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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넘어서”가 아닌 “아우르는” 비평

김정현

'이제는 이념적, 미학적 경계를 ‘넘어서’가 아니라 바로 그러한 차이의 창조적인 경쟁과 풍부한 소통을 통해 성숙한 미술문화를 만들어나갈 시점이다. 광주비엔날레의 정상화는 이러한 실천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광주비엔날레 정상화와 관료적 문화행정 철폐를 위한 범미술인위원회 발기 취지문」의 마지막 부분이다. 광주비엔날레의 최민 전시총감독 해촉(1998.12.21), 학예연구원 6명 해임(12.26), 전시기획위원 13명 사퇴(12.28)와 같은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배포된 취지문은 당시 광주비엔날레의 행정관료 중심 운영을 비판하면서 정상화를 위해 항의 문서 발송과 기자회견, 공청회 등의 행동을 예고하고 있다. 이제는 “세계 5대 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의 24년전 성장 기록이다.




좌) 「광주비엔날레 정상화와 관료적 문화행정 철폐를 위한 범미술인위원회 발기 취지문」. 1998.12.29.
우) 「광주비엔날레 ‘동네잔치’ 전락 우려」, 『서울경제』 1999.1.4.


오는 3월 개관하는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는 앞선 사건의 중심에 있던 최민(1944-2018)의 아카이브로 구성된 ‘최민 아카이브 컬렉션(가제)’을 선보인다. 최민은 엄혹한 군부정권 하에서 사회비판적 창작을 했던 <현실과 발언>의 1979년 창립동인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비평과 번역,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영상원장을 역임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그가 번역한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는 국내에서 미술전공자뿐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이미지에 대한 비판적 시각 확장에 도움을 주었다.

국공립미술관에서 미술평론가의 이름을 전면에 드러낸 전시는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이경성(1919-2009)을 다룬 ‘이경성을 회고하다’(2019, 국립현대미술관)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평론가가 중심이 되는 전시는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인문학 담론이 아닌 실명의 한 개인의 시각으로 변화하는 미술문화의 면면을 보다 구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빈도가 잦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민의 경우, 오늘날 빠르게 미술관 제도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영화에 대한 비평 활동을 일찍부터 전개했다는 점에서 오는 전시의 내용과 구성은 더욱 기대를 모은다. 비평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를 분석하여 가치를 논하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미술문화의 주류를 이루는 개념 위주의 작품은 무엇보다도 사회와 기존 예술에 대한 작가의 비평적 태도를 선취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창작과 비평’과 함께 선후 관계에 있어 ‘비평과 창작’ 또한 어폐는 아닐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희곡형식으로 자신의 비평관을 정리한 「예술가로서의 비평가」(1891)로 다음과 같이 비평의 지향점을 언급했다.

“비평가에게 자신을 완성하는 것 말고 다른 목적을 가지라고 해서는 안 돼. 비평가가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비평가는 개인이 아니라 시대에 관심을 가질거야. 시대의 의식을 깨우고 반응하게 만들어 새로운 욕망과 욕구를 창조하고 자신의 더 큰 시각과 더 고귀한 느낌을 제공하려 할 거야.”

오스카 와일드로 대표되는 “예술을 위한 예술”, 유미주의 문학은 빅토리아시대의 중산층의 위선적 의식과 속물성에 대한 비판과 그에 따른 피난처로서의 예술이었지만, 삶과 예술을 분리하는 태도는 이후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자신을 완성하는 것”에만 비평의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무수한 가치로 다원화된 이 시대에 연약하지만 미술을 비평하고 창작하는 일의 지향점이 될 수 있다. 서두의 사건을 다루는 최민의 글은 자료 속에서 찾지 못했다. 분명 그것보다 더 가치있는 비평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시간은 흘러 앞서 언급한 취지문을 발표한 130여 명의 미술인 중 많은 이가 오늘의 한국 미술계 주역이 되었다. 아우러진 시대에 더 많은 “아우르는” 비평과 창작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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