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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회화의 삶, 제여란 | 이순령

현대미술포럼





회화의 삶, 제여란 






제여란(1960∼)은 서울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88년 이후 2021년 현재까지 17회의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2017년에는 제3회 전혁림미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80년대의 판화 실험과 1990년대의 검은색 추상화에서 2000년대의 <되-ㅁ> 연작과 최근의 <어디든 어디도 아닌> 연작에 이르기까지 제여란은 지난 30여년간 회화를 향한 열정적인 행로를 쉼 없이 지속하고 있다. 그를 이끌어 온 것은 무엇을 그릴까가 아닌 어떻게 그릴 것인가라는 추상회화의 조형 언어에 대한 고민이었다. 전통적인 회화 도구인 붓이 아니라, 판화의 가능성을 탐구하던 초창기에 접하게 된 스퀴지(squeegee)라는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그는 회화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부단히 고민하며 쉼 없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회화의 죽음’이 선고된 지 오래고 찰나의 감각적인 영상매체가 대중을 현혹하는 이 시대에 몸으로 그리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회화의 삶’을 지켜오고 있는 제여란의 작품 세계를 시대별 흐름에 따라 정리해본다. 

판화, 여명기
홍익대 서양화과 대학원을 졸업하던 해인 1988년에 제여란은 첫 개인전을 열면서 청년작가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이미 대학 재학 시절에도 <에스파 동인전>, <앙데팡당전> 등의 전시회에 출품하며 화가로서의 경력을 적극적으로 쌓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특히 1980년대 중반에는 <공간국제판화전>, <한국현대판화가협회전> 등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주로 판화 작업에 집중했는데, 1986년에는 한국현대판화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그의 첫 개인전 역시 판화 작품 위주로 구성되었다. 이는 판화가 현대적인 매체로 주목받으면서 많은 작가들의 관심을 끌었던 당시 한국화단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한국의 화가들은 원화가 아닌 판화를 통해 서양의 현대미술을 처음 접하게 되었으며 일종의 유행처럼 판화 실험에 동참했다. 

1980년대는 판화가 제도적으로 정착하게 되는 시기였다. 1980년에 김구림의 판화 공방을 필두로 판화 전문 공방들이 잇달아 문을 열었고, 『공간』지가 주최하는 <공간국제판화전>이 창설되었다. 국내미술대학에 판화과가 정식 개설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1983년 성신여대를 시작으로 1988년에는 홍익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 판화전공이 신설되었다. 청년기의 제여란이 석판화, 실크스크린 등 판화에 관심을 보였던 것은 이러한 주변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초창기부터 그는 회화의 평면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였고 판화는 그 목적에 적합한 매체였다. 특히 판화 도구인 스퀴지와의 만남은 이후 그의 작업 세계에서 중요한 견인차로 작용하게 된다. 


흑색 회화, 탐색기  
1990년과 1994년에 열린 인공갤러리에서의 개인전에서 제여란은 어두운 무채색이 주조를 이루는 추상화 연작을 선보였다. ‘흑색 회화’라 부를 수 있는 이 연작은 초기에는 <늪>, <습지>, <여명>, <아침> 등 자연 풍경을 연상시키는 제목으로 명명되다가 이후 <무제>로 통일되었다. 작가는 당시의 작업에 대해 ‘언어’보다는 ‘상태’에 가까운 작품들이었기에 구체적인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흑색 회화 연작은 그의 30여년 작업 인생에서 탐색기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흑색 회화는 구체적인 형상이 없는 추상회화였지만 깊고 음습한 심연, 숨막힐 듯 불길한 밤 풍경, 근원을 알 수 없는 공포감 등 어둡고 불안한 정서를 환기시켰다. 화면 속을 거칠게 할퀴고 간 검은색 붓자국은 심상 깊은 곳에 가라앉은 두려운 감정의 응어리를 민낯으로 드러내는 듯 보인다. 제여란의 흑색은 단순한 검은색이 아닌 빨강, 파랑, 녹색, 노랑 등 다양한 원색들을 삼켜버린 듯 풍요로운 검은색이었다. 그랬기에 색채의 사용을 극도로 자제함으로써 비움의 철학을 지향했던 단색화와는 달리 여러 조밀한 표정과 기억, 감정을 담고 있었다. 

