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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이정진의 사진, 맞닿아 울리는 세계 | 장예란

현대미술포럼





이정진의 사진, 맞닿아 울리는 세계







2018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사진작가 이정진(1961~)의 지난 한 세대를 톺아보는 회고전이 열렸다. 2009년 뉴욕으로 이주한 그로서는 오랜만의 귀국이자 금의환향이었다. 이 전시가 증명하듯 작금의 이정진은 국내외 무대에서 선명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30여 년 전 그가 처음 한국 사진미술계에 발을 들였을 때만 해도 그의 자리는 희소했다. 대다수가 남성 작가들로 구성된 1980년대 말 사진계에서 그는 이종(異種)의 여류 사진가였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정진에게 본인의 좌표를 확보하고, 이를 확장할 수 있게 한 추동력이 된 것일까? 이 글에서는 여성으로서 이정진의 시각과 태도가 그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보고, 그의 초·중기 작업을 통해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정진은 홍익대학교에서 공예를 전공하던 시절 동아리 활동과 독학으로 사진에 입문했다. 1983년 대학 4학년이 되던 해 파리국제사진전에 한국 대표로 출전하여 사진가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그는 이듬해부터 월간지 『뿌리깊은 나무』에서 사진기자로 재직하며 선배 강운구(1941~)에게 다큐멘터리 사진을 배우게 된다. 당시 한국 사진 미술계는 1980년대 국내 화단을 주도했던 단색화 운동과 국제 사조인 ‘주관주의 사진(Subjective Photography)’의 영향으로 모노크롬 색조의 화면 및 사진가 개인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는 방식이 득세하고 있었다. 개발독재의 시대상을 서정적인 시점으로 포착한 강운구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이정진은 그로부터 동시대 다큐멘터리 어법을 터득하는 한편 누군가의 후배이거나 잡지사의 일원이 아닌 독립적인 사진작가로 활동하게 되는 계기를 얻게 된다.

<먼 섬, 외딴집>(1986-1987)은 작가의 첫 번째 작업으로, 울릉도 알봉 분지에 찾아 들어가 우연히 만난 심마니 채기영 할아버지와 이정옥 할머니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이들의 생활을 1년 여간 기록한 이 연작에서는 화면 속 대상들의 위계가 무화되어 나타나는데, 이정진이 처음 마주한 노부부의 집안 풍경이 이 사진의 출발점이었다.

“쌓인 눈이 반사되어 눈이 부시던 바깥에 있다가 집안으로 들어서니 사물을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컴컴했고 조용했다. 방안에는 머리와 수염이 허연 한 노인이 묵묵히 앉아 있었다. 염소 세 마리와 고양이가 한 집에 있었고, 바로 옆에 나란히 지은 외양간 안에는 소가 세 마리 있었다 … 정신 없이 사진을 찍으면서 자연과 가장 가까운 삶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스쳤다” (1987. 1. 23. 작가노트)

사물과 짐승, 그리고 인간이 정경 속에 차별 없이 공존하는 모습 - 이 평등한 풍경은 어느 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거나 삭제하지 않은 이정진의 사진들과 닮아 있다. <먼 섬, 외딴집>에서 주인공 내외는 겨울 오지의 눈밭이나 험한 산세, 집안의 가재도구와 동격으로 등장한다. 이정진이 컬러가 아닌 흑백으로 균질하게 사진의 톤을 맞춘 것도 같은 연유에서일 것이다. 이와 같은 화면 속 대상들의 ‘무등(無等)’함은 사진을 찍는 주체와 찍히는 객체 사이의 위계 없음으로도 드러난다.

실제로 이정진은 이 노부부를 따라 산삼을 캐러 가거나 더덕을 긁는 일을 거드는 등 두 노인과 함께 기거하기도 하면서 이들의 삶에 동화되었다. 1987년 4월 작성한 작가노트에서 그는 “… 이 작업은 채 노인과 그 삶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애착이 없이는 불가능하게 여겨졌다”고 말하며, 더불어 “사진에서 완전한 주관성이나 완전한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두 노인을 비추는 거울에 언젠가 내 모습도 함께 비출 수 있을 때쯤이면 다큐멘터리의 진정한 의미를 사진들 속에 담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술회한 바 있다. ‘응시(gaze)’라는 시선의 우월성이 다른 어떤 미술 매체보다도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사진 매체에서 주체와 타자의 비대칭적 관계를 전복하려는 이정진의 시도는 이후 작업에서 드러나는 여성으로서의 태도를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페미니즘 작가 엘렌 식수(Hélène Cixous)가 언급한 것처럼 여성은 태아라는 타자를 품을 수 있는 모체(matrix)로서의 어머니이자 타자로부터 태어난 딸이며, 이처럼 나와 타자가 하나이자 동격의 둘로서 공존하는 여성들은 다른 많은 타자들과의 관계 맺음을 통해 확장되고 더 큰 가능성을 갖게 된다. 이러한 여성성은 타자보다는 자아를 최우선으로 두는 남성·이성중심주의에 반하는 것이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이 말하는 아이가 어머니와 강한 일체감을 이루는 상상계, 즉 아이가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의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와 언어라는 상징적인 질서 구조로 진입하는 상징계 이전 단계의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 한편, 상징계의 언어 구조는 사진 매체의 프레임(frame)으로 대치하여 고려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프레임이 주체와 객체 사이를 갈라놓는 동시에 외부 세계라는 기표를 재단하고 상징하는 기호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진 프레임의 수직적인 권력에도 불구하고 이정진은 그 권한을 거부하고 주체와 타자를 수평적인 관계 속에 끊임없이 위치 지으며, 나아가 사진 프레임 자체에 의문을 던진다.

