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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남: 세 개의 파도, 하나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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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창남  22회 개인전 <세 개의 파도, 하나의 바다>

일정  2025.11.13.(목)-2025.11.23.(일)

장소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B1
주소 서울 종로구 삼청동 18

오픈  10 AM –18 PM(17:30분 입장마감)
휴관  매주 월요일



작가노트 | 세 개의 파도, 하나의 바다 

-창남

나의 작업은 사진과 회화, 두 매체 사이의 섬세한 경계를 탐구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회화를 전공하고 사진을 오랫동안 다뤄오면서, 나는 두 표현 방식이 지닌 물성과 감각, 감정의 결을 오가며 ‘회화적인 사진’ 혹은 ‘사진적인 회화’라는 질문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여정의 중심에는 항상 ‘바다’가 있었습니다.

바다는 내게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정의 풍경이며, 흔들리는 자아의 반영입니다. 나는 바다를 통해 나 자신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감정의 결과 기억의 흔적을 길어 올립니다. 특히 밤의 바다를 장노출로 촬영하면서, 눈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파도의 흐름과 빛의 잔상이 사진 위에 감정의 색채로 번져 나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물리적 재현을 넘어, 시간과 감정이 스며드는 한 겹의 감각을 기록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감정이 사진의 표면을 넘어서 더 자유롭게 흘러가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다시 붓을 들었습니다. 사진 위에 물감을 얹고, 색을 번지게 하며, 기억과 감정의 잔여들을 겹겹이 쌓아가는 회화적 개입을 시도했습니다. 선 하나, 색의 농담 하나가 파도의 리듬처럼 화면 위로 번져나갔습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매체 혼합이 아니라, 관찰과 기억, 감정이 교차하며 시간을 담는 명상에 가까웠습니다.

내 작업에서 ‘물’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이자 메타포입니다. 물은 형태가 없지만 방향을 가지고 흐르며, 고체·액체·기체를 넘나드는 유일한 물질입니다. 나는 이 유동성과 시간성에 깊이 끌립니다. 물속에 스며드는 빛과 물감의 움직임, 색이 녹아드는 방식은 감정의 흐름, 기억의 변화와 닮아 있습니다. 나는 그 찰나의 순간, 물과 감정이 닮은 색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포착하고자 합니다.

각 작업은 하나의 ‘순간’에서 시작됩니다. 종종 사진의 형식을 취하지만, 그 자체로 완결되지는 않습니다. 나는 그 순간에 머무르고, 감정의 잔향에 천천히 스며들며, 물감과 빛, 사유가 차곡차곡 쌓이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감각의 층위를 만들어갑니다. 작업은 점점 더 회화적인 흐름으로 나아가고, 나 역시 경계 없는 감정의 리듬 속에서 흔들리고 또 나아갑니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사진, 사진 위 회화, 그리고 캔버스 회화. 세 가지 다른 형식이지만, 모두 하나의 바다에서 출발했습니다. ‘세 개의 파도, 하나의 바다’라는 제목처럼, 이 전시는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연결된 감정과 감각의 움직임을 담고 있습니다. 바다처럼 감정은 고정되지 않지만 분명한 리듬을 가지고 있으며, 나는 그 흐름 속에서 존재의 깊이와 예술의 언어를 찾고자 합니다.

내 작업은 고정된 서사나 설명보다는 감각이 머무를 수 있는 여백을 지향합니다. 조용하고 섬세한 언어로, 나는 움직임 속의 정적, 정적 속의 움직임을 불러일으키고 싶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기억된 것과 상상된 것이 공존하는 경계에서, 나는 감정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 합니다.


