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작가론│하석홍 / 불의 돌, 나는 돌

김성호

불의 돌, 나는 돌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불의 돌 
불이 일으켜 만든 세상에 돌이 있었다. ‘불의 땅’을 이룬 화산섬 제주의 불의 돌, 현무암!  
작가 하석홍은 이러한 제주의 불의 생태와 역사 그리고 신화를 품은 현무암을 올곧이 빚어 삶의 지평으로부터 예술의 지평으로 전이한다. 지구의 중심에서 용융된 상태로 외핵(外核)을 떠다니던 마그마(magma)라는 불덩이가 지각(crust)을 뚫고 나와 만든 ‘불의 돌’을 ‘지금, 여기’에 소환한 것이다. 즉 잠재계의 마그마로부터 현실계의 용암으로 분출되었던 원역사와 역사 사이의 내러티브를 고스란히 담은 ‘불의 돌’을 ‘지금, 여기’라는 ‘현재적 역사’의 지평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태고의 불의 기억으로부터 소환된 ‘불의 돌’! 그것은 용암이란 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후 만든 새로운 땅의 신화를 기억하는 육신화(肉身化, incarnation)의 한 귀결물인 셈이다. 


하석홍은 불의 신화를 기억하는 ‘불의 돌’을 지금, 여기에 소환하여 자신(만)의 돌을 만들기 위해서 천연의 존재를 불러 모은다. ‘폐지 펄프와 우유팩’을 짓이겨 종이죽을 만든 후 미생물로 숙성시킨 질료 위에 광물 토르말린 파우더와 먹물과 같은 천연의 질료를 더하고 색소를 혼합해서 만든 그것은 ‘자연으로부터 만들어진 오브제’다. 제주 현무암의 형상과 재질감을 감쪽같이 재현한 제주 돌의 시뮬라크르(simulacre)는 제주뿐 아니라 탈제주의 금기를 넘어 제주를 벗어난 다른 곳에서 자신의 몸뚱이를 진짜인 양 선보인다. 
그런데 하석홍이 만든 그 ‘가짜 돌’이란 새로운 생명을 입은 ‘또 다른 진짜’로서의 시뮬라크르임을 주지할 일이다. 그것은 플라톤의 것이기보다 들뢰즈의 것을 취한다. 플라톤의 시뮬라크르가 ‘복제의 복제물’인 상태로 현실계의 아래 존재하는 하등의 존재 개념이라면, 들뢰즈의 시뮬라크르는 지속성과 자기 동일성을 결여한 순간적인 ‘사건의 존재론’ 안에서 원본과는 또 다른 독립적인 생명력의 가치를 획득하는 존재 개념이다. 그러한 까닭은 들뢰즈의 시뮬라크르는  
원본을 재현해서 단순한 복제물을 만드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원본을 초월하는 역동성과 자기 정체성을 지니는 또 다른 존재를 지향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석홍의 시뮬라크르는 ‘불의 돌’의 외형과 재질을 흉내 내는 감쪽같은 가짜의 위상에 정초되기보다 또 다른 ‘불의 돌’의 위상을 견지하는 존재로 생명력을 얻는다.  


생각해 보라. 제주 현무암이라는 것이 용암의 화신(火神)이 세상을 파괴한 후 새로운 세상에 건네준 ‘창조적 파괴를 통한 생산’이라는 ‘불의 돌’이다. 하석홍의 ‘불의 돌’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는 창조적 사건을 선보인다. 그것은 먼저 들뢰즈의 ‘모든 창조적 사건’이 유발하는 생명력이라는 시뮬라크르 이론으로부터 유발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실제적으로 하석홍의 작업에서 견지하고 있는 작업 태도와 과정으로부터 잉태하고 있음을 목도한다. 그는 자신의 ‘불의 돌’을 자연으로부터 온 천연 소재 안에 미생물을 키우는 숙성의 과정을 거쳐 자신의 돌을 만든다. 질료의 생명 다함을 먹고 사는 미생물의 존재는 원초적 생명의 시작을 품은 창조적 생산이지 않은가? 마치 물질에 산소를 결합하면서 만들어내는 불의 파괴 행위란 실제로 창조 행위에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주지할 일이다. 
게다가 그는 일련의 화석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의 마음으로 자신이 만들 돌의 표면 안에 물고기처럼 보이는 고대 생명체의 모습을 몰딩 작업으로 옮겨 놓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제주도 용암 대지에 깔려 있던 화산재가 퇴적한 서귀포층이 융기하면서 드러난 화석을 자신의 작품 안에 이미지로 옮겨온 것처럼 생생하다. 주지하듯이 제주도에는 화산분출물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수성화산체의 속살 안에 이러한 생명체의 흔적을 화석으로 각인한 지형이 자리한다. 당시 지질 시대에 생존했던 생물의 흔적을 하석홍은 자신의 돌 안에 지표(index)처럼 위치시켜 관객에게 선보인다. 그것은 생명이 거주하는 생명의 땅이라는 제주에 대한 원형 신화를 전하는 매개체처럼 보인다. 예술의 장으로 옮겨진 그만의 화석이라고 할 것이다. 





