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큐레이팅의 실제와 이론을 접목하는 미술평론
김성호(미술평론가)
1) 미술평론가로서 걸어온 길에 대한 회고
내세울 것 별로 없는 미술평론 활동이지만 지난 시간을 두루 회고해 본다. 나는 1996년 남양주시에 있는 모란미술관에 큐레이터로 일하게 되면서 미술 현장에 기획자로 입문했다. 곧이어 평론가로 데뷔하기 위해서 1995년부터 각종 신춘문예 당선작을 참조하면서 평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인터넷이 없던 시기라 당선작이 있는 신문을 스크랩하거나 신문사에 방문해서 직접 복사기로 당선작을 복사한 후 스크랩과 복사본을 묶어 파일철을 만들었고 그것을 날마다 정독하면서 당선작의 문제의식, 논리 전개, 문체와 어휘 등을 파악하면서 평론 공모를 준비했다.
1996년 일 년 동안 준비했던 일간지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에서 낙방한 이후, 1997년 미술 월간지 『미술세계』 주최 ‘96미술세계 평론상 공모’에 당선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평론을 시작했다. 당시 당선작은 「신체, 그 테마로서의 현대미술」(『미술세계』, 3월호, 1997)이라는 제목의 평문이었다.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영향으로 부상했던 ‘몸’에 관한 주제를 미술 현장 분석을 병행하면서 고찰한 평문이었다. 당시 심사위원은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인 김복영 미술평론가였다.
평론가로 데뷔한 30대 초반에, 내가 할 수 있던 미술평론은 대개 미술 잡지에 전시 리뷰를 발표하는 일이었다. 당선 이후 『미술세계』에 매달 리뷰와 작가론을 발표하고, 1997년 9월부터 『월간미술』에 매달 리뷰를 쓰는 동시에, 『공간』, 『가나아트』, 『월간도예』 등에 전시 리뷰를 통해 평론 활동을 이어 나갔다. 몇 잡지를 제외하면 대개 원고료 없는 글쓰기였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평론을 지속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지만, 당시 나로서는, 평론을 할 수만 있다면 공짜 비평이라도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던 시기였다.
물론 개인전을 개최하는 작가들에게서 청탁받아 쓰는 전시 카탈로그 서문은 수익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었다. 처음에는 주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평문을 돈을 받고 쓴다는 것이 미안했던지 도서 상품권을 받기도 했지만, 30대 시절에는 대개 한 편당 30만 원~50만 원의 원고료를 받았었다.
그 당시 나는 미술평론가의 위상을 스스로 대단히 여겼던 것 같다. 청탁받은 후 작가와의 미팅에서 한 말이 “비평문에서 토씨 한 자 바꿀 수 없다. 글을 받으면 받은 날 바로 원고료를 입금해야만 한다”라는 것이었으니, 당시 작가들에게는 버르장머리 없는 초짜 평론가로 보였으리라.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작가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세월이 흘러, 1999년 프랑스 유학을 떠나 『미술세계』 파리 통신원으로 일하면서, 2000년 한국미술평론가협회에 가입하고, 프랑스 및 유럽 미술 현장을 국내 미술 잡지나 『미술평단』에 기고하는 일로 평론 생활을 이어 나갔다. 박사학위에 등록한 상태로 2004년에 임시 귀국해서 박사 논문 쓰기를 잠시 미뤄둔 채 평론 활동과 전시 기획 활동을 병행하면서 ‘한국에서의 활동’을 본격화했다. 2006년 『미술세계』 편집장으로 일했고, 2008년 성남문화재단 전문위원과 2008창원아시아미술제 전시감독으로 일하면서 두 권의 미술평론집을 출간했다. 동시에 대안공간 쿤스트독의 쿤스트독미술연구소의 소장으로 연구 활동을 지속하면서 이 시기부터 학회에 비평 및 기획 관련 담론을 이론화하는 학술논문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1997년 미술평론을 시작한 이래, 2012년 박사학위를 취득하기까지 4년 정도 공백이 있었던 것을 제외하고서는, 현재까지 여러 잡지에 기고한 비평, 청탁받아 쓴 카탈로그 서문, 학회지의 학술논문 발표 그리고 개인 평론집 및 여러 공저서 출간을 통해서 미력하나마 평론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2) 현 상황에 대한 해석 및 전망 & 3) 관심 있는 이슈와 분야
2020년대는 이전에 주요했던 미술평론가의 역할이 큐레이터로 옮겨간 지 오래된 상황인 듯하다. 가치 평가 차원에서의 미술 매개자로서의 평론가의 역할 대신 참여 작가로 불러주는 미술관의 큐레이터나 갤러리의 갤러리스트, 국제아트이벤트를 맡고 있는 독립기획자의 위상이 작가들에게는 실질적으로 더 도움이 되는 것 같기만 하다.