Color of Silence #3  74X55cm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e Canvas 2025


Lamesis 3 60X44.7cm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e Canvas 2023




사진과 회화 그리고 오브제, 그 경계를 흐르는 사유

유근오 | 미술평론


기대하던 파랑도 격정도 격랑도 없었다. 의외로 정적이 흐른다. 어설픈 선입견은 항상 반전의 먹잇감이다. 밤바다의 실사치고는 너무 화사하고 이상화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창남의 사진은 초현실적 뉘앙스를 띤다. 마치 영적이고 신비로운 비의의 세계를 탐구하며 초감각적인 경험과 의식을 넘어선 심상이 아닌가 싶은 화면으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것은 작가가 필터와 장노출의 솜씨를 구사했겠다고 미뤄 짐작하지만, 덕분에 사진의 특질인 한순간의 포착이 아니라 시간이 축적된 느낌도 든다. 우연의 산물이 아닌, 작가의 의도가 여실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하지만 피사체와 카메라, 그 기능과 속성 그리고 선택만으로 사진이 되지는 않는다. 이건 마치 회화가 단순히 색이 중첩된 물질의 집합체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과학적 이성일지라도 미적 상상력은 아니다. 사진은 사물로서의 보편적인 존재 조건과 기록이나 기억으로서의 남다른 존재 조건이라는 두 개의 축을 포함하면서 작가의 감정을 은연중 담기 때문이다. 

창남의 사진은 바다라는 대상과 렌즈가 마주하는 선택적 순간을 빛과 시간의 필연적 조우를 통해 시각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렇듯 파도의 존재를 포착하는 셔터의 찰나와 거기에 개입하고자 하는 작가의 감정 이입에 대한 갈망은 빛(색)으로 작가의 조형 언어 안에서 다양한 표징으로 체현된다. 밤바다 공기의 유기적 흐름은 춤을 추는 듯한 빛의 형상으로 표현되지만, 감상자가 자신의 지각과 감성을 자유롭게 투영할 수 있도록 말 없음의 여백으로 남겨둔 듯 조용하다. 이는 감상자가 알던 경험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내면의 순수한 감각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하며, 작가가 탐구하는 초월적 공간에 대한 상상력에 공감할 것을 자극한다. '세 개의 바다'는 작가가 나/세계/타자의 관계 맺음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다. 사실 인간을 포함한 만물은 항상 고정된 정체성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존재란 여느 관계 속에서 발자취를 남기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라졌다가 다시 드러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대상에 대한 감성은 본질이 아닌 현상적 드러남으로 작동하며, 바다 또한 단순한 자연 대상을 의미한다기보다는 그것이 작가 내면과 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관계가 만들어 낸 층위로 나타난다. 

관계란 무엇인가? 관계란 나와 타자, 세계가 끝없이 얽히고설킨, 상호 영향을 주고받고 헤어졌다 다시 엮이는 과정이다. 서로의 흔적이 스며들고 영향을 주고받는 만남과 별리의 지속적인 과정이다. 실제로 세계에는 명칭을 제외하고 보편적인 것은 없다. 동일한 사물조차도 관계 맺기에 따라 그 하나하나는 개별적이고 독특한 것이다. 만물은 이렇게 저렇게 불릴 뿐 혹은 그려질 뿐 그것의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 그 꼴의 본질은 세계와의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잠재태일 뿐이다. 물리학적으로도,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이지 아니기에 동일 시공간의 동일 존재라도 조금 전의 ‘그것’과 지금의 ‘그것’은 다른 존재이다. 빛이, 시간이 굴절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그의 사진은 자연이란 존재의 본질이 ‘관계’ 속에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중략)