II. 나는 돌 
현무암의 형상 안에 생명을 잉태시키는 하석홍의 ‘불의 돌’은 그 자체로 ‘창조적 생산’의 산물이다. 폐지의 숙성 시간만큼이나 느릿한 하석홍의 창조적 사건은 지난한 기다림과 노동을 요청한다. 실제 돌의 질감을 내기 위해 도모했던 창작에서의 무수한 조형적 실험과 인내 그리고 시뮬라크르로서의 돌을 새로운 예술적 생명체로 변환시키기 위해 감행했던 다양한 설치 언어 또한 느릿한 시간을 그에게 요청했다. 이처럼 그의 돌은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창작에서의 실험과 더불어 어떻게 만든 돌을 효율적으로 선보일 것인가에 대한 전시에서의 실험이 맞물리는 것이었다.   


그의 ‘만들어진 돌’은 “알작지 몽(夢)돌, 서귀포 보목리선(仙)돌, 우도 산호석(珊瑚石)” 등 다양한 돌들에 대한 관심이 잉태한 것이었다. 때론 ‘만들어진 돌’을 실제의 돌이 위치한 해안가에  함께 전시하기도 하고, 평면 위에 부착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돌의 표면 위에  흰색이나 인공의 총천연색을 입히기도 해서 다양한 ‘색돌’을 만들기도 하고, 인공의 스테인리스 패널 위에 부착해서 자연과 인공의 모습을 대립시키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반영 효과를 의도한 이러한 설치 언어는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돌의 초상’을 통해서 돌이 지닌 자연의 원형성을 더욱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의 전시가 된다. 생각해 보자. 매끈한 표면의 인공의 반영체에 부착된 현무암의 시뮬라크르는 대비되는 질감과 양감으로 인해 긴장감 가득한 전시 공간을 구축하면서 자연과 인공의 만남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 낸다. 
그의 ‘불의 돌’, ‘만들어진 오브제로서의 돌’은 제주 돌의 외양으로부터 추출된 그만의 시뮬라크르로 작동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돌의 형상과 질료를 넘어 그것을 재해석하는 가운데 창작된 것으로 제주의 신화와 원형을 추적하고 성찰하게 만드는 것으로 확장한다. 그러한 차원에서 그의 돌은 ‘제주’를 번안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번안이 “원작의 내용이나 줄거리는 그대로 두고 풍속, 인명, 지명 따위를 시대나 풍토에 맞게 바꾸어 고치는 일”을 의미하듯이, 그가 작품을 통해 창출하는 시각적 메시지는 제주 돌의 신화와 원형마저 소환하면서도, 자신의 새로운 예술적 메시지를 전한다. “돌은 척박(瘠薄)이 새겨진 문신(文身)이며 문명(文明)의 시작이자 문명(文明)의 미래다”라고 작가가 말하고 있듯이, 돌은 제주라는 문명의 과거와 현재이며 그것을 창작의 장으로 전이하는 그의 작업은 제주의 내러티브를 자신의 언어로 번안하는 예술적 메시지를 전한다. 


한편 그의 ‘만들어진 돌’은 미술의 언어 안에서 ‘나는 돌’의 수많은 버전을 창출한다. ‘나는 돌’이라니? 그것은 매스와 볼륨뿐 아니라 특유의 중량을 지닌 돌의 본질을 비트는 탈중력의 상황을 만든다. 중력에 순응하면서 지면에 접지해 있은 중량감 가득한 암석이나 돌산이 아니라 거대한 매스와 볼륨을 유지하면서도 공중에 사뿐하게 부양하거나 물 위를 부유하는 탈중력의 존재로 번안된다. 그것은 관성적인 우리의 시각을 배반하면서 위태로운 시지각적 효과마저 불러일으킨다. 돌의 전통적 위상을 배반하는 그의 돌은 날개를 달고 ‘나는 돌’이 된다. 
게다가 그의 돌은 자동차에 외피를 달고 ‘달리는 돌’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버전의 아트 프로젝트로 자리 잡는다. 산뜻하게 거리를 질주하는 돌! 그래서 ‘만들어진 불의 돌’을 달고 다니는 그의 ‘차(차)돌’이라는 ‘나는(飛) 돌’은 또 다른 ‘나(我)는 돌’이라는 은유를 넉넉하게 함유한다. ●


출전/
김성호, 「불의 돌, 나는 돌」, 하석홍 작가론, 섹션; 만나다-제주예술가, 『삶과 문화』, 제주문화예술재단, 79호(겨울호) 2020.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