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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원 초대전: 추상, 끝나지 않은 길

  • 전시분류

    개인

  • 전시기간

    2022-09-06 ~ 2022-10-02

  • 참여작가

    이기원

  • 전시 장소

    충북문화관

  • 유/무료

    무료

  • 문의처

    043-223-4100

  • 홈페이지

    http://cbf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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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충북문화관 기획전 이기원 초대전 개최
- 화가 이기원의 기하학적 추상과 삶 조명 -


○ 충청북도와 충북문화재단(대표이사 김승환)은 9월 6일(화)부터 10월 2(일)까지 충북문화관에서 화가 이기원(1927-2017)의 예술과 삶을 조명하는 ‘추상, 끝나지 않은 길’ 전시를 개최한다.

○ 유가족의 협조로 진행되는 본 전시는 국전(國展) 출품작들과 기하학적 추상 작품 중에서 대표작 30점을 선정하여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했던 추상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 이기원은 충북 청원군(현 청주시) 북일면 출신으로 청주사범학교를 졸업(1946)하고 서울대 미대를 2년 수료했다. 평생 교육자로서 후학양성을 위해 매진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고 국전 초대작가와 창작미협의 대표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한 작가이다. 

○ 이번 전시는 한국현대미술의 격변기에 기하학적 추상미술에 천착하며 독자적인 예술을 일군 이기원 작가의 예술세계를 조명하여 우리 지역연고 작가에 관한 연구와 그에 따른 재평가의 시간이 될 것이다.

○ 김승환 대표이사는 이번 기획전을 통해 ‘우리 지역의 작가로서 한평생 시대 흐름의 최전방에서 기하학적 추상의 본질적인 물음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 작가를 평가하는 자리로 이기원 작가의 예술적 발자취와 창작혼을 살펴보는 좋은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문 _ 추상, 끝나지 않은 길

손명희 | 충북문화관

충북미술의 특징은 영호남 화단의 독특한 화풍과는 달리 규정지을 수 있는 특색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5년에 ‘충북 연고 작고 작가 예술과 정신’ 전을 준비하면서 김종근 미술평론가는 “충북미술은 좋은 토양과 작가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더 걸출한 작가를 배출하지 못해 매우 아쉽고 유감스러운 현실”을 지적한 바 있다. 분명히 현대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걸출한 작가들이 배출되고 있음에도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 충북미술을 특징지을 수 있는 공통된 성질을 갖기보다는 작가 스스로의 독자적인 예술 성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충북문화관은 그동안 충북미술 화단의 근원과 기질을 찾는 전시를 기획해 왔다. 선행작업으로 충북 연고 작고 작가들을 다양한 방식 - 재향, 전입, 출향, 월북 작가까지 범위를 확대하여 작품 성향을 기준으로 구분하여 소개하였고 조각, 지역 연고작가 유고전 및 미술교육자들까지 포함하여 충북화단의 스펙트럼을 넓히고자 하였다. 물론 자료 조사의 한계와 위 범주를 벗어난 독자적 화풍을 정립한 작가들에 관한 개별적 연구가 더 절실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 <이기원 초대전–추상, 끝나지 않은 길>은 그동안 충북 연고 작가군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했으나 한국현대미술의 격변기에 기하학적 추상미술에 천착하며 독자적인 예술을 일군 이기원의 개별적 연구에 집중하여 보는 데 의의가 있다. 2017년 구순의 나이로 타계 후 유가족의 협조로 진행된 본 전시는 주로 국전(國展) 출품작들과 기하학적 추상 작품 80여 점 중에서 대표작 30점을 선정하여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했던 추상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기원은 주로 공모전 위주의 대작(大作)을 많이 남겼으며, 그중 국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기인 1960~70년대 작품들과 본격적 기하학적 추상 시기인 1980~90년대 작품, 2000년대 말년작품으로 구성했다. 이번 전시는 작품의 연대기나 서사적 흐름을 따르기보다는 평생 기하학적 추상에 혼신을 다한 작가의 긴 여정에서 나오는 표현 양식의 미세한 변화와 정신성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기원의 화력(畵歷)과 예술