물빛 시간 10 Acrylic   41X53cm  2025


익히 알려졌듯이 서구에서 사진의 어원은 빛으로 그린 그림, 즉 '빛(phos)'과 '그리다(graphos)'의 합성어이지만, 우리네 사진(寫眞)은 ‘참을 모사’한다는 의미가 있다. 진실의 초월적 유사인 ‘참’은 무엇일까? 그것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혹은 물리적 외양을 넘어 실체 이면에 은폐된 것을 드러내는, 도에 가까워 억지와 허위가 없이 직관적으로 감각되는 교감의 상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상태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좁지도 넓지도 않은, 강한 긍정도 부정도 없는 곳에 참됨이 거주함을 뜻한다. 극단의 개념에는, 즉 교감하기에 너무 가깝거나 너무 먼 곳에는 참됨이 머물지 못한다. 작가와 대상이. 현실과 표상이, 작품과 관객의 감성적 간극이 거의 없거나 너무 큰 곳, 그런 곳에는 아우라가 솟아나지 못한다. 창남은 그 ‘교감의 상태’를 위하여 다양한 실험을 구가하며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너무 짧고 가쁘거나 너무 긴 숨은 참됨의 본질이 아니다. 더구나 예술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분야는 아니다. 그 가름을 넘어 외양과 이면, 차안과 피안을 가로지르는 사유와 그 관계의 진정한 의미를 곱씹어 보는 측면이 있는 분야가 더 적확하다. 이를테면 예술은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에서 시작해 작품이란 다양한 재료와 형식 실험을 통한 다소 이질적이고 상반되는 대척점의 요소들-주체와 대상, 현실과 표상, 이미지와 개념 등의 경계나 틈을 추슬러서 때론 시적으로 때론 환유적으로 아우르는 장이다. 그렇다면 사진예술의 사회적 측면을 고려한다 해도 그것이 굳이 문법 사전이거나 도덕 교과서 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더불어 아이러니하게도 사진이 진실을 전하는 도구적 기능을, 직접성과 복제성을, 사진의 교조적 강령을 어느 정도 포기하며 ‘아름다운 거짓’일 수도 있음을 긍정했을 때 예술의 영역에 진입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창남 작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기억된 것과 상상된 것이공존하는 경계’에 집중한다고 토로했다. 설사 그것이 증감 효과를 노린, 허구의 맥락을 과장한다 하더라도 사진과 회화, 오브제의 부적절한 조합의 무한한 가능성을 실험하고 펼쳐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몸과 마음으로 작품을 체험케 하며, 동시에 물질적 상상력이라는 ‘경계’의 영역을 체득하게 하는 것이다. ‘경계’는 창남 작품을 독해하는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이다. 바다와 대지가 만나는 지점이, 사진과 회화가 엮이는 지점이, 표상과 상상력이 공존하는 지점이, 원본성과 복제품이, 작품으로서의 사진과 오브제로서의 사진이, 실사 사진과 구축 사진이 공존하는 지점이 그렇다. 종종 사진은 회화에 사용되는 캔바스 천에 인화되어 있어 그 경계를 흐리고, 나아가 사진 위에 회화적 질료가 얹어져 또 다른 세계를 꿈꾼다. 꿈은 꿈이되 바슐라르식으로는 몽상이고, 이 또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속한다. 이 지점에서 물질적 상상력이 본격적으로 삼투된다. 대상을 형태가 아닌 질료로 파악한다는 것은 시각적 차원의 인식을 넘어 대상의 근본적인 속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많아진다. 게다가 가시적인 바닷물과 포말, 비가시의 기후와 바람은 일정한 형태가 없으니 더 자연스럽고 참되다. 일부분-바닷물이 파스텔톤 색채로 치환되어 있던-을 다소 급한 스트로크의 붓질로 마감한 사진/회화는 가시와 비가시, 형태와 물질, 표상과 상상력을 포괄하는 경계의 정점에 속한다. 

그의 사진/회화와 순수 회화의 화면에서 필획의 운용이 그렇게 격렬하지도, 과격하지도, 마티에르를 느낄 정도로 두툼하지도 않지만 그리 보이는 것은 아마도 사진의 밋밋하고 얄팍한 평면 그 자체를 기억한 후속의 감각 때문일 것이다. 옅은 단색이나 두세 개의 그러데이션 색조로 치환되었던 바다는 활기찬 붓질과 질료의 물성으로 인해 이제 그 심연에 은폐되어 있던 격렬한 포효를 감지하게 한다. 정적은 깨졌다. 또 다른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이리 읽을 수 있는 것도, 그것은 개념이 선행하지 않는 분명 물리적 현상이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이라는 정신적 영역에 역동성과 창조성으로 투영되는 것이 바로 물질적 상상력이다, 매개자에 머물렸던 사진과 달리 사진/회화의 화면은 작가의 행위라는 과정을 증명하면서, 작가의 존재를 증언하고 있다. 또한 남겨진 사진의 이미지 덕분에 그것이 단순히 비대상의 추상 혹은 추상표현주의적 발로가 아님은 쉽게 간파되지만, 자연 속에 이미 추상이 내재하니 별반 중요치 않다. 사진에서 보듯 이미 상호교감이나 공명을 전제로 그려진, 그래서 알 듯 모를듯한.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때론 정갈하게, 때론 혼탁하게 착종된 이 붓질 이미지는 재현과 추상을 떠나, 아마도 작가의 사진/그림에서 작가의 개입과 매개와 행위가 가장 적극적으로 작동한 부분일 것이다. 그런 행위의 여파가 작가를 메이킹 포토와 순수 회화의 영역까지 밀어붙였다는 것은 일종의 메소드 연기처럼, 배우가 등장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등장인물이 되어 연기하는 방법론을 연상케 한다. 바꿔 말하자면, 작가가 바다를 찍거나 모사하는 게 아니라 작가가 바다와 혼연일체 되는 상태, 작가가 자연이 되고, 자연이 작가가 되는 상태가 일어났음을 현시한다. 경계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물은 기체, 액체, 고체에 따라 다르게 불릴 뿐 분리할 수 없음과 마찬가지이다. 바다는 물의 종착지이지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시작이다. 아마도 후일 작가의 순수 회화를 찍은, 작품으로서의 사진을 볼지도 모르겠다. 여기에서 우리는 창남 작가의 경계에 대한 독특한 사유를 발견하게 된다. 

