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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의 바람소리 그리고 흔적

변종필

강운의 바람소리 그리고 흔적


화가의 작품세계에서 변화는 숙명인가? 
화가는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하여 끝없는 변화를 추구한다. 화가는 누구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기 원하지만, 특정 스타일에 고착되는 것을 거부하고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작품의 변화를 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변화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확고히 하거나 위상을 정립하는 데 항상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저 한 가지 틀에서 벗어나고 싶은, 혹은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변화 요인을 설명하지 못하거나 무의미한 변화에 그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라면 누구나 언제든지 새로운 작품세계를 창출하기 위해서라면 지금까지의 자신을 과감히 벗어 던진다.

화가 강운은 구름을 그리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20대부터 자신의 이름처럼 구름 세계를 화폭에 담아왔다. 그러나 그는 구름으로 얻은 명성을 뒤로하고 새로운 변화를 스스로 독촉했다. 그간의 작품세계를 돌아보면 자연이라는 커다란 주제 아래에 지속적인 변화를 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밤으로부터>-<순수형태>-<순수형태-순환>-<空 위에 空>-<공기와 꿈>-<물 위를 긋다>’로 이어져 온 변화과정은 현실에 안주할 수 없는 작가적 태도에 따른 모습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외형적 변화만 보면 그간의 작품보다 훨씬 파격이 심하다. 그런데도 그의 작품은, 언제나 그랬듯, 단절보다는 맥락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번 전시 작품 역시 표현의 형식과 재현의 대상이 다를 뿐, 그가 추구해온 작품세계의 주요 요소들은 고스란히 존속돼 있다. 
 
1. 바람
이번 개인전에 출품된 강운의 작품에서는 ‘철책’, ‘철조망’, ‘상처’와 같은 자극적인 단어가 눈에 띄지만, 사실상 핵심어는 ‘바람’이다. 작품의 모든 형상적 이미지는 바람과 연결되어 있다. 달리 표현하면 바람으로부터 모든 작품이 탄생한 셈이다. 
바람은 그 자체를 그릴 수 없다. 단지 바람이 스치고 지나는 순간, 바람이 흔들고, 남긴 흔적만 확인할 수 있다. 바람은 어떤 것으로 가둘 수도 잡을 수도 없다. 그저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 느낌은 시간, 장소, 상황마다 다르다. 오전과 오후,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작년과 올해가 다르고, 계절마다 다르다. 남쪽의 바람과 북쪽의 바람도 다르다. 바람은 성격 또한 다양하다. 간지럽거나 부드럽기도 하지만, 매섭고, 거칠기도 하다. 
바슐라르는 바람의 여러 단계는 각각 고유한 심리를 갖는다고 했다. “바람은 흥분하기도 하고 소침해지기도 한다. 바람은 울기도 하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바람은 격정에서 낙담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좌충우돌이고 무용한 바람의 성격 자체가 기진한 우울과는 매우 다른, 안절부절한 우울에 대한 이미지를 줄 수도 있다.”1) 

바람은 형태로 존재하지 않지만, 바람 속에는 누군가의 삶이 있다. 기억, 회한, 슬픔, 기쁨이 있고, 아픔, 사랑, 상처, 꿈이 있다. 바람은 강운에게 언어로, 음률로 말을 걸어온다. 이 같은 바람소리에 강운은 귀 기울이고, 몸과 마음으로 바람을 느끼고 다양한 표현형식으로 바람을 그렸다. 구름, 꽃잎, 물을 통해서 그린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철조망을 통한 바람이다. 