이기원은 1927년 충북 청원군(현 청주시) 북일면에서 태어나 1946년에 청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다. 이미 청주사범학교 시절인 1944년 선전(鮮展)에 출품하여 입선 1) 한 경력이 있다. 1946년 청주사범학교 심상과 졸업 동기생으로는 정창섭이 있고 서울대를 동시에 입학했다. 당시 충북미술교육의 선구자인 안승각이 1945년에 청주사범학교에 부임하고 나서 제자들이 서울대 미대에 11명이나 동시에 입학해 전국적으로 화제가 된 일이 있다2)고 하니 그는 그중에 속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기원은 서울대 미대를 2년만 수료3)하고 청주로 내려와 교사 생활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평생 교단에 몸담게 되었다. 이기원은 평생 교직에 있으면서도 꾸준히 작업 활동을 병행하며 붓을 놓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남긴 작업량과 출품 경력을 보면 얼마나 작업에 매진했는지를 알 수 있다. 청주에서 7년간의 교사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발령받아 고향을 떠났지만, 꾸준히 재경 충북미술작가 전시4)로 서울과 청주에서 전시를 이어가며 고향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이기원은 6·25전쟁을 겪은 세대의 한가운데서 활동한 작가이다. 당시 한국 미술 화단은 전쟁과 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과도기를 맞이하였고 국전이 재개되면서 여러 가지 운영상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1956년 국전이 양대5) 미술 세력의 반목과 대립으로 갈등이 정점에 다다랐다. 다른 한편 세계적으로 새로운 미술 흐름이 급속하게 전파되면서 한국화단에도 새롭고 강력한 현대미술의 흐름인 ‘앵포르멜’ 6) 영향은 젊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창작의 열풍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1957년에 反국전의 기치 아래 현대미술을 표방하는 재야단체들이 7) 동시다발적으로 출범했으며, 추상미술뿐만 아니라 한국현대미술의 기점8) 이 된 매우 중요한 시기로 기록된다.

이런 현대미술 열풍 속에서 이기원의 예술 활동이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이기원의 주요 활동 이력을 보면 1957년 서울미대파 중심의 한국미술가협회에 가입 9) 후 한국미술가협회전에 꾸준히 작품을 출품했다. 동시에 중견작가로 국전에서 추천·초대작가로 활동했으며 1971년 인도트리엔날레전, 아세아국제미술전, 재경충북작가전 및 서울가톨릭미술가회전 등 꾸준히 현대미술의 현장에 있었다. 특이한 것은 1968년 삼보화랑에서의 첫 개인전10) 을 제외하고는 평생 개인전을 개최하지 않았으며 또한 기증 외에는 작품을 한 점도 판매하지 않았다고 한다. 11) 이는 예술의 정신과 순수한 창작을 우선시한 창작미협12) 회원들의 일종의 보이지 않는 계율이 작용했으리라 본다. 그리고 “당시 선배 원로작가들에게 있어 전시란 ‘평생 남을 만한 개인전 한 번이면 족하다’라는 신조가 있었는데, 그 진지함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전통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후배 작가는 말한다. 13)

이렇듯 이기원의 전시 활동 무대는 개인전 대신 주로 국전과 창작미협이었다. 국전이 혼란과 파행이 거듭되는 과정에서 이기원은 국전의 폐쇄성에서 벗어나고자 순수 창작에 대한 내적 고민으로 창작미협에 가입하게 된다. 이기원은 1962년 12월 창작미협에 가입 후 본격적으로 1963년 제7회전부터 출품하며 창작미협 창립 60주년을 넘길 때까지 14) 창작미협의 최고령 회원으로 외유내강의 강인한 의지와 열정으로 후배들을 이끌며 역할을 다했다. 그런데도 이기원이 국전의 마지막 해까지15), 국전 초대작가로서의 활동을 이어가기는 했지만 기존 관전(官展)의 아카데미즘 화풍과는 거리가 먼 현대미술의 흐름에 맞춰 추상 조형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했다는 사실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기원이 엄격한 미적 질서를 추구하는 ‘기하학적 추상’에 천착하며 구도자적 삶16)의 태도로 일관된 순수 조형 세계를 펼쳤고 그런 순수한 창작 활동이 이기원의 예술세계를 특징짓는 것이라 하겠다.