작가는 흑색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흑색은 내게 위대한 신처럼 숭고하다. 그리고 흑색은 내게 집요한 성실함을 가르친다. 유태인들은 일년의 시작을 겨울로 했다. 흑색은 내향적 공간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색이다” 그리고 흑색에 침잠되지 않으려면 그 암울함을 견뎌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1990년대 흑색 회화 연작의 어두운 검은색 붓질 뒤에는 작가의 강인한 신념과 저력이 단단하게 버티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후 제여란의 작업은 흑색 회화의 자기은폐적인 검은 장막을 걷어내고 갇혀 있던 자신의 에너지를 벅차게 발산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붓이 떠난 회화, 스퀴지의 사용
2006년 토탈미술관에서 열린 12년만의 개인전에서 제여란은 새로운 연작을 선보였다. 그것은 2000년부터 몰두해 온 <되-ㅁ(Becoming and Becoming)> 연작으로 제목처럼 어떤 것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는 미완의 진행형 작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전에는 회화, 판화, 오브제, 설치 등의 작업을 병행하였으나, 이 연작을 기점으로 회화에만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 색의 사용은 붉거나 푸른 단색으로 제한되었지만, 흑색 회화 연작의 검은색에서 탈피하였다. 이전 작업에서 보이던 거칠고 메마른 표현적 붓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물감이 캔버스에 스며들어간 듯 매끄럽고 얕은 표면 질감에서 이차원적 평면성이 부각되었다. 형태와 경계를 허무는 얼룩의 흔적은 마치 잉크의 번짐 같기도 하고 그림자 같기도 하고 물컹한 유기체 같기도 한 모호한 연상을 불러일으킨다. 

이 시기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스퀴지의 사용이다. 스퀴지는 실크스크린을 제작할 때 물감을 밀어내는 도구이다. 제여란이 판화에서 쓰던 스퀴지를 회화 작업에 응용한 것은 1992년부터였으나, 2000년을 전후로 스퀴지만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되-ㅁ> 연작에서 제여란은 붓을 완전히 버렸다. 붓이 사라진 자리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도구가 바로 스퀴지였다. 스퀴지를 든 이유는 회화의 상투적인 표현 방식에서 탈피하기 위해서였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붓 터치를 한 두번 하면 어떤 형상이 이미 되어버려요. 두 번만 붓질을 해도 사람 얼굴이 되고 둥근 원이 되죠” 의도하지 않아도 붓으로 그리면 구체적인 형태에 얽매이게 된다는 것이다. 스퀴지에 물감을 바르고 화면 위에 밀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하기 시작하면서 형태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채색된 평면이라는 모더니즘 회화의 이차원성에 가까워졌다. 

붓이 아닌 도구를 사용하여 회화적 표현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제여란 뿐이 아니었다. 1998년 사이갤러리에서 열린 <붓에 의한 회화, 붓이 떠난 회화> 전시는 제목대로 전통적 회화 도구인 붓으로 작업하는 작가와 다른 도구를 선택한 작가들의 추상 작업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상이한 작업 방식에 따라 결과적으로 어떤 차이를 혹은 어떤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는지 비교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 전시에는 제여란을 비롯해 김택상, 김춘수, 도윤희, 이인현, 장승택, 천광엽, 최선명, 홍승혜 등이 참여하였다. 이 중에는 붓 대신 손으로 그리는 작가도, 컴퓨터를 사용하는 작가도, 스스로 그리지 않는 작가도 있었다. 이들은 당시 30대의 동년배 작가로 단색화 작가들의 제자이기도 했다. 평단에서는 이 새로운 세대 작가들을 ‘포스트 단색화’ 혹은 ‘단색화 1.5세대’라고 일컫기도 했다. 1980년대는 단색화가 명실상부한 한국현대미술의 주류로 고착화된 시기였고, 젊은 세대는 단색화 이후 한국 추상미술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고 있었다. 작업 스타일은 저마다 달랐지만 이들은 느슨한 연대감을 중심으로 편안하게 열린 그룹으로서 서로의 현실과 이상을 독려하며 각자 개성적인 화풍을 완성해갔다. 제여란에게 이러한 동료 작가들과의 연대는 제도화된 단색화를 넘어서 차별화된 새로운 추상 회화의 길을 내고, 그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를 심화하는 마중물이 되었다. 

