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커뮤니티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Trouble Travel》, 페리지갤러리

객원연구원

Trouble Travel
2022.01.07-02.12
페리지갤러리

  페리지 갤러리는 정혜정 작가와 유은순 기획자의 《Trouble Travel(트러블 트래블)》을 선보인다. 이 전시는 지난 1년간의 페리지 팀 프로젝트 결과로, 비인간 존재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작업하는 정혜정과 주체와 타자의 이분법적 구분에 의문을 가지고 수행적 정체성에 관심을 가진 유은순의 경험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하였다. 
  전시의 제목이자 팀 프로젝트인 제목 《Trouble Travel》에서 ‘트러블(trouble)'은 도나 해러웨이의 《트러블과 함께하기》에서 차용한 것이다. 해러웨이는 비인간 존재와 인간을 구분 짓는 인간중심적 관점에 반기를 들고, 다양한 복수종이 “함께 잘 지내기를 위한 평범한 가능성”에 도달하기를 바라며 ’트러블과 함께 하기‘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한편, ‘travel'은 페리지팀프로젝트가 일시적이며 함께하는 여정이라는 뜻과 이 과정이 비인간과 인간 사이에 구축된 질서를 해체하는 실천적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전시 전경



  먼저, 전시장에 들어서면 정혜정 작가의 3채널 영상 작업인 <끝섬>과 단채널 영상 <액체인간>과 마주하게 된다. 이 두 가지 영상은 주체와 타자, 내부와 외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는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구현해낸 가상의 섬 <끝섬>에는 이미 멸종된 동물인 여행비둘기, 와이마누펭귄, 판타섬땅거북 등이 거주하며, 멸종위기인 반딧불이와 상상의 생물인 눈알해파리가 더불어 살고 있다. 여기서 작가는 인간과 다른 동물들을 이해하기 위해 ‘몸 섞기’를 시도한다. 비둘기는 사람의 얼굴을 지닌 채 비행하고, 펭귄은 사람의 발로 타박타박 걷는다. 눈알해파리는 사람의 눈으로 우리를 응시한다. 이 동물들은 모두 각각의 삶을 살아가지만 서로 교차하고 스친다. 그리고 그 순간 한 존재의 시선은 다른 존재의 시선으로 연결된다. 마지막에  ‘끝섬’은 물이 점점 차오르면서 모두 잠기게 되는데, 이는 종말론적인 장면이라기보다 물속을 유영하는 또 다른 존재들의 공간이 펼쳐지는 순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작가에 의하면 이러한 상황은 디스토피아가 아니며, 유토피아 또한 아니다. 지구는 명백한 창조자이자 파괴자의 위치에 있으며, 누군가가 보호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혜정, <끝섬>,2021  영상 스틸 컷



  반면, <액체인간>은 질병에 대한 경험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작가는 어느 날 ‘장미색 비강진’이라는 병을 진단받게 되었고, 자신의 신체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영상의 시선은 액체로 된 몸속을 헤엄치며, 내장, 미생물, 바이러스와 같은 미시적 존재들을 비춘다. <액체인간>의 마지막 부분에는 액체로 된 아이가 등장하는데, 이 아이는 <끝섬>에 2D 외곽선 형태로 등장하는 아이와 연관성을 지닌다. 이 아이는 <끝섬>에서 섬을 가로지르고 자신의 텅 빈 몸 안에 다른 생물종과 풍경들을 투과시킨다. ‘끝섬’에 물이 차오르게 되면, 아이의 몸 또한 액체로 가득 차게 되고 이는 <액체인간>의 아이가 된다. 한편, <액체인간>은 ‘클라인의 병(Klein's Bottle)'을 언급하며 마무리되는데, 이때 클라인의 병은 뫼비우스의 띠를 닫아 만든 2차원 곡면으로, 안과 바깥의 구별이 없는 병을 뜻한다. 한 작품의 세계관이 클라인의 병처럼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계관은 ‘아이’를 매개로 하여 현미경과 망원경 사이를 오고가며 순환하고 있다.



정혜정, <액체인간>, 2021 영상 스틸 컷



  이를 바탕으로 하여, 유은순은 정혜정을 작업을 재해석한다. 4개의 테이블로 구성된 전시장 내에는 유은순이 정혜정의 작업을 메타적/미시적으로 접근한 일련의 글들이 놓여 있다. 그는 자전적인 내용 이야기하기, 비평적 글쓰기, SF적 상상력 가미하기 등의 전략으로 인간과 비인간을 규범 짓고 구성하는 요소에 질문을 던진다. 가령, 「대체육과 메타버스」에서 유은순은 채식을 하게 된 계기를 밝히며, 가벼운 칼로리를 섭취해야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스스로의 몸이 중력으로부터 멀어질 것이라 상상한다. 그리고 그쯤 되면 진짜를 대체한 먹거리를 섭취하는 자신이 이미 메타버스 세계에 떠다닌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말한다. 이와 달리, 「0 vs 2,000,000」는 멸종하는 동물들과 그 수치에 대해 나열한다. ‘멸종’의 종류에는 산업혁명 이후 발생한 환경오염 등의 인간의 간접적인 개입으로 인해 발생한 것과, ‘살처분’등의 인간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발생한 것이 있다. 어떤 방향이든, 인간의 영향이 없었다고 보기 힘들다. 작가의 이러한 글쓰기는 비건, 멸종, 하이브리드, 비인간-존재-되기를 탐구하는 과정이자 그 과정에서의 실패를 담고 있다.



유은순, 「대체육과 메타버스」


유은순, 「0 vs 2,000,000」

   코로나19의 출현으로 우리의 삶은 거대한 변화를 겪었다. 이것은 단지 지나쳐갈 하나의 질병일까? 아니면 인류의 종말을 암시하는 경고인 걸까? 우리는 이례적인 지각변동을 마주하였으며, 견고할 것이라 믿고 있던 지각에서 크고 작은 균열들을 발견하였다. 우리는 ‘그 다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정혜정과 유은순은 그 균열들을 뒤덮기보다 오히려 파헤치고 더 많은 물음표들을 생성시킨다. 그리고 심해로, 외딴 섬으로 ‘트러블과 함께하는’ 여행을 떠난다.

관람 시간 : 10:30-18:00(일요일 휴무/설날 연휴 휴무)

윤란 rani7510@naver.com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