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커뮤니티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여섯 번째 시간 hora sexta》, 아트스페이스 언주라운드

객원연구원

여섯 번째 시간 hora sexta
2021.7.14-8.21
아트스페이스 언주라운드


전시장 입구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이번 전시는 우리가 잃어버린 한낮의 휴식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았다. <여섯 번째 시간(hora sexta)>이라는 전시의 제목은 시에스타siesta(라틴아메리카 등지에서 전해오는 이른 오후에 낮잠을 자는 풍습)에서 그 단어의 속성을 가져오고 있다. 고된 업무를 끝내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아, 일주일 아니, 하루만 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막상 낮잠, 휴식 등의 달콤한 말이 내 손 안에 쥐어졌음에도 편히 즐기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곤 좌절한다. 두려워서일까?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 남들보다 뒤쳐진 사람이 되진 않을까 안절부절 못한다. 그리고 다음 날 침대에서 눈을 뜨면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마주하며 또다시 한숨으로 내 방을 가득 채울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비록 휴양지로 여행을 가거나 카페나 바에 들러 친구와 한잔 하는 흔한 일상조차 편히 할 수 없는 요즘이지만 자유를 맛볼 수 있는 새로운 여행지를 발견했다.


(앞) 정태후, <동생의 원석들>, 여러 술병(유리병)에 유채, 가변크기, 2018


정태후, <동생의 보석> 시리즈, 캔버스에 유채, 33.4x24.2cm, 2020

호텔 바(Bar)를 연상케 하는 전시장의 입구에는 화려한 조명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유리로 된 술병들과 그림들이 걸려있다. 의자에 앉으면 정면으로 바로 보이는 정태후 작가의 <동생과 보석> 시리즈는 마치 힘들었던 외부현실에서의 모든 일들에 대하여 ‘자, 고생했으니 한 잔 받아’ 라는 바텐더의 위안, 내지는 환영의 의미로 나에게 건네는 칵테일로 느껴진다. 이곳에서는 아무 걱정 없이 여유로이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드는 순간이다. 


전시장 전경


전시장 전경


정태후, <아르고스의 눈>, 캔버스에 유채, 91x116.8cm, 2021


정태후, <아르고스의 눈>, 캔버스에 유채, 91x116.8cm, 2021 

바텐더와의 세상살이에 대한 만담을 끝내고 이제 호텔 방에 들어가 며칠 간 미뤄뒀던 잠을 잘 시간이다. 호텔 방문을 열어보니 가장 안쪽에 침대가 있다. 편한 파자마를 입고 씻지 않은 얼굴로 잠에 든다. 낮인지 밤인지 모를 만큼 달콤한 잠에 빠진다. 그런데 파자마의 무늬가 범상치 않다. 아르고스의 눈을 연상케 하는 파자마는 100개의 눈으로 이오를 감시하듯 ‘나’에게 주어진 자유시간과 사적인 공간까지도 침범 받는 느낌을 준다. 여기까지 와서도 나를 방해하는 시선이 있다니... 이제는 무시하고 잠이나 자자, 라는 단계에 올라선 내 자신에게 뿌듯함까지 느끼고야 만다.


전시장 전경


최요한, <Nonlinear Frances>, Pigment print, 가변크기, 2017


최요한, <Nonlinear Frances_Linda#01>, Pigment print, 100x150cm, 2017

안락한 소파가 있는 호텔의 로비에는 스페인 산티아고로 순례길을 떠난 최요한 작가의 사진 작품이 보인다. 그가 순례길을 걸으며 만난 사연들을 사진과 글로 남기고 있다. 최요한 작가는 “이 작업은 내 행위의 다큐멘트이면서 동시에 순례길을 걷는 다양한 이유를 가진 인간 군상의 다큐멘트이다.”라고 말한다. 길을 걸음으로써 어떠한 대단한 성찰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덤덤한 도착으로 여행이 종료되었다. 

달콤한 낮잠이라는 여행을 우리는 떠났지만 결국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무더운 날씨 속 귀환은 더더욱 괴롭다. 그럼에도 여행은 좋다. 잠시나마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는 감동스러운 순간을 마음껏 누려보라. 이곳에서는 어떠한 시선의 감옥 속에 당신을 가두지 않고 당신에게 간절했던 그 시에스타siesta를 마음껏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채원 chaewon630@naver.com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