이기원의 예술이 일관되게 ‘추상성’이라는 하나의 형식으로 이어져 올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은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한 사유로서 ‘어떻게 하면 일상의 현상들을 본질로 환원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이 작용했으리라 본다. 그에 따른 간결하고 대담한 색채와 단순미에서 오는 엄격한 구성 원리로의 탐색은 평생 작가의 화두였다. 1960년대 이기원의 작품 경향은 당시 창작미협 작가들에서 볼 수 있는 서정적 추상과 비구상적 요소가 혼재하는 거친 마티에르와 넓은 색면 처리가 작품 전체를 구성했다. 60년대 말부터 70년대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대담한 원색(붉은 계열 또는 푸른 계열)의 색면 분할 등 기하학적 모티브가 주 조형 요소로 자리 잡는다. 비대칭적 원형, 타원, 수직, 수평, 마름모, 면과 면 사이의 미세한 간극 등으로 이루어진 비대상적 대상들은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절제된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이기원의 말년작품은 평생 일군 화풍이 절제되고 집약된 예술로 드러내는 데 손색이 없다. 그림의 화제(畵題)에서 나타나듯이 기하학적 도상은 당시 만연하던 추상미술에 답습이 아니라 자신만의 형이상의 이상을 드러내기 위해 자연이나 일상에서 느낀 절대 감수성의 점진적 회귀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기원이 1944년 선전(鮮展)에 입선 때부터 70년의 화력(畵歷)을 오로지 추상이라는 외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조형 예술론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본인이 추구하는 예술세계에 대한 꾸준한 성찰과 절대적 내면의 숭고함이 아닐까 한다. 기나긴 세월 동안 교육자로서 평생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창작미협 선배 작가들이 그러했듯이 작가로서 겉으로 보이는 개인의 예술적 업적이나 영달보다는 예술에 대한 열정, 정신적 성찰과 기본을 강조한 삶을 그려왔다. 

이기원의 중앙 화단에서의 조용한 활동은 충북지역 화단에 끼친 영향은 적었지만, 우리 지역 연고 작가로서 한평생 시대 흐름의 최전방에서 기하학적 추상을 누구보다도 먼저 체득하고 본질적인 물음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은 부정할 수 없고 또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이 전시를 기회로 한국현대화단의 추상회화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이기원이라는 작가에 대한 재평가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이번 이기원의 추상 작품 소개로 충북화단의 화풍을 더욱 다양하고 풍성하게 해준 것은 진정 반가운 일이다.


1)  제23회 선전(鮮展) ‘풍경’ 입선
 
2)  안승각 ‘나의 인생 청풍에서’, 충청일보, 1978.

3)  1948 서울대 수료증

4)  재경충북작가회 창립(1977) 자료 목록 참고 

5)  대한미술협회, 한국미술가협회

6)  앵포르멜(informel) : 비정형이란 의미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현대 추상회화의 한 경향. 한국에서 앵포르멜이 본격적으로 하나의 미술운동 차원에서 도입·형성된 것은 1957~58년 무렵, 다음 백과사전 인용

7)  모던아트협회(박고석, 유영국, 이규상, 한묵 등), 창작미술협회(류경채, 이봉상, 최영림, 장리석, 황유엽, 이준, 고화흠, 박항섭 등), 신조형파(변영원, 변희천, 조병현), 현대미술가협회(김창렬, 박서보 등), 한국의 추상미술 1960년 전후의 단면전 서문, 1994

8) 『추상미술의 이해』, 오광수, 일지사, p.188, 1988

9)  1957. 4. 21.

10)  제1회 개인전 방명록(당대 활발히 활동하던 작가들과의 교류와 친분을 알 수 있는 자료)

11)  유가족과의 인터뷰 중 2022. 6. 14.

12)  1957년 창립. 이봉상, 류경채, 고화흠, 황유엽, 장리석, 이준, 박항섭, 박창돈 등이 창립 구성원으로 활동하며 류경채는 줄곧 리더로서 협회를 지키며 추상 스타일을 이끌었고 이기원의 작품 경향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13)  창작미협 소속 박태홍 작가와의 인터뷰 중 2022. 7. 12. 

14)  1995년 창작미협의 창립자이자 실질적 리더였던 류경채 타계 후 이기원은 가장 고령의 연장자로 활동했다.

15) 1981년 제30회로 국전의 막을 내린다.

16) 이기원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수도승의 사색과 고뇌의 긴 여정’이라고 술회, 작가노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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