카탈로그, 2020
(Forever is now Over 영원한 것은 없다展,  2020. 9. 15~11. 1, 브이센터 더 라이브 뮤지엄)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