 
어디든 어디도 아닌
앞서 2006년의 개인전은 제여란의 작업에 특이점이 오는 사건이었다. 몇 년간 몰두해왔던 미발표 신작을 정리하는 기회였고, 이후 또 다른 새로운 연작으로 방향을 트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그렇게 2006년부터 시작된 작업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Usquam nusquam> 연작이다. 라틴어인 제목은 이탈리아의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Giambattista Vico)의 저서 『새로운 학문(Scienza Nuova, 1725)』에서 인용한 문구로, 번역하면 영어로는 ‘everywhere nowhere’, 한국말로는 ‘어디든 어디도 아닌’이다. 1)  이 제목을 붙인 이유에 대해 제여란은 “유토피아처럼 지상에 없는 곳이지만 새로운 학문 혹은 미래에 대한 사유가 자신의 그림이 지향하는 바와 유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있으면서 없고, 모든 것이면서 아무 것도 아닌, 영원하면서 영원하지 않은. 긍정과 부정의 양가적 태도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그의 세계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이전까지 추구했던 작품 세계와는 확실히 다른 것이었다. 마치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이 제여란은 어둠에 갇혀 있던 틀을 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색채였다. 순수한 명도의 원색들을 과감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색의 사용을 극도로 자제했던 전작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기세로 화면 위에서 색채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리고 불길처럼 피어올랐다. 이러한 변화의 기저에는 스퀴지라는 도구의 물리적, 심리적 역할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스퀴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초기에 그것은 타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낯설고 불편한 도구였다. 그러나 <되-ㅁ> 연작 시기를 지나오면서 스퀴지는 작가의 몸에 충분히 길들여졌고 익숙한 신체의 일부로 확장되었다. 여성인 작가의 왜소하고 연약한 몸은 실존적 한계로, 작업할 때면 행위의 반경을 구속하는 틀로 작용했을 것이다. 스퀴지는 한 번의 움직임으로도 더욱 크고 넓게 재빠르게 화면을 장악할 수 있는 물리적 힘과 자신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로 인한 심리적 해방감은 밝고 화려한 원색의 사용으로 숨김없이 표출되었다.
 
스퀴지를 사용한 추상회화라는 점에서 <어디든 어디도 아닌>은 리히터의 후기 추상화(Abstraktes bild) 연작과 비교되곤 한다. 리히터(Gerhard Richter)는 캔버스 높이만큼 커다란 대형 스퀴지를 수평과 수직의 직선 방향으로 밀어낸다. 그 결과 배경에 있던 형태와 색을 의도적으로 뭉개버려서, 채색보다는 오히려 긁어내기에 가까운 기법을 구사한다. 반면에 제여란은 자신의 몸을 중심축으로 스퀴지를 힘껏 회전하며 곡선적인 움직임을 물감의 켜 위에 더해 올린다. 몸의 궤적이 누적된 화면은 그의 고유한 신체 감각이 각인되어 있는 지문과 같다. 그렇게 무수히 반복된 전신의 힘은 두터운 물감층에 켜켜이 축적되어 회몰아치듯 압도적인 기운을 발산해낸다.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났는지 짐작할 수 없는 화면은 순환하는 자연처럼 끝맺음과 새로움이 겹쳐지는, 어디든 어디도 아닌 세계이다. 

제여란에게는 여성 작가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여성 서사가 부재한다. 누군가의 딸로 어머니로 아내로 혹은 타자로서 관계망 속에서 규정되는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지 않고, 개인사의 희노애락에 대한 언급도 없다. 대신 그는 몸짓의 조형적 언어로 자신의 서사를 수행하고 있다. 온 몸을 다해 캔버스를 종횡으로 누비고 다니며 말로 전하지 못했던 내밀한 감정과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여성인 작가로서, 작가인 여성으로서의 ‘삶’은 그렇게 작품 속에서 풀리고 펼쳐지고 있다. 


이순령(1970∼)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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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코는 이 책에서 공간적 개념인 ‘usquam’과 ‘nusquam’에 대응하는 시간적 개념으로 ‘unquam(ever)’, ‘nunquam(never)’을 들었다.  그는 시간과 공간을 정지해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움직이는 상대적 개념으로 파악하였다. 그 예로써 모든 움직임은 단순히 직선이 아닌 곡선이며, 그 곡선은 무한한 시점의 수많은 직선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하였다.







제여란, <무제>, 1993, 캔버스에 유채, 181.5×227cm




제여란, <되-ㅁ>, 2004, 캔버스에 유채, 227×182cm




제여란, <어디든 어디도 아닌>, 2018, 캔버스에 유채, 200×2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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