평론가가 기획자를 겸업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내 경우에도 그러하다. 나는 2012년 박사학위 취득 후 2014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총감독을 필두로 본격적으로 기획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다. 2015바다미술제 전시감독, 2016순천만국제자연환경미술제 총감독, 2018다카르비엔날레 한국특별전 예술감독,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총감독, 2021강원국제트리엔날레 예술감독, 2022그린르네상스프로젝트 전시감독, 2022한강조각프로젝트 총감독, 제7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7(APAP7) 예술감독 등이 그것이다.
나는 이러한 국제아트이벤트의 감독으로 일하면서, 평론 분야에서도 비평 이론 연구뿐만 아니라 큐레이팅 담론을 비평화하는 일에 골몰했다. 한국연구재단 비등재지에 발표했던 「이원일의 큐레이팅 연구 - 창조적 역설(Creative Paradox)을 중심으로」(인물미술사학 제8호, 2012)를 포함해서 현재까지 한국연구재단의 등재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18편에서 많은 부분, 평론 및 기획 담론을 구체화하는 작업에 집중했다. 예를 들어 「이원일의 큐레이팅에 있어서의 제4세계론 - 탈식민주의를 중심으로」(미학예술학연구 제40집, 2014), 「이원일의 큐레이팅에 있어서의 공간연출: 수축과 팽창」(미술이론과현장 제17호, 2014)은 대표적이다. 이러한 세 편의 학술논문을 묶고 원고를 증보해서 출간한 『큐레이터 이원일 평전』(사문난적, 2015)은 작고한 큐레이터 이원일의 큐레이팅 인생 전반을 탐구하는 평전이었다. 이 책은 훗날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번역 지원을 받아 『策展人李圆一评传』(河北出版传媒集团 河北敎育出版社, Beijing, 2017)라는 제목으로 중국에서 영문과 중문 버전으로 출판했다.
비평 이론을 탐구한 학술논문으로는 「새로운 온라인 공론장에서의 비전문가의 미술 비평: 자발적 비평과 말하기로서의 글쓰기」(미학예술학연구 제39집, 2013), 「미디어아트 이미지의 해석 - 바르트의 제3의 의미로부터」(Contents Plus, Vol. 11, 2013), 「미술비평에서의 팩션(faction)의 매개적 효용성 연구」(미학예술학연구 제42집, 2014), 「이미지의 첫인상,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효용성」(Contents Plus, Vol. 16, 2018) 등이 있었다.
이원일의 큐레이팅 연구 외에 큐레이팅 이론을 탐구한 또 다른 학술논문으로는 「비조각 담론의 큐레이팅 - 2020창원조각비엔날레를 중심으로」(미술이론과 현장, 제30호, 2020), 「팩션의 큐레이팅」(Contents Plus, Vol. 19, 2021), 「큐레토리얼민주주의 - 관람자의 창작을 견인하는 큐레이팅」(예술과 미디어 20권 1호, 2021), 「시각예술 큐레이팅에서의 팩션의 스토리텔링」(Contents Plus, Vol. 20, 2022) 등이 있다.
작금에 변모하는 현대미술의 지평은 생태, 디지털 테크놀로지, AI 등의 담론을 확산하고 있는데 나 또한 현대미술을 두루 비평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이러한 분야에서 비평과 기획 활동을 지속했다. 특히 나는 조각이나 생태미술의 장에서 많은 활동을 했고, 최근에는 인공지능 관련 연구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발표했던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통한 이미지의 존재론과 창발성」(Contents Plus, Vol. 16, No. 4, 2018), 「딥러닝을 통한 이미지의 인식론 - 창발성의 비주얼 커뮤니케이션」(Contents Plus, Vol. 17, No. 4, 2019)이나 최근에 출판한 단행본 『인공지능과 이미지 존재론』(커뮤니케이션북스, 2024)은 대표적이다.
나는 남들에게 ‘생계형 비평가’로 자신을 소개하곤 하는데, 비평계 어르신이 겸손한 태도라도 그러한 표현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해 주신 후에는 앞으로는 비평가의 역할과 위상을, 자존감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고민하면서 좀 더 튼실하고 발전적으로 모색해 나가고자 한다. 앞으로는 현장 비평을 줄이고, 비평 이론, 큐레이팅 이론을 정리한 단행본을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평론 활동을 지속할 예정이다. (20250214)
출전/ 김성호, 「비평과 큐레이팅의 실제와 이론을 접목하는 미술평론」, 『미술평단』, 특집1 나의 미술평론, 봄호(제156호), 2025, pp. 96-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