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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나를 찾기 위한 항해, 차우희의 노마디즘 | 박신진

현대미술포럼





나를 찾기 위한 항해, 차우희의 노마디즘




차우희(1945~)는 1985년 독일 연방정부로부터 학술교류기금(DAAD)을 지원받아 한국에 남편과 어린 아들을 둔 채 독일로 출국한다. 독일에 정착할 생각으로 떠난 길이 아니었기에 작업 초반에는 이동이 용이한 종이 두루마리나 캔버스천, 광목천에만 작업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차우희는 ‘아내’ 그리고 ‘어머니’라는 여성의 역할에서 벗어나 ‘미술가’로서 베를린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타국이라는 낯섦을 느낀 것도 잠시였다. 그는 분단국가라는 공통된 이념에 공감하고, 다양한 예술가들이 가득 찬 베를린에서 온전히 미술가로서 살아갔다. 여성에게 특히 보수적이었던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는 가족보다 ‘나’를 우선시한 이기적인 여자라는 주변의 비난을 받아야 했고,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3개월마다 한국과 독일을 오가는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한국과 독일,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 그의 노마드적인 삶은 30년이라는 세월동안 지속되었으며, 이러한 삶의 형태는 차우희에게 작업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판이 되었다.

유랑하는 미술가로서 하나의 국가와 문화적인 배경에 의존하지 않는 차우희는 스스로가 이동하는 존재임을 작업에 꾸준하게 드러낸다. 그는 2003년에 출판한 자신의 저서 『베를린에서 띄우는 편지: 배는 움직이는 섬이다』에서 낯선 베를린에서의 생활을 여행이라고 표현하며 이 여행을 통해 인습으로부터 벗어났으며, 익숙한 삶에서 한 발자국 나올 때의 두려움을 경험함으로써 창의성을 획득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차우희는 ‘여성’으로서의 삶과 ‘미술가’로서의 삶을 위해 어느 한 가지의 역할에 치중하지 않고, 스스로를 창조자라 여기며 노마드를 자처한다. 실제로 그의 전(全) 작업은 ‘여행’이라는 소재로 이루어지는데, 작가에게 여행은 한국과 독일을 유랑하는 본인의 삶에 대한 비유이며 태어나 죽음으로 가는 삶의 여정을 의미하고, 깊은 내면으로 향하는 여로를 내포하기도 한다.

차우희의 초기작 <돌아오지 않는 소포>(1986)와 <왼손 카드>(1987)에서도 여행에 대한 다의적 해석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카드와 소포는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과정 자체가 정행(征行)을 하는 것과 같으며 특히 엽서일 경우, 그림 혹은 사진에 보낸 이의 여행지가 함축되어 장소성이 부각되기도 한다. 그는 우편물이 갖는 이러한 유목적 특성을 작업에 드러냄으로써 스스로가 여행하는 존재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고향과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느끼면서도 한국과는 전혀 다른 자유로운 삶을 즐기는 양가적인 자신의 모습이 그에게는 독일과 한국을 오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내와 미술가라는 두 정체성 사이를 오가는, 유랑하는 존재로 비춰졌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왼손 카드>에서 카드를 손으로, 카드 안의 메시지는 손금으로 묘사함으로써 한 사람이 걸어온 인생사, 즉 삶의 여정을 작업에 담아냈으며 이로써 물리적인 의미의 여행뿐 아니라, 시간의 유동성을 암시하는 서정적 의미의 여행을 표현했다.

