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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빈: Life Stilled》, 희수갤러리

객원연구원



나빈 개인전_《 Life Stilled 》

2021.11.24 - 12.07
10:00 ~ 18:00 (월 휴무)
희수갤러리 




나빈, <섭지코지>, 2021



  희수 갤러리는 나빈 작가의 개인전 《Life Stilled》를 11월 24일부터 12월 7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Life Stilled》 정물화(Still Life)의 의미를 내포하는 듯, 전시장 안에는 작가의 감수성으로 재해석된 정물화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정물화는 사전적으로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생명 없는 물건’을 그린 회화를 뜻하는데, 나빈의 그림은 기존의 정물화의 규범에서 떨어져 나와, ‘life stilled’를 형성한다. 이는 마가복음에서 예수가 파도를 향해 “조용해져라. 잠잠해져라!(Quiet! Be still!)”라고 말하는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기도 하다.




전시 전경(2층)



전시 전경(2층)



전시 전경(2층)


“테이블 위에 두고 이렇게 저렇게 볼 수 있는 절화(折花)는 흥미롭다. 절화라는 꽃의 상태가 주는 서늘한 감각이 자꾸만 바라보게 한다. 일반적으로 자연의 경이로움은 멀리서 조망하는 풍광을 지칭하지만 절화는 테이블 위의 ‘가까운 경이驚異’라는 생각이 든다. 아침, 저녁으로 달라지는 꽃의 모양과 색을 보며 숭고를 느끼는데 이는 그림의 배경으로 산, 호수, 바다 같은 모호하고 거대한 자연을 커튼처럼 드리우도록 이끈다. 

모든 그림은 자화상이라는 맥락에서 나의 정물화는 내면의 어떤 부분들이 물질화된 것이다. 꽃이 주는 감각의 자극에 취해 그림은 시작한다. 그러나 긴 시간을 들여 물감을 쌓아올리는 동안 꽃이라는 형식을 빌어 자아가 외화外化 되는 경험을 한다. 꽃의 초상이 곧 자화상이 되는 순간이다.”  (나빈 작가노트 중)




나빈, <자두>, 2021



나빈, <Life Stilled>, 2021



  작가의 작품에서 꽃들은 화병에 담긴 채 풍경에 휩싸여 있다. 작가가 말했듯 이들은 호수의 한 가운데 놓이기도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봉우리를 배경으로 두고 있기도 하다. 테이블 위의 작은 ‘경이’가 자연의 경이로움과 더해서, 숭고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꽃의 초상은 이내 자두나 케이크 같은 일상의 대상으로 이어진다. 작가에게 이들은 하나의 은유이다. 자신과 공명하고 있다는 대상을 발견하고, 이를 빌어 스스로의 요소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섭지코지>부터 자두, 그리고 광활한 자연 속 화병에 꽂힌 꽃들은 모두 그 대상 자체이자 작가의 초상인 셈이다. 




전시 전경(3층)



전시 전경(3층)



나빈, <백자>, 2021



  한편, 전시장 3층에서 볼 수 있는 백자 연작은 캔버스의 중심에서 정물로 자리 잡으며, 자가의 또 다른 초상으로 드러난다. 이 백자들은 작가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견한 공명의 대상이다. 작가는 백자를 그려내며 조선 도공들의 노고를 곱씹어 본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작가가 작품에서 주로 구사하는 기법과 연관성을 지닌다. 그는 주로 투명도가 높은 물감을 얇게 덧칠하는 글레이징 기법을 구사하는데, 이를 통해 유화 물감의 레이어가 자아내는 빛 감을 유지시킨다. 고생스럽고 수고스러운 절차를 고수해온 이유는 반사로 인해 생겨나는 빛과 빛머금이 캔버스에 내려앉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소화하고 나면 발하는 영롱함을 잃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빈, <Inner Light>, 2014



나빈, <빛나는 상자>, 2020



  김현주 독립큐레이터는 이러한 나빈 작가의 작품을 보며, 정물화가 조르주 모란디(Giorgio Morandi)와 20세기 영국 문학가 존 파울즈(John Fowles)을 떠올린다. 정물을 대한 태도와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일치했던 조르주 모란디는 정물화, 풍경화 등의 범주에 구애받지 않는 나빈 작가의 회화와 닮아 있다. 이어지는 글에서 그는 존 파울즈의 글 『프랑스 중위의 여자』에서 영국 남서쪽의 코브 해안을 거니는 여성 주인공을 나빈의 <섭지코지>로 인도한다. 파울즈의 소설에는 소설가의 소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는 실재하는(또는 실재했던) 세계만큼 사실적인, 그러나 그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창조하고 싶다.” 이와 비슷하게, 작품 속에서 동시대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나빈 작가는 “실재하지만 그 세계와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일상의 나를 예술의 세계에 위치시키며 대상과 쉼 없는 대화를 이어온 나빈 작가에게 어울리는 평이 아닌가 싶다.

윤란 rani7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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