2. 철조망 
철조망 연작은 구체적 경험에 기인한다. GOP에서 복무했던 시절의 경험을 바람처럼 표출했다. 개념적으로 훈련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지극히 충실한 작가적 성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리고 작가 개인의 경험은 DMZ라는 특수한 공간으로 인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감정으로 확산된다. 바람이 기억에 잠긴 감정을 깨워 흔들고,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내어 급기야 그의 손끝(붓끝)을 통해 분출하듯 화면에 다양한 흔적을 남겼다. 
 “10여 년간의 작업이 힘들었던 고통의 시간을 잊고 싶어서 그린 것이었다면, 철조망 연작은 덮어 두려던 상처의 감정들을 꺼내 들어 들여다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내면에 침잠된 감정이 폭풍처럼 휘몰아쳐 캔버스에 남긴 흔적은 살아내기 위해 묻어두어야 했던 지난 상처의 감정들이다. 이는 <흔적>, <철책단상>이란 제목의 연작들에서 확인된다. 작품을 보면 감정에 몰입된 상태의 숨김없는 표현이랄까. 철책에서 느낀 감정이 여과 없이 전달된다. 철책을 마주하며 느낀 여러 감정들을 거짓 없이 순수하게 표현했기에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도 작품제작 당시 작가의 감정이 관람자에게 고스란히 전이된다. 검은 바탕, 붉은 바탕, 푸른 바탕은 시간의 흐름일 수도 작가 감정의 상태나 자연의 변화일 수도 있다. 또한 날카로움이 그대로 감지되는 철조망이나, 끝이 무뎌져 부드럽게 느껴지는 철조망은 작가에게 준 상처의 발원이며 동시에 결과일 수 있다. 
철조망을 화면 가득 채운 구성방식은 구름으로 캔버스 전체를 채웠던 방식과 다르지 않다. 표현하고 싶은 대상을 그리고, 붙이는 방법을 통해 최대한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강운만의 조형방식은 이번 시리즈에서도 그 효과를 드러낸다. 작품을 마주할 때마다 화면 가득 채워진 작가의 감정을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한 구성의 효과이다.  
인간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산다. 타인에게 일일이 고백하지 않을 뿐, 그러나 품고 있는 상처가 모두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치유되었다고 믿고 싶을 뿐. 강운 작가 역시 내면에 침잠된 상처가 있다. 하지만, 그 상처는 꼭 타인에 의한 것은 아니다. 세상을 겪으며, 스스로 떨쳐내지 못하고, 하나둘씩 마음에 남겨둔 상처들이다. 
철조망을 모티브로 한 유화작품들은 살기 위해 버티고, 견뎌야 했던 숱한 감정들을 철조망 형상으로 표현하고, 그 형상을 닦아내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마음을 할퀴고, 찌르던 예리한 철조망은 어느새 부드러운 선이 되어, 마음에 생채기들을 어루만지듯 감싸준다. 

3. 바람소리 그리고 흔적 
바람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달래주던 하늘을 그릴 때부터, 지금의 철조망 연작까지 그가 방황하고, 아플 때마다 위로하고 보듬어주었다. 이때 바람이 내는 소리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는 자연의 목소리이며, 음성이다. 어떤 바람소리는 핏빛처럼 섬뜩하고, 어떤 바람소리는 꿈처럼 달콤하다. 또 어떤 바람소리는 꽃망울을 터트리며 피어오르듯 아름답다. 이렇듯 바람소리를 느낄 수 있는 철조망 연작은 마치 작품에 담긴 의미가 비극적인 색채를 띠면서도 치명적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이중성을 지녔다. 
이러한 이중성은 추상성의 바람과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흔적을 볼 수 있는 철조망의 관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 물질적인과 비물질적인 관계처럼 손으로 직접 만지고, 확인할 수 있는 실체와 손끝으로 느끼고 짐작할 수 있는 비실체의 관계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 점에서 강운의 바람소리 그리고 흔적은 인간이 맺는 관계의 상징이기도 하다. 철조망 끝에 매달려온 바람소리를 통해서 바람을 인식하고, 철조망 사이사이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서 바람(자연)을 인식한다. 여기에 추상적 상징성이 강한 바람이 구상적 감정이 묻어나는 철조망을 통과하면서 울리는 공명은 누군가의 아픈 기억을 위로하고, 지치고 힘들어 흩어지기 쉬운 영혼을 달래는 역할까지 기대하게 한다. 

작가는 누구나 변화의 시기를 겪는다. 강운은 광활한 들판 위 불어오는 바람 앞에 자신을 홀로 세워 이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그리곤 내면세계에 대한 철저한 자기 들여다보기를 시도하며, 온전한 자기의 길을 정리하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치유하지 못한 채 묻어두었던 상처가 돋아나는 아픔을 겪기도 하지만, 더는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내세워 부딪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무의식 속에 잠재한 그 상처의 감정들이 아이러니하게 지금의 자신을 지탱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함을 깨달으며 작가적 성숙을 겪는다. 때로는 ‘내 안에 있는 나 자신도 모르는 것, 이것이 나를 비로소 만든다’-폴 발레리,<Monsieur Teste>-는 말처럼 자신 안에 자신도 잊고 지냈던 기억들로 인해 비로소 자신을 찾기도 한다. 특히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는 형언하기 힘든 무언의 압박, 초조, 불안의 감정을 자신을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는다. 이 모든 과정은 화가의 숨김없는 솔직함, 진솔한 감정표현을 담은 자유로운 몸짓에서 비롯된다. 
예술의 힘은 작가의 순수함과 자유로움을 통해 강해진다. 강운은 바람을 통해 마주한 모든 감정을 화폭 위에 순수하게 옮겨 놓았다. 그리고 미술계의 편견이나 시장논리, 작가적 위상이나 현실 안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로움을 택했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강운다움’이며, 그것을 마주할 수 있는 것만으로 이번 전시는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1) 가스통 바슐라르 지음, 정영란 옮김 『공기와 꿈』이학사. 2000. p.408-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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