그는 이러한 다의적 개념의 소재를 강렬한 흑백의 색채와 단순 명료한 형태 그리고 상징적인 기호들을 통해 추상적으로 담아내는데, 이 세 가지의 조형 요소들은 차우희의 작업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제작된 초기작들은 그가 독일에 막 정착하여 다양한 실험을 하던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차우희 작업의 과도기적 특징이 잘 나타난다. 우리가 ‘차우희’하면 떠올리는 절제된 기하학적인 추상화면과는 차이가 있는, 거친 붓놀림과 강렬한 색채가 초기작들에서 눈에 띄게 나타나며 더불어 재현적인 요소들이 많이 등장한다. 예컨대, <왼손카드>에서는 손과 시계가 화면 전체에 크게 묘사되었고, 색채 또한 파랑과 빨강이 강렬한 대치를 이룬다. 이보다 한해 빨리 완성한 <돌아오지 않는 소포>에는 재현적인 요소는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지만, 두텁게 쌓인 검은색 물감 위로 빠르고 투박한 붓놀림에 의해 그려진 새의 형상을 어렴풋이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독일 표현주의와 한국에서 주를 이룬 앵포르멜 화풍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차우희의 작업에는 독일과 한국에서 나타나는 주류 미술의 특성이 나타난다. 실제로 1985년에 장학금과 함께 독일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그의 작업실은 독일 표현주의의 발판을 마련한 다리파 화가들의 작업이 전시된 브뤼케 미술관(Brücke Museum)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시기 차우희는 다리파 작품들을 가까이에서 접했을 뿐 아니라, 막스 베크만(Max Beckmann), 에밀 놀데(Emil Nolde),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와 같은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들에게서 강한 영감을 받기도 했다. 특히 차우희의 작업에는 검정색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는 이에 대해 “막스 베크만의 눈부시고 치열한 검정색”에 영향을 받았으며 동시에 “동양화의 수묵에 나타나는 고도의 함축미, 풍부한 정신적 아름다움”이 내포된 색이라고 술회한다. 또한 그는 검은색이 흰색과 대비될 때 화면에 강렬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이러한 긴장감은 수묵 문인화에서도 보여지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와 함께 1950년대부터 한국 미술화단에 풍미했던 앵포르멜 화풍의 특징인 두터운 마티에르 또한 차우희 작업의 가장 큰 특징으로, 두껍게 발린 물감의 뭉침과 그 위로 지나가는 붓의 흔적, 콜라주 된 종이의 질감이 캔버스에 그대로 드러난다. 즉, 작가는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어느 한 곳에 정체화 하지 않고, 양 국가의 미술을 능동적으로 흡수함으로써 자신만의 특색 있는 화면을 구축해 나간 것이다. 

검정색에 대한 작가의 애착은 초기작에서부터 나타났으나 본격적으로 흑백의 대비를 활용한 것은 1990년대부터 시작한 <오딧세이의 배> 연작부터다. 이 연작은 차우희의 작업관을 대변하는 작업으로 그의 모든 작업의 뿌리를 이룬다. <오딧세이 배의 돛폭>(1991)의 작품을 살펴보면 망망대해에 부유하는 배의 큰 돛을 상징하는 종이 콜라주와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을 연상시키는 검정색의 비정형들이 흰 종이와 대조를 이루며 화면에서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화면에 산발적으로 그려진 알 수 없는 문자와 숫자들은 선박 측면에 기입된 고유번호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는 화살표 기호들과 어우러져 있어 난해한 비밀 지도를 연상케 한다.  

“작업 속에서 기호는 이미 80년대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황망한 기호들을 화면 속으로 끌어들이는 일이 어딘지 마음에 내켰던 이유는 항해 속에서 깨닫게 되었다. 캔버스 천은 망망한 대해를 위해 펼쳐진 돛이기도 하고 원하는 곳을 찾기 위한 지도이기도 하다” 
(2016년 개인전 《오딧세이 이후》 작가글)

위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에게 캔버스는 돛이면서도 동시에 지도다.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오디세우스의 배는 노마드적인 작가의 삶이 투영된 소재로, 그는 귀향을 위해 고된 항해를 하는 오디세우스와 자신을 연결한다. 작품을 통해 독일과 한국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자신의 삶의 형태뿐 아니라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 같은 인생을 표현한 것으로, 오디세우스처럼 차우희는 미술가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가족을 뒤로 한 채 험난한 여정을 자처하고 있다. 덧붙여 차우희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항해이자 기억 저편을 끄집어내는 과거로의 여행이라 여겼다. 그리고 이를 통해 완성된 작품은 고된 여정의 결과물이자 그 과정을 기록한 지도와 같았다. <오딧세이의 배> 연작을 시작으로 작가는 이 주제를 계속해서 확장하여 1990년대 후반에는 재료의 질감을 촉각적으로 강조한 <배 위에 부유하는 생각> 연작을, 2000년대 들어서는 <날개 같은 배> 연작을 시도했다. 

