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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성실함의 뿌리”와 한국미술

김정현

“제 논지의 전개는 이렇습니다. 즉 첫째로는 기존의 연구가 당시의 문화사회적 상황을 고려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하고, 둘째로는 문화사회적 상황 속에서 실험미술에 접근하며, 셋째로는 실험미술 중에서도 시대 상황을 투영해 볼 수 있는 작업들을 추출해 보는 과정을 거쳐 여기에 사회적 관점의 해석을 시도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미술사학자 김미경(1958-2016)이 2000년 한국근대미술사학회에서 당시 쌈지아트스페이스 관장 김홍희의 질의에 응답한 내용 일부이다. 이날 김미경의 발표는 그의 박사학위 청구논문 「1960-19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과 사회」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이후 그는 내용을 보완하여 단행본 『한국의 실험미술』(시공사, 2003)을 발간하였다.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미술 다국어 용어사전’에서는 실험미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에 걸쳐 등장한 입체, 환경, 퍼포먼스, 해프닝 등의 탈평면적인 미술 창작의 경향이다. 미술사학자 김미경은 이 미술 경향을 당대의 정치적·사회적 현상을 관련지어 분석하면서 실험미술이라고 지칭했다.”



김미경, 「1960-19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과 사회-경계를 넘는 예술가들」.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 청구논문, 2000


다음 달 국립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이 공동 주최하여 개최할 《한국 실험미술 1960-1970》(가제)은 개념과 시기 설정에서 김미경의 연구와 중첩되는 지점이 있어 과거 한 전시와 함께 회상할 만하다. 지금으로부터 벌써 22년 전, 강국진, 김구림, 박서보, 성능경,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정강자, 정찬승, 하종현 등 50명 작가의 159점이 출품된 《한국현대 미술의 전개: 전환과 역동의 시대(1960년대 중반-1970년대 중반)》(2001, 국립현대미술관)란 대규모 전시가 있었다. 당시 해당 전시를 둘러싸고 한국 사회에서는 흔하지 않은 일간지 상에서의 문제 제기와 반론, 그에 따른 재반론이 이루어졌다. 시대와 작품에 대한 재평가와 학예연구 지원 등도 언급되었지만, 주된 내용은 ‘사라진 작품에 대한 재제작’으로 이 과정에서의 오류를 자료 검증을 통해 보완해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신체제 시기 제작되었던 실험적 작품은 대부분 사회의 오랜 무관심 속에서 작가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보존되기 어려웠으므로 상실되었다. 이로 인해 이 시기의 미술 경향을 전시하기 위해서는 사진, 전시자료, 신문기사, 작가와 주변인 인터뷰 등의 연구 과정을 통해 작품을 재제작한다. 이 과정에서 주최 측 미술관은 작품이 안전하게 보존된 경우와 비교하여 작품 재제작과 관련하여 수많은 주체의 입장을 조율하는데 많은 자원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때에 따라서는 조율이 되지 않기도 하며, 물리적인 한계로 진행 과정에서 중단되기도 한다. 이러한 점을 생각한다면, 곧 개최될 전시를 통해 더욱 많은 요소에서 감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박물관은 올해 하반기에 실험미술보다 다소 모호하지만, 더 넓은 시기에 지속하여온 도전적인 미술 경향을 조명하기 위해 전위미술이란 용어로 한국미술의 흐름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준비 과정에서 한 명의 연구자가 얼마나 귀한지, 특별히 특정 시기나 미술 경향에 집중하여 연구를 지속하는 연구자가 정말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고 있다. 박물관에 찾아오는 자료 열람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국 근현대미술 연구자들의 애환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된다. 문헌 자료에 집중하였다가 실제 창작자와 만나면서 연구 방향을 재설정해야만 했던 경우, 연구 결과를 창작자에게 공유해주었다가 자신의 창작 의도와 다르다며 수정 요청을 받았던 경우 등 관계에서 겪는 부담, 무엇보다도 적은 독자층으로 인한 의욕 상실은 높은 허들로서 작용한다. 

곧 시작될 사건들을 앞에 두고 지금은 만날 수 없는 한 연구자가 그립다. 김미경의 발자취와 연구 내용은 지금도 ‘블로그 rupinakmk’을 포탈에서 검색하면 둘러볼 수 있다. 그의 삶과 그가 다음처럼 밝힌 연구 소회는 동시대 한국미술사를 연구하는 이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지금도 간혹 내 자신이 권력과 힘 앞에서 비겁해진다고 느낄 때 생각한다. 성실함의 뿌리로 자란 나무는 줄기가 잘리더라도 결코 파도 앞의 모래성 같지는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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