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을 탐구하다
마르셀 뒤샹은 1887년 7월 28일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블랭빌에서 공증인 외젠느의 아들로 태어났고 1968년 8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외조부인 니콜은 해운업자이자 꽤 알려진 동판 화가였고, 그의 어머니 루시에 니콜은 데생 작업을 하거나 음악을 즐겼던 예술 애호가였으며, 형제 6남매 중 뒤샹을 포함한 4명은 예술가였다. 뒤샹이 그림을 시작한 것은 15살의 나이이던 1920년 때부터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인상파 화풍에 관심을 보이면서 블랭빌 화풍을 그렸다. 하지만 정식으로 화가가 되기 결심한 시기는 17살 때 ‘아카데미 쥬리앙’ 입학 이후부터이다. 그래서 1906년 이후부터 화가의 길을 걸으면서 다양한 시도를 보였다. 처음에 뒤샹은 지금과 같이 독창적인 세계에 집중하기보다는 당시 유행했던 유파 양식을 모방했다. 그러나 이후에 그는 유파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세계에 관한 다양한 탐구를 진행했다. 그러던 중 그의 삶에서 전화, 무선, 엑스레이, 영화, 자전거 등 과학기술이 작용하고 의식의 흐름 기법, 정신분석, 상대성 이론, 입체파 등 문화 현상이 발생하면서 그의 인식 체계가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그리고 미술계에서 입체주의가 파리를 배경으로 전개되고 다다이즘이 일어나면서 뒤샹은 뉴욕 다다의 대표적 성과를 이루면서 기존 미술의 전통을 탈피하고 새로운 미술에 대한 흥미를 보인다.
뒤샹은 반예술에 관심을 보였다. 반예술은 말 그대로 기존 예술 개념에 대한 부정으로 새로운 미술에 대한 탐구가 핵심이다. 이것은 ‘레디메이드(ready-made)’라고도 불린다. ‘레디메이드(ready-made)’는 어떤 일상적인 기성 용품을 또 다른 새로운 측면으로 보아서 만든 미술 작품의 한 장르이다.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통해 보는 일상적인 기성 용품은 본래 용도와 관계없이 제목이 붙여지고 일상적인 용도에 벗어나 새로운 의미로 이름이 붙여진다. 뒤샹은 이러한 레디메이드를 통해 작품의 창조 과정을 기성품으로 대체하는 새로운 미술의 혁명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뒤샹의 대표 작품인 <Bottle Rack>, <The Large Glass>, <Fountain>은 레디메이드의 측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Bottle Rack>, 59.1cm x 36.8cm, galvanized iron, Private collection, 1914
<Bottle Rack>은 병 건조기로서 포도주병을 말리는 용도로 사용되는 도구를 미술 작품으로 취급하여 의미를 변화시킨 작품이다. 사물에 오브제를 결합함으로써 무언가를 창작하는 것은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들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달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뒤샹은 사물에 부여한 의미를 깨닫고 이 작품을 자신의 누이 동생에게 제목을 적은 후 자신의 이름으로 서명해달라고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편지가 온 후 이미 동생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다른 잡동사니와 함께 이것을 처분했다. 그래서 작가는 다른 사람이 가져온 많은 병걸이에 사인을 하고 그것에 레디메이드의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소실된 원본이라는 개념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래서 그의 레디메이드 작품은 일상적 사물이 미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진지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고 이에 따라 관람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다.
<The Large Glass>, 277.5cm × 175.9cm, Oil, varnish, lead foil, lead wire, and dust on two glass panels,
Philadelphia Museum of Art, 1915~1923
<The Large Glass>는 물리적 측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캔버스가 아닌 유리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동 구조, 정지 또는 지연된 에로티시즘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추상적으로 표현된 신부를 꽃피우기 위한 9명의 총각의 시도가 끝없이 지연된다는 복잡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다중적인 주제를 다루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작가가 회화를 포기하기까지 고민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함축된 것을 확인할 수 있고 그가 레디메이드와 함께 전통적인 미술 작업을 거부한 이후에 작업 방식을 제시했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체적으로 작품에 나타나는 텍스트는 이 작품에서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데 우연의 요소를 사용하여 미술가의 개인적 터치에 대한 환상을 깨고 있다. 위쪽 패널의 오른쪽에 위치한 9개 자국에 물감을 적신 성냥개비는 장난감 대포를 발사해서 나타나는 장면으로 우연적 요소를 보여준다. 그래서 캔버스 대신 유리를 사용함으로써 작가는 전통적인 화가의 정체성과 거리를 둘 수 있었다. 유리 작업을 통해서 회화적인 공간 창조에 따르는 요구사항을 피할 수 있었고 묘사된 대상과 바탕의 일관된 관계 형성의 필요성이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1923년까지 대형 유리 작업에 매달리다가 끝내 미완성의 결과를 얻게 된다.