작업 초기인 1980년대부터 캔버스 작업뿐 아니라, 설치와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영역의 작업을 시도했던 차우희는 2010년 개인전에서 오딧세이, 돛, 배라는 소재를 오브제로 구현한 대형 설치작 <기억의 상자>(2010)를 선보였다. 작가는 작업 초기부터 2차원의 화면에서 벗어나 캔버스 밖으로 공간을 확장함으로써 공간 전체를 하나의 작업으로 구현하기 위한 시도를 여러 차례 해 왔다. 이 설치작을 위해 그는 전시장 전면에 12개의 선반을 설치하고, 그곳에 캔버스 천으로 만들어진 108개의 가방을 배치했다. 이 가방들은 오딧세이의 돛배를 움직이던 돛폭의 기억을 담고 있는 오브제들로, 흰색의 천에는 그가 찾아 헤매는 과거 기억의 좌표인 검정색의 문자, 기호들이 어우러져 있다. 특히 이 작업은 숫자 ‘12’가 특별한 기호로 부각된다. 작가는 12라는 숫자에 12 별자리, 십이지신 등의 동서양 사상이 내포된 다양한 의미를 담아냈는데, 이를 통해 인간은 신의 조형물이면서 각자만의 기호를 가진다는 의의를 표출하고, 인간 본연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였다. 

이처럼 작가는 독일과 한국을 오가는 물리적인 여행과 끊임없이 자신을 찾는 내면의 여행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차우희는 2016년 개인전에서 선보인 <오딧세이 이후>(2016) 작업을 통해 그가 평생에 걸쳐 그려낸 지도를 완성하고, 배의 닻을 내려 그동안의 항해를 멈추고자 했다. 그는 전시 서문에서 “여행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무척 길었다. 항해는 너무 오래 계속되었고 돛은 해풍에 삭아 너덜거린다. 이렇게 내 안에서 길고 긴 오딧세이의 항해는 끝났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끝나지 않는 여정은 무엇인가”라고 자문하며 자신이 지속해온 여행에 대한 여운을 남겼다. <오딧세이 이후> 작품은 화면을 가득 메우는 종이 콜라주와 검은색 비정형들, 상징적인 기호들이 특징인 초기 오딧세이 연작과 매우 유사한데, 이는 그가 남긴 마지막 여정에 대한 질문처럼 항해를 마치는 것이 결국 항해를 시작한 그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그의 마지막 여행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작가가 펴낸 에세이의 첫 장에는 이런 말이 등장한다. “가장 이기적이면서 가장 인간적인 사람” 차우희의 남편이 그에게 한 말이다. 이에 작가는 “나는 안다. 내가 항상 지고 다니는 륙색이 나의 운명이 란걸”이라고 답변한다. 차우희에게 있어 여행은 그가 여성이자 미술가의 삶을 찾기 위한 꼭 필요한 여정이었다. 필수불가결했던 차우희의 노마드적인 삶은 그의 예술 세계를 지탱해주는 닻이자 미지의 세계로 여행할 수 있는 방향키였던 것이다. 



박신진(1987~),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현재 가나아트갤러리 전시기획팀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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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희, <돌아오지 않는 소포>, 1986, 캔버스에 혼합매체, 184x148cm, 작가소장




차우희, <오딧세이 배의 돛폭>, 1991, 캔버스에 혼합매체, 248x248cm, 작가 소장




차우희, <기억의 상자>, 2010, 캔버스에 혼합매체, 244x102x24.5cm




차우희, <오딧세이 이후 02>, 2016, 캔버스에 혼합매체, 90.9x116.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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