“… 이 사막이라는 엄청난 대상을 내게 익숙한 사진을 통해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실로 어려웠다. 사진으로 보여줄 수 있는 한계 속에서 대상 자체의 자연스러움과 있는 그대로를 좀더 가까이 표현하고자 했다” 이정진은 1988년 도미한 후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진행한 <미국의 사막> 연작에서 사진의 어떤 프레임도 사막의 인상을 표현할 수 없음을 깨닫고, 사진의 포맷과 구성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기실 미국인에게 서부 사막은 개척의 대상이자 장엄한 대자연으로 그 세부를 정밀하고 찍고 선명하게 인화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이는 사진을 통해 광대한 자연을 프레임에 가두고 이를 간접적으로 소유하려는 가부장적인 욕망에서 기인한 것인데, 이정진은 그와 같이 사막을 규격화하여 소장하려 하기보다는 사막이라는 무궁한 대상을 담기에 사진이 무기력한 수단임을 깨닫고 거꾸로 프레임을 깨트리는 실험을 했다.

예컨대 사막 연작 중 하나인 <미국의 사막 III (자화상)>(1993-1996) 시리즈에서 그는 노 파인더(no finder) 기법으로 사진기 반대편에 몸을 둔 채 촬영을 하거나, 삼각대에 카메라를 올려두고 리모컨을 이용해 사진을 찍었다. 인화지의 감광제가 빛에 반응하듯이, 그는 사막과 자신이 감응하는 순간 셔터를 누르고 렌즈 방향으로 일시적인 창(窓)을 냈을 뿐이다. 이정진은 이처럼 임의 촬영되어 앵글이 기울고 작가의 신체와 사막의 파편들이 자유분방하게 포착된 사진들을 다시 가로가 긴 삼면화(triptych)로 느슨하게 배치했다. 이로써 그는 “신중하게 촬영해서는 절대로 만들 수 없는, 사막의 에너지들이 이와 같은 프레임에서 표출”될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정진의 미국 스승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가 그의 사막 연작을 두고 “인간이라는 야수가 없는 풍경들”이라고 평한 것은 비단 그 작업이 인적 없는 사막을 포착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타자를 정복하려는 야수성을 버린 인간이 대지와 물아일체가 된 모습을 그리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이정진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한지 인화 또한 작가가 프레임을 해체하려는 시도의 연장선상에서 탄생했다. 그는 신문지, 판화지, 휴지 등에 사진 인화를 실험해보면서 사각 틀에서 벗어나고자 했는데, 그 결과로 한지를 찾아내어 1989년부터 현재까지 한지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한지에 감광유제를 붓으로 직접 도포해 만든 그의 수작업 인화지는 규격대로 절취된 매끈한 인화지와는 달리, 끝이 너덜거리고 닥나무 섬유질의 촉감이 표면 위에서 그대로 감지되며 작가의 손맛이 가감없이 드러난다. 또한 한지는 안료를 깊숙이 흡수하여 선을 허물고 면을 번지게 하기 때문에, 흑백 사진을 인화하게 되면 사진 속 형상은 부드러운 회색 계조로 스며들고 사진의 테두리는 선명하지 않게 된다. 평론가 이영준의 언급처럼 그의 한지 작업에서는 “프레임이 대상을 가둔다기 보다는 그저 임시방편의 울타리 같은 효과”를 내게 되는 것이다. 

한편 틀의 유연함은 이정진이 미국에 장기 체류 후 1997년 한국으로 돌아와 진행한 작업들에서도 이어지는데, <파고다>(1998) 시리즈가 그 사례다. 예산 수덕사의 삼층석탑을 우연히 목격하여 시작된 이 연작에서는 국내 각지에서 촬영된 이름 모를 불탑들이 비정형적인 윤곽을 드러낸 채 똑바른 상(像)이 위로, 180도 회전된 상이 아래로 가게 접합되어 한지 위에 펼쳐진다.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공중을 부유하는 듯이 보이는 이 파고다들은 울릉도 오지를, 미국의 사막을, 전국의 사찰을 자유롭게 오고 가며 주변부와 상호작용하는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정진은 20년 후의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에서 <파고다> 연작을 별다른 액자 처리 없이 나란히 배열, 전시함으로써 각 작품이 동격의 개별로서 상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숨을 틔었다. 대상을 촬영하는 과정, 사진을 인화하는 단계, 나아가 그것이 전시되는 순간까지도 힘의 논리가 지양된 이정진의 작업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이 호용(互用)될 수 있는 여성의 모습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이정진은 사진의 안팎에서 이분법적이고 계층화된 질서를 확립하는 대신 대상과 대상, 주체와 타자, 개별 사진과 개별 작업을 동일선상에 두고 이들이 각각의 존재이자 하나로서 상생하게 한다. 그는 사진을 촬영할 당시 본인이 느꼈던 감정이 공명하여 관람자에게 맞닿을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라고 자주 언급해왔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사진가로서의 권위를 내려놓음으로써 사진 언저리에 수평적인 통로를 만들고 그 울림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이 그가 동시대 다른 사진작가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며 이정진을 일찍이, 그리고 현재까지도 세계적인 작가로 거듭날 수 있게 한 원동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예란(1988~).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현 PKM 갤러리 전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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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진, <먼 섬, 외딴집>, 1986-1987




이정진, <미국의 사막 III (자화상) 94-15>, 1994




이정진, <파고다 98-17>,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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