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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국립중앙박물관

편집부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Pinnacle of Propriety: The Uigwe, Records of the State Rites of the Joseon Dynasty


2022. 11. 1.(화) ~ 2023. 3. 19.(일)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전시품 : 외규장각 의궤 전체(297책)

<서궐도안>, <효종 상시호 옥책> 등 국가지정문화재 및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의궤 도설로 복원한 궁중 연향 복식 등 460여 점



왕의 책, 외규장각 의궤


의궤는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의 중요한 행사가 끝난 후 그 전 과정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은 기록물이다. 한번에 3부에서 많게는 9부를 만들었는데, 그 중 1부는 왕이 읽어보도록 올리고 나머지는 관련 업무를 맡은 관청이나 국가 기록물을 보관하는 사고로 보냈다. 왕에게 올린것을 어람용, 여러곳에 나눠어 보관한 것은 분상용이라고 한다. 외규장각 의구는 몇 권을 제외한 대부분이 왕을 위해 만든 어람용이다.


왕이 열람을 마친 후 어람용 의궤는 왕실의 귀한 물건들과 함께 규장각 또는 외규장각에 봉안하였다. 후대의 왕들이 꺼내보면서 예법에 맞는 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왕의 위한 책 외규장각 의궤는 후세를 위한 몸범적 선례이자 영구히 전해야할 왕조의 정신적 문화 자산이기도 했던 것이다.



전시 전경



전시 전경



서궐도안
지금의 경희궁 전경을 그린 초본이다. 12장의 종이를 이어 붙여서 경희궁의 여러 전각과 주변 언덕의 자연경관을 담았다.
경희궁은 1829년(순조29)에 큰 불이 나서 1831년(순조31)까지 2년여에 걸쳐 새로 지었는데, 이때의 공사 내용이 '서궐영건도감의궤'로 남앗다. 여기에는 주요 전각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도 실려있는데, <서궐도안>과 비교해보면 건물 배치나 구도가 약간 다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서궐도안>은 순조때 경희궁에 불이 나기 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종때 경복궁중건을 시작으로 특히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경희궁은 심하게 훼손되어 궁궐로서의 면모를 잃어버렸다. 지금 경희궁의 전체모습을 볼 수 있는 자료로는 <서궐도안>이 유일하다.



생생하게 그림으로


사람들은 의궤를 '조선 기록문화의 꽃' 이라고 말한다. 

다른 기록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아름다운 그림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대상의 세부 특징을 잘 묘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 천연색으로 채색되어 있어서 눈길을 사로 잡는다.


의궤 속 그림은 단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진을 보듯 조선시대 국가 행사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시각 자료이다. 글자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그림으로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의궤 속 그림은 감상하는 그림이 아니라 읽는 그림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목적을 가진 행사였는지, 예법에 맞는 의례 절차와 형식을 갖추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상,하)
1752년(영조28) 영조의 맏손자 의소세손(1750-1752)의 장례과정을 기록한 어람용의궤.
분상용이 따로 남아있지 않은 유일본이자 조선시대 세손의 장례기록으로서도 유일한 자료이다.



현사궁별묘영건도감의궤





외규장각 의궤
시대별 사수도 그림




















선농단이 표시된 한양지도
김정호, 1850년대 종이에 색

<대동여지도>로 유명한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보다 앞서 만든 전국지도 <동여도?중의 한양지도이다. 중앙을 동그렇게 에워싼 성곽의 오른쪽 밖으로 '선농단'이 보인다. 지금의 동대문구 제기동이다.
선농단은 농경의 신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국왕이 직접 농사시범을 보이는 친경의례의 시작인 선농단에서 올리는 제사였다. 제사를 마친 후 왕은 선농단 오른쪽 '동적전'이라고 표시된곳으로 갔다. '직전'은 왕이 직접 농사를 짓는 땅을 말한다. 이곳에서 왕은 5번 쟁기를 밀어 밭을 가는 시범을 보였다.


모란도 병풍

진표리 장면을 그린 그림 <진표리도>에서 혜경궁의 자리는 전각 안에 마련되었다. 그 뒤에 모란꽃이 가득한 병풍이 보인다. 8폭 전체를 하나로 연결하여 뻗어나간 가지마다 커다란 꽃송이가 만개한 모습을 그렸다. 모란은 부귀와 영화를 상징한다. 조선 왕실은 상서로움과 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다양한 의례용품에 모란무늬를 장식했다. 특히 모란병풍은 왕실 경사마다 빠짐없이 등장했다. 혜경궁의 자리에 펼친 모란도병풍으로 관례(성인식) 60주년을 축하하는 경사스러운 날의 의미가 더욱 강조된다.


혜경궁이 사용한 모란 병풍과 유사한 병풍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전한다. 전체 10폭인데, 각폭마다 그림을 따로 그리지 않고 <진표리도>의 병풍처럼 전체 화면을 하나로 연결해서 그렸다. 현재 남아있는 모란도 병풍 중에서는 매우 드문 방식이다. 시내가 흐르는 낮은 언덕에 큼직한 꽃봉오리가 무성하게 핀 모란꽃나무가 군락을 이룬 모습을 묘사했다. 도식적이고 정형화된 19세기 말 이후의 모란도 병풍과 달리 순수 회화같은 느낌을 준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하고 있는《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전은 2023.3.19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확인해보실 수 있다.



편집부 | 주애, 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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