Harmony #8  Acrylic on Pigment Print 29.5X44.5cm 2025


 Harmony #18 Acrylic on Pigment Print 93X143cm 2025


물빛 시간 5 Acrylic  60.6X72.7cm 2025


창남 (Changnam)

개인전 (22회)
2025 『세 개의 파도, 하나의 바다』 금호미술관, 서울 
2024 『Lamesis』 양평 미술관 
『Lamesis』 갤러리 나우, 서울 
『rencontre-restaurant』 파리, 프랑스
2023 『Waves, Adjust to the Light』 ROAM, 뉴욕, 미국
2022 『La vague réagit à la lumière』 INITIAL LABO 갤러리, 프랑스
2021 『Container Artlap』 양평미술관 
『Desire』 아산갤러리, 서울 
『Desire』 유나이티드갤러리, 서울 
2020 초대전, 연우갤러리, 서울
2019 『Desire』 WEME 갤러리, 쿠알라룸푸, 말레이시아
2018 『Sea and I – The Inter-space』 연우갤러리, 서울
2017 『The Illusion of Memory』 금보성아트센터, 서울
2015 『Sea and I – The Inter-space』 구하갤러리, 서울
『Stranger Sea』 한국문화원, 도쿄, 일본
2014 『The Sea and I – The Inter-space』 인사아트센터, 서울
『Sea and I – The Inter-space』 장은선갤러리, 서울
2013 『Illusion』 프랑스문화원, 서울
『I Saw the Sea』 갤러리 M, 서울
2010 『Metonymic Sea』 갤러리 아트사간, 서울
2008 『Fantasy』 사이드림포토갤러리, 서울
2007 『Secret』 갤러리 BIT, 서울

단체전 및 아트페어
2025  Art Expo NY, 뉴욕, 미국
K-포토 페어, 서울
2023  PINK 아트 페어, 신라호텔, 서울
3인 그룹전, PINK 갤러리, 서울
Art Expo NY 뉴욕, 미국
Carte Blanche aux Galeries d’art,  BOULOGNE BILLANCOURT 아트센터, 프랑스
2022  2인전 구구 갤러리, 서울
울산 국제 아트 페어 2022
PLAS 2022, 코엑스, 서울
아트 컨티뉴 ‘SopPung’, 서울
갤러리 아트 페어, 서울
2021 인천항 국제 사진·영상 페스티벌, 인천
Contemporary Art’s Eye View, 양평아트뮤지엄,
2020  Affordable Art Fair Singapore, 싱가포르
대구 아트 페어, 대구
2019  Art Shopping Carousel Louvre 프랑스
Art Expo Kuala Lumpur , 말레이시아
MANIF 서울 국제 아트 페어, 서울 아트센터
Art Formosa, 대만
3인전, 갤러리 별, 부산
AHAF,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
그 외 다수

수상
2010 오늘의 사진작가
작품소장
종로구청, 한라인재개발원,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웹사이트: www.belle.kr
인스타그램: instagram.com/changnam_lee
이메일: cachee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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