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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망각의 화원

이경성

2003년 3월 17일 입주한 한국노인간호센터는 서울여자간호대학에서 직영하는 양로원으로서 북한산자락 보현봉과 형제봉에 에워싸여 있는 절경 속에 있었다. 구름이 길거리를 스치고 지나가고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폭포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고 흘러 내려갔다. 나는 맑은 공기와 고요한 적막 속에 자리하고 있는 이 곳이 퍽이나 좋았다.

더구나 다른 사람들은 다인실이어서 여럿이 같이 있었는데, 나만은 특별한 배려로 1인실에서 생활을 하였다. 내가 입소한 것은 두 번째로서 나보다 먼저 이화대학교 법정대학을 나온 김혜숙 할머니가 제1호였다. 그러고보니 나는 두 번째 입주자가 되는 것이다. 그로부터 한달동안 공사의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 잡음도 들리고 요란한 소리도 들렸지만 건설의 망치소리는 그리 시끄럽지가 않았다. 매일같이 찾아드는 입소 희망자들의 줄이 이어졌다. 여기는 2층 20석, 3층 20석 합해서 40석의 양로원이었다. 매일 사람이 들어오고 하는 상황을 나는 일부로 눈여겨 보지 않았다. 내 방에서 웅크리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고, TV를 보고 산과 그림을 보고 그것으로 행복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바깥의 일을 무시했다.

한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사람들은 늘어났다. 그래서 이제는 제법 양로원답게 간호사도 아주머니도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데 이곳에 특징은 3층에 있는 어느 외교관의 가끔 지르는 악소리가 아름다운 음성으로 실내를 가로지른다. 외교관이었던 그는 치매에 걸려서 자기도 모르게 하루에 몇 번씩 그 아름다운 고성을 지르는 것이다. 2층에는 의사출신의 치매환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잘 때만 빼고는 간호사를 부르는 것이었다. 간호사가 부름을 가봤자 별로 일이 없는데, 옆에 사람이 없으면 간호사를 부르는 것이다. 그 사람도 치매환자였던 것이다.





또 94살 먹은 할머니는 하루에 수십번씩 화장실을 드나드는데 때로는 조그만 가방을 옆에다 끼고 어딘지 모르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최근에 입소한 93살의 할아버지는 키가 2미터나 되는 장대였다. 그 할아버지는 자기가 여기 아파서 환자로 입원했다기 보다는 화초에 물을 주기 위해서 취직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옷을 차려입고 일을 왜 안시키냐고 간호사에게 조르는 것이다. 그 할아버지도 틈만 있으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몇 번이나 내방에 들어와서 여기가 뭐요 하고 물어보는 것이다.

인생에 지쳐서, 치매에 걸려서 정신이 없는 그들이 자아내는 행동은 무의식의 행동이고 목적없는 행동이었다. 살아있기 때문에 움직여야 하고 때가 되면 먹어야 하는 그들의 행동은 몹시 무목적적이다. 하루종일 휠체어에 앉아서 시간만을 보내고 있는 그들은 미래가 없는 현재에서 버려진 인생에서 그저 생명만이 붙어있는 존재였다. 인간에게 욕심과 희로애락의 감정을 빼고 나면 허전한 허무의 세계가 지배하는 것이다. 깊은 밤에 치매환자들이 지르는 악소리를 듣고 나도 때때로는 나도 저 사람들처럼 자기를 잃어버리고 악을 썼으면 좋겠다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이렇게 망각의 화원에는 사건도 많거니와 꿈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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