<Fountain>, 61cm x 36cm x 48cm, ceramic, glazed ceramic, Philadelphia Museum of Art, 1917
<Fountain>은 남성 소변기를 오브제로 사용한 것으로서 변기를 90도로 회전 시켜 놓고 서명을 한 뒤에 Fountain이라고 하는 제목을 붙인 것으로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도발을 일으키기 위해서 장난을 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다. 즉, 사물의 위치가 원래 기능을 전도시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당시 이러한 작품은 미술가들 사이에서 하나의 도발로 보았고 뉴욕 앙데팡당전에서 Fountain은 새로운 이름을 걸고 전시를 하려다가 결국 독립미술가협회전에서 협회의 창립이념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표하여 전시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이 작품은 20세기 미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독일 철학자 칸트에 따르면, 18세기 말 미적 판단은 “본질적으로 이것이 아름다운가”의 형태를 취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뒤샹의 레디메이드 이후 “이것이 미술인가”라는 질문으로 대체되었다. 다시 말해서 “미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고민은 미술 그 자체의 의미에 통합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적어도 미술이라는 범주가 기술적인, 평가적인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무언가 다른 기준이 있어야 한다. 미적 판단의 개념을 완전히 저버리면 작품의 성공에 대한 판단을 온전히 미술가 혹은 미술관에 맡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도적 정당화로 미적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래서 레디메이드 작품은 지속해서 이어나갔던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기교의 표현이 미술 작품에 얼마나 필수적인 부분인지, 관찰하는 대상이 미술이라면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만을 가지고서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인지, 미술가가 의도했던 것만 봤다고 해서 그것이 미술 작품이 될 수 있는지, 그렇다면 어떤 것도 미술이 될 수 있는지 등 여러 가지 질문을 강요받게 된다. 그래서 작품은 20세기의 현대미술적 소양에서 관람자에게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면서 궁금증을 유발한다.
[Photo] Walter Arensberg and Marcel Duchamp “Nude Descending A Staircase No. 2”
20세기 뒤샹의 작품은 크게 부상하게 된다. 그 이유는 1950~1960년대 뒤샹을 둘러싼 미술계의 많은 사건을 통해서 나타났다. 1954년 월터 아렌스버그는 자신이 소장하던 뒤샹의 작품을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기증하고 전시했으며 1959년에는 뒤샹의 도움을 받아서 그의 작품에 대한 논문이 발표된다. 그리고 1960년에는 <The Large Glass>와 연계된 텍스트가 인쇄본으로 출판되고 1963년 작가가 참여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게 되면서 많은 관심을 끌어모았다. 더 나아가 동시대 많은 젊은 미술가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당시 주류 미술이었던 추상 표현주의에 대항하려고 하는 모델을 그에게서 찾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각적 쾌락이 아니라 아이디어로서의 미술의 가능성을 제시한 그를 통해 대안적 미술을 찾아냈다. 즉, 20세기 작품 감상자들은 모더니즘의 통일성, 자율성, 단일성과 대비되는 개방적이고 단편적인 모델을 작가에게서 찾아냈다.
오늘날 존재하는 거의 모든 레디메이드는 보통의 의미인 ‘오리지널’이 아니다. 과거 뒤샹은 그의 레디메이드 기법을 통해 반예술적 개념을 제시하고 ‘보는 것’의 개념을 바꿔서 지위를 부여하여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기성품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흥미로운 것이 되었고 이러한 영향력은 마르셀 뒤샹이라는 작가를 통해 왔다. 그래서 <Fountain> 이후 20세기 현대미술은 작가가 해왔던 것처럼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한다. 새로운 예술의 길을 여는 디딤돌 역할을 했던 마르셀 뒤샹은 지금까지도 현대인들이 기억하는 사랑받는 예술가 중 한 명이 되었고 작품 기획 단계에서 꼭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작가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